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20대가 적지 않다. 미리 직장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데다 이력서에 쓸 경력도 늘어난다는 장점이 인턴직원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 많은 경험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는 일이라곤 전화 받기, 복사 등 잡무가 대부분이라 업무능력을 키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이력서에 쓰기도 창피할 만큼 특별한 경력도 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인턴을 마친 뒤에도 취업을 하지 못해 또 다시 인턴사원으로 돌아가는 젊은이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인턴제도의 허와 실을 알아봤다.
넘쳐나는 인턴사원으로 인턴경험 취업가산점 받기 힘들어
제대로 된 업무경험 못 쌓아 이력서에 쓰기도 창피한 인턴
올해 2월 대학교를 졸업하고 두 달째 행정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이모(28)씨. 그의 하루는 오늘도 단조롭다. 어렵게 인턴에 합격한 뒤 첫 출근 날까지만 해도 이씨는 환상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는 첫 출근과 동시에 꺾였다. 맡은 업무가 잡무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팀원들도 그를 단순 아르바이트생으로 착각하는 듯했다. 같은 팀원이 아니라 보조자 취급을 했다. 이씨는 이에 전화 돌리기, 복사, 사무실 집기 나르기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가 하는 업무는 매일 똑같다고 한다.
업무보조 알바?
처음엔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사무실 직원들과 가까워지려고 애썼지만 그마저도 포기했다. 하루 종일 직원들과 말 한마디 안 하는 날도 늘어만 간다고 한다.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이씨에게 부모님은 “왜 일을 찾아서 하지 않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건 그야말로 몰라서 하는 말. 이씨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나 재량권이 없기 때문에 찾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4개월 후면 떠날 직장이라는 사실도 이씨를 점점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씨는 “애착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일하려고 해도 6개월만 채우면 나갈 직장이라는 생각을 하면 애쓰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다”고 털어놨다.
그가 인턴을 하며 가장 힘든 것은 시간을 죽이는 일. 하루 종일 인터넷서핑을 하며 취업사이트 등을 뒤적이는 것이 일이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고 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턴직원으로 일하는 대학동기와 메신저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이씨는 “인턴을 한 경력이 취업에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지만 인턴기간 내내 빈둥거리며 인터넷서핑을 한 것을 이력서에 쓸 수도 없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며 “차라리 인턴을 그만두고 토익점수라도 올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이씨는 “한 달에 90만원이라도 통장에 들어오니 백수보단 낫지 않느냐”며 희망 없는 인턴생활을 그만두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씁쓸해했다.
또 다른 공기업에서 인턴을 마친 뒤,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기업의 인턴이라도 해보려고 한다는 김모(29)씨도 인턴이 취업의 보증수표라는 생각은 오래전에 버렸다고 한다.
김씨 역시 6개월 동안 단순 사무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업무의 전부였다고 한다. 몇 개월 후엔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영어공부를 하는 내공에까지 이르렀다고. 그리고 인턴과정이 끝날 때쯤엔 나무 심기, 잡초 뽑기 등의 허드렛일에도 단골로 동원됐다.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업무에 지쳐갔지만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첨가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6개월을 채운 김씨. 그러나 이 경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인턴을 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서류전형조차 통과하기가 힘들었던 것.
김씨는 “수차례 서류전형에서 떨어진 뒤에는 아예 인턴경험을 이력서에 넣지도 않았다”며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손가락을 빨 수는 없어 다른 기업 인턴이라도 할 생각”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처럼 별다른 기대 없이 인턴으로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는 20대는 적지 않다. 많은 기업들과 공공기관들이 앞 다퉈 인턴사원을 모집한 까닭에 대학졸업생 5명 중 1명 정도는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물론 이 중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리고 업무경험도 쌓으면서 취업에 도움도 되는 ‘알짜배기’ 인턴과정을 밟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날백수보다는 나아서’라는 이유로 6개월을 버티고 있다.
인턴경험을 한 취업생이 넘치는 만큼 인턴을 한 것이 취업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과는 달리 일부 기업에서만 인턴제도를 도입했던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인턴으로 근무했다는 것은 취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별한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인턴사원으로 뽑히는 것이 지금처럼 수월한 일도 아니었다. 대학시절 인턴을 한 경험을 높이 평가받아 취업을 했다는 정모(32)씨는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기업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인턴을 한 경험이 취업에 큰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정씨가 대학시절 경험했던 것은 방송사와 신문사 인턴이었다. 합격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서류전형과 면접, 간단한 시험을 통과해야 대학생 인턴이란 명함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어렵게 인턴사원이 된 만큼 배우고 얻은 것도 많다고 한다. 정직원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업무를 수행했던 터라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고스란히 이력서에 담겼고 이력서를 낸 기업마다 서류전형에 합격할 만큼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는 취업성공의 큰 발판이 됐다.
누굴 위한 인턴?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인턴제도는 그 기능을 잃은 것이 사실이다. 취업 전 형식적으로 밟는 과정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
인턴사원의 수만 봐도 얼마나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인턴에 뛰어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 5월 말 현재 약 3만3000명이 지자체와 정부부처, 공기업, 중소기업 등에서 일하고 있다. 이는 인턴과정을 밟은 것이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한 취업준비생은 “지금의 인턴제도가 도대체 누구를 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인턴직원 덕에 싼 값에 인력을 쓸 수 있는 기업과 인턴제도로 인해 백수들의 수가 줄어들었다고 위안하는 정부에게만 좋은 제도”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