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엽기적인 방식으로 재탄생되는 신종범죄. 그야말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특히 나아질 줄 모르는 경제상황은 돈벌이를 위해 보다 더 치밀한 신종범죄를 연구하는 범죄자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 피해자 또한 늘어나는 실정이다. 찜질방에서 한눈을 판 사이 피싱 범죄의 장본인이 되는 범죄부터 혼자 사는 여성들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벌이는 범죄까지 신종범죄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영파라치 이용한 범죄 등 사이버 세상에도 신종범죄 날뛰어
마약사범 증가하며 마약쿠키 등 신종마약도 물밀듯 들어와
새로운 방식의 범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범죄 중 하나는 ‘피싱’ 범죄다. 목소리 하나로 금융기관 등을 사칭해 돈을 뜯어내던 보이스 피싱은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했고 더 많은 피해자들을 낳고 있다.
잠든 틈타 휴대폰 훔쳐
‘돈 좀 보내줘’ 문자 송신
최근 벌어지는 피싱 범죄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일명 ‘찜질방 피싱’. 말 그대로 찜질방에서 벌어지는 범죄다. 범인들이 노리는 범행대상은 찜질방에서 휴대폰을 옆에 두고 잠에 빠져 있는 손님들이다. 범행방식은 단순하다. 먼저 찜질방 손님들이 휴대폰 관리에 소홀한 틈을 타 휴대폰을 훔친다. 그 뒤 휴대폰 속 전화번호를 뒤져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지인들을 검색한다. 그리고 검색한 번호에 “급하게 20만원이 필요하니까 돈 좀 보내줘”라는 등의 문자를 보낸 뒤 휴대폰을 끈다.
물론 문자에는 범인 자신의 계좌번호를 쓰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문자를 본 휴대폰 주인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고 문자에 찍힌 계좌번호로 돈을 송금하게 되는 것이 범인들이 노리는 것. 실제 이 같은 범죄에 속수무책 당한 이들은 적지 않다. 최근 찜질방을 찾았다 어이없는 일을 당한 이모(32)씨도 벌건 대낮 당한 범죄에 지금도 황당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주말, 홀로 찜질방에 간 그는 여느 날처럼 휴대폰을 옆에 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이 깨고 난 뒤 옆에 있어야 할 휴대폰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놀란 이씨는 주인에게 휴대폰을 도난당한 사실을 말하고 통신사에도 도난신고를 했다고 한다. 구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휴대폰을 감쪽같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에 아까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여겼던 이씨. 그러나 문제는 몇 시간 뒤 벌어졌다.
집 전화로 가족들과 친구, 직장동료들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던 것. 그들은 이씨에게 “무슨 일로 돈이 필요한 거냐”는 알 수 없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영문을 몰라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이씨에게 지인들은 자신의 번호로 “돈이 필요하니 보내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제야 이씨는 찜질방 피싱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혹시나 문자를 받았을지 모르는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문자는 사실이 아니니 절대 돈을 보내지 말라는 당부를 해야 했다. 다행히 문자에 찍힌 계좌로 돈을 보낸 사람은 없었지만 그는 잊지 못할 주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이처럼 최근 찜질방 등 휴대폰을 소홀하게 다루기 쉬운 공간에서 피싱 범죄가 자주 일어나자 이를 막기 위한 대책도 강구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찜질방 같은 곳에 갈 때는 휴대폰에 잠금장치를 걸어놓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휴대폰을 도난당했다 하더라도 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방지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휴대폰에 이름을 저장할 때 어머니, 동생 등의 단어로 저장하지 말고 별명이나 실명 등으로 저장하는 방법이다. 설사 범인들이 휴대폰을 훔쳐도 지인으로 찍혀 범행의 표적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신종범죄는 혼자 사는 여성들을 노린 것.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독신여성이 많은 곳이 유력한 범행장소이다. 집에 홀로 있는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르는 범인들과는 달리 이들 범인은 여러 명이 집단을 이뤄 몰려다닌다. 이들은 범행을 저지르기 쉬운 여성의 집을 점찍은 뒤 그 여성이 집을 나가고 들어오는 시간을 체크한다. 그리고 집이 비게 되면 몰래 문을 열고 들어 가 제집 드나들 듯 생활을 한다. 일부 범인들은 집 안에 몰래카메라까지 설치해 놓고 집 주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한다고.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정모(28·여)씨도 얼마 전까지 집을 비운 사이 낯선 이들이 침입을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약 한 달 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한 정씨는 거실 전등을 끄지 않고 온 것이 생각나 하루 종일 찜찜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찜질방 피싱, 메신저 피싱 등 각종 방법으로 낚아
불황 지속되면서 금융사기수법 또한 갈수록 지능화
그런데 퇴근 후 집에 가 보니 거실 불은 꺼져 있었다. 이상했지만 착각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정씨는 그 다음 날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화장실 변기 뚜껑이 열려있었던 것. 남자가 들어올 일이 없는 집에서 벌어지기는 힘든 일이었다.
정씨는 이에 회사동료들에게 최근 자신의 집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털어놨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자 사는 직장상사는 “얼마 전 우리 집에도 그런 일이 있어 알아봤더니 가출청소년들의 소행이었다”며 “요즘 혼자 사는 여자들 집을 노리고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일을 당한 것 같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정씨는 자물쇠를 바꾸는 등 보안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정씨는 “집 안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위험한 곳이 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집 안에 CCTV를 설치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른바 ‘영파라치’ 범죄. 영파라치는 영화와 파파라치의 합성어로 인터넷에서 영화파일이 불법적으로 유통되면서 영화사들이 입는 피해를 줄이고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네티즌 스스로 불법 영상 공유를 감시하는 신고포상제도다.
“불법 다운로드 받았지!”
영파라치 가장한 범죄
문제는 이를 이용해 P2P사이트 등에서 영화나 동영상 등을 다운받은 네티즌에게 돈을 뜯어내는 범죄가 생기고 있다는 것. 얼마 전 P모 사이트에서 영화 두 편을 다운받은 A씨도 범죄에 당할 뻔했다고 털어놨다. 평소 무료영화를 자주 다운 받아보는 A씨는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영화를 다운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운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통의 쪽지가 날아왔다고 한다. 쪽지의 내용은 “불법으로 영화를 다운받은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번호로 전화하면 선처해 줄 테니 연락해라”라는 것으로 전화번호 하나가 함께 적혀 있었다.
저작권법 위반 등이 머릿속에 떠올라 불안해진 A씨는 당장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저작권으로 한 편당 30만원만 보내라. 아니면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다분히 협박성 전화라고 애써 위로하면서도 불법 다운로드를 받은 것은 사실이기에 불안해진 A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A씨를 안심시킨 것은 “요즘 불법 다운로드로 돈 뜯으려는 사기꾼들이 많으니 신경 쓰지 말아라”는 친구의 말. 그제야 A씨는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신종 사이버 범죄는 ‘메신저 피싱’이다. 이는 범인이 메신저 주소록에 등록된 친구의 ID로 접속해 돈을 요구하는 범죄다. 친구의 ID로 접근하는 범인에게 속기 쉬워 최근 많은 이들이 당하는 범죄이기도 하다.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에 따르면 메신저 피싱과 관련된 신고 건수는 올 3월과 4월엔 하루 평균 15건, 5월 이후에는 평균 10건이 접수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피싱 범죄에 낚이자 메신저 접속 시 ‘메신저 친구가 돈을 요구하면 주의’라는 경고 문구를 넣기도 했다.
불황과 함께 기승을 부리는 마약범죄에도 ‘신상’은 있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신종마약이 그것. 최근에는 과자처럼 만든 마약인 ‘대마쿠키’를 밀반입한 유학생이 덜미를 잡혔다. 창원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30일 대마쿠키를 밀반입한 미국 유학생 박모(21)씨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15일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을 통해 대마쿠키 60개(1497g)를 몰래 들여오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마쿠키는 밀가루 반죽에 초콜릿과 대마가루를 넣어 쿠키 모양으로 만들어 구운 것으로 겉으로 봐서는 가정에서 만든 과자와 다를 것이 없다. 검찰에 따르면 쿠키 60개 모두에서 대마초 성분인 ‘칸나비노이드’가 검출됐다. 검찰 조사결과 박씨는 미국인 친구로부터 대마쿠키를 국제우편으로 받기로 하고 미국 보스턴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을 통해 소포를 수령하려다 적발됐다. 세관 관계자는 과자를 보내기에는 비싼 42달러의 운송료를 들여 과자를 미국에서 들여온 점을 수상하게 여겨 검찰에 신고해 대마쿠키 밀반입이 드러났다.
군입대를 위해 지난해 말 입국한 박씨는 미국인 친구와 인터넷 화상채팅 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대마쿠키를 소포로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대마쿠키는 2005년 국내에서 첫 적발된 이후 특송화물·여행자화물·국제우편 등을 통해 밀반입되고 있다. 대마쿠키와 유사하게 만들어진 마약은 ‘마약껌’. 태국 등지에서 마약 대용으로 씹는 마약껌은 일부 유학생들을 통해 은밀하게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태국여행을 다녀 온 한 여행객은 “태국에서는 아이들도 씹는 껌이라 별생각 없이 사서 들어오려다 공항에서 적발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초콜릿 쿠키 아냐?”
마약 반죽한 과자까지
이처럼 교묘하고 치밀한 수법으로 이뤄지는 신종범죄들은 지금도 우리를 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죄들은 점점 지능화되는 반면, 불황 등으로 어려움에 빠진 서민들은 예전보다 범죄에 쉽게 걸려들 확률이 높아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며 “특히 ‘얼굴 없는 범죄’가 많은 만큼 본인 스스로의 주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