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공화국’의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
‘리스트 공화국’의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
  • 최민이 기자
  • 승인 2009.03.31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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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최민이 편집국장] ‘비리 공화국’ 대한민국에 또다시 대형 ‘리스트’ 두 개가 나돌면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야구전사들이 기회의 땅 나성에서 작은 공과 방망이로 실의에 빠진 온 국민을 즐겁게 해주었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리의 땅 한국에서는 ‘술시중과 성(性)상납’을 강요당했다는 한 여자연예인의 죽음과, 정·관계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친 한 기업 총수의 전횡이 드러나면서 마치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럽다. 고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가 그것이다. 두 개의 리스트 모두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먼저 고 장자연 리스트엔 드라마제작사를 비롯해 방송사 전·현직 PD, 유력 언론사 간부와 사주, 심지어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대기업 오너와 임원들까지 총 10여명이 올라있다. 이들은 고 장자연이 소속사 대표의 강요에 못 이겨 술접대와 성상납을 한 인사들이란 점에서 경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초 리스트의 진위여부를 놓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경찰은 현재 리스트의 실체를 인정하고 거명된 인사들을 상대로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던 차에 터져 나온 또 하나의 리스트는 가히 장자연 리스트를 조족지혈로 만들어버릴 만큼 폭발력이 대단하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금품을 건넨 정·관계 인사 70여명이 망라돼 있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거명된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다.

이미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이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의 칼끝이 서서히 전·현 정권의 심장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구속된 민주당 이광재 의원을 비롯해 친노인사 대부분이 수사선상에 올라있고, 종국에는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태세다.

현 정권 인사들 가운데는 이명박 정부의 야심작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역을 자임했던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이 부분이 이번 박연차 리스트 파동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는 누구나 형식적으로라도 받는 영장실질심사도 포기하고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순순히 오라를 받았다. 살짝 다문 그의 입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현 정권 핵심부로 향하는 칼끝이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자신을 희생양으로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까.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간의 의혹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박 회장의 로비는 “실패한 로비”였고, 그에게서 로비를 받은 이명박 정부 사람들의 행위는 “개인비리”였다는 검찰의 설명에 눈꼬리를 치켜올린다. 로비 주체의 됨됨이와 로비 대상의 면면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권력 상층부의 생리에 훤한” 박 회장이 지난해 6월 청와대를 떠난 추 전 비서관이나 이종찬 전 민정수석에게만 매달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비의 목적이 세무조사 무마와 검찰고발 방지였던 점과, 세무조사 시점이 지난해 7월31일이었던 점을 놓고 볼 때 한낱 ‘날개 꺾인 사람’에게 매달릴 사안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 윗선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사실은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보이고도 남는다.


어디 그뿐인가. 검찰은 로비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진술을 해야 할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미국으로 떠나는 걸 멍하니 지켜만 봤다. 지난 15일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박차를 가하던 그 시점에 한 전 청장이 출국수속을 밟았는데도 검찰은 막지 않았다. 어찌 보면 박 회장보다 더 먼저 불렀어야 할 중요한 용의자를 놓아준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참으로 한심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국민들의 탄식이 하늘을 찌를 정도다. 검찰 진술에서 5000만원을 5000원으로, 1만 달러를 만원으로 칭해 수사관들을 혼란케 한 통큰 회장님의 ‘돈맛’을 못 본 정·관계 인사들은 대한민국 정치인도 관료도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서민들의 가슴을 치게 하는 요즘이다.

그런데도 여야 정치권은 자신들이 더 깨끗하다는 듯 서로를 물고 뜯고 삿대질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히려 돈을 먹은 쪽이 더 시끄럽다.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재보선을 겨냥한 기획수사니 편파수사니’ 외치는 민주당이나, ‘노 전 대통령까지 수사하라’는 한나라당이나, 그 안에서 또 ‘우리를 고사시키려는 술책이다’라고 발뺌하는 친박계나 하나같이 다를 바 없다. 흡사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형국’이니 국민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여기에 또 고 장자연 리스트에 사주가 거명된 모 언론이 박연차 리스트를 띄워 여론을 호도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보태져 ‘똥 묻은 개들의 겨 묻은 개 나무라기’ 혈투는 갈수록 가관으로 치닫고 있다. 가뜩이나 ‘돈가뭄’으로 목마른 서민들은 더러운 견공(犬公)들에게 마른침을 뱉느라 더욱 목이 마른 지경이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sisabo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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