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삐뚤어진 웨딩문화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14 13: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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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돈…남 눈치 보면서 결혼하는 세상

[일요시사=사회팀] 본격적인 결혼 성수기인 10월, 넘쳐나는 청첩장에 주말은 온통 결혼식으로 도배된다. 그런데 요즘 결혼식에는 뭐가 그렇게도 많은 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문화가 확산되며 결혼준비 과정에서 작고 큰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의 결혼문화, 무엇이 문제일까.




시대가 변하면서 결혼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다양한 신조어들이 결혼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뜨거운 감자인 ‘꾸밈비’는 예비 신혼부부를 갈라놓는 씨앗이다. 실제로 꾸밈비와 같은 신종 문화 때문에 파혼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올바른 결혼문화를 망치는 허례허식에 대해 알아봤다.

예단은 폐백 시 시부모와 신부가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에서 비롯됐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예물을, 시부모는 신부에게 답례로 저고릿감을 준비했다. 부모에게는 예물로 옷이나 옷감을, 시가의 친척들에게는 관계에 따라 각각 한 가지씩을 선물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단은 이렇듯 따뜻했다. 그러나 지금의 예단은 주로 현금으로 주고받게 되면서 예비부부 사이에 심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보통 신부 측이 예단을 보내면 신랑 측에서는 신부가 옷이나 화장품을 구입할 수 있게끔 일정금액을 다시 돌려보낸다. 우리는 이것을 ‘봉채비’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에 이 봉채비는 기본이고, ‘꾸밈비’라는 새로운 비용이 생기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봉채비와 함께 명품가방을 선물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꾸밈비’는…
룸살롱 용어

어느새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꾸밈비’는 결혼을 앞둔 신랑 집안이 신부에게 꾸밀 수 있는 비용을 주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그런데 이 꾸밈비는 여성들 사이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명품가방’을 선물해주는 일종의 공식으로 굳어버렸다.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이 꾸밈비는 남편과 시댁 쪽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게 자신이 이정도로 인정받는다는 걸 인증해주는 척도로 자리 잡게 됐다.


과거에 결혼한 여성들에게 꾸밈비를 물어보면 대부분 ‘모른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꾸밈비가 여성들 사이에서 당연한 권리로 자리잡게 된 데는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L과 M 카페가 큰 공을 세웠다. 물론 커뮤니티 내부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꾸밈비 논란 때문에 파혼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리는 걸 보니 심각성이 꽤 크다.

문제는 이 꾸밈비의 어원이다. 도대체 이 용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꾸밈비의 어원은 놀랍게도 화류계 직업여성들이 주로 쓰던 용어로 밝혀졌다. 꾸밈비는 직업여성들이 새로운 업소로 들어갈 때 받는 돈이다. 즉 직업여성이 다니던 술집을 그만두고 새로운 술집으로 옮길 때, 치장하라고 선불로 받는 업소 지원금을 뜻한 것. 이들은 꾸미는 데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 화류계에 받을 딛는 여성의 경우, 옷, 화장품, 향수, 미용실 비용 등 수백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꾸밈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업주들은 선불금으로 수백만원 정도 쥐어준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 들어온 직업여성에게 의무적으로 주는 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꾸밈비’다. 업주 입장에서는 ‘예쁘게 꾸미고 우리 업소에서 오래 일하라’는 의미로 주는 돈이 된 것이다.

이후 화류계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과거를 숨기고 결혼을 하려 할 때, ‘남자에게 가는데 당연히 꾸밈비를 받아야 되지 않겠냐’며 남성들에게 꾸밈비를 요구하면서 잘못된 문화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게 됐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 꾸밈비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관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요구하니 그저 들어주는 입장이었던 것. 결혼의 본질을 흐리는 꾸밈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꾸밈비·애교예단 정체불명 겉치레 눈살
“누구는…”불필요한 명분에 멍드는 혼례

또한 ‘애교예단’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혼할 때 신부측에서 시댁에 보내는 물품을 흔히 예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예단과 더불어 애교예단까지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예단은 반상기, 은수저, 이불 등을 말하는데 여기에 손거울, 귀이개, 동전주머니 등을 보석함에 넣어 함께 보내는 것이 애교예단이다.

애교예단의 취지는 값비싼 예단 대신 저렴하고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대산하자는 것이었는데 몇몇 유명 결혼준비 인터넷 사이트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필수처럼 자리매김했다. 이 애교예단 한 세트는 최소 30만원에서 50만원의 추가비용이 들어 예비 신부들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한다. 남들이 다 하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30만∼50만원이라는 액수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꾸밈비’나 ‘애교예단’이나 결혼문화 허례허식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전통 결혼방식은 결혼의 전반적인 비용을 신부의 부모가 부담한다. 신랑의 부모는 결혼식 전날 결혼식 예행연습을 위해 모인 모든 가족들의 식사비용과 신혼여행 비용도 부모의 몫이다. 본인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에는 전통적 방식을 따라, 신부가 부담해야 할 부분과 신랑이 부담해야 할 부분을 나눠서 낸다.

한국과 대조
미국 결혼문화

미국의 경우 예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고액의 선물이나 현금을 보내지 않는다. 굳이 선물을 한다면 결혼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이나 집안 장식 용품 정도다. 반면 한국의 결혼식은 미국의 비해 확실히 거품이 많다. 미국은 한국처럼 남자가 집을 장만해야하는 문화가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월세 아니면 자가이므로 새로 시작하는 커플들은 대부분 렌트에서 시작하고 여유가 될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한다. 그리고 약혼을 한 후 동거를 시작하는 커플들이 많은 탓에 이미 거주할 집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한국은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한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급하게 식이 진행된다. 반면 미국에는 이러한 공장형 웨딩홀이 없다. 결혼식 자체가 하루 종일 즐기는 파티다. 예식 장소는 일반적으로 교회를 많이 선호한다. 그 외에 공원이나 집 뒷마당 등 하객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면 어디든 결혼식 장소가 된다. 하객이 소수일 경우에는 시청, 카운티 오피스, 법원 등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주례를 하기 위한 라이센스가 필요하다. 이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 주례를 서야 그 결혼이 정식으로 인정받는다. 그 이유는 한국처럼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식 자체가 곧 혼인신고를 의미한다. 결혼 직후 두 사람이 정식적인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결혼증명서에 사인해 주는 사람이 주례다.

교회 목사들 대부분은 라이센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예식을 많이 올리는 편이다. 교회 이외에 시청이나 카운티에서도 주례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상주하고 있다. 일반인 중에서도 라이센스를 소지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인에게 주례를 부탁해도 된다.

보통 결혼 날짜가 정해지면 혼수용품을 장만할 수 있는 쇼핑몰에 ‘웨딩 레지스트리’라는 것을 등록한다. 예를 들자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 선물로 받고 싶은 품목 리스트를 작성해 등록한다. 그러면 결혼식에 초대받은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그곳에 예비부부의 이름을 말하면 그들의 희망하는 선물 리스트를 공개한다. 지인들은 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골라서 구입하면 된다. 다른 지인이 이미 구입한 품목은 리스트에서 삭제된다.

높아지는 비용
늦어지는 연령

선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선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선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다. 각자의 경제적 상황에 맞춰 선물을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부담도 덜해 합리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선물을 하지 못했을 경우는 축의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모든 하객들이 피로연장으로 장소를 옮긴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파티’가 열린다. 준비된 식사가 나오고 중간에 다양한 이벤트들이 곁들여진다. 신랑신부 들러리들은 한명씩 일어나서 주인공들과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그들의 결혼에 대해 스피치를 한다. 그리고 결혼식은 ‘초대된 사람’만 올 수 있다.

한국의 결혼식은 결혼 당사자들의 인맥보다 부모님의 인맥이 훨씬 더 많지만 미국은 신랑 신부 중심의 인맥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전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참석 여부를 알려줘야 하고, 신랑 신부는 이를 토대로 피로연의 좌석을 마련한다. 한마디로 미국의 결혼식은 큰 부담 없는 그들만의 축제인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12년 전국 결혼 출산 동향 조사’ 자료를 보면 2010년에 5044만8천원이었던 평균 결혼비용이 2년 사이에 7750만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1년 5478만9000원에서 2012년에 7750만원으로 2271만1000원이나 증가해 1년새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돈으로 얼룩지는 허니문
입국해 파혼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는 결혼비용으로 각각 얼마씩을 준비하고 있을까. 먼저 남자의 결혼비용은 1억 735만원으로 3540만원인 여자 결혼비용에 비해 3배 더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비용중 결혼 당사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은 남자가 3496만7000원 여자가 1623만9000원으로 역시 두 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결혼비용 중 가장 부담스러운 항목은 남자는 신혼 주택 구입 자금, 여자는 신혼 살림 구입 자금이 각각 1위를 차지하며,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했다고 해도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공식은 아직 공고하다.

또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초혼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2013년에 조사한 바로는 서울시민의 경우, 초혼연령이 남자는 32.4세, 여자는 30.2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의 초혼 평균연령은 한 번도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오름세다. 이 같은 초혼연령 추세는 부담스러운 결혼비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주택비용과 예단을 줄일 수 있는 정부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허례허식을 없애고 결혼을 간소하게 하려는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결혼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한 허례허식

 
현재 한국의 혼인문화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일정한 틀조차 없는 모습이다.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식을 통해 혼인의 아름답고 의미로움이 전달되지 못해 마음이 겉도는 것 같고, 식이 길어져 지루해지면 축하할 흥미를 잃게 되니 식 진행을 위한 투자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과거에는 신부측에서는 시집을 보낸다고 말했고 신랑측에서는 며느리를 들인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요즘 결혼은 정확히 말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제는 남자 여자 편을 갈라 혼인을 준비할 때가 지났다. 양가의 합의 아래 혼인준비를 위한 경비를 각출해 상술에 의해 만들어진 쓸데 없는 허례허식은 배제하고, 뜻 깊은 격식을 간추려 가능하면 혼인하는 신랑신부와 하객이 하나가 되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문제의식을 가진 일부에서는 결혼풍속이 서서히 실용적으로 변하고 있기도 하지만 ‘평생에 한번’이라는 말로 합리화되는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천층만층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결혼식이 조금 정돈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해외 이색 결혼식
단돈 1700원으로 웨딩마치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커플이 1파운드(약 1700원)를 사용해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예술가 죠지나 포르테우스(36)와 싱어송라이터 시드 이네스(39)는 자신의 집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결혼식 하객들에게 피로연에서 먹을 음식을 직접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인근 교회 목사가 무료로 주례를 서 주었다. 결혼식에서는 죠지나의 이모가 케이크를 직접 구웠으며, 시드의 아버지가 색소폰 연주로 결혼을 축하했다. 

영국에서는 평균 결혼 비용이 2만 파운드(약 3400만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혼인신고에 드는 비용인 70파운드(약 12만원)는 어쩔 수 없지만, 결혼식에 드는 비용은 신부의 중고 드레스를 사기 위해 사용한 1파운드뿐이었다.

신부인 시드는 “우리는 크고 화려한 결혼식을 바라지 않았다”며 “우리의 결혼생활은 매일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지금까지 본 중 최고의 결혼식이다”고 전했다.

이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정말 아름다운 커플이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허례허식 없이 결혼하는 이 부부의 앞길에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결혼식이 많이 있어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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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 ‘통일교 수사’ 최종 시나리오

김건희 특검 ‘통일교 수사’ 최종 시나리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구속됐다. ‘정교유착 의혹’ 수사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김건희 특검팀의 활동 기간도 30일 연장됐다. ‘시간 압박’의 짐을 덜게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게 흘러간 통일교 자금과 윤석열 전 대통령 간 연관성, 통일교 교인 국민의힘 집단 입당 의혹 등이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인력·시간 압박에 고민이 깊었다. 한학자 통일교 총재에 대한 신병 확보 여부도 수사에 차질을 줄 수 있는 중대 기로 상황이었다. 한 총재가 구속되면서 수사 물줄기가 이어지게 됐다. 관건은 남은 시간 안에 모든 의혹을 수사할 수 있느냐다. 설마설마 했는데… 한 총재는 지난 23일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와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에게 각종 청탁과 함께 금품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됐다. 정재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한 총재에 대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특검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정치자금법 위반·청탁금지법 위반·업무상 횡령·증거인멸 교사 등 4개 혐의를 적용했다. 한 총재 구속 직후 통일교 측은 입장문을 통해 “수사와 재판 절차에 성실히 임해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 총재에 이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정원주 전 비서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공범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책임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 전 실장은 최근까지 천무원(통일교 최상위 행정조직) 부원장을 맡아 교단 내 실세로 꼽힌다. 특검팀은 한 총재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한 총재가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1억원을 전달하고,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씨에 명품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백 등을 건네는 등 ‘통일교 현안 청탁’ 과정을 승인하고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영장심사에 팀장급을 포함해 검사 8명을 투입한 특검팀은 한 총재가 특검의 세 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하다가 공범인 권 의원이 구속되는 것까지 지켜본 뒤 임의로 출석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인 점과 증거인멸 우려 의견 등을 420쪽 분량의 의견서에 담아 제출했다. 반면 한 총재 측은 이달 초 심장 시술을 받았고 각종 합병증 우려에도 자진 출석했다며 구속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권, 통일교 측 경찰 수사 정보 미리 알려 특검, 일부 교인 국민의힘 실제 입당 확인 한 총재는 전날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전관 출신의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마지막까지 변론 전략 등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재명정부에서 첫 민정수석으로 임명됐다가 사퇴한 오광수 변호사도 한 총재 변호인단에 합류했지만, 이후 논란이 일자 사흘 만에 변호인 사임계를 내기도 했다. 특검팀은 이날 한 총재와 함께 영장심사를 받은 정 전 실장의 수첩에서 한 총재가 연루된 해외 원정도박 수사 사건과 관련해 “자금 관련해 (경찰이) 수사 중이고 압수수색이 나올 것”이란 취지로 적힌 메모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간 한 총재 측은 ‘도박 수사 무마’ 사건이나 ‘금품 전달 의혹’ 등에 대해 “전달자인 윤 전 본부장의 개인 일탈”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 전 실장이 원정도박 수사 사건을 미리 보고받고 챙긴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2022년 10월3일 권 의원으로부터 한 총재의 해외 원정도박과 관련한 경찰 수사 정보를 들은 뒤, 이를 한 총재와 정 전 실장에게 보고하고 통일교 직원들을 시켜 관련 증거인멸을 교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총재 측은 관련 보고를 받은 사실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증거인멸을 지시하거나 승낙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한 총재는 특검 조사를 받은 뒤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전달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내가 왜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한 총재의 신병 확보에 성공함에 따라 향후 수사를 통해 권 의원에게 흘러간 통일교 자금 1억원과 윤 전 대통령 간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추적할 전망이다. 해당 자금의 전달 시점이 20대 대선을 앞둔 2022년 1월로 추정되는 만큼 윤 전 대통령선거에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9부 능선 넘었다 이와 함께 대선 전후 통일교의 재정·조직 지원에 따라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배정 등 통일교 현안이 정부 정책에 반영됐는지 규명하는 것이 향후 수사의 핵심이다. 특검팀은 한 총재 구속영장에 적시되지 않은 통일교 교인 집단 입당 의혹 등 남은 혐의 수사에도 수사력을 모을 방침이다. 앞서 특검은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2022년 10월∼2023년 3월과 22대 총선을 앞둔 지난해 1∼4월 등을 특정해 통일교 교인 명단과 국민의힘 당원 명부를 대조했다. 해당 기간 국민의힘에 신규 입당한 통일교 교인은 39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권 의원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윤석열정부 시절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통일교 측에 지원을 요청한 단서를 포착했다. 특검팀은 “다른 잠재 주자들도 요청해 왔다”는 윤 전 본부장의 문자메시지 등을 토대로 통일교가 전방위적으로 국민의힘 후보들과 유착됐는지 살펴보고 있다. 우선 특검팀은 2023년 3월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 전 본부장이 전씨에게 연락한 정황과 통일교 지구별 책임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을 분석 중이다. 특검팀이 2022년 11월 중순 윤 전 본부장이 전씨에게 보낸 메시지를 주목하고 있다. 윤 전 본부장은 당시 전씨에게 “내년 전당대회에 어느 정도 규모가 필요한지, 윤심은 어떤지”라고 물으며 “몇몇 잠재 주자들도 요청이 왔다. 저희와 과거에 연결됐던 주자들”이라는 취지로 얘기했다. 실제 일부 입당 정황 전씨는 이에 “윤심은 변함없이 권(성동 의원)”이라고 답하며 당 대표 출마를 검토하던 몇몇 국민의힘 잠재 주자들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심판이라 포기했고, B씨는 윤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됐다. C씨는 이기적’이라는 취지였다. 윤 전 본부장이 D 의원은 어떤지 묻자, 전씨는 “윤심 근처에도 못 갔다”고 답했다. D 의원은 전당대회에 출마했지만, 당선권 안에 들지 못했다. 특검팀은 이 같은 문자 내역 등을 토대로,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를 검토했던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통일교 교인들을 동원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특검팀은 지난 18일 국민의힘 당사에 대한 세 번째 압수수색 시도 끝에 데이터베이스(DB) 관리업체에서 당원 명부를 확보했다. 특검팀은 2022년 10월~2023년 3월 조직적으로 가입한 당원들과 당 대표 선거 참여가 가능한 책임 당원들을 파악할 계획이다. 책임 당원은 3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해야 한다. 특검팀이 통일교 교인과 국민의힘 당원 명단 대조를 통해 ‘집단 가입’ 교인들을 찾으면 ‘통일교 3만명 지원’ 의혹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2023년 2월 초 윤 전 본부장이 ‘신규 입당원이 1만1101명, 기존 당원이 2만1250명’ ‘중앙 차원에서 지침을 내렸다’며 김씨에게 보내달라고 전씨에게 전달한 문자메시지도 확보했다. 특검팀은 당시 김씨와 한 총재의 승인하에 통일교가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김기현, 최고위원 박성중, 조수진, 장예찬’을 집단적으로 지지했다고 판단한다. 전씨가 윤 전 본부장에게 “당 대표 김기현, 최고위원 박성중, 조수진, 장예찬으로 정리하라네요”라는 취지로 문자를 보내자, 윤 전 본부장은 “움직이라고 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실제로 김 의원은 당 대표에 당선됐고, 조수진 의원과 장예찬 후보도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수차례 논의” 당 대표 선거에도 직접 개입? 수사 기간 한 달 늘었는데 규명 의혹 산더미 그러나 김씨는 특검팀 조사에서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고 해당 후보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며, 당시 당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는 취지로 반발했다. 전씨도 “그냥 광을 판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특검팀은 한 총재 등에게 정당법 제42조(입당강요죄)와 제49조(당대표 경선 자유방해죄)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정당법 위반 혐의가 성립하려면 통일교 측이 교인들 의사에 반해 강제로 입당시켰고, 당내 선거에 특정 후보를 지지하도록 조직적으로 투표 지시를 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혐의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특검팀이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하는 건 ‘정교 유착’ 의혹의 정점에 있는 윤 전 대통령이다. 권 의원에게 전달된 1억원 중 윤 전 대통령 몫으로 추정되는 돈이 별도로 준비돼있었던 만큼 한 총재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내야 한다. 지난 23일 법조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1월5일 서울 여의도 중식당에서 종이상자에 담긴 ‘관봉권’ 형태의 현금 1억원을 권 의원에게 전달했다. 당시 1억원은 5000만원씩 각자 다른 색의 비단으로 포장됐고 노리개가 달려있었으며 이 중 하나에는 임금을 뜻하는 ‘왕(王)자’가 자수돼있었다고 한다. 윤 전 본부장의 배우자인 당시 통일교 재정국장 이모씨는 같은 날 오전 10시께 두 개 상자 사진을 모두 찍어뒀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당시 전달된 자금 일부가 대선후보였던 윤 전 대통령의 몫으로 준비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윤 전 본부장 역시 특검팀 조사에서 권 의원에게 금품을 전달한 이유에 대해 “대선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은 권 의원 주선으로 윤 전 본부장을 실제 만나기도 했다. 권 의원은 2022년 3월22일 경기도 가평 천정궁을 방문해 한 총재에게 금품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쇼핑백을 받은 뒤 같은 날 오후 윤 전 본부장을 데리고 당선자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만나게 해 준 것으로 조사됐다. 수천만원 따로 전달? 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 총재에게 대선을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달라”고 말했고, 윤 전 본부장의 통일교 현안 청탁에 “향후 그와 같은 사항들을 논의해 재임 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자”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통일교의 현안 중 아프리카 공적개발원조 규모 확대 등 일부는 실현되기도 했다. 금품을 직접 주고받은 윤 전 본부장과 권 의원의 신병을 확보한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금품을 전달받았는지, 통일교 현안이 추진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수사할 계획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