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⑨김의철의 뉴코아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4.19 14: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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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힘없이 무너진 '유통공룡 원조'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이마트, 홈플러스 그리고 롯데마트. 국내 할인점 시장 '3강'들이다.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라는 브랜드로 할인점 시장에 뛰어든 시점은 1993년. 롯데그룹이 롯데마트라는 브랜드로 할인점에 뛰어든 시점은 95년. 삼성물산과 영국 유통기업인 테스코가 홈플러스라는 브랜드로 할인점에 뛰어든 시점은 97년이다.

할인점 원조
킴스클럽

하지만 원조는 따로 있다. '킴스클럽'이라는 브랜드로 '박리다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으로 국내에 도입한 뉴코아그룹이다. 뉴코아그룹은 백화점과 슈퍼마켓의 중도 시장을 겨냥해서 유통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선두그룹. 그 중심에는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이 있었다.

42년생인 김 전 회장은 고려대 역도부 출신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보일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고 김형종 한신공영 창업주의 눈에 띄어 69년 한신공영에 평사원으로 입사하면서 그의 인생은 첫 번째 터닝포인트를 맞게 됐다.

한신공영은 김 창업주가 50년 설립, 건설업체로서 70년대 중반 대규모 아파트 분양과 중동건설 붐으로 크게 성장했던 기업이다. 건설부가 발표하는 도급 한도액 순위를 보면 한신공영은 72년 44위에서 73년 19위, 74년 10위까지 성장하지만 97년 법정관리 대상이 된다.

김 전 회장은 입사 2년 만인 71년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동시에 맏사위 자리에 앉게 됐다. 과장 직함을 단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큰딸을 내어줄 정도라면 김 창업주가 얼마나 김 전 회장을 신임했는지 상상이 된다.


김 전 회장은 79년대 초반 사람들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한 강남 반포 일대의 땅을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거 사들였다. 70년대 초반은 강남 개발 붐이 불기 이전이기 때문에 반대는 당연했다. 하지만 76년부터 김 전 회장이 매입한 토지에 1∼11차로 이어지는 한신공영 신반포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김 전 회장의 통찰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박리다매·24시 연중무휴 국내 최초 도입
무서운 사업 확장…빚 늘더니 IMF때 발목

78년부터 한신공영은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아파트 내 상가 분양 이외에 직접적인 유통업 참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신공영은 같은 해 ㈜뉴코아유통이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반포에서 30평짜리 뉴코아슈퍼마켓으로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80년 한신공영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연건평 9000평 규모의 뉴코아쇼핑센터를 개점하고 1층 슈퍼마켓을 김 전 회장이 직접 운영하게 했다. 영업 개시 후 5개월이 지나면서 하루 매출이 1000만원을 돌파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81년 한신공영 내 상가사업부가 인력 보강과 동시에 별도의 법인인 ㈜뉴코아로 분리되면서 김 전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게 김 전 회장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였다. 김 창업주의 장남 태영씨가 한신공영의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한 경영 수업을 받는 중이었기에 사위인 김 전 회장의 분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회장직에 오른 태영씨는 뉴코아가 분가된 후 한신공영 내 유통사업부를 두고 83년부터 한신코아백화점 전주점을 시작으로 노원점, 광명점, 성남점, 대전점으로 이어지는 5개의 백화점을 별도로 경영했다. 백화점 명칭은 '한신코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한신코아는 추후 한신공영의 해체로 타 유통업체에 인수되어 현재는 '세이브존'이라는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다.

두 번의 터닝포인트
한신공영과 분가


한신공영과 뉴코아의 분리가 마무리된 시점은 93년. 이후 김 전 회장은 무서운 속도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94년 인첨점과 평촌점에 백화점을 늘렸고 95년 킴스클럽을 설립하면서 창고형 할인점 사업에 진출했다. 94년부터 96까지 3년간 신규 개설한 백화점과 할인점은 17개에 이른다. 김 전 회장에게는 '일벌레' '미스터 불도저' 등과 같은 닉네임이 따라 붙었다. 일에만 매달리는 김 전 회장을 보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62학번 동기들이 왕복항공권을 구입해 거의 강제로 말레이시아로 휴가를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김 전 회장은 기존 유통업계 판도를 뒤흔들었다. '외삼촌 떡도 싸야 산다'는 뉴코아의 사훈처럼 철저한 '박리다매' 방식을 고수했다. 킴스클럽은 국내 최초로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도입했고 뉴코아에서는 고졸 출신도 능력만 있으면 점포장에 오를 수 있었다. 매년 설에는 김 전 회장이 전국 사업장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계장급 이상 직원에게 '떡값'을 직접 나눠주었으며 월급을 현금으로 줘 월급날에는 총무부서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조직문화는 직원들에게 단합과 애사심을 가져왔지만 분명 조직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월급을 현금으로 줬다는 것은 유통업체에는 필수적인 전산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며 회장이 직접 사업장을 일일이 돌며 직원들을 챙겼다는 것은 오너가 아니면 직원들은 뭐 하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재계 27위이자 계열사만 18개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 회장 1명의 '원맨쇼'로 운영됐다는 얘기다.

무리한 사업확장에 '제동'을 걸어줄 직원이 없었으니 점포망 확장에 따른 차입금은 무섭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입지가 중요한 유통업의 특성상 당시 기준으로 1개 점포를 확장하는데 최소 1000억원 이상이 소요됐다. 96년까지 확장한 17개 점포만 따져도 최소 1조7000억원 이상이 차입금으로 묶여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저기서 쓴
막대한 차입금

96년 말 기준 뉴코아그룹의 재무상황을 보면 자본금 2117억원, 매출액 2조2788억원, 부채총계 2조5912억원, 자기자본비율 8%, 부채비율 1223%를 기록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미금백화점, 미금킴스클럽, 화정백화점, 창원백화점, 창원킴스클럽, 일산백화점, 의정부백화점 등이 97년 말 개장을 목표로 한창 공사 중이었다. 이 역시 막대한 차입금에 의존한 공사였다.

결국 뉴코아그룹은 97년 11월 ㈜뉴코아, 뉴코아종합기획, 뉴타운건설, 뉴타운기획, 시대종합건설, 시대물산, 시대유통, 시대축산 등에 대한 화의신청에 들어가면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주력 기업인 뉴코아는 99년 법정관리를 거쳐 2003년 이랜드가 인수하고 2004년 6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정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98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뉴코아 계열사 가운데 살아남은 뉴타운산업(씨마유통)과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비투올네트를 발판으로 재기를 시도했다. 씨마유통을 통해 98년 부천에 패션쇼핑몰 '씨마1020'을 열었으며 비투올네트를 통해 국내 최초 인터넷 할인쇼핑몰 문을 여는 등 사업영역을 넓혀갔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94년 8월부터 95년까지 허위 리스계약서를 작성, 10개 리스사로부터 24차례에 걸쳐 357억여원을 대출받아 빼돌렸으며 1억5000여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2002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2003년 말에는 계열사였던 하이웨이유통과 시대종합건설을 통해 허위재무제표를 작성, 94년 7월부터 96년 11월까지 금융회사로부터 1490억원을 대출받았고 1374억원 상당의 공모 보증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2004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에게는 무리한 점포확장과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독선적인 기업경영 등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씨마유통·비투올네트로 재기시도하다 무산
오너일가는 커머스재팬·마이토이월드 운영

이후 김 전 회장은 철저한 은둔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전직 임원들이나 측근들도 그의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언론 등 각종 매체에서 들리는 소식을 종합하면 자택에서 경제·경영관련 서적을 읽거나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역 시절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골프도 가끔 즐긴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나 현재는 당뇨와 심장병으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던 씨마유통은 외국계 투자회사로 이미 넘어간 상태이며 비투올네트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2007년 해산간주, 2010년 12월 청산종결됐다. 해산 전까지 김 전 회장의 사위인 박종채씨가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딸 재연씨가 이사를, 외동아들인 태훤씨가 감사를 맡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먼저 종채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유식·베이비푸드 유통업체인 커머스파크는 일본 이유식 1위 업체인 와코도의 국내 독입 수입·판매권을 가지고 있다.

2001년 커머스재팬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2011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으며 신세계몰, 롯데마트, GS슈퍼마켓, 이마트, 코오롱 W스토어, 홈플러스, CJ올리브영, 농협중앙회 등 국내 대부분의 유통업체와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종채씨의 부인이자 김 전 회장의 딸인 재연씨는 이 회사의 감사 자리에 올라있다.

먹고 살만한
회장님 일가

재연씨는 얼마 전까지 인터넷 육아·완구용춤 쇼핑몰인 마이토이월드 사장자리에 올라 있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본사가 있는 마이토이월드는 한때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2002년 모 신문사로부터 업계 최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들 태훤씨는 이사를 맡고 있었다. 태휜씨는 2006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토이월드에 대해 "김 전 회장이 가끔 경영자문을 해주시지만 직접적 관련이 없는 독립회사"라며 "아직은 작은 업체들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는 재연씨 대신 김모씨가 사장자리에, 태훤씨 대신 정모씨가 이사자리에 올라 있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뉴코아그룹은?>


▲1950년 한신공영 설립
▲1978년 ㈜뉴코아유통(별도 법인) 설립
▲1980년 뉴코아쇼핑센터 개점, 뉴코아슈퍼마켓 영업 개시
▲1981년 ㈜뉴코아, 한신공영에서 불리, 김의철 전 회장 대표이사 취임
▲1995년 킴스클럽 설립, 백화점·할인점 등 본격 확장
▲1997년 화의신청 및 그룹 해체
▲2003년 뉴코아, 이랜드에 인수
▲2003년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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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