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일 최장 농성' 재능교육 사태 총정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5: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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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교사들의 외침 “드디어 통했다”

[일요시사=사회팀] 재능교육 노사가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재능교육 노동조합이 천막농성에 나선 지 2076일 만이다. 이로써 노조는 ‘국내 최장기 비정규직 농성’이라는 꼬리표를 마침내 떼게 됐다. 종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조합원들도 202일 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역대 최장기 농성을 이어온 재능교육 사태가 노사 합의로 종지부를 찍었다. 재능교육 노사는 지난 26일 장기농성 문제해결을 위한 최종 합의문에 조인하며 투쟁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장기 투쟁’
노사합의 마침표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재능지부)는 “250만 특수고용노동자 유일의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했다”며 “6년이라는 긴 시간 온 역량을 쏟았고 많은 것을 버리며 투쟁한 결과이기에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현장에서 선생님들의 요구를 담아 2013년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최종합의문에는 ▲사망한 조합원 포함 해고자 12명(사망자 1명 포함) 전원 복직 ▲단체협약 원상 회복 ▲각종 고소고발 취하·처벌불원 탄원서 제출 ▲노조 생활안정지원금·노사협력기금 2억2000만원 지급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재능교육 측도 “이제 회사는 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이라는 인식을 떨쳐 버리고 협력과 상생에 기반한 선진 노사관계의 새장을 열 것”이라며 “노사간의 감정적 앙금을 털어내고 불신의 골을 메우는 신뢰 회복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재능교육 노사 양측 교섭위원은 노조원의 종탑 농성 200일을 앞두고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막바지 집중교섭을 벌였고 밤샘협상 끝에 지난 23일 잠정합의했다. 이어 25일 오후 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 조합원 총회에서 회사 측과 마련한 잠정합의안이 가결됐고 노사는 합의서에 최종 조인했다.

이에 따라 서울 혜화동 성당 15m 높이 종탑 옥상에서 202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오수영 노조지부장 직무대행과 여민희 조합원은 농성을 마무리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유득규 조합원은 “종탑에 있는 조합원들이 많은 고생을 했고 더 아프지 않을 때 내려올 수 있어 참 다행이다”며 “큰 틀에서는 단체협약 원상복구와 해고자 복직이 이뤄졌지만 제도 개선이 바라는 만큼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2076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 2007년 5월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능교육 노사는 이날 임금단체협상을 체결했다. 그러나 장기근무 교사들의 회원관리 수수료(일종의 임금)가 10만∼100만원 이상 삭감됐다. 새로운 회원을 유치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임금문제가 발단…
2000일 넘게 평행선

학습지 교사는 법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 1인 사업자다. 이 때문에 1999년 학습지 교사 9명이 모여 설립한 노조는 정식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근로 감독과 지휘는 엄연히 회사로부터 받고 있어, 회사는 재능지부를 법외노조로 인정하고 노조 집행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건은 협약 체결 이후에 터졌다. 노노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학습지 회원들의 회비 중 최소 35∼55%까지를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받아왔지만, 임단협은 3개월간의 단기적 성과에 따라 평가를 하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합의됐다.


노사가 체결한 단협이 임금을 악화시켰다며 노조 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2007년 9월 유명자씨를 지부장으로 한 새로운 노조가 생겼다. 신임 노조는 같은 해 11월, 경력과 쌓아온 성과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 수수료 개정 단협을 새로 맺자고 회사에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재능의 수수료율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며 33차례 교섭과 조합원 투표까지 통과된 단협을 번복할 수 없다고 버텼다. 또 유효기간을 들어 새롭게 교섭을 할 수 없고 신수수료제도로 계약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갈등 5년8개월 만에 잠정합의안 가결
해고자 전원 복직…고공 농성도 끝내

노조의 유일한 선택은 농성뿐이었다. 천막농성을 통해 사측의 해고협박 중지와 재교섭을 요구했다. 노조는 본사앞 집회·시위, 불매운동 등으로 사측과 맞섰다.

이에 반한 사측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농성을 중지시키려는 탄압은 오랜 기간 다양한 형태로 지속됐다. 재능노조에 따르면 이들은 2007년 말부터 2010년 10월 서울시청 앞으로 농성장을 옮길 때까지 모두 14번 천막이 철거를 당했다. 같은 교사 출신의 관리자들이 앞장섰고 구청에서도 2∼3차례 철거를 강행했다.

당시 유 지부장은 “재능교육에는 정규직 노조와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 교사노조가 있다”며 “정규직 노조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용역 탄압에
가재까지 압류

천막농성을 접은 후에는 사측이 고용한 용역의 탄압이 이어졌다. 이들의 농성장은 서울 성북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폭이 좁은 인도에 있었다. 인적도 드문 곳이었지만, 조합원이 1인 시위를 하면 용역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피켓과 현수막을 철거했다. 사측은 결국 2008년 11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유 지부장과 노조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육체적·정신적 고통 후 뒤따른 건 경제적 고통이었다. 노조 측의 강경시위가 이어지자 사측은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같은 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노조원들에게 “회사 100m 반경 내 불법시위나 무단 천막설치를 금지하며 위반 시 위반행위 1회당 100만원을 회사 측에 지급하라”는 내용의 방해금지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조합원 8인의 통장과 급여 5000여만원이 가압류됐다.

이후에도 불법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한 사측은 2010년에도 법원에 압류와 경매를 요청해 조합원의 가재도구와 차량, 노조 사무실 비품 등이 경매 처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조원들은 집에 있던 김치냉장고와 세탁기는 물론 장롱까지 압류돼 경매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노조 차원에서도 방송차와 노조사무실에 있던 컴퓨터와 책상, 의자까지 모두 압류 조치됐다.

당시 회사 측은 “노조원들이 불법으로 농성하는 과정에서 회사직원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그동안 임직원 42명이 64회에 걸쳐 적게는 2주, 많게는 10주가 넘는 상해를 당해 총 160주 이상의 입원치료 등을 받았다. 여기에 영업을 방해하고 불매운동을 벌여 2007년 말 65만명이던 회원이 올 8월에는 54만명으로까지 감소했다”며 법적조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집행부 교체로
노노갈등 불거져


이후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양측의 협상은 평행선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노조 조합원 중 한명이 암 투병 끝에 사망했고, 노조 내부에서 집행부 교체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 대화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사측은 지난해 8월 ▲해직자 11명 전원 복직 ▲복직 후 단협 체결 ▲민·형사상 소송 취하 ▲생활안정지원금·노사협력기금 명목으로 1억5000만원 지급 등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사망한 조합원을 복직 대상에 포함시키고 복직에 앞서 단협을 체결해야 한다면서 사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일부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사측의 최종협상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곧바로 거부한 집행부에 대한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노노갈등은 지난해 말 이뤄진 집행부 교체를 계기로 표면 위로 불거졌다. 구 집행부는 임원 선거일정을 유보할 것을 요구했으나, 노조원 12명 중 9명이 포함된 신 집행부는 학습지노조 직무대행, 재능지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들 중 2명은 올해 2월부터 종탑 점거농성을 벌였다. 두 조합원은 당시 호소문을 발표하고 “이 시기에 투쟁하지 않으면, 향후 5년간 더 싸움이 이어질 것 같다는 절박함이 들었다”며 “우리가 반드시 단체협약을 손에 쥐고 환하게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 주고 함께 해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끝나 가는 노사갈등
끝나지 않은 노노갈등

이에 대해 구 집행부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신 집행부는) 투쟁지도부로서 자질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종탑 농성마저 함께 싸워온 동지들을 배제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신 집행부는 기존 인원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내부 의결을 거쳐 적법하게 교체됐다고 주장했다.


어찌됐건 앞길이 깜깜했던 재능교육 노사협상은 지난 19일 시작된 노사 양측 교섭위원의 막바지 집중교섭으로 23일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 이어 25일 오후 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 조합원 총회에서 잠정합의안이 가결됨으로써 최종합의에 이르렀다. 다음날엔 종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신 집행부 조합원 두 명이 땅으로 내려왔다. 5년8개월간 이어온 긴 싸움은 이렇게 끝을 맺는 듯 했다. 그러나 유 전 재능지부 지부장 등 구 집행부는 여전히 이번 잠정합의안에 반대하고 있어 사태 추이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능교육 사태 일지]

◇2007년
▲12월21일 재능교육 노조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천막농성 돌입
◇2008년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방해금지가처분’ 결정
▲10월31일 단체협약 사측 일방해지
◇2010년
▲11월7일 서울 중구 소공동 환구단 앞 농성 천막 설치
◇2012년
▲1월 이지현 조합원 암 투병 중 사망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학습지교사 해고는 부당노동행위’일부승소
◇2013년
▲2월6일 오수영 지부장 직무대행, 여민희 조합원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 성당 종탑 고공농성 돌입
▲8월19∼23일 집중교섭 및 잠정합의안 도출
▲8월25일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총회 개최 및 잠정합의안 가결
▲8월26일 노조 농성 해제 및 노사 ‘협력과 상생을 위한 2013년 합의문’조인식

 

<기사 속 기사>

박성훈 회장은?
35년 교육출판 외길

재능교육 창업자인 박성훈 회장은 지난 35년간 교육 사업에만 심혈을 기울여온 외길 경영인이다.

재능교육의 전신은 1977년 세워진 무역회사 신영상역으로, 박 회장은 미국에서 MBA 과정을 마친 뒤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 재능교육의 모태인 무역회사를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박 회장은 1979년 당시 인기를 끌던 일본 구몬수학(공문수학)을 보고 순수 국내 학습지를 개발해야겠다는 아이디어로 학습지 사업을 시작했다. 신영상역 사무실 한쪽에 대학생 20여 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 학습 교재에 진단과 처방 과정을 결합한 학습시스템을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1년 회사 이름을 한국프로그램재능교육원으로 바꾸고 이 해에 <재능산수> A∼H등급을 출판했다. 1985년 <재능산수> I와 J등급을 내놓으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재 개발을 마쳤다. 1986년 학습지 회원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1987년 회사 이름을 재능교육으로 바꿨다. 1989년 회원수가 5만 명을 넘었고 이 해에 <재능한자>를 출시했다.

1993년 <재능영어>와 <재능국어>를 잇따라 선보였다. 1998년 CH23(DSN)을 인수해 재능스스로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 사업에 진출했다. 2001년에는 교육포털을 만들었고 이 해에 종합학습지인 <스스로i>를 출간했다. 2004년부터 영어 교육 전문 방송인 JEI English TV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06년 <재능원리수학>과 <재능중국어>를 잇따라 출시했다. 계열사로는 재능방송, JEI English TV, 재능인쇄, 재능아카데미, 재능유통, 재능문화, 재능해외교육원 등이 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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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