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사람 사는 세상’에 가보니…

‘사람 사는 세상’에 가보았다. 그곳이 어디인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만든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 명칭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곳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따르고 지지했던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름대로 ‘소탈한 정치(?)’를 펼치고 있었다. 안희정, 문재인 등 핵심 측근들이 그곳에서도 주류를 형성하며 소위 ‘노빠’라 칭하는 사람들과 교감을 이루는 듯 보였다. 서로 격려하고 칭송하고 사과하고 해명하고…

그런 사람 사는 세상에 청천벽력 같은 ‘사과문’ 하나가 실리면서 대한민국을 또 한 번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노 전 대통령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받았단다. 물론 빌렸다고 했다. 그것도 당신이 아닌 ‘저의 집(권양숙 여사)’이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있어 측근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빌려서 사용했다고 했다.

빌린 것과 그냥 받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차용증을 쓰면 빌린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뇌물이란 말인가. 빌렸다는 말은 한낱 대가성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핑계로 들린다.

또 대가성이 있든 없든 진짜 빌렸으면 일찍이 갚았어야 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오히려 퇴임 이전보다 재산은 더 늘어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기에 과연 애초부터 갚을 마음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만약 들통나지 않았으면 빌린 것조차도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돈은 아니었을까.

더욱이 돈을 빌려준 당사자인 박 회장은 그 돈을 과연 빌려준다고 생각하고 건넸을지가 의문이다.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박 회장의 ‘통큰 행각’에서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더불어 노 전 대통령의 가장 ‘샘 깊은 후원자’ 역할을 해온 박 회장이 아니었던가. 그런 박 회장이 총무비서관을 통해 영부인에게 준 돈을 과연 빌려준다고 생각하고 줬을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손바닥으로 해 가리듯 하려는 노 전 대통령의 사과는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것도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 체포되니까 그를 옹호하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노 전 대통령의 사과는 어딘지 모르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수사 과정에서 당신의 허물을 뒤집어쓰게 될 측근이 가엾었거나, 아니면 그의 입을 통해 모종의 비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미리 선수를 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정치인 노무현’의 트레이드마크가 무엇이었던가? 청렴성과 진정성이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솔직함이 조금은 저돌적으로 비쳐져 권위주의에 찌든 보수들을 자극하긴 했지만, 그를 지탱해준 버팀목이었고 대통령을 만들어준 지렛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그것은 처절하게 무너졌다. 극히 일부의 사람 사는 세상 회원들에겐 그것마저 솔직하게 비쳐졌는지 사과문 아래 달린 셀 수 없는 댓글들은 격려와 칭송 일색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수억 때문에 억장이 무너졌고, 씻을 수 없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 비록 다른 당에 정권을 넘겨주긴 했으되 많은 국민들은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냈고, 그만은 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시작으로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우리 역사 속 최고권력자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던 국민들이었기에 노 전 대통령만은 ‘봉하마을’에서 편하게 여생을 보내길 바랐다.

참으로 간절한 기대였고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그런 순수한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고 이제 또 다시 전직 대통령의 검찰조사와 그 후에 따를 사법처리까지를 우려하는 국민들의 심경은 착잡하다 못해 비통하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 같은 참담한 비극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국민들은 이번 게이트에서 노 전 대통령 얘기가 회자되었을 때, 단지 친인척과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로만 그칠 것으로 믿고 설마설마 했었다. ‘권력을 빙자해 청탁과 로비를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하도록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설마’가 사람을 잡은 셈이다.

취임 초 평검사들과의 TV 대화를 자청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던 노 전 대통령. 그는 이제 진짜 계급장을 떼고 검사들과 일전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의 말대로 모든 사실은 검찰 조사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며, 추호라도 불법과 비리가 있었다면 법대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이래저래 4월은 최고권력을 누렸던 노 전 대통령에게도, 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도 잔인한 계절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이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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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