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들 본격 '호텔 전성시대' 내막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2.06 11: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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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좀 된다 싶으니 너도 나도 '러쉬'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호텔들이 물밑들 밀려들고 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맞이했고 재벌가들은 앞 다퉈 호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주유소 부지까지 밀면서 호텔을 여는 것을 고려중이라니 말 다했다. 가히 호텔 전성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아주그룹이 서울 마포 서교동에 있는 '호텔서교' 신축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아주그룹은 최근 서울 마포구청에 호텔 신축을 위한 지구단위계획 변경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아주그룹은 현재 최대 500% 이내인 건물 용적률을 최대 900%까지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경 신청이 통과되면 아주그룹은 현재 지하 2층~지상 13층에 135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호텔서교를 지하 5층~ 지상 22층에 378개 객실을 가진 대규모 호텔로 건설할 계획이다.

아주그룹 호텔 운영
신라·롯데 어깨 견줄 듯

새 호텔이 신축되면 아주그룹은 제주에 이어 서울에서도 특1급 호텔을 운영하게 돼 신라호텔과 롯데호텔 등 국내 유명 호텔체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전망이다.


아주그룹은 지난 2000년 365억원을 투입해 특1급 호텔인 하얏트리젠시 제주를 사들인 바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호텔은 4년 안에 전국 각지에 2200실 규모의 프리미엄 비즈니스호텔을 신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까지는 국내외 40곳으로 늘린다는 게 롯데호텔의 입장이다.

비즈니스호텔은 객실 크기와 서비스, 식당·연회장 등 부대시설을 최소화해 특급호텔 대비 가격을 30% 이상 낮춘 호텔을 말한다.

롯데호텔은 2014년 2월 제주시에 262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 개관을 시작으로 같은 해 3월 대전시 유성구 스마트시티, 6월 서울 구로구, 10월 울산시 달동에 비즈니스호텔을 차례로 오픈할 계획이다.

롯데호텔은 계열사인 롯데자산개발이 매입한 을지로 장교동 시그니쳐타워 인근 호텔부지와 세종호텔 인근 주차타워에 각각 270실, 430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을 열기 위해 장기 임차계약을 맺기도 했다.

또한 인천 송도 국제업무지구에도 300실 규모의 호텔 운영을 계획해 4년 안에 롯데호텔계열 비즈니스호텔이 7곳 더 생기게 된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 사업확대·신규진출
롯데·삼성·SK·GS…잇달아 대형 프로젝트 선언


이에 앞서 2009년 마포에서 선보인 '롯데시티호텔마포'는 오픈 3년 만에 연간 객실 판매율 90%를 돌파하며 성공적 입지를 굳혔고 지난해 김포국제공항 롯데복합쇼핑몰에 문을 연 롯데시티호텔 2호점 '롯데시티호텔김포공항'도 비즈니스호텔 업계를 이끌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인 호텔신라는 최근 '신라스테이'라는 브랜드로 KT자산운용이 개발하는 역삼동 KT영동지사 부지, 서대문구 미근동 옛 화양극장 부지, 구로디지털단지 인근 옛 JW중외제약 부지 등 총 5곳을 선보일 계획이다.

KT영동지사 부지는 KT가 발주한 14층짜리 비즈니스호텔로, 코오롱글로벌이 공사를 맡고 완공 후에는 호텔신라가 신라스테이 간판을 달고 위탁경영을 하게 된다.

또 다른 계열사인 삼성화재는 지난 9월 서울 관훈동 보유 부지를 비즈니스호텔을 포함한 복합시설로 개발한다는 내용의 개발계획서를 관할 구청에 제출했다. 이곳 역시 호텔신라가 위탁운영을 맡은 가능성이 크다.

GS그룹 계열 호텔 전문회사인 파르나스호텔(옛 한무개발)은 서울 명동에 첫 번째 비즈니스호텔을 연다. 파르나스호텔은 서울 삼성동에 있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파르나스호텔은 서울 명동 세종호텔 인근 삼윤빌딩을 리모델링한 비즈니스호텔 '나인트리 명동'을 12월1일 개장한다고 발표했다.

주유소 밀고 호텔
외연 확장 집중

나인트리호텔 명동은 총 144개 객실을 갖추고 외국인 관광객의 수요가 많은 점을 감안해 전 직원이 일본어 사용을 하고, 중국어와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도 상시 배치된다.

한진그룹의 숙원사업인 7성급 호텔 신축도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관광호텔 건립·증축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학교반경 200m 이내에는 관광호텔을 신·증축할 수 없지만 정부가 마련한 개선안은 카지노와 유흥주점이 없는 관광호텔은 학교 인근에도 지을 수 있게 했다. 대한항공이 확보한 7성급 한옥형 고급호텔 부지 인근에는 3개 여자 중·고교가 있다.

만약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진그룹의 호텔 건축 프로젝트는 사실상 순풍을 타게 된다.

워커힐을 운영 중인 SK네트웍스는 영업이 부진한 SK주요소 부지를 이용, 비즈니스호텔로 전환할 계획이다. SK네트워스는 현재 특1급 호텔인 쉐라톤그랜드 워커힐과 W서울워커힐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는 서울시 중구 오장동 SK수도주유소 부지에 비즈니스호텔을 새로 지어 자산 효율화에 나선 다는 것. 실제로 SK네트웍스는 지난 2005년 서울 여의도 주유소 용지를 36층 규모 오피스텔로 개발해 300억원 가량 수익을 낸 바 있다.


업황 부진 건설사
호텔로 반전 도모

애경그룹 계열의 수원애경역사는 수원역과 AK플라자 수원점 옆 부지에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가칭)을 2014년 7월 오픈할 예정이다. 노보텔 앰버서더 수원은 지하 3층~지상 9층 규모로 총 295실의 객실을 갖춘 특2급 호텔로 신축되며 호텔 운영은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가 담당한다.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는 프랑스 호텔그룹 아코르사와 국내 호텔그룹 앰배서더가 공동출자한 호텔운영전문 그룹이다. 아코르는 전 세계 92개국에 4426개의 호텔을 운영 중인 세계적 그룹이다.

애경그룹은 민자 역사로 개발하는 경의선 홍대복합역사에도 비즈니스호텔을 건립할 계획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6월 서울 6성급 호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하 반얀트리)을 인수했다. 현대그룹은 지난 1월16일 반얀트리 인수를 위한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후 5개월여에 걸친 실사를 마무리 짓고 최종 인수계약을 했다. 인수 가격은 1635억이다.

반얀트리는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옛 타워호텔을 부동산 개발업체 어반오아시스가 2007년 인수해 새로 단장한 호텔이다.

현대차그룹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해비치호텔을, 현대중공업은 경주·울산·목포·강릉·블라디보스토크에서 현대호텔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계열 웨스턴조선호텔은 쌍용건설이 서울 동자동에 건립 중인 용산 쌍용플래티넘 콤플렉스 내 359실 규모의 중저가 비즈니스호텔에 뛰어든다.

오는 2014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이 빌딩은 오피스텔 한 동과 호텔·오피스 복합빌딩 한 동으로 구성, 쌍용건설은 호텔부문을 떼어내 900억원 안팎에 맥쿼리자산운용에 매각하기로 했다. 맥쿼리 측은 20년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호텔 운영을 조선호텔에 맡기기로 했다.

오픈 시기나 구체적인 운영 방침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하루 숙박료 10만∼20만 가량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보유 부지 활용…비즈니스호텔 '붐'
건설사·외국체인·중소기업도 관심 '업'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건설사들도 호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파크하얏트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내년 2월18일 개관 예정인 파크하얏트부산의 오너이기도 하다. 파크하얏트부산은 해운대 마린시티에 위치해 있고 69개의 스위트를 포함한 269개의 객실을 선보일 예정이다.

KT의 부동산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는 서울 역삼동 영동전화국 옆 주차장 터에 300실 규모 호텔을 짓고 있다. 전국 전화국 자리를 호텔로 재개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산업도 오랫동안 제주에서 관광호텔을 운영해온 자회사 오라관광을 앞세워 비즈니스호텔사업에 진출했다. 이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플랜트사업본부 사옥을 240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로 재단장 중이다. 이와 함께 서울 중구 장교동 부지와 을지로 인근 부지를 임대해 각각 540실, 200실 규모의 호텔 건립도 검토 중이다.

호텔이 완공되면 운영은 자회사인 오라관광이 맡거나 위탁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오라관광은 자본금 500억에 대림산업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로 제주도에서 '제주그랜드호텔'과 골프장 '오라컨트리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부영그룹도 최근 1700억규모의 중구 소공동 옛 삼환기업 부지를 매입해 비즈니스호텔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무주리조트와 제주 앵커호텔을 인수했다.

외국계 호텔 체인과 중소기업도 관심이 뜨겁다.

일본계 중저가 호텔 체인 도요코인과 도미인은 부산 등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일본 롱스테이 재단 한국지부 코비즈는 부산 해운대에 저가 체류형 시설인 '롱스테이텔' 건립에 본격 착수했다.

하나투어는 최근 서울 인사동 서울아트센터 맞은편에 특2급 호텔인 '센터마크'를 오픈했다. 또 다른 여행업체인 모두투어도 센터마크 호텔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견지동에 '아벤트리 종로 관광호텔'을 지난 9월 열고 운영 중이다.

여행 업체도 뛰어든
비즈니스호텔 사업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이비스 앰배서더 명동 등 11개 호텔을 운영 중인 앰배서더호텔 그룹은 이비스 앰배서더 인사동, 이비스 앰배서더 오창, 노보텔 앰버서더 성북,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 등을 차례로 열기로 했다. 2015년까지 총 20곳을 운영할 계획이다.

임페리얼팰리스그룹도 국내외 5곳의 신규 호텔을 낼 방침이다. 호텔프리마도 북창동에 약 100실 가량의 호텔을 짓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호텔 업체수는 644개, 객실수는 7만763개에 이른다. 이중 수도권 호텔 수요는 3만6000여 실, 공급량은 2만8000여 실에 그쳤다. 한국관광공사는 3년간 3만1000개의 객실이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재벌가들이 호텔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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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