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아기자기 작은 박물관여행 ④진천 종박물관

땡땡땡 딸랑딸랑…귀로 감상하는 명품 종소리

아기 울음소리를 본떠 ‘에밀레종’이라 불렀다는 성덕대왕신종(국보 29호) 이야기, 목숨을 구해준 선비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제 머리로 종(치악산 상원사종)을 치고 죽은 까치 이야기, 가난하여 노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자 아이를 내다 버리려 한 효자가 부처의 은덕으로 아이도 살리고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홍효사 석종 이야기….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에는 종과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었다.

국내 유일의 종 박물관…성덕대왕신종·상원사종 재현
문학 숨쉬는 정송강사 김유신 탄생지 등 볼거리 다양

진천 종박물관은 이처럼 흥미로운 설화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한국 범종의 역사와 특징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전시하고, 한국 종을 연구·수집·보존할 목적으로 개관한 국내 유일의 종 전문 박물관이다.

‘역사 속의 종’
한 자리에

2층 규모의 박물관은 외관부터 한국 종을 빼닮았다. 항아리를 뒤집어놓은 듯한 유리 구조물은 종의 기본 형태를, 그 오른쪽으로 음파가 퍼져 나가는 듯한 굴곡은 맥놀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맥놀이란 진동수가 다른 두 소리가 서로 간섭하며 작아졌다 커졌다 하는 현상으로, 한국 범종의 특징이다.

전시실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현존하는 고대 범종 가운데 가장 큰 성덕대왕신종(통일신라, 771년)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것. 쇳물 주조 과정을 마치고 거대한 거푸집을 떼어내는 장면을 연출해 종의 탄생을 표현했다.


1층 제1전시실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긴 밀랍 주조 공법으로 복원·복제한 문화재급 고대 범종이 즐비하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대표하는 이 종들은 중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鑄鐵匠) 원광식 선생이 기증한 작품이다. 50여 년 동안 만든 크고 작은 종이 무려 7000여 개에 이른다고. 2005년 화재로 소실된 양양 낙산사 동종 복원도, 매년 1월1일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종 제작도 원광식 장인의 손을 거쳤다.

한국 범종의 전형으로 최고의 예술미를 자랑하는 통일신라, 전 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으면서도 현실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고려, 중국 종의 형식이 결합된 조선, 전형적인 일본 종의 형태로 제작된 근대, 한국 종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도기인 1970년대까지 관람을 마치면 시대별 범종의 특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관람 동선은 2층으로 이어진다. 한국 종 제작기법인 밀랍 주조 공법과 중국 남방 계통이나 일본 종 제작기법인 사형 주조 기법의 다른 점, 밀랍 주조 공법으로 종을 만드는 과정을 알기 쉽게 전시했다. 종과 관련된 설화, 지구촌의 종소리, 일상에서 쓰이는 다양한 종소리도 체험할 수 있다.

다음은 세계의 종 전시실이다. 인물 종, 데스크 벨, 유리 종 등 여러 가지 종을 매년 새로운 시리즈로 선보이는 이 전시는 한국의 범종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말안장에 장식해 말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는 행진용 의례 종, 20세기 러시아의 토이 벨, 자명종 등 귀엽고 앙증맞은 종이 가득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도회에서 쓰던 가면의 축소품에는 장식용 방울이 있어 흔들면 딸랑딸랑 소리가 난다고 한다. 내부에 추가 있어 칵테일을 혼합하기 위해 흔들면 소리가 나는 셰이커, 붉은색 칵테일 잔 손잡이 아랫부분에 금속 추를 달아 마신 뒤 흔들면 소리가 나는 1960~1970년대 미국 제품도 인상적이다.

다양한 세계의 종을 경험한 뒤에는 1층으로 내려가 개관 7주년 기념 국보 36호 상원사 동종 <천년에 얽힌 이야기전>을 관람하자. 상원사 동종은 현존하는 고대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이다. 전시는 성덕왕 24년(725년)에 제작되어 한국전쟁 당시 월정사가 소실되는 와중에도 기적적으로 화마를 피한 사연, 천년의 울림을 멈추고 휴식기에 들어간 안타까운 사연, 원광식 장인에 의해 전통 기법으로 다시 태어난 사연으로 이어진다. 개관 7주년 기념전은 3월 말까지 계속된다.

진천 종박물관 관람 전후 들러볼 만한 연계관광지로는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사적 414호), 보탑사, 진천 정송강사(충청북도 기념물 9호), 진천 농다리(충청북도유형문화재 28호), 진천 덕산양조장(등록문화재 58호) 등이 있다.

김유신 장군은 가야국 왕족 출신으로, 아버지 김서현이 진천(옛 이름은 만노군)의 태수였다. 무덤이 경주에 있어 많은 이들이 탄생지도 경주라고 생각하는데, 진천이 고향이다. 계양마을 입구 장군터라 불리는 곳에 1983년 유허비가 건립되었으며, 태령산(해발 461.8m) 정상에 태실이 있다.


보탑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3층 목탑 때문이다. 1992년 불사를 시작해 1996년에 완공된 이 목탑은 황룡사 9층 목탑을 이어받았으며, 내부 계단으로 1층부터 3층까지 오르내릴 수 있다. 삼국시대 이후 단절된 ‘오를 수 있는 탑’의 전통을 현대에 재현한 것이다. 불사에는 한국 전통 건축의 대가 신영훈 대목이 참여했다.

연계 관광지
전통·이야기 가득

진천 정송강사는 ‘가사 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1536~1593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신도비가 있는 입구를 지나면 시비가 나오고, 이어 사당과 유물 전시관이 있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산길을 조금 오르면 송강과 그 둘째 아들의 묘소가 위아래로 자리 잡고 있다.

돌을 깎거나 다듬지 않고 원래 모양 그대로 쌓아 만든 진천 농다리는 허술해 보여도 천년을 이어온 진천의 자랑이다. 10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총 28칸으로 구성되었다. 다리 건너 언덕을 오르면 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와 산책로가 있다. 구불구불한 모양새 때문에 ‘지네 다리’라고도 불린다.

1930년에 건립된 덕산양조장은 양조장 건물로는 유일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단층 합각지붕 목조건축물이다. 지금도 3대째 가업을 이어 전통 막걸리를 만든다. 예약하면 전시 시음관을 견학하고, 막걸리와 빈대떡을 맛볼 수 있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 여행 코스
김유신 탄생지 → 보탑사 → 진천종박물관 → 진천 농다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김유신 탄생지 → 보탑사 → 진천 정송강사
둘째 날 : 진천종박물관 → 진천 덕산양조장 → 진천 농다리

여행 정보
진천군 문화관광 www.jincheon.go.kr
진천종박물관 www.jincheonbell.net
진천 덕산양조장(세왕주조) www.icnj.co.kr

문의 전화
진천군청 문화체육과 043)539-3623
진천종박물관 043)539-3847
보탑사 043)533-6865
진천 덕산양조장(세왕주조) 043)536-3567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진천, 20~30분 간격(06:30~20:30)으로 운행, 1시간 40분 소요.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진천버스터미널 043)533-2376
자가운전 정보
중부고속도로 → 진천 IC → 좌회전 후 성석사거리 우회전 → 벽암사거리 좌회전 → 백곡저수지 방향 직진 → 장관교 지나 좌회전

숙박 정보
아랑훼스펜션 : 이월면 화산동길, 043)536-3366, www.aranghwese.com
별빛고운언덕펜션 : 이월면 진안로, 043)536-6114, www.ipension.net
수호텔 : 진천읍 남산9길, 043)534-5161, www.hotelsoo.co.kr

식당 정보
느티나무집 : 민물매운탕·닭백숙, 진천읍 백곡로, 043)532-5534
보림숯불갈비 : 숯불갈비, 진천읍 중앙서로, 043)532-0030
엄나무에걸린닭 : 누룽지닭죽·누룽지오리죽, 진천읍 금사로, 043)532-8200
두부촌 : 깻잎두부보쌈·두부전골, 진천읍 금사로, 043)533-9946
곰가내 : 쌀밥정식, 백곡면 백곡로, 043)532-0767, http://cafe.naver.com/gggooommm

주변 볼거리
길상사, 배티성지, 진천 석장리 유적, 진천 이상설 생가, 초평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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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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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