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6번 정신병원 감금된 법대생의 기구한 인생

멀쩡한 자식 정신병자로 만든 병원장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

[일요시사=사회팀] 최근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민채원 역을 맡은 유진이 시어머니의 계략에 의해 억울하게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시청자들은 정신병원 불법감금 존재유무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현실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20대 남성이 부모로부터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수차례 당했다며 <일요시사>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왜 정신병원에 가게된 것일까. 비윤리적인 강제입원은 과연 사실일까. 그를 인터뷰했다. 

지난 11일 저녁 한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선천적으로 한쪽 귀가 잘려진 채 태어난 법대생 김모(28)씨. 서울 노원구 모 종합병원 병원장 아버지와 분당시 죽전 모 병원 의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김씨는 엘리트코스를 밟아 부모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강압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김씨의 부모는 자식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하면 무차별적으로 학대를 가했고, 김씨는 학대에 항상 노출되며 살았다. 

소외감과 학대서
벗어나지 못해

개신교였던 김씨의 집안. 어느 날 김씨는 친분이 있던 교회집사와 인사를 나눴다. 집사는 무척 야위어 보였던 김씨에게 “공부하느라 힘들겠다. 학원은 다니니?”라고 물었고, 당시 학원에 한 번도 다녀본 적 없었던 김씨는 “아뇨, 저 학원 안 다니는데요”라고 답했다가 집에 와 아버지께 발가벗은 채 혁대로 온몸이 찢기도록 맞았다고 전했다. 아직도 왜 맞았는지 자세한 이유를 모른다고 한 김씨는 아마도 허례허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모님이 교회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한 게 큰 이유였을 것이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김씨 부모의 학대는 사소한 것에서도 비롯됐다. 글씨가 작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표정관리를 못 하면 각목으로 맞는 등 끔찍한 학대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나 외모적으로 자신감이 결여돼 있었던 김씨는 학창시절 내내 또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등 비교적 소외된 삶을 살았고 가족조차 그를 외면하기 일쑤였다.

당시 외과의사 과장으로 있었던 아버지는 항상 늦은 시간에 귀가하셨고 의사였던 어머니 역시 겉으론 치맛바람 날리듯 극성맞아 보였지만 학예회와 같은 교내행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등 한없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또한 욱하는 성격 탓에 사춘기 시절 김씨가 어머니 말에 반문이라도 하는 날이면 주방기구나 계란을 얼굴 쪽에 던지며 화풀이를 하곤 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조용히 집에 들어와 갑자기 소리를 내지르며 부엌에 가서 바비큐용 포크를 들고 “죽여버리겠다”며 김씨의 방으로 달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난동이 그칠 줄을 모르자 김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현장방문하면서 상황은 수습됐다.


만날 몽둥이찜질…어릴 때부터 학대 시달려
부모가 강제로 입원시켜 “6차례나 들락날락”

이런 김씨를 안타깝게 생각한 교회집사는 가끔씩 “왜 이렇게 말랐니. 괜찮니?”하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곤 했다. 평소 틱장애까지 앓고 있었던 김씨에 대해 부모는 교회지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맏이한테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 잘 좀 대해줘라”라고 말해 사람을 정신이상자로 매도시켰고, 약간의 틱장애를 앓고 있었던 김씨에게는 “왜 그렇게 사느냐”며 나무랐다.

그러다 2005년, 아버지가 술집 마담과 바람이 나면서 김씨 가정은 막장으로 변해갔다. 술집 마담은 자신의 아들을 김씨의 여동생에게 소개시켜주려 애를 썼고, “첫째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와이프와 이혼해라. 나랑 살자”며 꼬드기기 시작했다. 이후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아버지는 용서를 구했다. 둘 사이는 곧 해결됐지만 부부 간에 깨져버린 신뢰와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김씨에게 돌아왔다.

학대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살아온 김씨. 2006년은 그에게 정신병원 강제입원의 첫 신호탄을 날린 해였다. 2006년 김씨는 연세대학교 법학과 원주캠퍼스에 합격했다. 법조인을 원한 어머니의 부응에 맞게 법대졸업을 해야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꿈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뮤지션. 그는 음악을 사랑했고 포기할 수 없었다. 김씨는 숱한 설득과 간절함을 부모님께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냉대뿐이었다.

어려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온 김씨는 원주에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어머니께 “음악하고 싶다. 서울에서 공부하게 해달라. 수능을 다시 보겠다”고 말한 뒤 2주간 재수학원을 알아봤다. 당시 부모는 웬일인지 김씨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였고 재수준비를 하는데 아무런 방해요소도 만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오히려 과일을 갖다 주며 친절하게 대해주기까지 했다. 그러다 3월 갑자기 그는 아산병원에 강제입원 됐다. 김씨의 부모는 아이가 “정신병이 있다” “매사 폭력적이다” “비정상인이다” 등의 말로 자식을 정신병자로 매도하며 김씨를 정신병원에 불법감금 시켰다. 김씨가 감금된 이후 부모는 병원면회에서 “원주로 돌아가서 다시 법 공부를 해라. 네가 약속만 하면 퇴원시켜주겠다”라고 협박했다.

법조인 원한 부모
뮤지션 꿈꾼 자식

김씨가 어렵게 손에 넣은 약 5년 전에 기록된 정신병원 의무기록란에는 말도 안 되는 말들로 조작돼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단 한 번도 자살기도를 한 적이 없었지만 병명에는 버젓이 ‘자살위험성 있음’이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 가족력 부분 역시 조작됐다. 가족력란에는 10년 동안 치매를 앓은 할아버지에 대해 ‘강박장애를 앓았다’고 써져있었고, 자살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작은아버지에 대해선 ‘자살위험성 있음’ 등으로 허위작성이 돼있었다. 또한 처음 김씨를 정신병원에 보낼 때 병원기록에 남겨진 어머니?의 대화록에는 “단지 혼낼 목적으로 보냈다. 법대를 포기하고 음악하려고 고집 피워서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법률상 정신병원에 입원요망이 되는 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자’임에도 병원은 허위로 작성된 가족력과 김씨 부모의 말만 듣고 김씨를 강제로 입원시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친했던 여동생마저 오빠로부터 어릴 때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허위 진술하면서 김씨는 한순간에 정신병자로 취급됐다. 김씨는 “부모는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아들을 정신병자로 치부했고, 당시 내가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했다고 생각해 생애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다음해인 2007년 7월 김씨의 2차 강제입원이 발생했다. 김씨의 아버지는 응급호송단을 동원해서 김씨를 반 기절시킨 후 정신병원까지 개처럼 끌고 갔다. 김씨는 목과 손발에 줄로 묶여져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고 두 번째 아산병원에 끌려갔다. 김씨는 이를 기자에게 말하며 “전혀 과장이 아니다. 정말 수치스럽게 옷이 벗겨진 채로 응급실까지 질질 끌려갔다”고 재차 강조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김씨 아버지와 그는 담당 여의사를 기다렸고, 담당 의사가 내려왔다. 여의사는 김씨 아버지에게 “어떻게 사람을 개처럼 끌고 오느냐”며 김씨 아버지를 나무랐다. 이어 “1차 강제입원 시 통원치료를 약속으로 퇴원수속을 밟게 했는데 형식적으로 2번만 통원치료하고 왜 이후에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냐”며 분을 터뜨렸다고 한다.

정신병자 되기
참 쉽죠잉∼?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말없이 김씨를 데리고 돌아갔고, 김씨는 1차 입원때와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해 민·형사상 고소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한 후 나올 수 있었다. 김씨는 당시 어리숙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똑같은 일을 또 겪는다면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재수학원 다니며 수능준비를 하던 김씨는 또래 친구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 장애가 있던 그를 만만하게 생각한 여학생 무리들은 지속적으로 놀리고 비아냥대며 괴롭혔고, 급기야는 친한 남자친구들까지 불러 폭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김씨 외에도 소외된 아이들을 타깃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짜고짜 “여자애한테 무슨 잘못을 했느냐. 사고쳤냐”고 다그쳤고, 어머니는 “첫째가 부모에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고 타인에게도 피해를 준다”며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쪽에 힘을 실었다.

2009년 어머니의 강압으로 김씨는 단국대 법학과에 강제입학 했다. 김씨 어머니는 미리 학교 측에 전화해 “아들이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으니 잘 다독이라”고 미리 언질을 놓았다. 조교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이기 시작했고, 김씨는 “왜 내가 정신병자냐. 난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사람을 매도하냐”며 울부짖는 등 부모와 목소리 높이며 언쟁을 벌였다.

모친 희망대로 명문대 법학과 합격
평소 꿈인 음악공부 시작하자 감금

김씨의 계속되는 반발에 김씨 부모는 3차 강제입원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김씨는 부모의 바람대로 2011년 초 정신병원에 불법감금 됐고 당시 의무기록에는 ‘여자에게 집착함’으로 돼있었다고 한다. 약 2주 동안 감금된 뒤 진행한 충성맹세에서 담당의는 “여자한테 집착하죠?” “부모님한테 막 하는데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라며 비인권적이고 강압적으로 질의하며 강제답변을 끌어냈다.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었던 김씨는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다”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진술한 뒤 퇴원수속 밟았다. 

같은 해 7월 김씨의 소문을 듣고 한국외대 학생들이 학교홈피 방명록에 “김모군은 단국대 법대에서 퇴학당했다” “정신병 앓고 있다” “쟤는 부모도 포기한 정신병자다”라며 허위 글을 게시했다. 평소 존경하던 지도교수인 지모 교수마저 김씨에게 “너 스토커 아니었니?”라고 말하며 오해하기도 했다. 당시 지도교수였던 지 교수가 김씨를 걱정하며 “애를 왜 정신병원에 보내냐”고 어머니를 다그쳤을 때 어머니는 지 교수에게 “원래 애가 정신병도 있고 여자한테 집착한다”고 딱 잘라 말했고, 김씨에게는 “지 교수도 너 병원 좀 보내라더라. 너 이상하다고 말하더라”라고 말하는 등 없는 말을 지어내 이간질하기도 했다고 한다. 분노를 참지 못한 김씨가 모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자신이 겪었던 참혹한 일을 비망록으로 적어 게시글을 올렸고, 부모님 신상정보까지 모두 밝혔다.

이때가 바로 김씨가 4차 정신병원에 감금됐을 시기였다. 당시 성남 모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 김씨는 할아버지의 손발을 묶어 입에 깔대기를 끼워 강제로 벌리게 한 뒤 물과 약을 쏟아 붓는 장면, 남성 간호사들에게 무차별 폭행당하는 할머니를 등 충격적인 광경을 눈앞에서 마주하며 끔찍한 트라우마에 휩싸였다. 담당 전문의는 김씨에게 “넌 망상이 있고 모든 것이 네 잘못이다. 게시판에 네가 쓴 글은 모두 거짓임을 인정하라”고 압박을 줬다. 하루빨리 끔찍한 폐쇄병동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제가 쓴 글은 모두 거짓입니다”라고 진술한 뒤 또 한 번 충성맹세를 한 뒤 퇴원했다.  

사람이 스쳐만 가도
‘잡아갈까’망상

2주간의 입원 뒤 김씨는 목사인 큰아버지와 전도사인 사촌형이 거주하는 미국에 가 6개월 동안 살았다. 이후 2012년 초에 한국에 귀국한 그는 휴학계를 냈던 법대에 복학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자 또다시 분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 다짜고짜 정신과약을 먹으라고 강요했다. 김씨는 끊이지 않는 부모님의 압박과 정신병원 입원협박에 시달려 결국 3월에 집을 나왔다. 집에 있던 돈 몇 푼을 들고 무방비상태로 집을 뛰쳐나온 그는 길거리를 방황하고 다니며 노숙자처럼 생활했고 남성들이 옆을 스쳐가기만 해도 “혹시 나 잡으러 왔나”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학교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외삼촌이 김씨의 행방을 찾고 집을 얻어다 줬지만 어머니에게 거주지를 알려줘서 조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자신이 극도로 아낀 강아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고, 부모께 “제 강아지 어디 있어요? 데리고 온다면서 왜 안돌려 주세요?” “강아지가 아직도 안 왔네요?”라며 캐물었다. 하지만 지속되는 반발에 김씨 부모는 화가 치밀었고, 급기야 어머니는 “저 새끼가 아직도 돌았나?” “너 같은 건 죽어버려야 한다”며 김씨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아버지는 이 상황을 말리기는커녕 뒤에서 팔짱끼고 방관했다고 전해졌다. 이때 5차 정신병원 불법감금을 당할 뻔 했지만 여동생의 만류로 소동에서 마무리 됐다고 한다.

아무도 못 믿게 된 김씨는 학교 조교를 비롯한 친한 교수만 의지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남다른 친분을 유지해온 지인 백 사장이라는 사람을 동원해 학교까지 찾아왔고, 그들은 조교와 동기들 앞에서 김씨에게 강압적으로 “야! 앉아!”라며 명령하며 말미에는 "가족에 관련된 일은 외부에 일절 알리지 말라"고 협박했다고 한다.

‘폭력적…비정상…자살…’병명조작

2012년 12월 초 김씨는 이일로 인해 6차 정신병원에 불법감금 됐고, 현재는 통원치료를 하며 혼자 거주하고 있는 상태다. 김씨에 따르면 김씨 부모는 번갈아가며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당하곤 했는데 매번 일이 수습되면 아들을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애쓴다고 한다. 골치 아픈 사건에 휘말릴 때에는 “정신병원에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고 안정을 심어준 뒤 일이 수습되면 곧장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 한다는 것. 그는 “예전에 모 게시판에 비망록을 썼을 때 아버지가 병원장에 오르는 데 큰 장애가 돼서 그 이후로는 승진이 있거나 사건이 터졌을 때 따뜻하게 대해주신다”며 “하지만 모든 것이 잘 해결되고 나면 저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킨다. 제 눈과 귀, 입을 막으려고 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현재 김씨의 어머니는 의료법 위반으로 수감된 상태고, 아버지 역시 의료사고에 휘말린 상태. 김씨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제 정신병원에 보내지 않을테니 집에 들어오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긴 시간 쌓아왔던 원망과 분노를 허물기가 쉽지만은 않을 듯 보인다. 

김씨는 지금도 정신병원에서 겪었던 충격, 정신과약을 복용한 후 따르는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정신병원에 한번 입원하면 정신과약을 한 달간 약을 복용해야하기 때문에 후유증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과거보다 두뇌회전이 확연하게 느려졌고, 뇌에서 명령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말이 나오는 등 말투가 더디고 어눌해졌다고 했다. 몇 년간 사람이 정말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수감
아버지는 후회

그는 “우리나라에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기에 너무 쉽다”며 허술한 체제에 대해 하소연했다. 정확한 검진과 근거 없이 단지 직계가족이나 주변인들이 한 사람을 작정하고 매도하면 강제입원은 바로 성사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그의 2차 강제입원 의무기록에는 ‘병명 없음’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는 “더 이상의 인권유린은 없어야 한다. 입원시킨 사람만이 퇴원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돼있는 현 법률을 제정해 피해자들이 인권침해를 받는 일을 방지해야한다”며 “퇴원에 대한 법 규정과 절차도 의사와 보호자 중심이 아니라 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다각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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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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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