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2> 부패의 덫에 빠진 사람들

뇌물에 ‘죽고’ 뇌물에 ‘살고’


원칙과 도덕성을 강조했던 참여정부의 부정부패가 양파까지듯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큰형인 노건평씨가 구속되고 자신의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나이키 하청생산) 회장이 노 대통령의 큰형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12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여기에 남중수 전 KT 사장도 납품업체 등으로부터 수억원을 상납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조영주 KTF 사장도 뇌물혐의로 영어의 몸이 됐다. 이들은 모두 노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부패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청렴위’를 만들어 재벌과 사회단체에 ‘청렴’을 강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재계 인사들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참여정부 인사들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세종캐피탈과 상장회사인 H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캐기 위해 검찰이 김형진 전 세종증권 회장을 체포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H사의 주식 308만주(14.7%)를 매수해 2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주가조작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앞서 세종캐피탈과 대부업체 5~6곳을 압수수색해 김 전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를 이미 확보했었다. 그러나 검찰이 정작 예의주시한 부분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김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의혹이었다.

세종증권은 2006년 1월 농협에 인수됐다. 농협은 세종증권의 지주회사격인 세종캐피탈이 보유한 세종증권 지분 1160만주(47.6%)를 주당 8910원, 총 1039억원에 인수했다. 농협은 이후 세종증권에서 NH투자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 거액의 비자금과 로비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름을 바꾸면서 주가는 무려 10배 이상이 폭등했고, 김 전 회장은 거액을 챙겼다. 이 무렵 증권가에서는 NH투자증권의 주가가 오른 배경에 참여정부 인사들이 연루됐고 이익금을 배분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해 내부정보를 이용,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농협 회장은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 매각과 관련해 현대·기아차그룹으로부터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2006년 5월 검찰에 구속 기소돼 5년형을 선고받은 정대근씨였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은 물론 참여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인사로 검찰은 참여정부 인사들의 개입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정씨를 소환조사했다.
게다가 검찰은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특혜를 받아 300억이나 할인된 헐값에 매입했다는 혐의를 수사했다. 농협은 2006년 6월 휴켐스 주식 46%를 태광실업에 넘기는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177억원과 127억원씩 금액을 낮췄다. 박연차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으로 부산·경남 지역에서 거물급으로 통한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 일가와 경남 김해 같은 마을에 살면서 예전부터 알고 지낸 남다른 인연으로 관심을 모이기 시작한 박 회장은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지역에선 ‘박연차 인생도 고속도로처럼 뻥 뚫렸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살고 있는 봉하마을 부지도 박 회장의 측근이 노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에게 판 땅이다.
휴켐스 주식 헐값 매각 혐의로 박 회장을 수사하던 검찰은 이후 정관계 로비 의혹을 포착,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지휘 아래 이뤄진 ‘박연차 게이트’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가 구속됐다.
대검 중수부는 정 전 회장에게 세종증권 매입을 청탁해주는 대가로 홍기옥 세종캐피탈 대표로부터 정씨 형제와 함께 29억6000여 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노씨를 기소했다.
노씨는 이후 법정에서 정화삼씨 형제의 부탁으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세종증권 인수 청탁을 하고 대가성으로 3억원을 받은 부분과 정원토건 회사 돈으로 차명주식과 부동산을 구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5억여 원의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에 대해서도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이후 박 회장 수사과정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거나 로비를 벌인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일각에선 ‘박연차 게이트’로 시작한 수사가 ‘노무현 게이트’로 마감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참여정부 인사들 가운데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재·서갑원 민주당 의원 등이 구속 및 소환 조사를 받았다. 게다가 노 정부 시절 각각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의전비서관 등을 지낸 이호철씨와 정윤재씨 등 ‘부산파 386’까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노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의 비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노 전 대통령 후원회장이던 이기명씨의 땅을 처음으로 사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 전 대통령 후원자로 이름을 알린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친노 핵심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또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 주변 친환경 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주)봉하에 70억원을 투자한 경위와 자금출처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과 직·간접적 관련 인사들 줄줄이 검찰행
친형·후원자·동기·선배 등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맥

7선 의원 출신이며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신상우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도 사정의 칼날을 피해갈 순 없었다. 신 전 총재는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부산지역 후원회장을 맡았고 그 인연으로 전 정권에서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을 지낸 바 있다.
검찰은 지난 1월14일 KTF와 KTF납품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신 전 총재를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이날 검찰은 신 전 총재가 조영주 전 KTF 사장의 인사 문제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아들을 KTF 납품업체에 서류상으로만 취업시켜 놓고 2년간 매달 500만~600만원의 월급을 받게 하는 등 억대의 금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또 신 전 총재가 조 전 사장으로부터 거액의 현금 등을 상납 받은 단서도 확보했으며 KTF 납품업체로부터 법인카드를 제공받아 2년간 수천만원을 사용한 혐의도 포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남중수 전 KT사장은 조 전 KTF사장으로부터 납품업체 선정이나 인사청탁 명목으로 수년간 매달 200만~500만원씩을 차명계좌로 받고 하청업체에서도 현금 수천만원을 받는 등 총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조 전 사장은 납품 업체 대표로부터 납품 청탁과 함께 24억여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각각 구속기소됐다. 이후 지난 2월12일 남 전 사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2억7000여 만원을, 조 전 사장은 징역 3년에 추징금 24억여 원을 각각 선고 받았다.
백종헌 프라임 그룹 회장도 400억원대 횡령과 배임 혐의 등 각각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백 회장은 참여정부 실세인 이모씨와 절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프라임그룹도 참여정부 때 동아건설을 인수하는 등 급성장세를 보였다.
백 회장은 지난 2003년 1월 프라임개발의 자금 30억원을 주주·임원·종업원 대여금 명목으로 빼내 자신의 펀드 투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2002년 10월부터 올 4월까지 그룹 계열사 자금 30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6년 동아건설을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뒤 동아건설 자금을 끌어다 인수대금을 갚는 변형된 형태의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동아건설에 4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치는 등 모두 800억여 원을 배임한 혐의도 받고 있다. 현재 백 회장은 법원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어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역대 대통령 친인척 비리
정권 교체되면 실체 ‘기지개’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떤 정권도 예외는 없었다. 정권교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곤 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동생 전경환씨가 구속됐다. ‘리틀 전두환’으로 불릴 만큼 실세 중의 실세였던 전씨는 새마을 왕국을 건설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권 핵심부였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본부 공금횡령 사건으로 구속됐다.
처삼촌 이규광씨와 사돈 장영자·이철희씨 부부, 처남 이청석씨 등도 비리를 저질렀다. 노태우 정권에선 고종사촌 처남인 박철언씨가 구속됐다, ‘황태자’ ‘실세 중의 실세’로 불렸던 박씨는 당대에는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정권의 풍운아 중 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슬롯머신 사건으로 정치인생의 막을 내려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는 차남 현철씨가 재임 중 구속됐다. 현철씨는 정권 말기인 1997년 한보사건으로 정권 핵심인사들과 함께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구속됐다.
각각 조세포탈 혐의와 알선수재 혐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노 전 대통령의 큰형인 건평씨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로비관련 금품수수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마약·연예인 매춘 등 검찰 수사 5차례 받아

현재 불법 정치자금 논란 한 가운데 서 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지난 1990년 큰 파장을 일으켰던 ‘재벌2세 마약·매춘사건’ 당사자 중 한 명이다.
박 회장은 모델, 탤런트 등 여성 연예인 수명과 함께 필로폰을 흡입하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그해 2월 검찰에 수배됐다. 박 회장과 검찰의 첫 악연이다. 당시 잠적했던 박 회장은 같은 달 20일 검거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방탕한 재벌2세’로 낙인찍혔던 박 회장은 사건 이후 ‘건실한 사업가’로 변신, 김영삼 정부 임기 말인 97년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2000년 2월에는 과학기술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다는 취지에서 자신의 호를 딴 ‘정산장학재단’을 만들어 10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베트남에 가장 크게 기여한 한국인’으로 뽑혀 훈장을 받았다.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그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 소유 부동산을 매입한 이후다. 노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박 회장의 셋째 딸이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2004년에는 2002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 정무팀장이었던 안희정 현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7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06년에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의원 20여명에게 300만~500만원씩의 정치자금을 차명으로 후원한 혐의로 벌금 700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술에 취한 채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려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승무원과 기장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비행기 출발을 1시간가량 지연시키는 소란을 피운 혐의다. 부산지법은 지난 5월22일 박 회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