<요지경 세태> 삐뚤어진 웨딩문화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14 1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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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돈…남 눈치 보면서 결혼하는 세상

[일요시사=사회팀] 본격적인 결혼 성수기인 10월, 넘쳐나는 청첩장에 주말은 온통 결혼식으로 도배된다. 그런데 요즘 결혼식에는 뭐가 그렇게도 많은 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문화가 확산되며 결혼준비 과정에서 작고 큰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의 결혼문화, 무엇이 문제일까.




시대가 변하면서 결혼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다양한 신조어들이 결혼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뜨거운 감자인 ‘꾸밈비’는 예비 신혼부부를 갈라놓는 씨앗이다. 실제로 꾸밈비와 같은 신종 문화 때문에 파혼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올바른 결혼문화를 망치는 허례허식에 대해 알아봤다.

예단은 폐백 시 시부모와 신부가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에서 비롯됐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예물을, 시부모는 신부에게 답례로 저고릿감을 준비했다. 부모에게는 예물로 옷이나 옷감을, 시가의 친척들에게는 관계에 따라 각각 한 가지씩을 선물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단은 이렇듯 따뜻했다. 그러나 지금의 예단은 주로 현금으로 주고받게 되면서 예비부부 사이에 심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보통 신부 측이 예단을 보내면 신랑 측에서는 신부가 옷이나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게끔 일정금액을 다시 돌려보낸다. 우리는 이것을 ‘봉채비’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 이 봉채비는 기본이고, ‘꾸밈비’라는 새로운 비용이 생기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봉채비와 함께 명품가방을 선물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꾸밈비’는…
룸살롱 용어

어느새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꾸밈비’는 결혼을 앞둔 신랑 집안이 신부에게 꾸밀 수 있는 비용을 주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그런데 이 꾸밈비는 여성들 사이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명품가방’을 선물해주는 일종의 공식으로 굳어버렸다.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이 꾸밈비는 남편과 시댁 쪽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게 자신이 이정도로 인정받는다는 걸 인증해주는 척도로 자리 잡게 됐다.


과거에 결혼한 여성들에게 꾸밈비를 물어보면 대부분 ‘모른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꾸밈비가 여성들 사이에서 당연한 권리로 자리잡게 된 데는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L과 M 카페가 큰 공을 세웠다. 물론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꾸밈비 논란 때문에 파혼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리는 걸 보니 심각성이 꽤 크다.

문제는 이 꾸밈비의 어원이다. 도대체 이 용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꾸밈비의 어원은 놀랍게도 화류계 직업여성들이 주로 쓰던 용어로 밝혀졌다. 꾸밈비는 직업여성들이 새로운 업소로 들어갈 때 받는 돈이다. 즉 직업여성이 다니던 술집을 그만두고 새로운 술집으로 옮길 때, 치장하라고 선불로 받는 업소 지원금을 뜻한 것. 이들은 꾸미는 데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 화류계에 받을 딛는 여성의 경우, 옷, 화장품, 향수, 미용실 비용 등 수백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꾸밈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업주들은 선불금으로 수백만원 정도 쥐어준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 들어온 직업여성에게 의무적으로 주는 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꾸밈비’다. 업주 입장에서는 ‘예쁘게 꾸미고 우리 업소에서 오래 일하라’는 의미로 주는 돈이 된 것이다.

이후 화류계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과거를 숨기고 결혼을 하려 할 때, ‘남자에게 가는데 당연히 꾸밈비를 받아야 되지 않겠냐’며 남성들에게 꾸밈비를 요구하면서 잘못된 문화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게 됐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 꾸밈비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관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요구하니 그저 들어주는 입장이었던 것. 결혼의 본질을 흐리는 꾸밈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꾸밈비·애교예단 정체불명 겉치레 눈살
“누구는…”불필요한 명분에 멍드는 혼례

또한 ‘애교예단’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혼할 때 신부측에서 시댁에 보내는 물품을 흔히 예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예단과 더불어 애교예단까지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예단은 반상기, 은수저, 이불 등을 말하는데 여기에 손거울, 귀이개, 동전주머니 등을 보석함에 넣어 함께 보내는 것이 애교예단이다.

애교예단의 취지는 값비싼 예단 대신 저렴하고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대산하자는 것이었는데 몇몇 유명 결혼준비 인터넷 사이트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필수처럼 자리매김했다. 이 애교예단 한 세트는 최소 30만원에서 50만원의 추가비용이 들어 예비 신부들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다. 남들이 다 하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30만∼50만원이라는 액수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꾸밈비’나 ‘애교예단’이나 결혼문화 허례허식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전통 결혼방식은 결혼의 전반적인 비용을 신부의 부모가 부담한다. 신랑의 부모는 결혼식 전날 결혼식 예행연습을 위해 모인 모든 가족들의 식사비용과 신혼여행 비용도 부모의 몫이다. 본인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에는 전통적 방식을 따라, 신부가 부담해야 할 부분과 신랑이 부담해야 할 부분을 나눠서 낸다.

한국과 대조
미국 결혼문화

미국의 경우 예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고액의 선물이나 현금을 보내지 않는다. 굳이 선물을 한다면 결혼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나 집안 장식 용품 정도다. 반면 한국의 결혼식은 미국의 비해 확실히 거품이 많다. 미국은 한국처럼 남자가 집을 장만해야하는 문화가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월세 아니면 자가이므로 새로 시작하는 커플들은 대부분 렌트에서 시작하고 여유가 될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한다. 그리고 약혼을 한 후 동거를 시작하는 커플들이 많은 탓에 이미 거주할 집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한국은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한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급하게 식이 진행된다. 반면 미국에는 이러한 공장형 웨딩홀이 없다. 결혼식 자체가 하루 종일 즐기는 파티다. 예식 장소는 일반적으로 교회를 많이 선호한다. 그 외에 공원이나 집 뒷마당 등 하객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면 어디든 결혼식 장소가 된다. 하객이 소수일 경우에는 시청, 카운티 오피스, 법원 등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주례를 하기 위한 라이센스가 필요하다. 이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 주례를 서야 그 결혼이 정식으로 인정받는다. 그 이유는 한국처럼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식 자체가 곧 혼인신고를 의미한다. 결혼 직후 두 사람이 정식적인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결혼증명서에 사인해 주는 사람이 주례다.

교회 목사들 대부분은 라이센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예식을 많이 올리는 편이다. 교회 이외에 시청이나 카운티에서도 주례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상주하고 있다. 일반인 중에서도 라이센스를 소지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인에게 주례를 부탁해도 된다.

보통 결혼 날짜가 정해지면 혼수용품을 장만할 수 있는 쇼핑몰에 ‘웨딩 레지스트리’라는 것을 등록한다. 예를 들자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 선물로 받고 싶은 품목 리스트를 작성해 등록한다. 그러면 결혼식에 초대받은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그곳에 예비부부의 이름을 말하면 그들의 희망하는 선물 리스트를 공개한다. 지인들은 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골라서 구입하면 된다. 다른 지인이 이미 구입한 품목은 리스트에서 삭제된다.

높아지는 비용
늦어지는 연령

선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선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선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다. 각자의 경제적 상황에 맞춰 선물을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부담도 덜해 합리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선물을 하지 못했을 경우는 축의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모든 하객들이 피로연장으로 장소를 옮긴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파티’가 열린다. 준비된 식사가 나오고 중간에 다양한 이벤트들이 곁들여진다. 신랑신부 들러리들은 한명씩 일어나서 주인공들과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그들의 결혼에 대해 스피치를 한다. 그리고 결혼식은 ‘초대된 사람’만 올 수 있다.

한국의 결혼식은 결혼 당사자들의 인맥보다 부모님의 인맥이 훨씬 더 많지만 미국은 신랑 신부 중심의 인맥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전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참석 여부를 알려줘야 하고, 신랑 신부는 이를 토대로 피로연의 좌석을 마련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결혼식은 큰 부담 없는 그들만의 축제인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12년 전국 결혼 출산 동향 조사’ 자료를 보면 2010년에 5044만8천원이었던 평균 결혼비용이 2년 사이에 7750만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1년 5478만9000원에서 2012년에 7750만원으로 2271만1000원이나 증가해 1년새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돈으로 얼룩지는 허니문
입국해 파혼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결혼비용으로 각각 얼마씩을 준비하고 있을까. 먼저 남자의 결혼비용은 1억 735만원으로 3540만원인 여자 결혼비용에 비해 3배 더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비용중 결혼 당사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은 남자가 3496만7000원 여자가 1623만9000원으로 역시 두 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결혼비용 중 가장 부담스러운 항목은 남자는 신혼 주택 구입 자금, 여자는 신혼 살림 구입 자금이 각각 1위를 차지하며,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했다고 해도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공식은 아직 공고하다.

또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초혼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2013년에 조사한 바로는 서울시민의 경우, 초혼연령이 남자는 32.4세, 여자는 30.2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의 초혼 평균연령은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오름세다. 이 같은 초혼연령 추세는 부담스러운 결혼비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택비용과 예단을 줄일 수 있는 정부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허례허식을 없애고 결혼을 간소하게 하려는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한 허례허식

 
현재 한국의 혼인문화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일정한 틀조차 없는 모습이다.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식을 통해 혼인의 아름답고 의미로움이 전달되지 못해 마음이 겉도는 것 같고, 식이 길어져 지루해지면 축하할 흥미를 잃게 되니 식 진행을 위한 투자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과거에는 신부측에서는 시집을 보낸다고 말했고 신랑측에서는 며느리를 들인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요즘 결혼은 정확히 말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제는 남자 여자 편을 갈라 혼인을 준비할 때가 지났다. 양가의 합의 아래 혼인준비를 위한 경비를 각출해 상술에 의해 만들어진 쓸데 없는 허례허식은 배제하고, 뜻 깊은 격식을 간추려 가능하면 혼인하는 신랑신부와 하객이 하나가 되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에서는 결혼풍속이 서서히 실용적으로 변하고 있기도 하지만 ‘평생에 한번’이라는 말로 합리화되는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천층만층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결혼식이 조금 정돈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해외 이색 결혼식
단돈 1700원으로 웨딩마치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커플이 1파운드(약 1700원)를 사용해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예술가 죠지나 포르테우스(36)와 싱어송라이터 시드 이네스(39)는 자신의 집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결혼식 하객들에게 피로연에서 먹을 음식을 직접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인근 교회 목사가 무료로 주례를 서 주었다. 결혼식에서는 죠지나의 이모가 케이크를 직접 구웠으며, 시드의 아버지가 색소폰 연주로 결혼을 축하했다. 

영국에서는 평균 결혼 비용이 2만 파운드(약 3400만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혼인신고에 드는 비용인 70파운드(약 12만원)는 어쩔 수 없지만, 결혼식에 드는 비용은 신부의 중고 드레스를 사기 위해 사용한 1파운드뿐이었다.

신부인 시드는 “우리는 크고 화려한 결혼식을 바라지 않았다”며 “우리의 결혼생활은 매일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지금까지 본 중 최고의 결혼식이다”고 전했다.

이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정말 아름다운 커플이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허례허식 없이 결혼하는 이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결혼식이 많이 있어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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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