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2> 부패의 덫에 빠진 사람들

뇌물에 ‘죽고’ 뇌물에 ‘살고’


원칙과 도덕성을 강조했던 참여정부의 부정부패가 양파까지듯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큰형인 노건평씨가 구속되고 자신의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나이키 하청생산) 회장이 노 대통령의 큰형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12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여기에 남중수 전 KT 사장도 납품업체 등으로부터 수억원을 상납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조영주 KTF 사장도 뇌물혐의로 영어의 몸이 됐다. 이들은 모두 노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부패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청렴위’를 만들어 재벌과 사회단체에 ‘청렴’을 강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재계 인사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참여정부 인사들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세종캐피탈과 상장회사인 H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캐기 위해 검찰이 김형진 전 세종증권 회장을 체포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H사의 주식 308만주(14.7%)를 매수해 2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주가조작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앞서 세종캐피탈과 대부업체 5~6곳을 압수수색해 김 전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이미 확보했었다. 그러나 검찰이 정작 예의주시한 부분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김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의혹이었다.

세종증권은 2006년 1월 농협에 인수됐다. 농협은 세종증권의 지주회사격인 세종캐피탈이 보유한 세종증권 지분 1160만주(47.6%)를 주당 8910원, 총 1039억원에 인수했다. 농협은 이후 세종증권에서 NH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 거액의 비자금과 로비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름을 바꾸면서 주가는 무려 10배 이상이 폭등했고, 김 전 회장은 거액을 챙겼다. 이 무렵 증권가에서는 NH투자증권의 주가가 오른 배경에 참여정부 인사들이 연루됐고 이익금을 배분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해 내부정보를 이용,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농협 회장은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 매각과 관련해 현대·기아차그룹으로부터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2006년 5월 검찰에 구속 기소돼 5년형을 선고받은 정대근씨였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은 물론 참여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인사로 검찰은 참여정부 인사들의 개입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정씨를 소환조사했다.
게다가 검찰은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특혜를 받아 300억이나 할인된 헐값에 매입했다는 혐의를 수사했다. 농협은 2006년 6월 휴켐스 주식 46%를 태광실업에 넘기는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177억원과 127억원씩 금액을 낮췄다. 박연차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으로 부산·경남 지역에서 거물급으로 통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 일가와 경남 김해 같은 마을에 살면서 예전부터 알고 지낸 남다른 인연으로 관심을 모이기 시작한 박 회장은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지역에선 ‘박연차 인생도 고속도로처럼 뻥 뚫렸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살고 있는 봉하마을 부지도 박 회장의 측근이 노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에게 판 땅이다.
휴켐스 주식 헐값 매각 혐의로 박 회장을 수사하던 검찰은 이후 정관계 로비 의혹을 포착,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지휘 아래 이뤄진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가 구속됐다.
대검 중수부는 정 전 회장에게 세종증권 매입을 청탁해주는 대가로 홍기옥 세종캐피탈 대표로부터 정씨 형제와 함께 29억6000여 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노씨를 기소했다.
노씨는 이후 법정에서 정화삼씨 형제의 부탁으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세종증권 인수 청탁을 하고 대가성으로 3억원을 받은 부분과 정원토건 회사 돈으로 차명주식과 부동산을 구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5억여 원의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에 대해서도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이후 박 회장 수사과정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거나 로비를 벌인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일각에선 ‘박연차 게이트’로 시작한 수사가 ‘노무현 게이트’로 마감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참여정부 인사들 가운데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재·서갑원 민주당 의원 등이 구속 및 소환 조사를 받았다. 게다가 노 정부 시절 각각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의전비서관 등을 지낸 이호철씨와 정윤재씨 등 ‘부산파 386’까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노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의 비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노 전 대통령 후원회장이던 이기명씨의 땅을 처음으로 사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 전 대통령 후원자로 이름을 알린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친노 핵심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또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 주변 친환경 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주)봉하에 70억원을 투자한 경위와 자금출처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과 직·간접적 관련 인사들 줄줄이 검찰행
친형·후원자·동기·선배 등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맥

7선 의원 출신이며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도 사정의 칼날을 피해갈 순 없었다. 신 전 총재는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부산지역 후원회장을 맡았고 그 인연으로 전 정권에서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을 지낸 바 있다.
검찰은 지난 1월14일 KTF와 KTF납품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신 전 총재를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이날 검찰은 신 전 총재가 조영주 전 KTF 사장의 인사 문제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아들을 KTF 납품업체에 서류상으로만 취업시켜 놓고 2년간 매달 500만~600만원의 월급을 받게 하는 등 억대의 금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또 신 전 총재가 조 전 사장으로부터 거액의 현금 등을 상납 받은 단서도 확보했으며 KTF 납품업체로부터 법인카드를 제공받아 2년간 수천만원을 사용한 혐의도 포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남중수 전 KT사장은 조 전 KTF사장으로부터 납품업체 선정이나 인사청탁 명목으로 수년간 매달 200만~500만원씩을 차명계좌로 받고 하청업체에서도 현금 수천만원을 받는 등 총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조 전 사장은 납품 업체 대표로부터 납품 청탁과 함께 24억여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각각 구속기소됐다. 이후 지난 2월12일 남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2억7000여 만원을, 조 전 사장은 징역 3년에 추징금 24억여 원을 각각 선고 받았다.
백종헌 프라임 그룹 회장도 400억원대 횡령과 배임 혐의 등 각각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백 회장은 참여정부 실세인 이모씨와 절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프라임그룹도 참여정부 때 동아건설을 인수하는 등 급성장세를 보였다.
백 회장은 지난 2003년 1월 프라임개발의 자금 30억원을 주주·임원·종업원 대여금 명목으로 빼내 자신의 펀드 투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2002년 10월부터 올 4월까지 그룹 계열사 자금 30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6년 동아건설을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뒤 동아건설 자금을 끌어다 인수대금을 갚는 변형된 형태의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동아건설에 4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치는 등 모두 800억여 원을 배임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재 백 회장은 법원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역대 대통령 친인척 비리
정권 교체되면 실체 ‘기지개’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떤 정권도 예외는 없었다. 정권교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곤 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동생 전경환씨가 구속됐다. ‘리틀 전두환’으로 불릴 만큼 실세 중의 실세였던 전씨는 새마을 왕국을 건설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권 핵심부였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본부 공금횡령 사건으로 구속됐다.
처삼촌 이규광씨와 사돈 장영자·이철희씨 부부, 처남 이청석씨 등도 비리를 저질렀다. 노태우 정권에선 고종사촌 처남인 박철언씨가 구속됐다, ‘황태자’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던 박씨는 당대에는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정권의 풍운아 중 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슬롯머신 사건으로 정치인생의 막을 내려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는 차남 현철씨가 재임 중 구속됐다. 현철씨는 정권 말기인 1997년 한보사건으로 정권 핵심인사들과 함께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구속됐다.
각각 조세포탈 혐의와 알선수재 혐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노 전 대통령의 큰형인 건평씨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로비관련 금품수수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마약·연예인 매춘 등 검찰 수사 5차례 받아

현재 불법 정치자금 논란 한 가운데 서 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지난 1990년 큰 파장을 일으켰던 ‘재벌2세 마약·매춘사건’ 당사자 중 한 명이다.
박 회장은 모델, 탤런트 등 여성 연예인 수명과 함께 필로폰을 흡입하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그해 2월 검찰에 수배됐다. 박 회장과 검찰의 첫 악연이다. 당시 잠적했던 박 회장은 같은 달 20일 검거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방탕한 재벌2세’로 낙인찍혔던 박 회장은 사건 이후 ‘건실한 사업가’로 변신, 김영삼 정부 임기 말인 97년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2000년 2월에는 과학기술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다는 취지에서 자신의 호를 딴 ‘정산장학재단’을 만들어 10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베트남에 가장 크게 기여한 한국인’으로 뽑혀 훈장을 받았다.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소유 부동산을 매입한 이후다. 노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박 회장의 셋째 딸이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2004년에는 2002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 정무팀장이었던 안희정 현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7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06년에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의원 20여명에게 300만~500만원씩의 정치자금을 차명으로 후원한 혐의로 벌금 700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술에 취한 채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려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승무원과 기장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비행기 출발을 1시간가량 지연시키는 소란을 피운 혐의다. 부산지법은 지난 5월22일 박 회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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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를 53일 앞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자 일각에선 “장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장 대표가 취임 직후 구상했던 보수 대연합은 이미 무너졌다. 그의 구상은 왜 무너졌을까? 그리고 누가 그다음을 노리고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장 대표는 미국 국제공화연구소의 초청을 받았다. 원래는 지난 14일부터 2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초청 측의 요청으로 3일 앞당겨 출국했다. 누가 뭐래도 앞당긴 출국 장 대표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 DC로 출발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에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6·3 지방선거를 53일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일정을 더 늘린 출국이었다. 그 스스로는 “6·3 지방선거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대한 전선이 될 것”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의 분열과 고통의 시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위기의 대한민국 앞에서 우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지난 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너무 갑작스럽게 비밀스럽게 가셔서 명분을 모르겠다”며 “선거를 코앞에 앞둔 상황에서 공천도 마무리가 안 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금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선거가 어려운 상황에서 뛰어야 하는 후보들이 단 하루라도 낭비하지 않도록 후보를 빨리 결정지어 주는 일”이라며 “그걸 포기하고 미국에 간 것은 이번 선거가 이미 어렵게 된 마당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차라리 다음에 어떤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 지지층 결집을 목적하려고 간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지난 11일 경기 수원 방문 도중 기자들을 만나 “미국에 지방선거 표를 찍어줄 유권자가 있느냐”며 “리더가 이번 지방선거를 포기한 거 아니냐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9일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국제공화연구소의 중요한 목적·역할 중 하나는 각국 부정선거 감시”라며 “장 대표가 그에 대한 기법을 배우고 와서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윤희석 전 대변인도 같은 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보다 못한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국제공화연구소 근무 경력이 있다는 익명의 워싱턴 DC 외교·안보 싱크탱크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개발도상국·후진국의 선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을 감시하는 국제공화연구소를 단순히 부정선거론 연구기관으로 매도하는 것은 상당히 모욕적인 수사”라면서 장 대표를 두둔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8월 당 대표 당선 과정에서 대여 투쟁과 단일 대오를 강조했다. 선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단일 대오로 뭉쳐 제대로 싸우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지금부터 단일 대오에서 이탈해 내부 총질하는 분들과 당론을 계속 어기는 분에 대해서는 결단하겠다”고 주장했다. 선거 앞두고 미국행…일각선 “부정선거론 배우러?” 극복 못 한 모순…당내 한 제외하고 당외 이와 연대? 이후 진행된 것은 한 전 대표·김 전 최고위원 제명과 배 의원 당원권 1년 정지 등 친한계 일원들에 대한 징계였다. 이들 중 배 의원은 법원에 징계 효력 정치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달 인용돼 징계 효력에서 벗어났다. 친한계 구성원들은 다수의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면서 이익과 불이익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원외 인사들도 방송 출연을 통해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이들의 의견을 왕성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장 대표 등 친한계가 아닌 국민의힘 인사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의견을 밝히기 때문에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해 9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 전 대표 대신 선택한 연대 시도 대상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지난 1월엔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공천 헌금 의혹·통일교 게이트 특검법 공동 추진을 합의했다. 지난달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여 투쟁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이 대표와의 연대를 통해 보수 대연합을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다수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조와 연대는 다르다”면서 선거 연대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도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징계를 받고 대표직에서 물러나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을 토대로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반감을 유지하고 있다. 당내 경쟁자와의 투쟁을 위해 불미스럽게 당을 나간 외부 인사와의 연대를 추구하는 그림에 대해선 한동안 “모순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보수 대연합은 당내 갈등을 봉합한 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라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당선 과정에서 구 친윤(친 윤석열)계와 강경 보수 성향 윤 어게인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장 대표의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친한계를 국민의힘에서 내보낸 후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어 강경한 선명 보수 야당을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구 친윤계 중 상당수는 대구·경북·강원 등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통하는 지역 내 유지들과 밀착해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어게인 세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했다. 두 세력에 대해선 “같은 ‘보수’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뿐,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구 친윤계는 언론 노출을 가급적 피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이는 토착 보수 성향을 보인다. 반대로 윤 어게인 세력은 대규모 집회 개최·유튜브 활동 등 강경한 의견을 왕성하게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실패한 연대 이대로 포기? 아울러 구 친윤계는 윤 어게인 세력과 밀착하는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 전원 명의로 발표된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에도 참여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을 이미 지웠다. 반대로 전한길씨 등 윤 어게인 세력은 절윤 선언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장 대표에 대해서도 독한 비난을 이어갔다. 장 대표로선 지난해 당 대표 선거 출마 이후부터 구상했던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는다”는 목표가 어긋난 것으로 보여질 여지가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지방선거 패배와 장 대표 체제 붕괴에 대비해 ‘포스트 장동혁’을 거론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친 후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포스트 장동혁에 도전할 수 있는 인사로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 전 대표 ▲신동욱 수석최고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공천 1차 마감 시한까지 신청하지 않았다. 이어 당의 인적 쇄신·절윤 선언 실천·혁신 선대위 설치 등을 요구하면서 장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오 시장은 추가 공모 기간 내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이때까지도 “서울시장 출마가 아니라 장 대표 체제 붕괴 후 당권에 도전하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아다녔다. 따라서 오 시장의 선거 당락을 떠나 그가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하더라도 당 대표 출마 및 당선 후 겸직을 막을 법적 제한은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4일 전입신고를 하는 등 부산 북갑에서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전재수 의원은 이곳에서 3선을 했고, 현재 부산 내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다. 한 전 대표가 이곳에서 당선돼 민주당의 부산 내 근거지를 소멸하면 국민의힘에 복귀해 다시 당권·대권에 도전할 명분이 붙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지난해 12월부터 “포스트 장동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장 소장은 지난해 12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로는 안 되겠다면서 신 최고위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구 친윤계로서는 오 시장도 구 친윤계와 성향이 다른 수도권 내 보수 성향 엘리트에 속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오랫동안 갈등했던 한 전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는 분석도 돌아다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한동안 서울시장 출마설도 돌았지만,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3인방 행보는? 성향이 전혀 다른 세력을 조율하면서 그 수장으로 군림하는 데에는 ▲전략적 경계 설정 및 수용 ▲고도화된 소통 ▲정치적 영향력 행사 기술 ▲유연한 지도력 등 고난도 정치술이 필요하다. 이 정치술을 갖추고 세력 조율을 시도했던 대표적인 정치인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였다. 효종·현종은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인·남인의 당쟁을 관리했다. 하지만 2대 독자로서 강한 정통성과 고집 센 성격을 가졌던 숙종은 주기적으로 환국을 일으켜 한 세력에 일방적으로 정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왕권을 강화했다. 서인은 학문 방향·남인에 대한 대응 등 논점에서 의견이 엇갈려 노론·소론으로 갈라졌다. 영조가 즉위했을 때는 노론·소론의 당쟁이 극대화됐다. 이 때문에 소론·남인 강경파가 영조를 인정하지 못해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다. 이후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은 노론·소론의 온건파만 조정에 남겨놔 균형을 유지하는 완론 탕평이었다. 이 때문에 종전엔 없던 탕평파라는 당파가 탄생했다. 이들은 영조의 완론 탕평에 협조해 살아남았다. 하지만 탕평파에는 영조의 사도세자 살해를 끝까지 막지 못했다는 정치적 약점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탕평파의 핵심이었던 사도세자의 처가 풍산 홍씨는 세손 정조의 정치 보복을 우려해야 했다. 정조의 즉위를 도왔던 세력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처가 경주 김씨 가문이었다. 결국 영조의 완론 탕평은 유교에서 금기시하는 척신 정치로 나아갔다. 정조는 즉위 초엔 홍인한·정후겸 등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세력의 핵심을 숙청한 후 측근 홍국영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러다가 홍국영이 과도한 권력욕을 드러내자 숙청한 후 영조와 정반대로 준론 탕평을 추진했다. 준론 탕평은 각 당파의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워 당파마다 선명한 당론을 내세우게 한단 것이다. 이는 곧 “영조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각 당파에 스스로 생각하는 의리를 명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체제였다. 그들의 의리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택하는 심판 겸 절대자는 정조 자신이었다. 정조가 홍국영 숙청 이후 선택한 정국 관리 대리인은 소론 강경파 겸 시파였던 서명선이었다. 이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영조 대에 사실상 조정에서 사라졌던 남인을 조정에 편입시키려고 남인 영수 채제공에게 고위직을 부여했다. 아울러 자신의 스승이었던 김종수와 초강경파인 심환지 등 노론 벽파와 정민시 등 노론 시파도 조정에 공존시켰다. 각 당파의 수장들을 골고루 챙겨 자신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경쟁을 시킨 것이었다. 각 당파의 강경파만 엄선해 조정에 공존시켜야 했기 때문에, 정조의 갈등 조정 업무는 매우 많았다. 김종수는 이따금 갈등을 일으켰다. 정조는 매번 적당한 선에서 김종수를 처벌하면서 그 갈등을 무마했다. 정조도 김종수에 대해선 “위험에 직면하면 위험에서 건져주고, 거의 죽게 되면 죽음에서 구원해 줬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하면 주목받을 ‘포스트 장’ 누구? 정조의 준론 탕평 갖가지 비결…누가 갖췄나? 서명선은 공개적으로 “저는 채제공과 의리상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고, 채제공이 역적이 아니면 저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명선은 이인좌의 난 이후 남인에 대한 감정이 격렬해진 소론 일각의 정서를 조정에서 공론화했다. 그런데 막상 서명선은 심환지로부터 탄핵당했다. 서명선이 영의정이 된 것에 심환지가 불만을 품은 것이었다. 그러자 정조는 크게 분노해 김종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다”면서 벽파를 ‘우리 벽패는’이라고 일컫는 등 심환지에게 수많은 밀지를 보냈던 사람은 정조였다. 심환지는 보는 즉시 태워 없애야 하는 밀지를 보관해 후세까지 전하게 했다. 이 밀지 모음이 ‘정조 어찰첩’이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밀지를 보내 정국 관리 구상을 밝히면서 심환지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등 막후에서 ‘정국’이란 거대한 연극의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정조는 세자에게 양위한 후 스스로 정예부대로 육성했던 장용영을 데리고 수원 화성으로 물러앉아 조정을 감독하는 원격 통치를 구상했다. 정조가 정했던 시기는 1804년이었지만, 정조는 1800년 훙서했다. 정조가 구상했던 준론 탕평은 정조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조는 할아버지의 극진한 총애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몰두해 즉위 후엔 스스로 성리학의 정통이자 스승을 자처했다. 이는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을 없애고,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는 초계문신제를 채택한 것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서명선·김종수·정민시 등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면서 사조직 동덕회를 조직할 정도로 측근이었다. 조정 내부엔 정조의 준론 탕평에 동조하는 시파가 있었고, 정조 어찰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벽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조정 외곽엔 영남 남인 1만명이 연명해 정조의 사도세자 복권을 시도하고 정조의 준론 탕평에 호응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친위 무력 기반 장용영도 있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밀지를 주고받으면서 막후에서 정국을 설계하면서 이끄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꿈꾸는 잠룡들 과연 국민의힘은 서로 전혀 다른 구 친윤계·친한계·강경 보수를 모두 조율할 수 있는 수장을 배출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모두의 인정을 받는 월등한 실력과 부지런함을 갖춰야 한다. 장 대표가 지금이라도 이를 소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날지,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