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학력위조 파문’ 사건이 벌어진 지도 어느덧 2년이 흘렀다. 2년 전인 2007년 7월, 한 여교수의 학력위조로 시작된 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각계각층에 이름난 이들을 긴장시켰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학력을 부풀리거나 속인 것이 들통 나 활동에 지장을 받았던 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파문이 일었던 당시의 학력검증 바람과 학벌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지금도 여전할까.
“가수 타블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학력을 속였다.” 2년 전 7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온 학력위조 릴레이는 씁쓸한 우스갯소리를 남긴 채 일단락됐다.
당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채 변명과 사과를 거듭하던 이들은 2년 후인 지금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전과 다름없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그중 파문의 시초인 신정아(37) 전 동국대 교수는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전도유망했던 젊은 미술학도의 몰락이 시작된 것은 2년 전.
여교수 거짓말에 ‘발칵’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중퇴와 1994년 미국 캔자스대 미술학사, 1995년 같은 대학 경영전문석사, 2005년 예일대 미술사학 박사 등의 화려한 학벌로 무장한 신씨는 미술계의 거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짙은 촉망받는 학자였다.
그는 동국대 조교수와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미술계와 불교계에서는 신씨에 대한 의혹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학력을 속였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것. 이 소문은 그저 소문으로 그치는 듯했다. 평소 신씨가 쌓아왔던 이미지와 든든한 인맥, 미술에 대한 조예 등이 그녀를 지켜준 것. 그러나 진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 감독으로 발탁된 지 이틀이 지난 2007년 7월6일, 장윤 스님이 한갑수 당시 비엔날레 재단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신씨의 박사학위는 가짜이고 이를 증명할 자료가 있다”고 폭로하면서 신씨의 몰락의 서막을 알렸다.
학력위조 파문 주인공들…“여전히 활발한 활동 중”
2년 전 불었던 학력검증 바람 ‘시들’ 학벌주의 여전
이 같은 가짜 학력이 보도된 후 신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검찰수사를 통해 감춰졌던 그의 비밀은 하나씩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신씨와 연인관계이면서 그의 벼락출세에 지대한 도움을 줬던 변양균(60)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행각도 낱낱이 밝혀졌다.
당시 이들이 주고받았던 연애편지와 아직 진위가 파악되지 않은 신씨의 누드사진 등이 공개되면서 이들의 사건은 점차 흥밋거리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4월, 법원은 신씨의 파기환송심에서 1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2단독 김래니 판사는 “이화여대 업무방해 혐의는 대법원의 판단대로 무죄, 예일대 박사학위 위조 및 행사 혐의는 관련자 진술에 비춰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신씨는 이에 지난 5월 서울서부지법에 항소장을 냈다. 신씨 측 변호인은 “예일대 박사학위기(졸업증서)를 위조해 행사한 혐의와 관련해 예일대 측이 박사학위증명확인서를 동국대에 보냈기 때문에 서류 위조 부분에 대해 다시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학력을 속인 또 한 명의 교수는 ‘행복전도사’란 별명을 가진 정덕희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다. 2007년 8월 <시사저널>은 정 교수의 ‘방송통신대 졸업, 동국대 교육대학원 졸업(석사), 경인여대 교수’ 등의 학력과 경력이 가짜라고 보도했다.
정씨는 이에 “학력을 의도적으로 위조한 적이 없고 방송에 출연해 학력에 대해 말한 적도 없다”며 고의로 학력을 속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그녀 역시 학력위조자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전과 다름없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교수직을 유지하며 방송, 강연 등에 나서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학력위조 파문에 걸린 연예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 중 한 명은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로 팬들에게 각인돼 왔던 탤런트 장미희다. 명지전문대 교수면서 영상진흥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한 장미희는 고교졸업과 대학교, 유학시절 얻었다는 학위까지 모두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학력위조가 들통 난 이후에도 장미희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변함없이 지켜졌다.
오히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 출연해 부유층 사모님 역할을 연기하면서 그 이미지는 더욱 굳어지는 모양새였다. 또 자신을 꾸미는 데 공을 들이는 중년여성을 일컫는 ‘루비족’의 대표주자로 각인되는 등 학력위조자라는 꼬리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연기파 배우이면서 건실한 가장의 이미지를 잃지 않았던 탤런트 최수종도 학력을 속인 것이 밝혀져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최수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확인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당시 소속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최수종이 이 학교에 합격한 것은 사실이나 집안 사정으로 등록하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파문에도 최수종은 연예활동에 별 지장을 받지 않았다. 드라마와 연극무대 등을 오가며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는 최수종은 최근에는 ‘꽃중년’을 대표하는 스타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파문이 일었던 당시 함께 불었던 학력검증 바람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을까. 확실한 검증으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업이나 대학, 공공기관들은 2년이 지난 지금, 학력검증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 않는 분위기다.
복잡한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이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학력검증으로 돈을 버는 업체 몇몇만이 2년 전 파문의 여파로 남아있을 뿐이다.
변치 않는 학벌사회
실력보다는 학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학벌중심주의 역시 여전한 병폐로 남아 있다. 파문 당시 일었던 학벌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학서열화 등 학벌위주 사회가 만든 잔재들은 여전히 존재해 각종 문제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