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를 뒤흔들었던 ‘장자연 사건’이 9명을 입건하는 수준에서 일단락됐다. 경찰은 지난 4월24일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기획사 3명, 감독 2명, 금융인 3명, 사업가 1명 등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관심을 모았던 언론사 대표는 제외됐다. 경찰은 장자연 소속사 전 대표 K씨의 신병이 확보되면 수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한 달간 실체를 밝히기보다는 유력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사를 벌인 건 아닌지 비판이 커지고 있다.
자살 동기·배후 등 의문 규명 안돼…유력인사 조사도 못해
핵심인물 소속사 전 대표 K씨 신병 확보도 ‘희망사항’일 뿐
“K씨, 정치권·재벌 2세·기업체 대표 등과 긴밀한 관계 맺어”
향후 K씨 신병 확보 여부에 따라 사건 확대될 가능성도 있어
경찰은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주축으로 41명의 대규모 수사전담반을 구성해 사건 수사를 시작하면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수사착수 ‘큰소리’
사법처리 ‘쥐꼬리’
문건의 존재를 언론에 알린 호야스포테인먼트 유장호씨를 4차례나 소환조사하고 유족이 고소한 7명과 문건 등장인물 5명 외에 문건 외 인물 1명의 혐의를 포착했다고 밝힐 때까지만 해도 수사는 순조로워 보였다.
60여 명의 참고인 조사와 13만여 건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분석, 술접대 업소 7곳의 1년치 매출전표 조사, 장씨 소속사 전 대표 K씨의 개인, 법인카드 8장의 1년치 사용내역 조사 등 광범위한 주변 조사 단계에서는 수사 결과에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유씨에 대해서는 유족이 고소한 사자명예훼손과 일반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지 못한 채 소속사 전 대표가 고소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만 입건하는 데 그쳤다.
유족이 문건 내용과 관련해 고소한 성매매특별법 위반과 강요 혐의 등과 관련해서는 8명을 사법처리하며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다.
강요죄 공범 혐의로 경찰이 수사대상에 올린 9명은 언론사 대표 3명, IT업체 대표 1명, 금융업체 대표 1명, 기획사대표 2명, 드라마PD 2명 등이었다. 경찰은 이들 중 드라마 PD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의 신원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 특히 혐의가 짙어 출국금지한 1명에 대해서는 직종조차 밝히지 않았다.
‘눈치보기 수사’의 비난 속에 경찰은 지난 4월3일 브리핑에서 ‘문건에 나온 인물과 피고소인이 누구인지, 혐의가 무엇인지 다 밝히고 유족과 협의해 문건도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반나절만에 번복하기도 했다. 말실수라고 해명했으나 외압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스스로 키운 셈이 됐다.
경찰은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도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된다며 이름을 이니셜 처리하며 직위는 빼고 직종만을 밝혔다.
수사는 한때 경찰이 지난해 11월 한 유력인사가 장자연으로부터 접대를 받은 정황을 확보하면서 활기를 띄는 듯 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4월17일 방송에서 “경찰이 강남고급술집에서 유력 인사와의 술 접대자리에 장자연이 동석한 정황을 잡았다”고 밝혔다.
<뉴스데스크>는 “경찰은 수원시 인계동의 한 대리운전 업체로부터 장자연의 대리운전 이용내역을 확보했다”며 “장씨가 심야시간에 이 업체를 자주 이용했다”고 대리운전 업체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어 “장씨는 지난해 10월에서 11월 사이 강남의 유흥가에서 경기도 분당의 자택까지 대리운전을 많이 이용했다”며 “이 가운데 경찰은 지난해 10월8일과 11월3일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에 똑같이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출발한 이용내역을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거물급 유력인사들
입김 불어넣는 것 아냐(?)
<뉴스데스크>는 “경찰이 11월3일 밤과 4일 사이 유력 인사에게 접대가 이뤄진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어 “압구정의 고급 술집 앞에서 장자연씨와 남녀 1명씩을 더 태워, 강남에 있는 한 호텔이 두 사람을 내려주고 분당으로 갔다”며 “압구정에 도착했을 때 장자연씨 대신 남자가 전화를 받았고 나이가 어리고 외모가 뛰어나게 예뻤다”고 대리운전 기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뉴스데스크>는 “11월3일 밤 술자리에 동석한 인사가 우선 사법 처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은 장씨와 함께 차에 탔던 일행의 신원과 이들이 함께 호텔에 갔던 이유를 조사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MBC 보도가 나간 후 사건은 활기를 띠고 실체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더 잠잠해지면서 뒤에 관련된 거물급이 누구냐는 궁금증만 더 커져 갔다.
예전부터 앓고 있던 우울증
자살 원인으로 결론 내려
K씨의 주변에서는 “그의 인맥은 전방위적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K씨와 관련을 맺은 각계 유력 인사들이 K씨가 들어와 입을 열 경우 유탄이 튀는 것을 우려해 이런저런 경로로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K씨의 한 측근은 “K씨는 정치권과 재벌 2세, 기업체 대표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K씨의 업계 내 위상과 각계에 걸친 인맥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고 밝혔다.
한 달여 간 넘게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은 장 씨 사건에 대해 1차 마무리를 짓고 일본에 도피에 있는 K씨의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수사를 마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본에 접수된 인도요청은 언제 실효를 발휘할지 모르고 현지 주재관은 열심히 뛰고 있다지만 K씨가 언제쯤 한국땅을 밟을지는 오리무중이다.
이번 사건은 한 달 이상 떠들썩하게 수사를 벌였지만, 술 접대와 성상납 의혹의 실체는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다. 언론사 대표 등 유력 인사들에 대해서는 소환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유력 언론사 대표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며 조사에 응하지 않을 뜻을 밝혀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장씨 사건에 대해 속도를 내던 경찰이 마무리가 개운치 않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향후 K씨의 신병 확보 여부에 따라 더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장씨의 죽음과 관련해 경찰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잠정 결론지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소속사 전 대표 K씨가 문건 유출로 장씨를 협박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면서 “예전부터 앓고 있었던 우울증이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