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삐뚤어진 웨딩문화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14 1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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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돈…남 눈치 보면서 결혼하는 세상

[일요시사=사회팀] 본격적인 결혼 성수기인 10월, 넘쳐나는 청첩장에 주말은 온통 결혼식으로 도배된다. 그런데 요즘 결혼식에는 뭐가 그렇게도 많은 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문화가 확산되며 결혼준비 과정에서 작고 큰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의 결혼문화, 무엇이 문제일까.




시대가 변하면서 결혼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다양한 신조어들이 결혼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뜨거운 감자인 ‘꾸밈비’는 예비 신혼부부를 갈라놓는 씨앗이다. 실제로 꾸밈비와 같은 신종 문화 때문에 파혼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올바른 결혼문화를 망치는 허례허식에 대해 알아봤다.

예단은 폐백 시 시부모와 신부가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에서 비롯됐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예물을, 시부모는 신부에게 답례로 저고릿감을 준비했다. 부모에게는 예물로 옷이나 옷감을, 시가의 친척들에게는 관계에 따라 각각 한 가지씩을 선물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단은 이렇듯 따뜻했다. 그러나 지금의 예단은 주로 현금으로 주고받게 되면서 예비부부 사이에 심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보통 신부 측이 예단을 보내면 신랑 측에서는 신부가 옷이나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게끔 일정금액을 다시 돌려보낸다. 우리는 이것을 ‘봉채비’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 이 봉채비는 기본이고, ‘꾸밈비’라는 새로운 비용이 생기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봉채비와 함께 명품가방을 선물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꾸밈비’는…
룸살롱 용어

어느새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꾸밈비’는 결혼을 앞둔 신랑 집안이 신부에게 꾸밀 수 있는 비용을 주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그런데 이 꾸밈비는 여성들 사이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명품가방’을 선물해주는 일종의 공식으로 굳어버렸다.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이 꾸밈비는 남편과 시댁 쪽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게 자신이 이정도로 인정받는다는 걸 인증해주는 척도로 자리 잡게 됐다.


과거에 결혼한 여성들에게 꾸밈비를 물어보면 대부분 ‘모른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꾸밈비가 여성들 사이에서 당연한 권리로 자리잡게 된 데는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L과 M 카페가 큰 공을 세웠다. 물론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꾸밈비 논란 때문에 파혼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리는 걸 보니 심각성이 꽤 크다.

문제는 이 꾸밈비의 어원이다. 도대체 이 용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꾸밈비의 어원은 놀랍게도 화류계 직업여성들이 주로 쓰던 용어로 밝혀졌다. 꾸밈비는 직업여성들이 새로운 업소로 들어갈 때 받는 돈이다. 즉 직업여성이 다니던 술집을 그만두고 새로운 술집으로 옮길 때, 치장하라고 선불로 받는 업소 지원금을 뜻한 것. 이들은 꾸미는 데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 화류계에 받을 딛는 여성의 경우, 옷, 화장품, 향수, 미용실 비용 등 수백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꾸밈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업주들은 선불금으로 수백만원 정도 쥐어준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 들어온 직업여성에게 의무적으로 주는 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꾸밈비’다. 업주 입장에서는 ‘예쁘게 꾸미고 우리 업소에서 오래 일하라’는 의미로 주는 돈이 된 것이다.

이후 화류계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과거를 숨기고 결혼을 하려 할 때, ‘남자에게 가는데 당연히 꾸밈비를 받아야 되지 않겠냐’며 남성들에게 꾸밈비를 요구하면서 잘못된 문화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게 됐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 꾸밈비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관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요구하니 그저 들어주는 입장이었던 것. 결혼의 본질을 흐리는 꾸밈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꾸밈비·애교예단 정체불명 겉치레 눈살
“누구는…”불필요한 명분에 멍드는 혼례

또한 ‘애교예단’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혼할 때 신부측에서 시댁에 보내는 물품을 흔히 예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예단과 더불어 애교예단까지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예단은 반상기, 은수저, 이불 등을 말하는데 여기에 손거울, 귀이개, 동전주머니 등을 보석함에 넣어 함께 보내는 것이 애교예단이다.

애교예단의 취지는 값비싼 예단 대신 저렴하고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대산하자는 것이었는데 몇몇 유명 결혼준비 인터넷 사이트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필수처럼 자리매김했다. 이 애교예단 한 세트는 최소 30만원에서 50만원의 추가비용이 들어 예비 신부들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다. 남들이 다 하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30만∼50만원이라는 액수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꾸밈비’나 ‘애교예단’이나 결혼문화 허례허식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전통 결혼방식은 결혼의 전반적인 비용을 신부의 부모가 부담한다. 신랑의 부모는 결혼식 전날 결혼식 예행연습을 위해 모인 모든 가족들의 식사비용과 신혼여행 비용도 부모의 몫이다. 본인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에는 전통적 방식을 따라, 신부가 부담해야 할 부분과 신랑이 부담해야 할 부분을 나눠서 낸다.

한국과 대조
미국 결혼문화

미국의 경우 예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고액의 선물이나 현금을 보내지 않는다. 굳이 선물을 한다면 결혼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나 집안 장식 용품 정도다. 반면 한국의 결혼식은 미국의 비해 확실히 거품이 많다. 미국은 한국처럼 남자가 집을 장만해야하는 문화가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월세 아니면 자가이므로 새로 시작하는 커플들은 대부분 렌트에서 시작하고 여유가 될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한다. 그리고 약혼을 한 후 동거를 시작하는 커플들이 많은 탓에 이미 거주할 집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한국은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한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급하게 식이 진행된다. 반면 미국에는 이러한 공장형 웨딩홀이 없다. 결혼식 자체가 하루 종일 즐기는 파티다. 예식 장소는 일반적으로 교회를 많이 선호한다. 그 외에 공원이나 집 뒷마당 등 하객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면 어디든 결혼식 장소가 된다. 하객이 소수일 경우에는 시청, 카운티 오피스, 법원 등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주례를 하기 위한 라이센스가 필요하다. 이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 주례를 서야 그 결혼이 정식으로 인정받는다. 그 이유는 한국처럼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식 자체가 곧 혼인신고를 의미한다. 결혼 직후 두 사람이 정식적인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결혼증명서에 사인해 주는 사람이 주례다.

교회 목사들 대부분은 라이센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예식을 많이 올리는 편이다. 교회 이외에 시청이나 카운티에서도 주례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상주하고 있다. 일반인 중에서도 라이센스를 소지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인에게 주례를 부탁해도 된다.

보통 결혼 날짜가 정해지면 혼수용품을 장만할 수 있는 쇼핑몰에 ‘웨딩 레지스트리’라는 것을 등록한다. 예를 들자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 선물로 받고 싶은 품목 리스트를 작성해 등록한다. 그러면 결혼식에 초대받은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그곳에 예비부부의 이름을 말하면 그들의 희망하는 선물 리스트를 공개한다. 지인들은 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골라서 구입하면 된다. 다른 지인이 이미 구입한 품목은 리스트에서 삭제된다.

높아지는 비용
늦어지는 연령

선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선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선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다. 각자의 경제적 상황에 맞춰 선물을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부담도 덜해 합리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선물을 하지 못했을 경우는 축의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모든 하객들이 피로연장으로 장소를 옮긴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파티’가 열린다. 준비된 식사가 나오고 중간에 다양한 이벤트들이 곁들여진다. 신랑신부 들러리들은 한명씩 일어나서 주인공들과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그들의 결혼에 대해 스피치를 한다. 그리고 결혼식은 ‘초대된 사람’만 올 수 있다.

한국의 결혼식은 결혼 당사자들의 인맥보다 부모님의 인맥이 훨씬 더 많지만 미국은 신랑 신부 중심의 인맥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전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참석 여부를 알려줘야 하고, 신랑 신부는 이를 토대로 피로연의 좌석을 마련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결혼식은 큰 부담 없는 그들만의 축제인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12년 전국 결혼 출산 동향 조사’ 자료를 보면 2010년에 5044만8천원이었던 평균 결혼비용이 2년 사이에 7750만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1년 5478만9000원에서 2012년에 7750만원으로 2271만1000원이나 증가해 1년새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돈으로 얼룩지는 허니문
입국해 파혼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결혼비용으로 각각 얼마씩을 준비하고 있을까. 먼저 남자의 결혼비용은 1억 735만원으로 3540만원인 여자 결혼비용에 비해 3배 더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비용중 결혼 당사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은 남자가 3496만7000원 여자가 1623만9000원으로 역시 두 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결혼비용 중 가장 부담스러운 항목은 남자는 신혼 주택 구입 자금, 여자는 신혼 살림 구입 자금이 각각 1위를 차지하며,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했다고 해도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공식은 아직 공고하다.

또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초혼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2013년에 조사한 바로는 서울시민의 경우, 초혼연령이 남자는 32.4세, 여자는 30.2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의 초혼 평균연령은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오름세다. 이 같은 초혼연령 추세는 부담스러운 결혼비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택비용과 예단을 줄일 수 있는 정부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허례허식을 없애고 결혼을 간소하게 하려는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한 허례허식

 
현재 한국의 혼인문화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일정한 틀조차 없는 모습이다.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식을 통해 혼인의 아름답고 의미로움이 전달되지 못해 마음이 겉도는 것 같고, 식이 길어져 지루해지면 축하할 흥미를 잃게 되니 식 진행을 위한 투자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과거에는 신부측에서는 시집을 보낸다고 말했고 신랑측에서는 며느리를 들인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요즘 결혼은 정확히 말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제는 남자 여자 편을 갈라 혼인을 준비할 때가 지났다. 양가의 합의 아래 혼인준비를 위한 경비를 각출해 상술에 의해 만들어진 쓸데 없는 허례허식은 배제하고, 뜻 깊은 격식을 간추려 가능하면 혼인하는 신랑신부와 하객이 하나가 되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에서는 결혼풍속이 서서히 실용적으로 변하고 있기도 하지만 ‘평생에 한번’이라는 말로 합리화되는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천층만층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결혼식이 조금 정돈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해외 이색 결혼식
단돈 1700원으로 웨딩마치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커플이 1파운드(약 1700원)를 사용해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예술가 죠지나 포르테우스(36)와 싱어송라이터 시드 이네스(39)는 자신의 집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결혼식 하객들에게 피로연에서 먹을 음식을 직접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인근 교회 목사가 무료로 주례를 서 주었다. 결혼식에서는 죠지나의 이모가 케이크를 직접 구웠으며, 시드의 아버지가 색소폰 연주로 결혼을 축하했다. 

영국에서는 평균 결혼 비용이 2만 파운드(약 3400만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혼인신고에 드는 비용인 70파운드(약 12만원)는 어쩔 수 없지만, 결혼식에 드는 비용은 신부의 중고 드레스를 사기 위해 사용한 1파운드뿐이었다.

신부인 시드는 “우리는 크고 화려한 결혼식을 바라지 않았다”며 “우리의 결혼생활은 매일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지금까지 본 중 최고의 결혼식이다”고 전했다.

이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정말 아름다운 커플이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허례허식 없이 결혼하는 이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결혼식이 많이 있어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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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