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②최순영의 신동아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2.27 16: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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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빈털터리가 뭔 돈으로 해외여행?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신동아그룹의 모기업은 이북출신의 창업자 고 최성모가 1953년에 세운 조선제분(현 동아원)이다. 최성모는 조선제분을 바탕으로 계열사를 급속도로 확장했고 60년대 '밀가루 재벌'이라 불리기도 했다.

'신동아그룹'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최성모 창업주보다는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다. 최 회장은 63년 성균관대 상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마대를 생산, 판매하는 '동명마방'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뼈아픈 실패를 맛봤다.

무역 욕심 버렸다면
신동아 살았을까?

3년 후 '제일포장'이라는 두 번째 회사를 설립했으나 역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두 번의 실패를 꺾은 최 회장은 68년 7월 아버지 최성모 창업주의 권유로 동아제분 상무로 신동아에 합류했다. 69년 신동아그룹이 대한생명보험을 인수, 최 회장은 선친의 뒤를 이어 76년 대한생명 대표이사 겸 신동아그룹 회장으로 취임,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최 회장은 선친 재산을 바탕으로 국내 생명보험업계 '빅3' 중 하나인 대한생명과 함께 신동아화재를 키워내고 85년 당시 동양 최고 높이의 빌딩 63빌딩을 완공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86년에는 대한생명 자산규모 1조원을 돌파했고 88년에는 영업점 1000점의 기록을 세웠다. 91년 말 기준 신동아그룹에는 보험업체인 대한생명보험, 손해보험업체인 신동아화재해상보험, 서비스·관광 업체인 대생기업, 부동산관리 및 임대 업체인 대생개발, 제분·원양어업 업체인 동아제분, 금융업체인 대생상호신용금고, 태홍산업, 에이에이인터내셔널 등의 계열사가 있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96년 수출대행 업체인 신아원을 통해 무역업에 손을 댔다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다.


수천억 추징금 "돈 없다" 버티면서 잦은 외유 
체납액도 무려 36억…2008년 특사로 자유의 몸

최 회장은 96년 5월부터 97년 6월까지 미국에 유령회사 '스티브영'을 차린 뒤 선하증권 등을 허위로 작성, 국내 4개 은행으로부터 수출금융 등의 명목으로 1억8500여만달러를 대출받아 편취하고 이중 1억6500여만달러를 미국계 은행 등의 예금계좌로 송금,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99년 2월11일 검찰에 구속됐다. 신동아그룹 돈줄 노릇을 하던 대한생명은 100% 정부 소유 기업이 됐고 최 회장이 보유하던 관련 회사 주식은 공적자금 투입으로 휴지조각이 됐다. 최 회장은 경영권마저 잃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최 회장의 돈을 받은 이정보·이수휴 전 보험감독원장과 홍두표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잇따라 구속돼 '최순영 리스트'의 존재를 놓고 파문을 일으켰다.

여기에 최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관련된 '옷 로비 사건'은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되게 하는 등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특검제 도입시킨
'옷 로비 사건'

옷 로비 사건은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최 전 회장을 구명하기 위해 이씨가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을 선물한 것을 말한다.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99년 5월24일 이씨가 김태정 검찰총장의 아내 연정희씨에게 고급 옷을 선물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부터다. 그 사실을 언론에 밝힌 인물이 이씨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씨는 경위서를 통해 당시 검찰총장 부인 등이 고가의 옷을 사면서 자신에게 옷 값을 대신 지불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이를 거부했다고 폭로했다. 사흘 뒤 연씨가 이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면서 검찰은 수사에 전격 착수했다.

수사 5일 만에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마쳤다. 8월23일 3개 지상파 방송과 YTN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열린 청문회에서 옷 로비 혐의에 관련된 사람들, 강남 고급 옷가게인 '라스포사' 주인 등을 끈질기게 추궁했지만 이렇다 할 증거나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최순영 전 회장은 같은 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2005년 1월에 다시 법정 구속됐다. 법원은 2006년 7월 최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1574억원을 확정 판결했고, 9월 최 전 회장은 건강 악화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8·15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이 면제됐다.


형 집행은 면제됐지만 1574억원의 추징금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더욱이 최 전 회장은 신동아그룹 계열사 신아원의 김종은 전 회장과 함께 1964억원의 추징금을 추가로 공동 납부해야 하는 실정이다.

김 전 회장은 최 전 회장이 1996년 국내 4개 은행에서 대출받은 1억8000만달러 가운데 1억6000만달러를 미국으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최 전 회장은 자기 자신을 '빈털터리'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3월 서울시 38세금징수과에 의해 봉인됐던 최 전 회장의 개인 대여금고도 확인결과 ‘텅’ 비어 있었다. 연말마다 공개되는 전국 고액 체납자 명단에도 최 전 회장은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따르면 최 전 회장은 35억8500만원을 체납해 체납자 중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호화생활 영위
돈 어디서 났나

이와 관련 최 전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추징금 체납액을 내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회사를 되찾으면 국가에 내야 할 추징금을 반드시 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최 전 회장은 부인이 원장인 기독교선교횃불재단 명의의 양재동 고급빌라에 살면서 수시로 해외를 드나드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디서 '돈'이 난 걸까?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을 종합하면 최 전 회장과 부인 이씨는 현재 온누리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2008년 말 기준 등록 교인이 6만명이 넘고 서빙고동 본당뿐 아니라 서울 양재, 경기 부천·수원·남양주·평택, 인천, 대전에 지부를 두고 18개에 달하는 해외 교회도 열었을 만큼 교세가 대단하다.

남편은 '깡통'찼는데 부인은 재단 원장
'옷로비'주역 이형자씨 부동산 소유 의혹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는 최 전 회장과 동서지간이다. 하 목사의 부인 이형기씨가 최 전 회장의 부인 이씨와 자매지간인 것. 최 전 회장은 대한생명의 대표이사와 횃불재단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을 당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생명 이사회 사전 승인 없이 회사 자금 213억원을 횃불재단에 무단으로 기부했다. 이는 상법 제398조(이사의 자기거래금지)에 위반되는 사항이다.

대한생명이 횃불재단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횃불재단은 대한생명에 지연이자 포함 총 479억원을 반환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이 나와 분할 상환 됐지만 이미 온누리교회는 신동아그룹의 후원에 힘입어 전국 주요 요지에 지부를 건설하고 서울 양재동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도 세운 뒤였다. 기독교위성방송인 SGNTV와 두란노서원, 월간지 <빛과 소금>을 발행하기도 했다.

최 전 회장은 기부한 돈에 대해 "그 돈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개념으로 기부한 돈"이라고 밝히며 그룹의 이윤을 개인 십일조로 사용한 것을 인정했다.

최 전 회장은 학교재단에도 터전을 쌓았다. 1980년대 초반 신동아학원을 세우고 1984년 전주대학교를 인수한 최 전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을 겸직하던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역시 대한생명 이사회 사전 승인 없이 회사 자금 231억원을 신동아학원에 무단으로 기부했다.


미리 키운 온누리가
최 회장 먹여 살리나

지난 2008년에는 이씨가 '한국판 비벌리힐스'라고 불리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수십억원대의 고급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 전 회장이 자진 납부한 추징금은 전무하다. 2003년에는 예금보험공사가 최 전 회장이 홍콩의 한 은행에 버젓이 자신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해 예치해놓은 미화 266만달러(당시 약 30억)를 환수한 바 있고 2009년 검찰이 최 전 회장이 MVP창업투자에 투자한 7억1500만원어치의 주식을 추징한 게 전부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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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