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⑦정태수의 한보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4.03 14: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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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로 일어나고 로비로 쓰러졌다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수단은 목적을 합리화한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한보그룹은 '로비'로 성장해 '로비'로 무너졌다.

한보그룹은 정 전 회장과 성장·추락을 함께했다. 1923년 경남 진주에서 빈농인 부친 정용석씨와 모친 황맹옥씨의 1남1녀 자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정 전 회장은 26세가 되던 49년 첫 번째 부인인 김순자씨를 만나 결혼했다.

현대판 거품 대명사
대치동 은마아파트

결혼 후 세무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부산경남지역 일선 세무서에서 하위직인 주사보로 일하다가 김씨 사망 후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만난 사람이 한보그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상사를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둘째 부인 이수정씨다. 이씨와 결혼을 한 정 전 회장은 70년대 초 일제시절 폐광이 된 강원도의 몰리브덴광산을 사들여 74년 이를 수출하는 한보상사를 설립했다.

몰리브덴수출이 성과를 이루자 정 전 회장은 주택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75년 정 전 회장은 한보주택의 모태가 된 서울 구로동 영화아파트 172가구를 건립하면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정 전 회장은 강남구 대치동의 쓸모없는 유수부지 7만여평을 매입해 당시 단일 물량으로 최대 규모였던 2200세대를 은마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분양했고 2400세대를 추가 분양하면서 큰 돈을 만지게 됐다.

당시 이씨는 건설현장에서 일꾼들의 새참을 나르고 자금을 구하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닐 정도로 남편 이상으로 사업에 열의를 보였다.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회사 일을 챙겼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 전 회장은 83년 이씨가 암으로 타계하자 경기도 김포의 부인 묘소를 6개월에 걸쳐 화려하게 치장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은마타운 성공분양의 여세를 몰아 79년 초석건설을 인수해 한보종합건설로 상호를 변경하고 해외건설에 뛰어들었다. 이후 주택, 상사, 종합건설, 목재, 탄광, 상가 등으로 계열기업을 화장했고 골프장뿐만 아니라 은행관리업체였던 태화방직을 인수했다.

이씨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84년 정 전 회장은 금호철강을 인수, IMF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한보철강을 설립하게 됐다. 한보그룹의 재계 랭킹은 30위권으로까지 치솟았다.

86년을 기점으로 한보그룹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철강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적자를 기록했고 재무구조는 걷잡을 수 없이 취약해져 갔다. 정 전 회장은 감량경영과 계열사 처분 및 합병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돈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강남구 수서-대치 지역 개발제한구역 땅을 사들인 정 전 회장은 '통큰' 로비를 벌이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 예상하는 액수에 '0'을 하나 더 붙여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했고 해당 땅을 택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정권 바뀌고 수서비리·한보사태 등 줄줄이 터져
6년 전 재판 중 해외도피…유유자적 호화로운 생활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정 전 회장의 무차별적 로비가 91년 수서비리 사건으로 불거진 것. 사건이 표면화되면서 서울시, 건설부, 정치권에 있던 수많은 공직자들이 옷을 벗었고 정 전 회장도 뇌물공여죄로 구속됐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고건 전 총리가 청와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업자에게 특혜분양을 할 수 없다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경질됐을 정도로 정 전 회장의 로비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3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정 전 회장은 한보철강을 통해 엄청난 추가금융지원을 받으며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한보철강은 아산만에 새 공장을 건설하는 등 철강 호황기를 만나 급성장했다. 95년 기준 한보그룹 재계 순위는 24위였다. 하지만 당진 제철소가 문제였다. 초기 2조2800억원을 염두해 두고 시작한 제철소 건립 투자금은 2년 만에 5조7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한보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투자비를 계속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한보그룹은 18개의 회사를 설립 또는 인수하는 일을 벌였다. 95년 11월 기준 한보그룹 계열사 수는 26개였다.

결국 외부차입금이 약 5조원에 이를 정도로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제철소 완공 이후에도 적자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뒤늦게 판단한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의 회수에 나섬으로써 97년 1월 한보는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는 대한민국 IMF 관리체계를 향한 첫발로 기록됐다. 97년 4월 삼미그룹, 진로그룹이 부도유예에 들어갔고 5월에는 대동주택이, 7월에는 기아그룹 등 연쇄부도가 발생했다.


한보그룹 부도 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꼽히는 한보사태가 터졌다. 정 전 회장과 정관계, 금융계의 핵심부가 서로 유착한 이 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한보사태의 핵심은 당진제철소 프로젝트에 있다. 한보그룹이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건설부는 부지매립 허가를 9개월 만에 내주고 통상산업부(산업자원부)는 검증도 되지 않은 코렉스 공법의 채택을 적극 권유하기까지 했다. 정부 차원의 견제는 없었다.

그룹 부도 불러온
무리한 제철소 사업

97년 5월 이 사건으로 인해 정 전 회장은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고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징역 5∼20년을 선고받았다.

국회에서는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려 58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이 채택됐고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여당인 황병태 의원,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 뿐만아니라 야당인 정대철, 권노갑 의원을 비롯 김우석 내무부장관, 문정수 부산시장 등이 대출 관련 청탁 또는 국정감사 선처 청탁 등으로 뇌물 수수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에 따라 대거 철창신세를 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정 전 회장에게는 '비리백화점' '로비의 귀재'라는 대명사가 따라 붙었다. 정 전 회장은 5년5개월을 복역하다가 고혈압·협심증의 병세로 석방됐다. 그러나 2005년 강릉영동대학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2심 재판 도중인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 간 뒤 현재까지 해외 도피 중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정 전 회장의 자녀들도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끊임없는 부정 행위로 법정에 섰다. 먼저 장남 종근씨는 대성목재 회장으로 있던 96년 8월부터 이듬해 1월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보그룹 계열사 3곳에 우량 어음을 넘겨주고 계열사 어음을 받는 방법으로 모두 224억원을 불법 지원하다 2002년 불구속 기소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차남 원근씨는 한보그룹이 자금난에 시달리던 96년 6월 경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거액의 도박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500만원과 함께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삼남 보근씨와 그의 아내 김모씨는 정 전 회장이 1980년대 설립한 학교법인 정수학원이 운영하는 강릉영동대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왔다. 지난 3월5일 대법원 3부는 업무상 횡령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의 셋째 며느리 김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보근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해외 도피를 하면서 간호사 4명을 고용했으나 급여를 주지 못하게 되자 며느리가 학장으로 재직하던 강원영동대학의 교비로 이를 지급하도록 지시했다.

그룹 부도 후 삼미·진로·기아 연쇄부도
고액체납자 부동의 1위…아들은 3위 굴욕

김씨는 이들 4명을 학교교직원으로 허위 채용해 4000여만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또 대학의 해외학생유치센터를 이용해 정 전 회장에게 도피자금을 빼돌렸다. 카자흐스탄 등지에 해외학생유치지사를 만들어 운영비 명목으로 빼돌린 돈 1억3000여만원을 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


2007년 감사에서 교육부는 교비 2억여원이 정 전 회장의 해외도피자금으로 빠져나간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김씨는 다시 학교법인 소유 2억여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를 은행에 맡기고 대출받은 돈을 횡령해 교비를 반환했다. 횡령금으로 횡령금을 막은 것이다.

보근씨는 아내와 함께 학교 운영비를 횡령하고 자신의 개인 사무를 수행하던 2명을 교직원인양 위장해 교비로 임금 2200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오너의 그릇된 생각
그룹 실패 예고됐다

보근씨는 정 전 회장과 함께 고액·상습 체납자 상위 명단에 매해 오르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말 국세청이 공개한 체납 명단을 보면 정 전 회장이 누적 체납액 2225억원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보근씨는 644억원의 체납액을 기록, 1073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남 한근씨는 1997년 동아시아가스를 세운 뒤 회삿 돈 320억원을 스위스의 한 은행 계좌로 빼돌린 혐의로 검찰의 추적을 받자 1998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다.

한보그룹의 한 전직 임원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아직도 재기를 꿈꾸고 있다. 9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밑천은 동아시아가스와 보광특수산업이다. 숨겨놓은 '땅'도 많다. 정 전 회장이 보유한 땅은 용인, 인천, 안산 등 수도권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국세청이 적발한 땅만 해도 시가 1500억원을 넘는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357 일대 땅이 대표적이다. 시가 1000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땅은 국세청이 즉각 압류했다. 국세청은 정 전 회장이 30년 동안 미등기 상태로 숨겨놓은 180억원 상당의 부동산도 찾아 등기 촉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에 300억원대의 땅을 숨겨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또 다른 은닉 재산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머슴이 뭘 알겠는가." 정 전 회장이 청문회장에서 한 이 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을 한순간에 머슴으로 격하시켰다. 한보그룹에서 일하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은 머슴이라는 오너의 생각. 어쩌면 이미 한보그룹의 실패가 내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한보그룹은?>

1974년 한보상사 설립
1979년 은마아파트 분양, 초석건설(한보종합건설) 인수
1984년 금호철강(한보철강) 인수
1991년 수서비리 사태
1995년 당진 제철소 건립 추진
1997년 그룹 부도, 한보사태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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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카지노>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세부섬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