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재계의 조연에서 주연급 스타로 발돋움한 지 오래. 검찰발 사정바람과 금융발 불황폭풍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치고 나가는 ‘공격력’이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스피드를 내고 있는 강 회장에게도 건드리면 아픈 ‘아킬레스건’이 있다. 흠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강한 강 회장의 2% 부족한 점이 무엇일까.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거침없는 질주가 화제다.
우선 STX그룹의 초고속 성장이 눈부시다.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 돼 재계순위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 밑으론 신세계그룹, CJ그룹, 동부그룹 등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즐비하다. 2000년 그룹 출범 당시 매출은 2605억원. 지난해 STX그룹 총매출 28조원과 비교하면 10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올해 목표는 30조원이다.
사정바람·불황폭풍 속 거침없는 질주 화제
지연 학연 등 큰인맥 부재 “너무 평범했나”
‘월급쟁이서 총수로’자수성가 성공스토리
‘스페셜 코스’ 밟은 재벌 사이서 ‘왕따?’
STX그룹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인수·합병(M&A)이다. STX그룹은 출범 이후 활발한 M&A를 통해 꾸준히 몸집을 불려왔다.
2000년 STX중공업(옛 쌍용중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STX조선(옛 대동조선), 2002년 STX에너지(옛 산단에너지), 2004년 STX팬오션(옛 범양상선) 등을 차례로 먹어치웠다. 매번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나왔다.
2000년 그룹 출범
총매출 100배 증가
지난해엔 유럽연합(EU)으로부터 노르웨이 크루즈선 업체 STX유럽(옛 아커야즈)을 인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M&A시장에선 STX그룹이 ‘단골손님’일 정도로 매물 후보군에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다. 그만큼 ‘실탄’이 넉넉하다는 얘기고, 강 회장이 ‘M&A 귀재’로 불리는 이유다.
STX그룹은 먹잇감들을 바탕으로 지주사격인 ㈜STX를 포함해 STX엔진, STX중공업, STX엔파코, STX건설 등을 일궈냈다. 이렇게 하나둘 늘어난 계열사가 모두 17개다. STX그룹은 주력인 ‘조선기자재-엔진제조-선박건조-해상운송’으로 이어지는 사업 구성을 통해 경영전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룹의 경영 성과를 기반으로 강 회장은 최근 재계에서도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올 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 이어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조선업계에서 유일하게 재계를 대표하는 3대 단체 부회장단에 선임된 것. 강 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 부자 순위에서 20위권에 안착하기도 했다.
그룹 측은 “STX의 초고속 성장의 배경엔 강 회장의 탁월한 경영전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강 회장은 안주하지 않고 시선을 해외로 돌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엔 강 회장이 그저 재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흥재벌 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맨손으로 지금의 STX를 일군 자수성가한 오너다. 이 과정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우여곡절이 가득하다. 월급쟁이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에 오르기까지 구구절절한 성공 스토리가 그것이다.
문제는 강 회장의 너무 평범한 과거가 지금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바로 초라한 인맥이다. 강 회장이 “인재가 재산”이란 ‘인재론’을 강조하며 우수 인재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영자에게 필수로 인식되고 있는 대인관계는 곧 기업 자산과 다름없기 때문에 강 회장으로선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강 회장이 여느 재벌그룹 오너와 다른 길을 걸어온 결과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환경이 한 울타리에 있는 재벌가 사람들은 ‘끼리끼리’명문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친분을 쌓다가 미국 유학 등 ‘스페셜 코스’밟으면서 탄탄한 인맥을 갖게 된다. 반면 강 회장은 그동안 재벌가와 동떨어진 탓에 재계에서 ‘왕따’를 당한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재계 관계자는 “강 회장이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과 기업을 일군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 유명한 인사들이 그리 많지 않다”며 “지연, 학연, 친인척, 대외활동 등 어디를 둘러봐도 내세울 만한 큰 인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재벌가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문 순수 국내파다. 1950년 경북 선산 출생인 그는 동대문상고, 명지대 경영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GLP과정(Global Leadership Program·최고경영자과정)을 거쳐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했다. 이후 쌍용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강 회장은 부도에 직면한 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뒤 사재를 털어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는 ‘뱃고동’을 울렸다.
여기까지 강 회장이 쌓은 인맥을 살펴보면 이렇다.
강 회장이 나온 명지대 출신의 정·관·재계 인사는 이강래 의원(민주당), 최욱철 의원(무소속), 김휘동 안동시장, 홍성은 미국 레이니어그룹 회장, 양재열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권오형 한국공인회계사 회장 등이 전부다. 또 서울대 국제대학원 GLP과정을 밟은 유명인사는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등이 대표적이다.
“사람이 재산인데…”
‘이희범 카드’통할까
강 회장은 ‘쌍용맨’시절 기획금융·경영관리 등 핵심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미래의 ‘동지’를 만났다. 최근 강 회장이 영입한 이희범 에너지부문 총괄 회장이다.
그룹의 해외 에너지 및 자원 개발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 회장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정·관·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재계에서 이 회장이 강 회장의 2% 부족한 인맥 네트워크를 채워줄 적임자란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강 회장도 대외활동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 회장 영입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공대 출신으론 최초로 행시(12회)에 수석으로 합격한 이후 상공부 수출과장, 주미 상무관, 산업정책국장, 자원정책실장, 산자부 차관·장관에 이어 2006년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무엇보다 이 회장 영입 배경엔 강 회장과의 오랜 우정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수출 담당 공무원과 기업 임원으로 만나 인연을 놓지 않았다. 각각 59세와 60세로 한 살 터울인 강 회장과 이 회장은 고향이 경북 안동과 선산으로 사실상 동향이다.
강 회장이 무역협회 부회장으로 선임된 것도 이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강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며 “서로 생각이나 처지가 비슷했던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쌍용맨’출신인 김선동 전 에쓰오일(S-oil) 회장도 강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성공스토리는 강 회장과 판박이다. 김 전 회장이 쌍용정유를 인수한 시기나 배경, 과정 등이 강 회장의 쌍용중공업 인수와 거의 유사하다. 채권단의 신임을 얻어 수장에 오른 점 또한 닮은꼴이다.
김 전 회장은 1974년 에쓰오일의 전신인 쌍용정유에 부장으로 입사한 뒤 1991년 사장에 올랐다. 1998년 모그룹인 쌍용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쌍용그룹 지분을 매입, 에쓰오일을 독립경영체제로 전환시켰다. 회장에 취임한 것은 2000년 3월이다.
두 사람의 친분은 2006년 김 전 회장이 강 회장에게 에쓰오일 지분 인수전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5월 에쓰오일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현재 지난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장학재단인 미래국제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강 회장이 STX그룹의 사세를 확장하면서 친분을 쌓은 인사도 있다. 공교롭게도 김 전 회장과 정유업계 맞수였던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강 회장과 허 회장은 무역협회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 허 회장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당시 GS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강 회장에게 ‘SOS’를 보내기도 했다.
김 전 회장과 허 회장은 1942년생 동갑내기로 정유업계에서 잔뼈가 굵으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 강덕수-김선동-허동수 ‘3각 라인’이 엮어지는(?) 셈이다. 이들 세 사람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평소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면서 교감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김선동·허동수 친분
본격 인맥쌓기 스타트
업계 관계자는 “강 회장이 재계에서 주목받은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 이렇다 할 인맥이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큰 단체의 부회장직을 맡는 등 본격적으로 대외 활동을 시작한 만큼 강 회장의 인맥 쌓기는 이제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STX그룹 내부 관계자는 강 회장의 인맥 부재에 대해 사뭇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요즘 같은 시끄러운 정국에 여기저기 발을 걸친 문어발 인맥은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며 “특별히 줄을 댈 만한 아는 사람 없이 기업을 크게 일궜다면 그만큼 깨끗하고 투명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강덕수 회장 약력
▲1950년 경북 선산 출생 ▲동대문상고,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국제대학원(GLP) 수료 ▲창원대 명예경영학 박사 ▲1973년 쌍용양회 입사 ▲1995년 쌍용중공업 이사 ▲2000년 쌍용중공업 대표이사 ▲2001년 ㈜STX 대표이사 ▲2003년∼현재 STX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