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수신제가 후 대통령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금껏 10명의 대통령이 17번 취임하는 동안 귀가 아프게 들었던 선서문이다. 대부분 한 번씩에 그쳤지만 박정희는 무려 다섯번, 이승만은 세번, 전두환은 두번씩이나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헌법 제69조에 따라 국민 앞에 오른손을 곧추세워들고 선서한 대로 대통령직을 성실히 수행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같이 ‘아니올시다’였다.

오른손을 들 때 국민의 열망에 따른 ‘조건반사’가 아닌 전임자들이 했으니 따라하는 ‘무조건반사’였음이 이미 9명의 전직 대통령 행적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렇게도 믿었던, 아니 믿고 싶어했던 노무현의 대국민 배신행위가 그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해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은 깨끗하길 기대했던 국민들의 분노는 지금 하늘을 찌를 지경이다. 이른바 ‘연차수당’으로 칭하는 박연차의 검은 돈을 직접 받고 안 받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가족을 잘못 다스렸다는 데 국민적 지탄의 초점이 모아진다.

옛말에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자만이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자만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과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이를 실천한 지도자는 누구일까.

불행하게도 열 명도 채 안 되는 대통령 가운데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했음은 물론, 자신조차도 잘 다스리지 못해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채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해야만 했다. 이것도 대한민국의 국민적 운명이라 여기고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차라리 그렇다면 처음부터 깨끗하게 포기하고 ‘대통령(大統領)’이 아닌 ‘대도(大盜)’를 뽑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기대치와 희망은 안 가졌기에 가슴에 아로새길 멍도 실망도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도덕성과 비극적인 발자취를 한 번 좇아가 보자. ‘상징적 국가원수’였던 윤보선(4대)과 최규하(10대)는 논외로 하더라도, 도덕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국민들로선 더할 나위 없는 불행이다.

초대부터 3대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이승만은 민족의 최대 숙원이었던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공권력으로 무산시키고 친일파 지주와 자산가들이 중심이 된 한민당과 손잡으며 부정부패의 싹을 키웠고, 결국 1960년에 종신집권을 위한 3·15 부정선거로 4·19 혁명을 촉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야만 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5~9대) 역시 ‘국가 재건’이란 미명하에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과 폭압적인 ‘유신헌법’을 발효, 언론과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유신에 반대하는 민주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투옥했다.

많은 국민들은 그에게 도덕성 면에서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지만, 측근인 김재규의 흉탄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데서 보듯 그 역시 수신제가를 제대로 못했으며, 조국 근대화를 빌미로 민주화에 역행하는 최대 오점을 남겼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도덕적으로 가장 지탄을 받는 이는 전두환(11~12대)과 노태우(13대)가 아닐까 싶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1979년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의 주동자라는 낙인을 떨쳐버릴 수 없는 동시에 ‘비리공화국’을 만든 장본인이란 점에서 단순한 도덕성 문제를 뛰어넘어 민족의 ‘공공의 적’이다.

그들 역시 친인척이 수많은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사법처리를 받았고, 본인들 또한 ‘내란 및 군사반란죄’로 옥살이와 함께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며 지금도 추징은 진행형이다. 더욱이 법정에서 자신의 통장에는 29만원밖에 없다고 했던 전두환의 공개발언은 수많은 사람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숙명의 라이벌’인 김영삼(14대)과 김대중(15대)은 과연 어떠했을까. 김영삼은 ‘소통령’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한 차남 김현철 때문에 국민들 앞에 여러 차례 고개를 숙여야 했으며, 김대중 역시 ‘홍삼 트리오’로 불리던 홍일·홍업·홍걸 세 아들의 스캔들로 인해 임기 말까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게다가 믿었던 노무현의 비리에 아연실색해 하는 국민들은 또 다시 ‘4년 후’를 걱정하고 있다. 현 정권이 전 정권이 되는 그날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권불십년(權不十年)이지 요즘은 권불오년(權不五年) 아니던가. 그렇게 매 5년마다 반복되는 대통령 일가의 비리사건 연루에 진절머리가 난 국민들이다.

누군가 역사를 수레바퀴라 했다. 국민들은 그 수레바퀴가 지도자의 비리와 부정부패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또 개탄할 뿐, 희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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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