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일 최장 농성' 재능교육 사태 총정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5: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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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교사들의 외침 “드디어 통했다”

[일요시사=사회팀] 재능교육 노사가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재능교육 노동조합이 천막농성에 나선 지 2076일 만이다. 이로써 노조는 ‘국내 최장기 비정규직 농성’이라는 꼬리표를 마침내 떼게 됐다. 종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조합원들도 202일 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역대 최장기 농성을 이어온 재능교육 사태가 노사 합의로 종지부를 찍었다. 재능교육 노사는 지난 26일 장기농성 문제해결을 위한 최종 합의문에 조인하며 투쟁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장기 투쟁’
노사합의 마침표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재능지부)는 “250만 특수고용노동자 유일의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했다”며 “6년이라는 긴 시간 온 역량을 쏟았고 많은 것을 버리며 투쟁한 결과이기에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현장에서 선생님들의 요구를 담아 2013년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최종합의문에는 ▲사망한 조합원 포함 해고자 12명(사망자 1명 포함) 전원 복직 ▲단체협약 원상 회복 ▲각종 고소고발 취하·처벌불원 탄원서 제출 ▲노조 생활안정지원금·노사협력기금 2억2000만원 지급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재능교육 측도 “이제 회사는 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이라는 인식을 떨쳐 버리고 협력과 상생에 기반한 선진 노사관계의 새장을 열 것”이라며 “노사간의 감정적 앙금을 털어내고 불신의 골을 메우는 신뢰 회복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재능교육 노사 양측 교섭위원은 노조원의 종탑 농성 200일을 앞두고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막바지 집중교섭을 벌였고 밤샘협상 끝에 지난 23일 잠정합의했다. 이어 25일 오후 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 조합원 총회에서 회사 측과 마련한 잠정합의안이 가결됐고 노사는 합의서에 최종 조인했다.

이에 따라 서울 혜화동 성당 15m 높이 종탑 옥상에서 202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오수영 노조지부장 직무대행과 여민희 조합원은 농성을 마무리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유득규 조합원은 “종탑에 있는 조합원들이 많은 고생을 했고 더 아프지 않을 때 내려올 수 있어 참 다행이다”며 “큰 틀에서는 단체협약 원상복구와 해고자 복직이 이뤄졌지만 제도 개선이 바라는 만큼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2076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 2007년 5월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능교육 노사는 이날 임금단체협상을 체결했다. 그러나 장기근무 교사들의 회원관리 수수료(일종의 임금)가 10만∼100만원 이상 삭감됐다. 새로운 회원을 유치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임금문제가 발단…
2000일 넘게 평행선

학습지 교사는 법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 1인 사업자다. 이 때문에 1999년 학습지 교사 9명이 모여 설립한 노조는 정식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근로 감독과 지휘는 엄연히 회사로부터 받고 있어, 회사는 재능지부를 법외노조로 인정하고 노조 집행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건은 협약 체결 이후에 터졌다. 노노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학습지 회원들의 회비 중 최소 35∼55%까지를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받아왔지만, 임단협은 3개월간의 단기적 성과에 따라 평가를 하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합의됐다.


노사가 체결한 단협이 임금을 악화시켰다며 노조 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2007년 9월 유명자씨를 지부장으로 한 새로운 노조가 생겼다. 신임 노조는 같은 해 11월, 경력과 쌓아온 성과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 수수료 개정 단협을 새로 맺자고 회사에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재능의 수수료율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며 33차례 교섭과 조합원 투표까지 통과된 단협을 번복할 수 없다고 버텼다. 또 유효기간을 들어 새롭게 교섭을 할 수 없고 신수수료제도로 계약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갈등 5년8개월 만에 잠정합의안 가결
해고자 전원 복직…고공 농성도 끝내

노조의 유일한 선택은 농성뿐이었다. 천막농성을 통해 사측의 해고협박 중지와 재교섭을 요구했다. 노조는 본사앞 집회·시위, 불매운동 등으로 사측과 맞섰다.

이에 반한 사측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농성을 중지시키려는 탄압은 오랜 기간 다양한 형태로 지속됐다. 재능노조에 따르면 이들은 2007년 말부터 2010년 10월 서울시청 앞으로 농성장을 옮길 때까지 모두 14번 천막이 철거를 당했다. 같은 교사 출신의 관리자들이 앞장섰고 구청에서도 2∼3차례 철거를 강행했다.

당시 유 지부장은 “재능교육에는 정규직 노조와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 교사노조가 있다”며 “정규직 노조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용역 탄압에
가재까지 압류

천막농성을 접은 후에는 사측이 고용한 용역의 탄압이 이어졌다. 이들의 농성장은 서울 성북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폭이 좁은 인도에 있었다. 인적도 드문 곳이었지만, 조합원이 1인 시위를 하면 용역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피켓과 현수막을 철거했다. 사측은 결국 2008년 11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유 지부장과 노조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육체적·정신적 고통 후 뒤따른 건 경제적 고통이었다. 노조 측의 강경시위가 이어지자 사측은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같은 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노조원들에게 “회사 100m 반경 내 불법시위나 무단 천막설치를 금지하며 위반 시 위반행위 1회당 100만원을 회사 측에 지급하라”는 내용의 방해금지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조합원 8인의 통장과 급여 5000여만원이 가압류됐다.

이후에도 불법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한 사측은 2010년에도 법원에 압류와 경매를 요청해 조합원의 가재도구와 차량, 노조 사무실 비품 등이 경매 처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조원들은 집에 있던 김치냉장고와 세탁기는 물론 장롱까지 압류돼 경매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노조 차원에서도 방송차와 노조사무실에 있던 컴퓨터와 책상, 의자까지 모두 압류 조치됐다.

당시 회사 측은 “노조원들이 불법으로 농성하는 과정에서 회사직원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그동안 임직원 42명이 64회에 걸쳐 적게는 2주, 많게는 10주가 넘는 상해를 당해 총 160주 이상의 입원치료 등을 받았다. 여기에 영업을 방해하고 불매운동을 벌여 2007년 말 65만명이던 회원이 올 8월에는 54만명으로까지 감소했다”며 법적조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집행부 교체로
노노갈등 불거져


이후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양측의 협상은 평행선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노조 조합원 중 한명이 암 투병 끝에 사망했고, 노조 내부에서 집행부 교체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 대화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사측은 지난해 8월 ▲해직자 11명 전원 복직 ▲복직 후 단협 체결 ▲민·형사상 소송 취하 ▲생활안정지원금·노사협력기금 명목으로 1억5000만원 지급 등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사망한 조합원을 복직 대상에 포함시키고 복직에 앞서 단협을 체결해야 한다면서 사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일부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사측의 최종협상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곧바로 거부한 집행부에 대한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노노갈등은 지난해 말 이뤄진 집행부 교체를 계기로 표면 위로 불거졌다. 구 집행부는 임원 선거일정을 유보할 것을 요구했으나, 노조원 12명 중 9명이 포함된 신 집행부는 학습지노조 직무대행, 재능지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들 중 2명은 올해 2월부터 종탑 점거농성을 벌였다. 두 조합원은 당시 호소문을 발표하고 “이 시기에 투쟁하지 않으면, 향후 5년간 더 싸움이 이어질 것 같다는 절박함이 들었다”며 “우리가 반드시 단체협약을 손에 쥐고 환하게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 주고 함께 해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끝나 가는 노사갈등
끝나지 않은 노노갈등

이에 대해 구 집행부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신 집행부는) 투쟁지도부로서 자질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종탑 농성마저 함께 싸워온 동지들을 배제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신 집행부는 기존 인원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내부 의결을 거쳐 적법하게 교체됐다고 주장했다.


어찌됐건 앞길이 깜깜했던 재능교육 노사협상은 지난 19일 시작된 노사 양측 교섭위원의 막바지 집중교섭으로 23일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 이어 25일 오후 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 조합원 총회에서 잠정합의안이 가결됨으로써 최종합의에 이르렀다. 다음날엔 종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신 집행부 조합원 두 명이 땅으로 내려왔다. 5년8개월간 이어온 긴 싸움은 이렇게 끝을 맺는 듯 했다. 그러나 유 전 재능지부 지부장 등 구 집행부는 여전히 이번 잠정합의안에 반대하고 있어 사태 추이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능교육 사태 일지]

◇2007년
▲12월21일 재능교육 노조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천막농성 돌입
◇2008년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방해금지가처분’ 결정
▲10월31일 단체협약 사측 일방해지
◇2010년
▲11월7일 서울 중구 소공동 환구단 앞 농성 천막 설치
◇2012년
▲1월 이지현 조합원 암 투병 중 사망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학습지교사 해고는 부당노동행위’일부승소
◇2013년
▲2월6일 오수영 지부장 직무대행, 여민희 조합원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 성당 종탑 고공농성 돌입
▲8월19∼23일 집중교섭 및 잠정합의안 도출
▲8월25일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총회 개최 및 잠정합의안 가결
▲8월26일 노조 농성 해제 및 노사 ‘협력과 상생을 위한 2013년 합의문’조인식

 

<기사 속 기사>

박성훈 회장은?
35년 교육출판 외길

재능교육 창업자인 박성훈 회장은 지난 35년간 교육 사업에만 심혈을 기울여온 외길 경영인이다.

재능교육의 전신은 1977년 세워진 무역회사 신영상역으로, 박 회장은 미국에서 MBA 과정을 마친 뒤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 재능교육의 모태인 무역회사를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박 회장은 1979년 당시 인기를 끌던 일본 구몬수학(공문수학)을 보고 순수 국내 학습지를 개발해야겠다는 아이디어로 학습지 사업을 시작했다. 신영상역 사무실 한쪽에 대학생 20여 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 학습 교재에 진단과 처방 과정을 결합한 학습시스템을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1년 회사 이름을 한국프로그램재능교육원으로 바꾸고 이 해에 <재능산수> A∼H등급을 출판했다. 1985년 <재능산수> I와 J등급을 내놓으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재 개발을 마쳤다. 1986년 학습지 회원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1987년 회사 이름을 재능교육으로 바꿨다. 1989년 회원수가 5만 명을 넘었고 이 해에 <재능한자>를 출시했다.

1993년 <재능영어>와 <재능국어>를 잇따라 선보였다. 1998년 CH23(DSN)을 인수해 재능스스로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 사업에 진출했다. 2001년에는 교육포털을 만들었고 이 해에 종합학습지인 <스스로i>를 출간했다. 2004년부터 영어 교육 전문 방송인 JEI English TV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06년 <재능원리수학>과 <재능중국어>를 잇따라 출시했다. 계열사로는 재능방송, JEI English TV, 재능인쇄, 재능아카데미, 재능유통, 재능문화, 재능해외교육원 등이 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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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