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공간’을 빌려드립니다”

공간 대여형 창업아이템 인기
‘먹거리’서 ‘만남’ 중심으로

직장인 M(25세·여)씨는 친구들이 커피전문점을 가자고 말할 때가 가장 밉다. 유명 커피전문점은 겉보기엔 화려해도 대화를 나누기엔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작은 테이블은 커피쟁반 두 개를 놓기에도 벅차고, 의자를 너무 붙여서 배치하다 보니 옆자리의 대화가 고스란히 들린다. 연애 얘기라도 할라치면 흥분한 친구들은 고함을 지르기 일쑤다. 그럼에도 커피전문점을 제외하면 친구들과 갈 곳이 마땅치 않는 게 고민이다.

소비자들에게 그들만의 공간을 대여해주는 사업이 늘고 있다. 룸형 창업아이템인 이들은 복잡하고 사람 많은 도심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휴식처를 제공해 인기를 얻고 있다.
공간 대여업은 기존의 카페, 커피전문점 등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다. 소비자들은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는 목적보다 만남의 장소로 카페, 커피전문점 등을 찾았던 것. 하지만 지금까지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먹거리 메뉴를 늘리는 데만 급급할 뿐 소비자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는 소홀했다. 멀티방, 커뮤니티카페, 룸 카페 등은 서비스보다 공간에 주력해 최근 주목을 끄는 아이템들이다.

스포츠 관람문화
공간소비 부추겨

삼보컴퓨터의 계열 브랜드인 ‘TG e-space’는 인터넷, 게임, 노래, DVD 감상 등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복합장비로 각각의 서비스를 PC방, 노래방, DVD방에 못지않은 최상급으로 제공하는 기술력이 장점이다. 하지만 이처럼 기술력이 필요한 서비스 제공은 가맹점 영업에서 1순위라기보다는 부수적인 요소다.

TG e-space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접목한 데 대해 소비자들이 한 공간에 머물면서 다양한 오락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TG e-space 관계자는 “2002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문화 중 하나는 스포츠 등을 지인들과 함께 즐기는 관람문화”라며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독립된 공간을 찾는 이가 많아 사업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따라서 복합문화공간, 멀티방 등의 창업 아이템의 경우 기술적인 부분에 집착하기보다 쾌적하고 밝은 분위기로 쉴 수 있는 인테리어, 편의시설 등의 비중이 예전보다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임전용공간 ‘토즈’에서는 신세대뿐만 아니라 기업, 직장인 등 사회적인 모임의 경우에도 공간대여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모임의 집중도를 높이고 짧은 시간에 원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합리적인 소비자들이 토즈를 찾는다. 이곳에서는 직장인 소비자들을 위해 샌드위치, 커피 등의 간단한 식사부터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노트북 및 빔프로젝터, 인터넷 등의 장비도 지원하고 있다.

토즈 박형수 팀장은 “기업에도 분명 회의실이 있지만 잦은 업무전화, 상사의 호출 등으로 회의가 끊어지기 일쑤여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 외에도 대학생들의 동아리 모임, 스터디 그룹, 세미나, 교육행사 등을 찾는 이들이 토즈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사회활동 모임의 경우 가장 큰 장점은 1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일정 기간 반복해서 창업자를 찾는 점이다. 또 단체고객 단위로 영업이 이뤄지고, 보통 사전예약을 받으므로 영업형태가 비슷한 카페, 커피전문점에 비해 업무량도 적고, 그만큼 접객에 필요한 직원 수도 적다.

기업ㆍ커뮤니티ㆍ대학 동아리
“모일 곳이 없다!”

토즈에 따르면 실제로 수에서 20%를 차지하는 기업, 교육, 사업설명회 고객은 매출에서는 40%를 책임지는 알짜배기들이다. 그 외 대학생 및 연인, 친구 등의 고객수는 30%에 매출도 30%를, 소모임 등의 커뮤니티 고객수는 50%를 차지하며 매출에서는 30%를 내고 있다.
이처럼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는 신세대들에 대해 방 문화를 즐기는 한국인의 특징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18세에서 25세까지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룸형 카페, ‘카페루미’에서는 2~3인용과 4~5인용 방을 만들고 이곳에서 단순히 차, 디저트 등의 먹을거리만을 파는 것이 아닌 흥미진진한 이벤트를 제공해 여성 소비자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업체 측은 파티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는 데 반해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한 점에 착안해 브랜드를 출시했다고 한다.

카페루미에서는 1시간에 7000원 정액요금제를 시행하고 음료수는 소비자가 셀프로 이용하는 무한리필 방식이다. 기존 커피전문점은 소비자들이 2000원 안팎의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 매장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 어려움이었다. 또 아르바이트 인건비 부담도 컸지만 룸 카페에서는 음료수를 더 제공하는 대신 매장 운영의 효율성을 높인 셈이다.

이벤트 기획력
소비자 만족도 높인다

카페루미 황지영 과장은 “민들레영토에서 시작된 공간대여형 카페는 시간이 갈수록 그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앞으로는 단순히 시설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하는 기획력을 갖춘 문화공간 여부가 브랜드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독립된 공간을 대여하는 사업은 기존 카페, 커피전문점의 주 고객인 여성의 소비성향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여성들이 편안하고 안정된 공간을 찾고 있는 것.
 
하지만 공간 대여업의 경우 단란주점 등의 유흥시설과 분위기와 시설에서 얼마나 차별화를 하느냐가 관건이다. 여성 소비자들에게 폐쇄적인 것이 아닌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운영이 중요해 창업자들의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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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단독] ‘눈 뜨고 당하는’ 임차권등기 말소의 이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후폭풍은 엄청났다. 생전 걸음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경찰서를 드나들었고 송사를 치르느라 법정을 오갔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법원에서 날아온 문서 한 장에서 시작됐다. 어떤 실수는 손쓸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시에는 실수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갔다가 뒤늦게 알아채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습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계약이 이뤄진 상태라면 더더욱 원상복구가 쉽지 않다. 김모씨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놀라서 해줬다가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7월 김씨는 경기도 광주의 한 빌라에 거주할 목적으로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은 2017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2년, 보증금은 2억200만원으로 했다. 해당 빌라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김씨가 전세 계약을 맺은 후 임대인이 바뀌었다. 문제는 새로운 임대인이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씨는 전세 계약 기간 만료 후인 2019년 9월 해당 빌라에 임차권등기를 마쳤다. 임차권등기명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임차주택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면서 이사할 수 있는 제도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차주택에 거주할 때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도 대항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퇴거하게 되면 이사하는 곳으로 주소를 옮겨야 하니 임차권등기명령을 통해 대항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차권등기명령은 등기부등본에 기재되는 만큼, 강한 대항력을 가진다”고 부연했다. 다시 말해 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돼있다는 것은 세입자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지만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김씨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서 운영하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에 가입해 뒀다는 사실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상품은 전세 계약이 종료됐을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전세보증금을 HUG가 대신 돌려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HUG가 임차인에게 먼저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청구하는 방식이다. 김씨는 2019년 10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 전액인 2억200만원을 받았다. 전세 살다 보증금 못 받아 전세보증금 보험으로 구제 이후 김씨는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했고 해당 빌라와 관련한 일은 새카맣게 잊고 지냈다. 그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HUG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았으니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9년 이후 5년여 동안 해당 빌라와 관련해 김씨에게까지 영향이 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사이 해당 빌라의 주인이 바뀌는 등 소유권 변동이 일어났지만 김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 그러다 지난해 11월 김씨에게 임차권등기명령 취소 신청서가 날아들었다. 김씨는 “법원에서 문서가 송달돼 크게 당황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 문서에 기재된 번호로 연락했더니 7년 전 전세로 살았던 빌라의 집주인이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집주인이 임차권등기를 말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갑자기 법원에서 종이가 날아오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말에 덜컥 겁을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씨는 임차권등기 말소를 위한 서류를 직접 떼 서울 서초동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 가져다줬다고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20일 김씨가 해당 빌라에 걸어놨던 임차권등기가 말소됐다. 해당 빌라에 김씨가 행사할 수 있던 권한이 소멸한 것이다. 동시에 집주인으로서는 등기부등본이 깨끗해지는 효과를 얻게 됐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를 구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줄줄이 꼬였다 이때 김씨가 간과한 사실은 HUG의 존재였다. 김씨가 해당 빌라의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임차권등기를 말소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세입자가 돈을 받은 뒤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주는 게 실제 일반적인 절차다. 이 과정에서도 공인중개사 등 부동산 전문가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전까지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HUG에서 받았다. HUG 입장에서는 해당 빌라의 집주인에게 2억200만원 즉, 돌려받아야 할 돈이 있는 상황에서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으로 말소해버린 것이다. 동시에 김씨가 배당 순위에서 밀리게 되면서 HUG는 대위변제한 보증금을 회수할 방법이 요원해졌다. 여기에 은행, 지자체 등 후순위 채권자들도 있는 상황이다. 김씨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HUG 경기관리센터(이하 HUG 경기센터)는 “모든 임차인은 HUG에 대위변제를 받으면서 대위변제증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가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돈을 받았을 당시 작성한 대위변제증서에는 ‘본인(김씨)은 HUG가 대위변제금 및 제반 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HUG의 동의 없이 주택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겠으며 본인의 주택임차권등기 말소로 인해 HUG에 손해가 발생할 경우 배상할 것을 확약한다’는 문구가 기재돼있다. HUG 경기센터는 “HUG는 대위변제 물건을 경매에 넘겨서 배당을 회수하는데 임차권등기명령을 무단 말소하면 경매에서 배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HUG에 연락했으면 대신 응소해 임차권등기를 지켰을 텐데 당시 김씨가 연로해 이런 생각을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낙장불입 그러나… 김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집주인이) 내가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았기 때문에 임차권등기를 말소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본인(집주인)이 손해를 보고 있다. 임차권등기를 말소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나를 속였다”며 “내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주인 말에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해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김씨가 집주인과 해당 빌라의 채권자들에게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피고(집주인)가 원고(김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의적인 기망행위를 했다거나 그로 인해 김씨가 신청 취하 행위 자체에 착오에 빠져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김씨의 “속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현재 김씨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HUG 경기센터는 대위변제한 보증금 회수를 위해 일단 김씨의 부동산 등에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다. 그러면서도 김씨의 상황을 참작하고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임차권등기 무단 말소 무효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HUG 측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한번도 진행한 적 없는 소송이라고 한다. “억울하다” 법원 인정 안 해 HUG, 구제 위해 소송 제기 HUG 경기센터는 “그동안 임차권등기가 말소되면 복구할 가능성이 없는 것(낙장불입)으로 보고 임차인 손해배상 청구로 업무를 진행해 왔는데, ‘임차권등기 말소 무효 소송을 통해 원상복구 가능성이 있다’는 법률 자문이 있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송이 HUG의 승소로 종결돼 임차권등기가 부활하면 김씨에 대한 구제가 가능하다. 이때 김씨는 소송 실비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HUG 경기센터가 제기한 소송은 김씨에게 해당 빌라에 걸려 있던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이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HUG가 김씨에게 전세보증금을 대위변제한 만큼 임차권등기를 말소할 권한도 HUG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김씨의 임차권등기 말소 행위는 무효라는 게 골자다. HUG 경기센터는 “김씨가 임차권등기를 무단 말소하면서 채권 선순위로 올라온 은행, 세무서, 지자체 등이 김씨의 억울함을 헤아려 대승적인 차원에서 응소하지 않길 기대하고 있지만, 이들은 김씨가 별도로 제기했던 소송에 모두 대응한 전력이 있어 HUG가 제기한 소송에도 응대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HUG가 김씨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대신 구제를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이들 후순위 채권자들도 집주인의 허위 소송에 안타깝게 속아 임차권등기를 말소한 김씨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전해왔다. 실제 김씨가 제기한 ‘임차권등기 말소 회복 청구 등’ 소송에서 은행 한 곳은 대응하지 않았다. 순간 실수 인정될까? 김씨는 집주인과 채권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의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다. 동시에 HUG와도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법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일이 벌어지고 HUG로부터 연락을 받고 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며 “재산은 (가압류로) 묶였고 소송비용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