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돈’ ‘권력’ 그리고 ‘꽃보다 고 장자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연일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단순히 한 여자연예인의 자살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충격적인 뒷 얘기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보다 고 장자연.’ 그녀는 모 방송사의 인기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써니 역할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중 갑자기 자살해 충격파를 던졌다. 드라마가 인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배역이 그리 비중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유행어와 신조어를 남기며 화제를 모으고 있던 인기 드라마였기에 그녀의 자살에는 처음부터 갖가지 의혹이 봇물처럼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맡은 경찰은 그녀의 죽음을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라고 결론 내리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다.

몇 년 전 배우 이은주와 가수 유니, 탤런트 정다빈이 자살했을 때도 그랬고, 지난해 국민배우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그랬다. 유독 여자연예인이 자살을 하면 ‘우울증에 의한 것’으로 단정짓기 일쑤였다.

자살의 원인은커녕 우울증의 본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때마다 사건은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연적으로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나 전 매니저에 의해 유서로 보이는 문건이 공개되면서 장자연 자살 사건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남들보다 늦깎이로 연예계에서 빛을 보게 됐고, 더구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맡은 역을 무난히 소화해내고 있던 그녀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이 문건에 여실히 적시돼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문건의 작성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여론이 비등하더니 나중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고인의 필적이 분명하다는 감정 결과가 나오자 이번엔 문건을 공개한 의도가 무엇이냐에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거두절미하고 그녀가 자필문서에서 밝힌 ‘술시중을 강요했다’ ‘잠자리를 요구했다’는 등의 충격적인 내용들은 사실 연예계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반상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기를 먹고사는 여자연예인들을 ‘스폰서’라는 미명하에 밀실로 불러내 술시중을 강요하고 심지어 성(性)상납까지 요구했다는 사실은 지금껏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장자연의 죽음을 계기로 연예인 스폰서에 대한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이다. 보고 또 봐도 눈을 의심케 하는 명단에는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인사들도 여럿 올라있다. 차라리 가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정도다.

드라마제작사 전·현직 PD와 유력 언론사의 사주, 그리고 재계 인사들의 실명까지 올라와 있으니 말이다.

사실확인이 전무한 상태지만 ‘현재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 지 이틀 만에 명단 존재 자체를 번복했다가 다시 조사하고 있다는 경찰이 차라리 지나칠 법한 황당한 리스트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있다.

지금 여론은 그들을 만천하에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경찰은 확실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관건은 명단을 공개하고 안 하고가 아니다. 명단을 공개한다고 해서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앞서 그릇된 사회적 관행과 악습을 뿌리뽑고 두 번 다시 이 땅에 고인과 같은 희생양이 나오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그것이 제대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한 꽃다운 연예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다.

그간 애써 눈을 돌렸던 정부는 이제서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제동에 나서기로 해 그나마 다행스런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8일 연예매니지먼트업 등록제 등을 정부입법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자율에 입각해 창조적 문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향락과 사치에 젖어 결국 자멸의 길로 빠져드는 것을 통제하겠다는 얘기다.

인간의 추악한 속성이 연예계의 이면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고 하면 할 말이 없겠으나, 무조건 ‘돈’과 ‘권력’ 그리고 ‘육체적 쾌락’에 눈이 멀어 정상적인 틀을 바꿔버린 일부 때문에 순수한 동기로 젊음을 바쳐온 연예지망생까지 그것에 물들여졌다면 가해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제 공은 경찰로 넘겨졌다. 시중에 떠돌던 리스트에 대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던 경찰이 리스트의 실체를 인정한 만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인륜적 사회악을 저지른 인사들을 낱낱이 조사해 ‘법대로’ 단죄해야 마땅하다. 그것만이 원칙이 통하고 정의가 바로 서는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임을 주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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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