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국정원 둘러싼 ‘피튀기는 고지전’ 전말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7.02 13: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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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면 바뀌는 깃발 “각본 없는 드라마가 따로 없네”

[일요시사=정치팀] 국정원 선거개입을 둘러싸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국민의 검찰 수사 요구가 거세지자, 때마침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이하 NLL)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야권은 ‘국정원 수사 물타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일요시사>가 이슈를 둘러싼 여야의 피 튀기는 전쟁을 들여다봤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은 연일 언론을 뒤덮었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었다. 황규환 법무부 장관에 대한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급기야 대학생들이 원 전 원장에 대한 철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NLL논란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구석으로 몰리던 새누리당은 일단 불리한 국면을 벗어난 듯 보였다. 하지만 자충수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은 당장 민심의 이반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NLL카드’보다
‘즉흥적 대응’ 위험

“새누리당 전략에 손 놓고 당하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에 관한 국정조사가 합의가 이루어지기 직전, 한 민주당 관계자에게 나온 소리다. 그는 부정선거나 다름없는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을 두고 새누리당이 들고 나온 ‘NLL카드’보다 이에 미숙하게 대응하는 민주당 지도부를 원망하는 듯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할 때 회담 대화록을 직접 봤다. 논란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어 몇 개 추려내 그걸 NLL포기 발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민주당 지도부는 건건마다 그들에게 휩쓸리고 있다. 민주당 전략통이 없는 탓이다”라며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냈다.

여기까지 보면 ‘여론몰이’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새누리당 앞에 민주당의 대응은 거의 ‘무전략’에 가까워 보인다. 새누리당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노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까지 끌어와 판세를 뒤집으러 갖은 애를 썼다.

던진 새누리당
낚인 민주당

한 정치권 관계자는 “싸움을 먼저 건건 새누리당이지만, 싸움판을 벌인 건 민주당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전략은 뻔하다. 불리한 이슈를 묻기 위해 엉뚱한 곳을 공격해 논란을 키운다. 여론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중심을 지켜야 하는 민주당은 본래 주장하고자 했던 것들은 까맣게 잊은 듯 수비에 집중했다.

‘최고의 수비는 최고의 공격’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되자 갑자기 NLL 공개 이야기가 나왔다. 노 전 대통령도 없는 마당에 이러한 논란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민주당으로선 국정원사건은 꾸준히 끌어가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전략통 부재’를 주요원인으로 꼽았다. 전략통 역할을 했던 김한길 대표와 이해찬 의원 등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 NLL논란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민주당의 ‘컨트롤 타워’가 없어 의원실별로 주먹구구식 대응이 이루어진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NLL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6월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참석한 자리에서 여야는 원 전 국정원장의 검찰 기소를 두고 온종일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다. 민주당의 국정원 국정조사 요구에 새누리당이 수세에 몰리던 시기였다. 


‘여론몰이’ 능한 새누리당 ‘전략통 부재’ 민주당 엎치락뒤치락
새누리당 정갑윤 권선동 NLL 발언에 민주당 박영선 ‘발끈’ 

여야는 각각 ‘국정원 직원 정치공작의 몸통설’과 ‘경찰 축소은폐 수사 몸통설’에 대한 폭로전을 전개하며 정면충돌했다. 답변에 나선 황 장관은 여야의 과녁을 달리한 질문공세 속에 진땀을 빼며 수시로 “공소내용이라 자세히 밝힐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여야는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검찰이 공직선거법을 적용해 기소한 것을 두고 현격한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었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원 전 원장은 대선 당시 NLL 대화록 공개를 거부, 새누리당과 관계가 안 좋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원 전 원장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며 원 전 원장의 NLL 공개 거부를 이유로 들며 대선개입 주장을 일축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의 말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권 의원은 “원 전 원장이 대선 때 우리 편 아니었다. NLL 회의록 공개하라고 우리가 그토록 요구하고 직무유기로 고발까지 하고 그다음엔 해임결의안까지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안했다. 그것만 했더라도 선거 더 쉽게 이길 수가 있었는데”라며 NLL 건을 선거용으로 쓰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영선 법사위 위원장은 작년 대선 당시 제기된 2007년 NLL 포기 발언 논란이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마무리 발언을 마쳤다.

명예훼손으로 검찰 고소까지
반박에 재반박 이어져

박 위원장의 발언이 있은 후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NLL카드’를 꺼내 들었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다음날 박 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최경환 의원도 가세했다. 새누리당은 박 위원장의 발언을 물고 늘어지며 “민주당이 정권 흔들기용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들은 민주당의 ‘폭로’에 대한 새누리당의 공식적인 첫 대응이라고 보도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NLL 발언에 대응한 박 위원장의 마무리 발언이 여당의 먹잇감이 된 셈이었다. 박 위원장의 발언은 언론에 의해 일파만파 퍼졌다.

민주당이 반응을 보인 건 지난 6월20일. 전병헌 원내대표는 “재탕 삼탕의 NLL 의혹 제기 이제 그만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같은 날 새누리당 강은희 대변인은 박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논평을 냈다. 이어 민주당도 NLL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정청래 정보위원회 간사를 비롯한 민주당 위원들은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의 기자회견에 대한 반박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야 대립의 중심에 NLL 논란이 자리 잡은 것도 이때다.

문재인 공개 요구 나서, 국정원 회담 발췌본 공개로 역풍 맞아
여당 “집권하면 NLL 대화록 까겠다” 발언 녹취록 판세 바꿔

결국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전면에 나섰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해서도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던 문 의원은 NLL 발언과 관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과 녹취자료 등을 전면 공개할 것을 주장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비밀기록물로 분류된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일반문서로 해제해 국민에게 그 발췌본을 공개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NLL 논란이 정쟁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을 덮기 위한 ‘물타기 여론’이라는 반발도 극심했다. 대학생 시국선언으로 촉발된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NLL 논란을 부추기는 새누리당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의 소모적 논쟁에 국민의 피로감은 극에 달하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국정원이 공개한 회담전문과 발췌본 사이에 일부 차이가 드러나면서 여론이 새누리당에게 더욱 불리하게 돌아갔다. 새누리당은 ‘치고 빠지기’식 숨고르기에 돌입했다. 공세를 멈춘 채 여론동향을 살피며 대응 방향을 고심하는 듯한 태도였다. 새누리당은 NLL 공세에서 한 발 물러났다.

‘치고 빠지기’에 역풍
‘자살골’ 조심 또 조심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이 이처럼 치고 빠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배경에는 NLL 문제의 이슈화에 이미 성공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주 느닷없는 NLL 공세로 국정원 정치개입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여론을 덮었으니 이제는 관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여론 역풍을 최소화하겠다는 심산이라는 해석이다.

지나친 공세는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에 대한 각계의 반발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결국 지난 6월25일 새누리당은 그동안 손사래를 쳐오던 국정원사건 국정조사를 전격 수용했다. 고삐를 쥔 민주당은 “집권하면 NLL 대화록을 까겠다”며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던 권영세 주중대사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폭로하면서 ‘대화록 정국’의 큰 물결에 올라탔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공수교대에 들어간 상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정국에서 의원들은 중요한 고비에 ‘자살골’같은 발언을 하는 것에 경계심을 표출하며 입단속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여야의 각본 없는 이슈전쟁은 결말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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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