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없는 기획사는 매니저 혼자 운전
연예인들 야간 일정 많은 것도 문제점
올해 들어 연예인들의 교통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항상 무리한 스케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 비해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연예계에서는 촌각을 다투는 무리한 스케줄 소화가 자랑 아닌 자랑거리인 것이 사실이다. 인기 연예인일수록 하루 몇 건씩의 스케줄이 잡혀 있고 지방과 서울 등을 오가는 스케줄이 보통이다. 또 그런 스케줄에 늦지 않게 연예인을 태워가는 것이 매니저의 능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장거리 운전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피로로 인한 졸음운전이나 과속 운전을 하게 된다. 특히 연예인들은 잠깐이라도 이동 중에 쉴 수 있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매니저는 연예인보다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인기그룹 A의 매니저 J씨는 “보통 하루에 200㎞ 이상을 달리지만 목포에서 저녁 방송 끝나고 바로 강원도로 갈 때는 1000㎞도 달린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연예인 차량은 1년에 짧게는 6만㎞를 달린다. 트로트 가수처럼 지방 행사나 밤무대가 많은 경우에는 10만㎞까지 나온다고 한다(일반 승용차 연평균 이동거리는 1만8000~2만㎞). 운전을 겸하는 로드매니저는 대부분 두 명. 돌아가면서 운전을 하지만 인력이 없는 기획사는 혼자 하기도 한다. 운전에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급하게 가야 하다 보니 매니저들이 과속 운전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J씨는 “스케줄에 맞추려다 보니 무리하게 속력을 내거나 졸음운전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미용실을 주로 이용하는 연예인들은 차가 자주 막혀 방송국까지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많다고 한다. 음반시장 불황도 한몫한다. 인기가수 B양의 매니저 K씨는 “앨범이 안 팔리니 노래 홍보차 지방행사나 방송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기획사가 많다”고 밝혔다.
또 다른 매니저는 “방송국에서 방송국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은 많지 않다”면서도 “얼굴을 많이 비추기 위해 스케줄이 빡빡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K씨는 “서울 사무실에서 대구 공연장까지 1시간30분 만에 갔다고 자랑하는 로드매니저도 있었다”고 했다.
야간운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방송에 집중하는 연예인들은 하루 일정을 오후 늦게 시작해 밤늦게 끝내는 ‘올빼미’들이다. 대부분 가수들은 지방공연이 밤늦게 끝나도 안무팀 등 스태프들의 숙식비용 부담이 커 서울로 곧바로 올라온다고 한다.
지금껏 연예계 대표적인 교통사고를 살펴보면 2004년 그룹 원티드와 동방신기가 20분 간격으로 잇달아 교통사고를 당해 원티드의 멤버 서재호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그룹은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공연을 마친 뒤 곧바로 나란히 강원 강릉시 경포대 쪽으로 공연을 위해 가던 길이었다. 무리하게 이어진 지방 스케줄이 부른 사고였다.
2003년 7월에는 보아·플라이투더스카이의 매니저가 지방 공개방송을 마치고 돌아오다 빗길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2002년 9월에는 드라마 촬영차 이동하던 신화 멤버 김동완의 승용차가 트럭을 추돌, 동승했던 코디네이터가 사망하고 김동완도 크게 다쳤다.
이들 사고를 살펴보면 연기자보다는 가수 쪽에서 사고가 더 자주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음반을 발표하고 단기간에 많은 무대에 서며 홍보를 해야 하는 가수의 특성상 위험한 수준의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을 태운 차량이 교통법규를 지키기 힘들다. 경광등에 사이렌까지 울리며 차선을 무시한 채 달리는 것은 기본. 문제는 이렇듯 사선을 넘나드는 운전 행태와 스케줄에 대한 경각심이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반짝 제기됐다가 이내 사라진다는 점이다. 잘못된 관행이 개선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는 것.
이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연예가 관계자들은 근본적으로 무리한 스케줄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예인이나 매니저 모두 시간에 쫓기다 보니 단기적 관점으로 효율만 추구해 사고를 부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매니저는 “연예인이 하루에 소화하기 적당한 스케줄은 2~3개 정도로, 중견급은 이 정도만 잡는다”며 “보통 신인 가수나 배우가 갑자기 ‘뜬’ 경우 짧은 기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돌리기 위해 소속사에서 무리한 스케줄을 잡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니저는 “‘시간이 부족하면 오토바이라도 타고 이동하면 된다’고 생각해 어처구니없는 스케줄을 잡는 경우도 있다”며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은 자유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스케줄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인력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연예인 한 명당 운전을 겸하는 로드매니저를 한 명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이 매니지먼트를 겸하면 피로가 축적돼 장거리 고속운행을 할 경우 위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여유가 있는 기획사는 가수 한 명당 로드매니저를 2명씩 두고 번갈아가며 운전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매니저들은 연예계 안전 불감증 탓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그것도 다 예전 일이다. 요즘엔 무조건 안전 운전을 하려고 한다. 사고가 나는 것보다는 약속 시간에 좀 늦는 게 나은 것 아니냐”며 “‘서울-부산 2시간 주파’ 식의 운전방식은 흘러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며 일반인에게도 흔히 있을 수 있는 교통사고 수준”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사망 사고가 엄연히 벌어지는 현실에서 연예계 안전불감증은 여전히 빨간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