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장관이 지난 4월 전주 덕진 재보선을 통해 정계에 복귀하면서 그의 순탄치만은 않았던 정치 인생이 시선을 끌고 있다.
정 전 장관은 1953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 출신인 그는 서울대 동기인 이해찬 전 총리의 권유로 1996년 정계에 입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15대 총선에 출마한 그는 전주 덕진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총선에서도 전국 최다 득표를 획득하며 재선에 성공,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국민회의 시절 당대변인과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며 당시 권력 2인자였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겨냥 ‘정풍운동’을 벌이면서 깨끗한 이미지의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2002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붙어 졌지만 경선을 완주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4년 신기남·천정배 의원 등과 함께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으나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인 폄훼 발언 파문’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17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까지 사퇴하며 물러난 그는 같은 해 참여정부 통일부 장관으로 재기했다. 2006년엔 당의장으로 여의도 정가에 복귀했으나 그해 지방선거에서는 패배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에 선정됐지만 역대 최대표 차이로 낙선했다. 18대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시자 지난해 7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올 3월 재보선 출마 선언을 하며 귀국했으나 당 지도부가 공천 배제를 결정하자 탈당, 무소속으로 재보선에서 살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