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별기획]MB정부 출범, 그 이후…④재벌그룹 희비쌍곡선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2.07 14: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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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대기업 궁합 보니…천생연분 찰떡이 따로 없네!

[일요시사=경제1팀] MB정부가 저물어가고 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MB정부 들어 재계엔 출총제 폐지, 법인세 인하 등 '당근'이 마구 떨어졌다. 때론 '사정 바람'이 사정없이 불었다. 이 결과 적잖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무너지거나 휘청거린 기업이 있는가 하면 급격히 사세를 불린 기업도 있다. MB정부와 대기업의 궁합은 어땠을까. 30대 그룹의 5년 전과 현재를 비교해 봤다.


2007년 12월28일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이명박 대통령은 17대 대선 승리 열흘 만에 가진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주의)'정책을 선언했다. 당선인 신분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대선 승리 직후 
재계본산 전경련행

이 대통령은 당시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경제정책을 추진해 성장 중심 정책을 펼 것"이라며 법인세 인하 등 규제 완화와 감세를 약속했다. 재계는 술렁거렸다. 그동안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역시 CEO 출신 대통령" "이제는 할 만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재계에선 MB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는 화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르는 동안 재계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일요시사>가 30대 그룹(공기업 제외)의 재계 순위와 계열사수, 총자산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 5년간 전체적으로 대기업들의 사세가 급격히 확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이 대통령의 취임(2008년 2월25일) 직전인 2008년 2월 초와 올초를 비교한 재계 순위를 살펴보면 적잖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달 발표하고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의 소속회사 현황에 따르면 현재 재계 순위 1위는 삼성그룹이다. 5년 전에도 '톱'이었던 삼성그룹은 1996년만 해도 현대그룹에 이어 2위에 머물렀다. 1999년 대우그룹에까지 밀려 3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01년부터 지금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각각 2∼5위에 있는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포스코의 순위도 변함이 없었다. 8위 GS그룹과 20위 대림그룹 역시 그대로 였다.

지난 5년간 전체적으로 급격히 사세 확장
순위, 계열수, 자산 등 적잖은 지각변동

STX그룹은 24위에서 13위로 무려 11단계나 뛰어올라 30대 그룹 가운데 5년 만에 가장 많이 성장한 곳으로 꼽혔다. CJ그룹은 19위에서 14위로 5단계 뛰었다. 현대중공업은 11위에서 7위로, 대우조선해양은 22위에서 18위로 4단계씩 점프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30위권 밖에 있던 에쓰오일과 부영그룹과 OCI그룹, 효성그룹, 대우건설은 각각 22~26위에 새롭게 진입했다. 이밖에 한화그룹(12위→10위), 한진그룹(10위→9위), 두산그룹(13위→12위), LS그룹 (16위→15위) 등도 재계 서열을 끌어올렸다.

반면 5년 전에 비해 재계 순위가 하락한 그룹은 9개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이 한국지엠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2008년 2월만 해도 21위였던 한국지엠은 현대 29위로 추락한 상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9위에서 16위로 주저앉았다. 2006년 11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재계 판도를 바꿔놨으나, 엄청난 인수금액(6조4000억원) 탓에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도로 '오바이트'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기에 '형제의 난'까지 벌어져 진땀을 흘리고 있다.

KT와 현대그룹도 순위가 떨어졌다. KT는 7위에서 11위로 4단계 주저앉았다. 17위를 기록했던 현대그룹도 4단계 아래인 21위에 올라 있다. 이외에 신세계그룹(15위→17위), 동국제강그룹(25위→27위), 코오롱그룹(28위→30위), 동부그룹(18→19위), 현대백화점그룹(27위→28위) 등도 재계 서열이 낮아졌다.

재계 서열에서 사라진 기업도 있다. 14위였던 하이닉스는 SK그룹이, 23위였던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이 인수했다. 26위 이랜드그룹과 29위 동양그룹, 30위 KCC그룹은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STX·롯데 '웃고'
금호·웅진 '울고'

재계 관계자는 "지난 5년간 30대 그룹의 재계 순위를 보면 상위권은 모두 제자리를 지켰으나 중하위권의 변동이 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STX, 부영, OCI, 효성, CJ, 현대중공업 등이 도약한 반면 상대적으로 금호아시아나, 현대, 신세계, 코오롱 등은 약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5년 전 재계 40위권 웅진과 70위권 C&은 MB정권에서 공중분해됐다"며 "STX, 금호, 동양, 대한전선 등은 재무 상황이 급격히 나빠져 지금까지도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얼마나 늘었을까.

<일요시사>가 30대 그룹의 계열사수 증감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8년 2월 초 774개에서 올초 1188개로 414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한 그룹당 계열사가 평균 10개 이상씩 불어난 셈이다.

MB정부 들어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을 잇달아 성사시키는 등 왕성한 몸집 불리기의 결과란 분석이다. 무엇보다 골목상권까지 침투하는 등 닥치는 대로 사업을 벌이는 무차별적인 '문어발 확장'을 해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문어발을 넘어 지네발 확장을 한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계열사를 가장 많이 늘린 곳은 롯데그룹인 것으로 조사됐다. 43개에서 36개 늘어나 현재 79개를 기록했다. 포스코와 동부그룹은 각각 28개에서 63개, 60개로 30개 이상씩 증가했다.

지난 5년간 계열사가 20∼30개 늘어난 그룹은 8곳으로 나타났다. KT(28개→56개)와 LS그룹(22개→50개)은 각각 28개가 많아졌다. 또 ▲LG그룹은 27개(36개→63개) ▲GS그룹은 23개(54개→77개) ▲삼성그룹은 22개(59개→81개) ▲SK그룹은 22개(63개→85개) ▲현대차그룹은 21개(36개→57개) ▲CJ그룹은 20개(66개→86개)가 불었다.

한진그룹(26개→45개), 현대중공업그룹(8개→27개), 한화그룹(38개→52개), 신세계그룹(15개→28개), 현대그룹(9개→21개), 이랜드그룹(19개→29개), 동양그룹(21개→31개) 등은 '식구'가 각각 10∼20개씩 더 생겼다.

대우조선해양(8개→16개), 현대백화점그룹(25개→33개), STX그룹(16개→23개), 코오롱그룹(34개→38개), 대림그룹(14개→18개), 동국제강그룹(12개→15개), 두산그룹(21개→23개), KCC그룹(7개→9개) 등은 2∼8개만 늘었다.

상위권 기업들 모두 제자리
중하위권 치열한 순위 다툼

그런가하면 계열사가 줄어든 그룹도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5년 전 35개 계열사를 거느리다 최근 20개로 15개나 감소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사업조직재편과 기존업종 관련분야 진출, 새로운 분야 진출 등을 통해 회사들을 신규 편입하고 있다"며 "그러나 부동산업, 운수업, 도매·상품중개업, 식음료소매업, 수입품유통업, 교육서비스업 등 손쉽게 돈을 버는 비제조업 위주로 계열사들을 늘려왔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30대 그룹은 계열사가 늘면서 총자산도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과 지난해 4월의 자산총액 현황을 비교한 결과다.

삼성그룹은 144조원에서 256조원으로 112조원 늘어 자산 증가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차그룹은 81조원(74조원→155조원), SK그룹은 64조원(72조원→136조원), LG그룹은 44조원(57조원→101조원), 포스코는 43조원(38조원→81조원), 롯데그룹은 39조원(44조원→83조원)이 불어 그 뒤를 이었다.

이어 ▲현대중공업그룹 26조원(30조원→56조원) ▲GS그룹 20조원(31조원→51조원) ▲한화그룹 13조원(21조원→34조원) ▲두산그룹 13조원(17조원→30조원) ▲STX그룹 13조원(11조원→24조원) ▲CJ그룹 13조원(10조원→23조원) ▲한진그룹 11조원(26조원→37조원) 순이었다.

LS·신세계·동부·현대·대림·부영·효성·코오롱·KCC·동양그룹 등 나머지 대기업은 총자산이 각각 1조∼9조원 가량 증가했다.

30대 그룹에서 유일하게 총자산이 감소한 기업 또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2008년 27조원에서 지난해 19조원으로 8조원이나 증발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 순위, 계열사수, 자산총액 등에서 모두 지난 5년간 가장 큰 수모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계는 유럽 금융위기 등 해외발 경제악재 여파가 한반도까지 덮치면서 내수부진, 유가인상, 환율하락 등으로 고전했다. 여기에 사정기관들의 옥죄기까지 겹치면서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검찰이 선봉에서 '군기잡기'에 나섰다. 검찰은 MB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기업 비리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댔다. 고질적 병폐인 '검은 돈'을 집중적으로 털어냈다. 먼저 '친노기업'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 선봉 군기잡기 여전
친노기업부터 메스 들이대
굼뜬 베팅에 줄줄이 도마에

검찰은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10년 동안 불거진 각종 비리와 비자금 조성, 특혜·로비 의혹 등 구린내 나는 사건을 다시 꺼내들었다. MB정부 출범 직후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인은 10여명 정도. 이들은 모두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이중 정대근 전 농협 회장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고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문병욱 라미드그룹 회장 등 실제 친노 기업인들이 제물(?)이 됐다. 검찰은 '전 정권 표적설'에 대해 "특정 인물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다"라고 잡아뗐지만, '사정폭탄'은 돌고 돌아 결국 '봉하마을'로 투하된 모양새였다.

이후 한동안 숨을 고르던 검찰의 움직임이 다시 감지된 것은 2010년 6월부터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지만, 대기업들이 굼뜬 '베팅'을 보이면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특히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개점휴업'에 들어갔던 대검 중수부가 재가동되자 대대적인 '대기업 손보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관측은 현실이 됐다. 재정비를 끝낸 검찰은 예전보다 더욱 예리해진 칼날로 재계 압박에 나섰다. 그 신호탄은 한화그룹이었다. 이어 프라임그룹, 애경그룹, C&그룹, 태광그룹, 오리온그룹, SK그룹, LIG그룹 등으로 '검풍'이 매섭게 몰아쳤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회사에 4800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은 2008년 11월 4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은 2008년 12월 회사 공금 2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은팔찌'를 찼었다.

임병석 C&그룹 회장은 2010년 11월 1조원대 경제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회삿돈 1400여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2011년 1월 구속, 1심과 2심에서 징역 4년6월을 선고받았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은 300억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2011년 6월 구속,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현재 3심이 진행 중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60억원대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달 31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2000억원대 기업어음(CP) 부정 발행 혐의를 받고 있는 LIG그룹 오너일가 3명(구자원 LIG그룹 회장, 장남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구린내만 풍기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사건도 적지 않다. 도마에 올랐던 기업들은 변죽만 울린 검찰의 헛발질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MB정부 들어 검찰이 처벌한 첫 재벌그룹 총수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다. 현 회장은 법정관리 중이던 한일합섬을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배임 등 혐의로 2008년 9월 불구속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궁지에 몰렸다가
기사회생 총수도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과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는 것으로 끝났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은 주가조작과 구명로비 의혹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증권거래법 위반 의혹을 받았지만, 검찰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 대통령의 셋째사위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은 주가조작 의혹을, 이 대통령의 사돈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았으나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수영 OCI그룹 회장 등도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가 결국 흐지부지 됐다.

민주당은 재벌 총수·대기업에 대한 MB정부의 봐주기·감싸기 수사를 지적한 바 있다. 민주당은 "MB정부의 사정기관이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 사건을 다룸에 있어 한없이 관대한 봐주기·감싸기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권 동안 깃털만 만지작거리다 전광석화처럼 덮었거나, 굼벵이 수사로 지지부진한 대형 부정부패비리 사건들이 수두룩하다"고 비판했었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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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