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온 조선족 여성들의 삶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어렵사리 한국인 남성과 결혼까지 해 한국으로 왔지만 막상 기대했던 일상하고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는가 하면 공장에서 막노동에 시달려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무국적자’로의 인생행로를 걷는가 하면 결국 중국으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국적이 없어 되돌아가지도 못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조선족과 그 가족의 삶을 취재했다.
조선족 여성들이 겪는 것에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단순 취업의 목적으로 한국에 온 조선족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중국에 남겨져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서 멀어진 채 공부를 멀리하고 탈선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자녀들은 정서적인 혼란은 물론이고 문란한 성관계를 하는 경우까지도 있다. 부모와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해체’의 위기에 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온 조선족 여성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열악한 노동환경과 배우자의 비인간적인 대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부는 한국 남성과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일부는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할 수 있다.
잦은 폭력과 구타, 욕설 때문에 고통과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얼빈시가 고향인 김모(29)씨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28세에 40대 한국 남성을 만나 결혼한 그녀는 신혼 때에만 해도 꿈에 부풀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하게 자신과 가정을 괴롭히던 가난에서 탈출해 ‘코리안 드림’을 이룰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은 비록 농민이었지만 시골에 번듯한 집도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성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그러나 막상 시집을 오고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남편이 가지고 있는 빚은 여타 농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억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더욱이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벌어들이는 금액의 상당 부분이 그 빚에 대한 이자로 충당되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잘못된 술버릇이었다. 시집을 온 뒤 일주일이 지나고부터 남편과 시댁식구는 그녀의 나이부터 탓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28살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않은 것은 이미 한 번 혼인을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과 추궁이었다. 여기에 ‘숨겨놓은 자식은 지금 어디에 있냐’라는 황당한 말도 그녀를 괴롭게 했다.
그녀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고 중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혼인 사실이 없다’는 확인서류에다가 친필로 편지까지 받아 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가짜 계란도 만드는 중국인데 이 따위 서류나 편지 한 장을 어떻게 믿냐’는 반문을 받아야 했다.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력 자체를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 의심이 깊어지자 결국엔 폭력이 시작됐다고 한다. 더군다나 심한 육체적인 노동 끝에 반드시 수반되는 남편의 과격한 음주와 그로 인한 폭력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농촌의 경우 특히 집이 띄엄띄엄 있는 경우가 많고 경찰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주민들이 ‘형님-동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했던 것이다. 그나마 편하게 집안 살림을 하길 기대했던 그녀는 난데없이 식당에 취업을 하게 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뼈 빠지게 일을 하고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가사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시집을 온 것이지 사실은 ‘가사 도우미’가 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나마 남편의 사랑이 있다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으련만 남편 역시 그녀를 ‘가정부’ 이상으로 보는 듯하지 않았다.
김씨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절실했다. 그러나 현실의 법은 이마저도 그녀에게 허락하지를 않았다. 중국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을 했다는 결혼 서류 수속이 끝나게 되면 여성의 거주지에 소재하고 있는 중국 민정국에서 해당 여성의 호적을 삭제하게 된다.
‘코리안 드림’ 꿈꾸고 온 조선족 여성들의 삶 갈수록 악화일로
‘무국적자’의 인생행로 걷는가 하면 국적 없어 귀국도 못해
호적 자체가 ‘공중분해’되기 때문에 중국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남편에게 마음이 조마조마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2년 이상 한국인 남성과 거주하지 못하면 그나마 한국 국적 자체를 취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비인간적인 노예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도 남편을 두려워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만약 결과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국적을 취득할 수 없게 됐을 때 그녀들의 삶은 급속하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핸드폰을 자신의 이름으로 개설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통장도 아는 사람이 개설해주어야만 가능하다. 한마디로 ‘반쪽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현실이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정부당국의 의지의 문제도 있겠지만 일단 그들이 불법체류자라는 신세 때문에 외부에 드러나기가 쉽지 않고 그에 대한 지원을 하려고 해도 불법체류라는 약점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세상에 나오길 꺼린다는 점이다.
결국 이 같은 불안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몸으로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어두운 유흥가쪽의 일밖엔 없었다고 한다. 현재 불법적인 변태 성매매로 유입되고 있는 조선족 여성은 급속도로 많아지고 있으며 최근의 경기 불황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대딸방’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주는 “예전 조선족 여성들은 상당수 모텔이나 안마업소의 일용직 청소부 혹은 노래방 도우미 등을 하며 유흥가의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30대 중반 이후의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일부이긴 하지만 심지어 한국에 온 중국 유학생들조차 이러한 대딸방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역시 한국 여성들보다 인건비가 싸거나 같은 금액에도 더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업주들로서는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또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경기 침체는 비단 어린 한국 여성들뿐만 아니라 조선족 여성들에게도 심각한 형태로 다가갈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 역시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결국 지금보다 더욱 많은 숫자가 유흥가나 변태적인 성매매 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으로 인한 피해자는 성인 당사자들뿐만이 아니다. 결혼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조선족들의 자녀들은 중국에 남아 더 큰 방황과 좌절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부모들이 보내주는 적지 않은 현금으로 경제적으로는 그나마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상당히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오히려 과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부모들은 중국에 남아있는 자녀들이 안쓰럽기 때문에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주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그것이 특별한 관리를 받지 못하니 이성교제를 통해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어두운 암흑의 세계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자녀들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을 관리해줄 사람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때로는 그들이 가출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연락할 부모가 없기 때문에 교사들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조선족과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인 대안은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영향력을 가진 행정규제나 법적 보완장치가 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