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두 정치인의 ‘도박귀환’ 후유증

정치권의 두 거물이 돌아왔다. 정동영과 이재오. 그들은 지난해 치러졌던 국회의원 총선에서 낙마하고 대한민국 정계를 떠났던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패자’가 되어 쫓기듯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

두 사람 다 못다한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1년도 채 안 돼 공히 ‘놀던 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벌써 목표로 했던 공부를 다한 것일까.

대한민국 정치에는 다른 나라엔 없는 희한한 ‘전통’ 같은 게 있다. 선거에서 패하면 꼭 도망치듯 외국으로 떠나곤 하는. 국내에 있기 민망해서 그런 것인지, 선거 때 너무 힘을 빼서 재충전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다.

92년 대선에서 YS에게 분패했던 DJ가 그랬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에게 참패했던 이회창도 그랬다.

두 사람 모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선거를 앞두고 돌아와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다시 선거에 출마했던 것. 그후 DJ는 결국 97년 대선에서 대권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지만, 이회창은 세 번째 도전인 2007년 대선에서도 이명박, 정동영에 이어 3위에 머무르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 희한한 전통을 잇기라도 하듯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에 패한 정동영은 2008년 총선에서도 자신의 본래 지역구인 전주 덕진이 아닌 서울 동작을에 차출돼 정몽준에게 패하고 쓸쓸히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 이재오 역시 지난해 총선에서 다크호스로 등장한 문국현에게 석패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내정치를 떠나 미국에서 낭인 아닌 낭인생활을 해야만 했다.

똑같은 ‘아픔’을 간직한 채 한 사람은 9개월, 한 사람은 10개월 동안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국내정치와는 거리가 먼 타국 땅 워싱턴에서 ‘부활의 날갯짓’을 하다가 돌아온 시점도 비슷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6일 차이로 귀국한 두 사람의 귀환 풍경은 그러나 판이하게 달랐다.

지난 3월2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정동영은 ‘왕의 귀환’인 양 환영 나온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성대한 귀국행사를 가진 반면, 28일 일본을 거쳐 김포공항으로 몰래 들어온 이재오의 귀국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가뜩이나 혼미한 정국에 시끌벅적한 정동영의 귀환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은 것일까. 단지 측근 몇 사람만이 그의 귀국을 반겼을 뿐이다.

그렇게 대조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두 사람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4·29 재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들이 끼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생각보다 큰 까닭이다.

먼저 돌아온 정동영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정면대치하며 자신의 텃밭인 전주 덕진 출마를 고수하고 있고, 귀국 후에도 칩거 아닌 칩거를 하고 있는 이재오는 정작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도 주변에서 연일 야단법석이다. ‘친이계와 친박계가 어떻고’ ‘이상득과 박근혜가 어떻고’ 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기에 그리 새삼스러울만한 것은 못되지만, 그렇더라도 두 사람의 귀환은 좀 더 신중했어야 마땅하다. 시절이 하수상한 요즘 자칫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 비춰질 경우 ‘삼류정객’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정동영의 경우 자신의 출마 선언에 따른 거센 비난을 한 몸에 떠 안으며 외로운 미국 유랑에 이어 또다시 정치적 유랑기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위험성을 안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540만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정권을 빼앗긴 데 따른 정치적,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탓에 당내 비판은 물론 대다수 여론도 그의 재선거 출마에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재오 역시 당장 정치적인 행보는 멀리하겠다고 말하지만 당내 구심점 역할을 기대하는 친이계 주류에선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과의 불화가 자신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지난 18대 공천 과정에서 앙금이 남아 있는 친박계와의 대면은 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당내 비판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권력의 중심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정권이 끝날 때까지 낭인이 될 게 뻔하다.

혹자는 어차피 ‘도박귀환’을 감행한 마당에 못할 일이 뭐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선택은 더욱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정동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권 재수의 꿈을 접고 먼저 당내 화합을 위해 몸을 낮추어야 할 것이며, 이재오 또한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명박정권이 더 이상 잡음 없이 순항할 수 있도록 백의종군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작금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 정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이제 본인들의 선택에 달렸다. 지금 국민들은 그들의 도박귀환보다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만큼 본인의 정치적 욕심과 일신의 영달보다 작게는 당내화합, 크게는 국민화합을 위한 선택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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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