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앉는 노숙자들이 늘고 있다. 증가하는 노숙자의 수만큼이나 느는 것이 노숙자 범죄. 서울역, 영등포역 등 노숙자들의 메카로 알려진 곳에 가면 대낮부터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는 노숙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자리다툼을 하던 노숙자가 동료 노숙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8년 전에도 아버지를 살해해 보호관찰 중이던 이 노숙자는 ‘다른 자리로 가라’는 고참 노숙자의 말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 침체일로를 걷는 경기와 따뜻한 봄바람은 더 많은 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어 더 많은 노숙자범죄가 예고되고 있다.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한 노숙자들의 자리전쟁은 매일 밤 반복된다. 조금이나마 바람을 피할 수 있고 사람들의 눈에 안 띄는 한적한 장소가 이들에겐 어떤 땅보다 비싼 명당인 셈이다.
이 자리싸움은 노숙자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법. 특히 요즘처럼 신참 노숙자들이 쏟아져 나올 때는 터줏대감들이 부리는 텃세까지 더해져 밤거리가 더 험악해지고 있다.
이 같은 노숙자들의 사활을 건 자리싸움이 결국 살인사건까지 불렀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여행객과 노숙자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서울지하철 고속터미널역. 범인은 조모(62)씨.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0시20분경 노숙자 박모(35)씨와 자리다툼을 벌였다. 노숙생활 10년차인 박씨는 사건이 발생한 곳에도 8개월 동안 지내왔던 터줏대감이었고 조씨는 불과 열흘도 안 된 신참이었다.
그런 조씨가 좋은 자리를 잡으려 하자 이를 보던 박씨가 ‘여기는 내 자리니까 딴 자리로 가라’고 말을 하며 시비를 붙였던 것. 조씨는 경찰에서 “박씨가 자신의 자리에서 나가라며 반말을 퍼붓고 계속 쫓아다니면서 욕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박씨에게 욕설을 들은 조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흉기로 박씨의 복부와 이마 등을 찔렀다. 갑작스런 습격을 받고 피를 흘리던 박씨는 시민의 신고로 인근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과다출혈로 결국 숨지고 말았다.
범행 이후 도망쳤던 조씨가 경찰에 잡힌 것은 범행 이틀 후인 지난 1일 서울역 승강장에서였다. 경찰은 다른 노숙자들의 도움으로 조씨의 용모를 파악한 뒤 사건현장 부근에 있는 CCTV화면에 찍힌 그의 모습을 확보해 노숙자들이 많은 서울역 등을 탐문해 검거했다.
경찰 조사결과 조씨는 범행을 위해 미리 흉기를 품고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 전 서울 종로 지하철역에서 침낭을 도둑맞은 조씨는 범인을 잡으면 앙갚음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노점에서 2000원을 주고 흉기를 구입해 가슴에 품고 다녔던 것. 이 흉기가 결국 엉뚱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또 하나 드러난 것은 조씨의 살인행각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2001년 1월 자신의 사생활을 간섭한다는 이유로 홧김에 부친을 흉기로 살해한 전과가 있었다. 당시 조씨는 정신이상자로 판정받고 의정부교도소와 안양교도소 등을 거쳐 2002년부터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5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동료 노숙자와 자리 두고 다투다 흉기로 살해
노숙자 증가… 살인 등 범죄도 함께 늘어 불안한 거리
그리고 2007년 11월 “증상이 호전돼 외부에서 재활을 해도 괜찮다”는 판정을 받고 출소했다. 조씨는 2010년까지 법무부 보호관찰을 받기로 돼 있었다.
보호관찰 대상자는 일정한 곳에 살며 담당공무원의 정기적인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조씨는 감시의 눈을 피해 길거리로 나와 노숙생활을 했고 결국 살인사건을 일으킨 것.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2일 조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노숙자범죄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난으로 노숙자들이 늘면서 사망사건 또한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는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노숙자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월27일 낮 12시30분 경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3층 대합실에서 노숙자 김모(51)씨가 동료인 이모(41)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시비가 벌어져 김씨가 이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경찰조사결과 이날 두 명이 술을 마시던 중 김씨가 이씨에게 “빌린 64만원을 갚으라”고 요구했으나 이씨가 “돈이 없다. 마음대로 하라”며 대합실 바닥에 누웠고 이 모습을 본 김씨가 격분해 이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에는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정모(39)씨가 동료 노숙자 한모(45)씨가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하는데 격분해 흉기로 마구 찔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정씨는 이 범죄로 인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제12형사부는 “피고인은 과거 10여 년간 장기 수형생활을 통해 충분한 교정교육을 받았음에도 가석방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장차 교정으로 인한 성행개선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흉포한 노숙자 범죄가 끊이지 않고 벌어지면서 우려의 시선을 받는 이들은 여자 노숙자들이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데다 술에 취한 노숙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성범죄의 위험에도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탓이다.
실제로 늦은 밤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여자노숙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먹다짐을 벌이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같은 싸움에 휘말려 봉변을 당할 위험성까지 가지고 있어 여자 노숙자들은 늘 위태위태할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 처리하던 대학생 자살<왜>
등록금 낼 돈 다 써버려서…
새 학기 등록을 앞둔 대학생이 방세와 생활비 등 금전문제를 고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4일, 강원 원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11시45분경 원주시 모 대학 학생회관 3층 화장실에서 이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J(26)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대학원생 엄모(24)씨가 발견했다.
숨진 J씨의 옷주머니에서는 “타인과 이 사회가 원망스럽다”는 내용의 A4용지 반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 조사결과 새 학기 등록을 준비 중이던 J씨는 부모로부터 받은 방세 등 생활비를 지난달 6일 자신이 낸 교통사고 보상 처리에 충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