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700호 특집> ⑥ 직장인‘밤문화’변천사심층해부

네온사인 아래 ‘휘청’ 시름은 ‘훨훨’

“퇴근 후 맥주 한잔 어때?” 피곤한 하루를 보낸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은 언제부터 유행했을까. 정답은 ‘샐러리맨들의 등장과 함께’일 것이다. 시대에 따라, 유흥문화의 변화에 따라 다르지만 샐러리맨들이 있는 곳엔 퇴근 후 밤문화도 늘 존재했다.
직장인들을 잡기 위한 업주들의 노력도 끝없이 진화했다.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서비스로 이들의 발길을 잡으려는 유흥업소의 변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직장인들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직장인들의 밤문화를 돌아봤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는 직장인들의 밤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도시에 일자리가 늘어나 샐러리맨들이 중산층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밤도 변화를 맞이했다.

샐러리맨들의 지친 하루 맥주 한잔으로 모두 잊어

그 시절 직장인들이 퇴근 후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는 막걸리와 소주를 파는 포장마차였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된 노동에 지친 샐러리맨들은 소주 한잔에 싸구려 안주 한 접시로 시름을 달랬다.
50~60년대까지만 해도 광목으로 바람만 겨우 가린 채 잔소주를 팔던 포장마차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금의 형태와 비슷하게 변화했다.

회식이나 단합대회 등 한국의 독특한 직장문화가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다. 일자리가 부족해 취직이 어려운데다 직장 안에서의 경쟁도 심했던 그 시절, 상사가 주도하는 회식자리에 불참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강압적인 회식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도 당시의 시대상과 무관치 않다. 한창 맥주소비가 늘었던 70년대 말에는 서구화된 맥주집에서의 회식도 함께 늘었다. 술과 함께 춤, 노래를 즐길 수 있는 유흥업소도 70년대 들어 성행했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나라가 관리했던 독재정권 아래에서도 음주가무 문화는 꾸준히 발전했다.

도시화 본격화된 70년대부터 직장인들 밤문화도 서서히 시작
통금시간 속에서도 대포집, 고고장 등 직장인들 유흥문화 발전
 직장인들 소비능력 향상되면서 유흥업소도 고급화물결
성매매특별법으로 변종 성매매업소 생겨 직장인들 유혹

술과 음악, 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업소 중 하나는 스탠드바. 1930년대에 생긴 스탠드바는 70년대 들어 크게 유행했다. 음악연주를 하고 쇼를 보여주는 무대를 앞에 두고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그 시절 스탠드바의 형태였다.

이른바 ‘고고장’이라고 불리던 나이트클럽이 대중화된 것도 70년대다. 밴드가 직접 연주하는 라이브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그때의 나이트클럽이다.
직장인들은 퇴근 후 고고장에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시다가도 자정이 가까워 오면 집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자칫 잘못해 통금시간을 넘겼다간 여관신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카바레, 룸살롱 등 유흥업소 역시 급격히 늘어났다. ‘아가씨’가 술을 따러주는 고급 술집도 70년대 말 속속 생겨났다. 이때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직원들의 성문제와 윤리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고도성장의 결실이 맺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는 ‘밤문화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흥문화가 초고속으로 발전한 시기다.
정권이 바뀌면서 통금이 해제되고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호화로운 룸살롱 등의 유흥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직장인들의 퇴근 후 풍경도 크게 변했다. 직장인들의 월급이 오르고 소비능력이 향상되면서 서민들의 안식처였던 포장마차와 대포집의 인기는 서서히 식어갔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호프집과 카페다. 이로 인해 막걸리와 소주의 소비량은 점차 줄었고 맥주와 양주의 소비량이 급격히 늘었다. 또 기업의 접대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폭탄주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술자리는 2, 3차로 이어져 새벽까지 유흥을 즐기는 직장인들이 증가했다.
기계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는 가라오케가 확산된 것도 80년대의 일이다. 음악을 듣고 쇼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노래를 부르는 유흥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나이트클럽의 형태도 변화했다. 고고장을 대신해 등장한 것은 ‘디스코텍’. 디스코 춤의 열풍과 함께 확산된 업소였다.
또 하나 80년대 밤풍경의 특징은 성의 상품화가 두드러졌다는 것. 술자리에 여종업원이 나와 ‘서비스’를 하는 형태의 업소가 크게 증가했고 퇴폐적인 쇼를 보여주는 업소 등 선정적인 유흥문화가 확산됐다.

경제 상황에 따라 유흥업소도 변화일로

윤락산업 역시 발전했다. 천호동 텍사스촌, 청량리 588등의 집창촌 뿐만 아니라 증기탕, 퇴폐이발소, 마사지업소, 티켓다방 등 다양한 형태의 윤락업소가 생겨 직장인들을 유혹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88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성을 파는 여성의 수는 120만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윤락산업이 활황을 맞으면서 술을 마신 뒤 윤락여성과 잠자리를 가지는 직장인들도 늘어났다.

경제성장의 절정을 맞은 1990년대는 밤문화의 고급화를 더욱 부추겼다. 특히 1991년 주류 수입이 개방되면서 세계 각국의 술이 밀려왔다. 고급 양주부터 와인, 맥주 등 다양한 술이 들어오면서 술집 역시 다변화의 길을 걸었다.
이런 가운데 뜬금없이 소주가 인기 술로 떠오르기도 했다. ‘소주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주점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과즙 등을 첨가한 달콤한 맛의 칵테일소주가 등장하면서 술이 약한 여자 직장인들도 부담 없이 술집을 드나들 수 있었다. 9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또 하나의 ‘방’은 노래방이다.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던 가라오케가 쇠퇴할 무렵 생긴 노래방은 순식간에 전국의 유흥풍속도를 바꿨다. 직장인들의 회식문화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1차 술자리가 끝나고 난 뒤 노래방으로 향하는 것이 코스처럼 정착된 것도 이 무렵이다. 또 음주와 함께 가무를 즐기길 원하는 이들을 위해 단란주점이 유행하기도 했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룸살롱도 변화를 맞았다. 이른바 ‘하드코어’를 표방하는 ‘북창동식’ 룸살롱이 확산되면서 보다 화끈하고 질펀한 유흥을 원하는 직장인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윤락산업도 발전을 거듭했다. 성매매 시장은 90년대에 들어 보다 체계적인 산업으로 변모했다. 성매매 알선업자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하는 보도방도 90년대에 들어 성업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가정주부, 직장여성, 대학생 등 평범한 여성들까지도 매춘에 뛰어들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또 외환위기 이후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원조교제’로 미성년자 성매매가 등장해 연일 뉴스를 장식했다. 당시 10대 여학생들과 중년의 직장인 남성들이 성을 사고파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IMF가 남긴 상처를 안고 출발한 2000년대는 밤문화에도 하락세를 가져왔다. 불황과 실직의 여파로 마시고 노는 문화는 그리 빛을 보지 못했다. 경기침체로 인해 주점, 클럽 등도 불황을 맞았다. 그러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고급 술집이나 강남 일대의 클럽 등의 유흥업소는 불황에도 굴하지 않고 손님들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직장인들의 회식문화와 접대문화도 간소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 ‘거품 빼기 운동’이 이 같은 문화를 확산시킨 것.

성매매특별법 생기면서 변종 성매매업소 우후죽순

그러나 유흥업소들은 환골탈퇴를 거듭하며 직장인들의 구미를 맞춰갔다. 그 중에서도 룸살롱업계의 판도를 바꾼 것은 일명 ‘텐프로’란 업소다. 텐프로는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종업원들 중 자신의 수입의 10%만 업주에게 주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팁의 10%만 업주에게 줘도 업주들이 서로 데리고 갈 정도의 출중한 외모와 몸매를 가진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얼짱’ 여종업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 텐프로 업소다. 북창동식 룸살롱도 황금기를 맞이했다. 주머니사정이 어려워진 직장인들은 유흥업소를 선택할 때도 본전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룸살롱들은 날이 갈수록 화끈한 서비스를 고안해냈다. 룸살롱에서 성매매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풀살롱’이 등장한 것도 불황을 타계하려는 업주들의 아이디어였다.
여자 직장인들을 위한 유흥업소도 등장했다. ‘호스트바’가 그것. 여자 손님들을 위해 일명 ‘선수’라 불리는 남자 접대부가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다. 그리고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직장인들의 밤문화는 걷잡을 수 없이 자극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단속을 교묘하게 피한 변종 성매매업소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 이른바 ‘유사 성매매 업소’로 불리는 업소의 대표주자는 ‘대딸방’이다. 여성의 손이나 신체부위를 이용해 남성의 자위행위를 돕는 대딸방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성매매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노래방도 변화했다. 여자도우미를 고용해 남자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 이는 주부들의 탈선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안마시술소, 페티시클럽, 키스방 등의 퇴폐업소들도 속속 생겨 직장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성매매업소에 비해 단속으로부터 자유로울 거라는 생각을 한 직장인의 발걸음은 끝없이 이들 업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퇴근 후 직장인들의 밤문화는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변화를 거듭해왔다. 화려한 조명과 음악 속에서 시름을 떨쳐버리려는 직장인들의 밤문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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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