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홀린’ 심마담 미스터리 추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1.21 12: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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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여인’ 지금 어디…그녀의 수상한 정체

[일요시사 = 사회팀] 김설아 기자 = ‘비운의 야구스타’ 고 조성민의 죽음으로 현재 법적 부인인 심모씨가 도마에 올랐다. 심씨는 조성민과 그의 전 부인인 고 최진실과의 파경에 결정적인 원인 제공을 한 인물. 그러나 무슨 이유 탓인지 심씨의 동선은 과거부터 철저하게 가려져 지금까지도 베일에 꽁꽁 싸여 있다. 궁금증만 증폭시키고 있는 심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녀를 파헤쳐 봤다.
 

고 최진실과 고 조성민, 그리고 심모씨. 이들에겐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연이 있다. 심씨는 과거 최진실과 조성민의 이혼공방 당시 ‘조성민의 연인’으로 지목되면서 다수의 언론에 거론된 주인공이다. 당시 조성민은 ‘단순 비즈니스 관계’라며 심씨와의 관계를 부인했지만 그 둘이 비밀리에 재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조성민은 2004년 9월 최진실과 이혼한 뒤 2005년 7월, 3세 연상의 심씨와 극비리에 재혼했다.

베일에 싸인
그녀는 누구?

심씨의 세부적인 신상정보는 베일에 꽁꽁 싸여있는 상황이다. 조성민이 야구스타이자, 최진실의 전 남편으로 이목을 끌던 유명인이고 그런 사람과 재혼을 했으니 여기저기서 관련 자료가 나올법하지만 사진 한 장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심씨는 현재 국내외 유명 스타들에게 협찬하는 명품 가방 브랜드 A사 대표다. 지난 2010년 설립된 A사는 김하늘, 장근석, 박지성 등 유명 스타들이 애용하는 백팩 브랜드로 화제를 모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업체다.

지난해 4월 첫 플래그십 오픈행사에서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날 행사에는 장동건, 하지원, 장근석, 장혁, 손담비, 씨앤블루 등 국내 톱스타들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명품 브랜드 대표…강남 룸살롱도 운영
톱스타와 친분 “연예계 마당발로 유명”

업계는 “명품 브랜드가 몇 없는 국내 현실서 A사의 약진은 탁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배경으로 심씨의 탁월한 사업 수완과 드넓은 연예계 인맥이 꼽힌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기스타 중에 A사 제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A사의 회사 홈페이지에는 중화권 스타 장백지가 A사  백팩을 매고 있는 공항 패션 사진도 올라와 있다.

심씨는 A사 대표 뿐만 아니라 조성민과 인연을 맺을 당시부터 해오던 강남의 B유흥주점도 계속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심마담’으로 불린다.

남편 사망 당시
하와이 여행 중?

심씨는 현재까지 조성민의 법적 부인이다. 지난 2010년 10월경 당시 한 여성월간지는 “10월2일 경기도 양평 갑산공원서 열린 고 최진실의 2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조성민의 아버지 조OO씨가 ‘(자신의)아들이 심씨와 10개월 전부터 별거 중이며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없다’고 밝혔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나 2011년 12월 한 매체가 A사의 법원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조성민은 2010년 10월25일 사내이사로 취임했고, 2010년 11월2일 정식으로 등기부에 등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심씨와 수개월째 별거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 심씨의 회사에 사내이사로 취임하는 ‘이상한’관계를 유지했다”는 데 의구심을 나타냈다. 


‘별거설이 와전’된 사실일지 몰라도, 이후 심씨와 조성민이 이혼했다는 보도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심씨와 조성민 부부가 법적 혼인관계는 유지한 상태서 조성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된다.

아직까지 법적부인 왜?
안재환 사건에도 연루?
인터넷 신상정보 삭제?

지난 연말, 조성민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 즈음, 심씨의 행적이 네티즌들에 의해 포착되기도 했다. 심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근황을 올린 게 네티즌들의 눈에 띈 것이다.

심씨는 당시 하와이서 송년 불꽃놀이를 즐기며 카운트다운 중이었다. 심씨는 지난 1월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피뉴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카운트다운 시간∼ 카운트다운 끝나자마자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수많은 사람들이 말춤을 추고 있다. 멋지다!!”라는 글과 함께 불꽃놀이 사진을 게재했다. 

이를 접한 한 네티즌은 “비록 별거 중이었다고 해도, 그 시기 심씨는 다른 누군가와 같이 하와이서 새해를 맞이했다”며 “심씨에게도 조성민에게도 사랑은 참 쉽게 가고 쉽게 잊혀지는 것이었나 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알만한 사람은 알다시피 심씨는 최진실-조성민 부부의 관계를 틀어지게 한 장본인이다. 조성민은 2000년 12월 톱스타 최진실과 결혼했다.

조성민은 당시 최진실과의 결혼이 양가 반대에 부딪히자 “결혼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며 유해한 약을 100알이나 먹고 자살소동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목숨까지 내놨던 그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둘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계속해서 불화설이 불거졌다.

최진실-조성민 파경
발단은 룸살롱 마담

당시 최진실은 파경의 원인으로 조성민의 여자관계를 거론하며 B 유흥주점의 마담인 심씨를 지목한 바 있다. 최진실은 조성민과 심씨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여보야’라는 표현을 쓴 점, 조성민의 사무실이 심씨 집 근처인 점 등을 들어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 사이가 아님을 주장했다.

조성민과 심씨는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극구 부인하며 술집서 장난삼아 부른 호칭이었다 주장했지만 예사 사이에서는 ‘여보’란 호칭을 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당시 심씨와 인터뷰를 했던 한 스포츠지는 심씨를 “강남서 B 주점을 운영 중이며 40억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한 미모의 재력가”라고 소개했다.

둘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지난 2007년 회계직원이 이들의 관계를 폭로하면서 재점화됐다. 두 사람이 예식 등 절차는 생략하고 2005년 7월 혼인신고만 한 뒤 서울 강남에 위치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서 살림을 시작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그때 그 사람’과의 재혼으로 회자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당사자들이 극도로 쉬쉬한 탓에 그렇게 넘어가는 듯 했다.

최진실과 이혼 당시 불화 원인 내연녀로 등장
처음 관계 부인하다 파경 1년 뒤 극비리 재혼


이후 심씨는 2008년 12월 프로야구선수 도박사건 때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심씨는 속칭 ‘바둑이’ 등의 도박장소 제공 및 10%의 선이자를 떼고 도박자금으로 제공하거나 사채를 알선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서 조사를 받았으나 단순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도박사건의 경우 도박에 참가한 사람보다 장소 제공자의 형량이 더 높은 통례를 깬 것이다.

또 심씨는 고 안재환에게 2억원의 사채를 준 사채업자 원모씨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원씨가 심씨가 운영하는 가게서 도박 및 사채 제공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 탓인지 온라인상에서 심씨에 대한 신상자료는 삭제되고 있다.

과거 위키백과 A사 검색에 따르면 “대표이사 심씨는 2002년 12월 최진실과 조성민의 이혼공방 당시 ‘조성민의 여인’으로 지목된 당사자로 당시에는 단순히 비니지스관계라고 주장했지만, 조성민은 2004년 9월 최진실과 이혼했고 10개월 후 심씨와 2005년 7월 재혼했다. 한 언론이 대법원 등기기록을 확인한 결과 대표이사는 심씨, 조성민은 A사 사내이사로 등록돼있다. 심씨는 2008년 12월, 자신이 근무하는 술집을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과 연예인들에게 도박 장소로 제공하고, 선이자 10%를 미리 떼는 방법으로 도박자금까지 빌려준 혐의로 ‘도풍(賭風)’의 핵심 A마담으로 지목돼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서 조사를 받은 바 있다…”라고 설명돼있었다.

그러나 위키백과 A사 관련 자료는 지난 1월1일 부로 삭제된 상태다.  

꽁꽁 숨긴 신상정보
언론도 덩달아 침묵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진 심씨에 관한 글 역시 계속 삭제되고 있다”며 “그녀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 배후에 어마어마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어찌됐건 애써 쟁취한 사랑에도 끝은 있었다. 네티즌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최진실과 이혼 후 두산 코치 재계약에 실패하고 폭행 논란에 휩싸이는 등 막다른 곳에 다다른 조성민 곁에 심씨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번 조성민의 빈소 역시 사망 당시까지 법적 부인이었던 심씨 대신 최진실과의 사이에 낳은 환희·준희 두 남매가 상주로 있었다. 또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모두 담아내는 국내 언론이 왜 정작 궁금한 심씨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인지 자살로 이어진 비극적 가족사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은 의아해 하는 분위기다.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굴곡 많았던 조성민 일생
기대주…풍운아…비운스타…

‘야구계 풍운아’ 조성민은 그동안 겪은 굴곡 많은 인생 탓에 ‘비운의 스타’로 꼽힌다. 신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조성민은 대학 시절 194cm의 당당한 체구에서 나오는 강속구를 앞세워 박찬호, 임선동, 차명주와 함께 ‘황금의 92학번’ 트리오로 불렸던 기대주 투수였다. 그는 1996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계약금 15억여원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에 입단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그의 야구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97년 7월 처음 1군 무대에 올라 주로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1998년 본격적으로 선발로 나서 재능을 만개하는 듯했다.

6월까지 7승으로 다승 공동 1위에 오르는 등 투수 각 부문에서 상위에 올랐고 완봉승 3번, 완투승 2번 등 홀로 팀 승리를 견인하며 요미우리에서 에이스로 자리매김 해나갔다. 그해 조성민은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에 선발됐고,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올스타전을 앞두고 난조에 빠져든 조성민은 올스타전 2차전에서 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이후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다. 이후 부상과의 악전고투가 시작되며 출구 없는 터널을 이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1999년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재기하지 못한 채 네 시즌 동안 11승10패10세이브, 평균자책점 2.84의 기록을 남긴 채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났다.

선수생활 뿐 아니라 개인적임 삶에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2000년 톱스타인 고 최진실씨와 축복속에 결혼해 화제가 됐지만 불화를 거듭하다가 2004년 파경을 맞았다. 그 과정에서 폭행 등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끝내 꽃도 못피운 비운의 스타
비극으로 이어진 ‘세기의 커플’

제빵 사업가와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3년과 2004년에는 연달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해 국내 프로야구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끝내 지명을 받지 못했다.

선수생명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던 조성민은 2005년 김인식 전 감독의 부름으로 한화에 입단했다. 그러나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2007년까지 3년 동안 35경기에 출장해 3승4패와 평균자책점 5.09를 남긴 채 마운드를 떠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8년에는 전 부인 최진실이 자살한 후 유산과 관련해 친권행사에 나섰다가 이혼 때 두 자녀에 대한 친권 포기 각서를 작성한 사실이 알려져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또 2년 뒤인 2010년에는 처남이었던 최진영마저 스스로 생을 마감해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이후 방송 해설가로 나서기도 한 조성민은 2011년 두산의 부름을 받고 2군 코치로 새 출발, 지난해 말까지 선수들을 지도했으나 끝내 야구의 꿈을 만개하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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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방부는 내란 특별검사팀이 해소하지 못한 건을 발본색원하려 했다. 특별수사본부 외에도 TF팀을 꾸렸으나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상규명 핵심 기관인 정보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의혹의 상당수가 근거가 빈약해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인사도 문제다. 내란에 연루된 핵심 기관임에도 인적 쇄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본부에 조사관들이 상주까지 했는데 밝혀진 게 없다.” 한 정보사령부 영관급 장교의 말이다. 정보사를 둘러싼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 차원의 특별수사본부와 헌법존중 TF(테스크포스)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제보와 투서 내란 특별검사팀의 후신인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정보사에는 대북공작 전문가들인 휴민트(HUMINT·인간정보·820)가 있다. 휴민트 부대인 HID(북파공작부대)와 이들을 지휘하는 100여단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들은 대북공작 실행 부대로 전략·기획은 특수사업처가 담당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사 특수처는 최근 특수·대외·훈련평가 등 3개의 부서를 특수·대외로 개편했다. 신임 정보사령관에는 1988년 이진백 사령관 이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비육사 출신인 조선대학교 학군장교(ROTC)출신 박민영 육군정보학교장이 임명됐다. 참모장은 육사 출신 한모 준장, 정보단장은 하모 준장(3사)이 맡게 됐다. 100여단장이던 육사 출신 정모 준장은 제2작전사령부로 전보됐다. 국방부는 당분간 100여단장 자리를 공석 상태로 놔두기로 했다. 휴민트 조직이 12·3 내란에 깊숙하게 연루된 만큼 특수본의 수사가 끝난 이후 진급 심사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정보사는 검찰과 경찰, 내란 특검팀 수사에 의해 부서명이 노출돼 기밀이 새 나가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홍도 격화되고 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에 제보와 투서가 빗발치고 있는 점이 정보사 내부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한 군 관계자는 “‘진급 시즌’ 때문이라고 해도 의혹에 그치는 제보가 많다. 중요한 내용도 있지만 타 부서의 간부를 언급하며 ‘문제가 있어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약물 공작’ 문건 본거지 특수처 압수수색 패스 논란의 인물들 되레 진급 “장군 인사로도 거론”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을 통해 드러난 ‘약물 공작 문건’ 이후에는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건 작성자인 이모 대령(현 속초 HID 부대장)과 군무원 외에도 당시 특수처장이던 A 대령과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박 의원이 확보한 해당 문건은 정보사 특수처 산하 대외 담당실에 존안돼있었다. 문건 작성 및 책임자인 A 대령과 이 대령 모두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다만 특검팀의 수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검팀에 파견됐던 한 경찰 관계자는 “특수처 간부 중 일부는 수사에 협조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지시로 작성하게 됐다는 것 외에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의 연결고리가 의심됐으나 정황을 포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는 관련 의혹을 면밀하게 들여다봤다. 실제 담당 조사관들은 정보사 안양 본부에 상주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약물 공작 문건 외에도 지난해 2월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준장)이 국회에서 증언했던 ‘2016 계획(가칭)’도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준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2016년 속초 HID 부대장으로 있을 때 당시 노상원의 지시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며 “대북 중요 임무를 6개월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여러 불합리한 지시가 많았지만 특히 요원들을 폭사시키라던 지시가 생각난다. 노상원은 요원들에게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 보낸 뒤 임무를 끝내면 폭사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계획은 노상원 전 사령관이 취임 이후 자신의 비서실장과 특수처장, 사업단장을 해임한 이후 모의됐다. 일반적 공작처럼 북한 내 쿠데타를 야기하거나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실제 수십명의 공작관들이 강제로 동원돼 노 전 사령관의 비상식적 계획을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상원 폭사 지시 ‘2016 계획’도 조사 바짝 붙었는데 빈손…진상규명 어려울 듯 한 국방부 관계자는 “TF에서 해당 사안을 조사했던 건 사실”이라며 “차후 어디서 수사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복수의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2016 계획’이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한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소실됐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 전 사령관은 2016 계획 외에도 대북공작 관련 보고서를 ‘특수’가 아닌 ‘일반’ 문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제한된 공간에 보관한 후 통제했다고 한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안양 본부에 가서 보고하는 절차에서 노상원이 직접 100여단을 방문해 보고를 받았다. 시스템이 이상하게 바뀌었는데 문상호도 똑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반 문서로 분류한 대북공작 문건들은 김용현에게 따로 보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노상원은 사실상 수년간 김용현에게 휴민트들이 작성한 첩보를 갖다 바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 정보기관 간 갈등도 폭발 직전이다. 또 다른 군 정보기관인 777사령부에 대한 ‘인사 차별’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앞서 777사령부에 소속된 시긴트(SIGINT·신호정보·820) 전문가들은 휴민트와 같은 820 정보병과다. 다만 ‘인간’과 ‘신호’로 구별될 정도로 업무 자체가 전혀 다르다. 정보사는 관행대로 육군 소장이 신임 정보사령관을 맡게 됐지만 777사령부는 공군 준장으로 격하 보직된 데 이어 지휘관의 군종까지 뒤집히는 전례 없는 조치가 단행됐다. 777사령부는 정보사와 다르게 내란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바 없다. 인사만 놓고 보면 두 군 정보기관 간 인사에 차이가 있다는 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주먹구구 인사 국방부 인사를 담당하던 한 소식통은 “777 입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인사”라며 “정보사 육사 출신들의 진급이 대거 배제됐다고 해도 외형적으로만 그럴듯해 보이지 속사정은 다르다. 실질적 지휘 체계는 뒤바뀌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적 쇄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TF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했다. 16일 조사를 마무리한 TF는 조만간 결과를 검토해 다음 달 13일까지 승진 취소 및 징계성 전보 등 인사 조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적어도 이날까지는 군 정보기관 내 파열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