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⑦정태수의 한보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4.03 14: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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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로 일어나고 로비로 쓰러졌다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수단은 목적을 합리화한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한보그룹은 '로비'로 성장해 '로비'로 무너졌다.

한보그룹은 정 전 회장과 성장·추락을 함께했다. 1923년 경남 진주에서 빈농인 부친 정용석씨와 모친 황맹옥씨의 1남1녀 자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정 전 회장은 26세가 되던 49년 첫 번째 부인인 김순자씨를 만나 결혼했다.

현대판 거품 대명사
대치동 은마아파트

결혼 후 세무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부산경남지역 일선 세무서에서 하위직인 주사보로 일하다가 김씨 사망 후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만난 사람이 한보그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상사를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둘째 부인 이수정씨다. 이씨와 결혼을 한 정 전 회장은 70년대 초 일제시절 폐광이 된 강원도의 몰리브덴광산을 사들여 74년 이를 수출하는 한보상사를 설립했다.

몰리브덴수출이 성과를 이루자 정 전 회장은 주택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75년 정 전 회장은 한보주택의 모태가 된 서울 구로동 영화아파트 172가구를 건립하면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정 전 회장은 강남구 대치동의 쓸모없는 유수부지 7만여평을 매입해 당시 단일 물량으로 최대 규모였던 2200세대를 은마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분양했고 2400세대를 추가 분양하면서 큰 돈을 만지게 됐다.

당시 이씨는 건설현장에서 일꾼들의 새참을 나르고 자금을 구하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닐 정도로 남편 이상으로 사업에 열의를 보였다.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회사 일을 챙겼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 전 회장은 83년 이씨가 암으로 타계하자 경기도 김포의 부인 묘소를 6개월에 걸쳐 화려하게 치장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은마타운 성공분양의 여세를 몰아 79년 초석건설을 인수해 한보종합건설로 상호를 변경하고 해외건설에 뛰어들었다. 이후 주택, 상사, 종합건설, 목재, 탄광, 상가 등으로 계열기업을 화장했고 골프장뿐만 아니라 은행관리업체였던 태화방직을 인수했다.

이씨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84년 정 전 회장은 금호철강을 인수, IMF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한보철강을 설립하게 됐다. 한보그룹의 재계 랭킹은 30위권으로까지 치솟았다.

86년을 기점으로 한보그룹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철강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적자를 기록했고 재무구조는 걷잡을 수 없이 취약해져 갔다. 정 전 회장은 감량경영과 계열사 처분 및 합병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돈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강남구 수서-대치 지역 개발제한구역 땅을 사들인 정 전 회장은 '통큰' 로비를 벌이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 예상하는 액수에 '0'을 하나 더 붙여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했고 해당 땅을 택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정권 바뀌고 수서비리·한보사태 등 줄줄이 터져
6년 전 재판 중 해외도피…유유자적 호화로운 생활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정 전 회장의 무차별적 로비가 91년 수서비리 사건으로 불거진 것. 사건이 표면화되면서 서울시, 건설부, 정치권에 있던 수많은 공직자들이 옷을 벗었고 정 전 회장도 뇌물공여죄로 구속됐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고건 전 총리가 청와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업자에게 특혜분양을 할 수 없다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경질됐을 정도로 정 전 회장의 로비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3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정 전 회장은 한보철강을 통해 엄청난 추가금융지원을 받으며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한보철강은 아산만에 새 공장을 건설하는 등 철강 호황기를 만나 급성장했다. 95년 기준 한보그룹 재계 순위는 24위였다. 하지만 당진 제철소가 문제였다. 초기 2조2800억원을 염두해 두고 시작한 제철소 건립 투자금은 2년 만에 5조7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한보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투자비를 계속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한보그룹은 18개의 회사를 설립 또는 인수하는 일을 벌였다. 95년 11월 기준 한보그룹 계열사 수는 26개였다.

결국 외부차입금이 약 5조원에 이를 정도로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제철소 완공 이후에도 적자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뒤늦게 판단한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의 회수에 나섬으로써 97년 1월 한보는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는 대한민국 IMF 관리체계를 향한 첫발로 기록됐다. 97년 4월 삼미그룹, 진로그룹이 부도유예에 들어갔고 5월에는 대동주택이, 7월에는 기아그룹 등 연쇄부도가 발생했다.


한보그룹 부도 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꼽히는 한보사태가 터졌다. 정 전 회장과 정관계, 금융계의 핵심부가 서로 유착한 이 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한보사태의 핵심은 당진제철소 프로젝트에 있다. 한보그룹이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건설부는 부지매립 허가를 9개월 만에 내주고 통상산업부(산업자원부)는 검증도 되지 않은 코렉스 공법의 채택을 적극 권유하기까지 했다. 정부 차원의 견제는 없었다.

그룹 부도 불러온
무리한 제철소 사업

97년 5월 이 사건으로 인해 정 전 회장은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고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징역 5∼20년을 선고받았다.

국회에서는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려 58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이 채택됐고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여당인 황병태 의원,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 뿐만아니라 야당인 정대철, 권노갑 의원을 비롯 김우석 내무부장관, 문정수 부산시장 등이 대출 관련 청탁 또는 국정감사 선처 청탁 등으로 뇌물 수수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에 따라 대거 철창신세를 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정 전 회장에게는 '비리백화점' '로비의 귀재'라는 대명사가 따라 붙었다. 정 전 회장은 5년5개월을 복역하다가 고혈압·협심증의 병세로 석방됐다. 그러나 2005년 강릉영동대학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2심 재판 도중인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 간 뒤 현재까지 해외 도피 중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정 전 회장의 자녀들도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끊임없는 부정 행위로 법정에 섰다. 먼저 장남 종근씨는 대성목재 회장으로 있던 96년 8월부터 이듬해 1월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보그룹 계열사 3곳에 우량 어음을 넘겨주고 계열사 어음을 받는 방법으로 모두 224억원을 불법 지원하다 2002년 불구속 기소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차남 원근씨는 한보그룹이 자금난에 시달리던 96년 6월 경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거액의 도박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500만원과 함께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삼남 보근씨와 그의 아내 김모씨는 정 전 회장이 1980년대 설립한 학교법인 정수학원이 운영하는 강릉영동대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왔다. 지난 3월5일 대법원 3부는 업무상 횡령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의 셋째 며느리 김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보근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해외 도피를 하면서 간호사 4명을 고용했으나 급여를 주지 못하게 되자 며느리가 학장으로 재직하던 강원영동대학의 교비로 이를 지급하도록 지시했다.

그룹 부도 후 삼미·진로·기아 연쇄부도
고액체납자 부동의 1위…아들은 3위 굴욕

김씨는 이들 4명을 학교교직원으로 허위 채용해 4000여만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또 대학의 해외학생유치센터를 이용해 정 전 회장에게 도피자금을 빼돌렸다. 카자흐스탄 등지에 해외학생유치지사를 만들어 운영비 명목으로 빼돌린 돈 1억3000여만원을 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


2007년 감사에서 교육부는 교비 2억여원이 정 전 회장의 해외도피자금으로 빠져나간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김씨는 다시 학교법인 소유 2억여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를 은행에 맡기고 대출받은 돈을 횡령해 교비를 반환했다. 횡령금으로 횡령금을 막은 것이다.

보근씨는 아내와 함께 학교 운영비를 횡령하고 자신의 개인 사무를 수행하던 2명을 교직원인양 위장해 교비로 임금 2200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오너의 그릇된 생각
그룹 실패 예고됐다

보근씨는 정 전 회장과 함께 고액·상습 체납자 상위 명단에 매해 오르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말 국세청이 공개한 체납 명단을 보면 정 전 회장이 누적 체납액 2225억원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보근씨는 644억원의 체납액을 기록, 1073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남 한근씨는 1997년 동아시아가스를 세운 뒤 회삿 돈 320억원을 스위스의 한 은행 계좌로 빼돌린 혐의로 검찰의 추적을 받자 1998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다.

한보그룹의 한 전직 임원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아직도 재기를 꿈꾸고 있다. 9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밑천은 동아시아가스와 보광특수산업이다. 숨겨놓은 '땅'도 많다. 정 전 회장이 보유한 땅은 용인, 인천, 안산 등 수도권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국세청이 적발한 땅만 해도 시가 1500억원을 넘는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357 일대 땅이 대표적이다. 시가 1000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땅은 국세청이 즉각 압류했다. 국세청은 정 전 회장이 30년 동안 미등기 상태로 숨겨놓은 180억원 상당의 부동산도 찾아 등기 촉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에 300억원대의 땅을 숨겨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또 다른 은닉 재산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머슴이 뭘 알겠는가." 정 전 회장이 청문회장에서 한 이 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을 한순간에 머슴으로 격하시켰다. 한보그룹에서 일하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은 머슴이라는 오너의 생각. 어쩌면 이미 한보그룹의 실패가 내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한보그룹은?>

1974년 한보상사 설립
1979년 은마아파트 분양, 초석건설(한보종합건설) 인수
1984년 금호철강(한보철강) 인수
1991년 수서비리 사태
1995년 당진 제철소 건립 추진
1997년 그룹 부도, 한보사태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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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