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집단돌연사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탓이다. 지난달 21일 대전공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 임모(45)씨가 경남 진주의 한 병원에서 숨진 것. 5번째 죽음이다. 지난해에만 4명이 사망했다. 한국타이어 안팎에선 ‘한국타이어가 근로자들의 살아있는 무덤으로 전락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현재 한국타이어는 임씨 사인에 대해 “작업환경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패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임씨는 수많은 독극물에 피폭돼 있었고 잠복기 10년을 거쳐 마수가 뻗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한국타이어와 대책위가 사인을 두고 대립각을 세움에 따라 과학적 원인규명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국타이어에 ‘죽음의 그림자’가 또다시 등장한 것은 지난달 21일이다. 이날 오전 10시께 경남 진주의 한 병원에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 임씨가 뇌종양으로 숨졌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임씨는 지난 1994년 4월 한국타이어 가류과 GTC(타이어 모형을 가열하는 과정)에 입사해 3년간 일했다. 이후 1997년 한국타이어 창원 물류공장으로 옮겨 근무하다 1999년 11월 퇴직했다. 그러다가 2007년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다.
지난해 6월에는 인하대학병원 임종한 교수의 진단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으며 현재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해 역학 조사 중 사망했다. 숨진 임씨는 당시 산재신청서에서 “가류과는 항상 뿌옇게 화학약품이 뒤덮여 있었고 냄새가 역했으며 숨쉬기 곤란한 정도여서 늘 두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려 진통제를 먹으며 작업했다”고 진술했다.
대책위는 “임씨 사인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작업환경의 초미세 먼지가 원인으로 보인다”며 “지난 1994년부터 1997년까지 가류과에 근무하며 수많은 독극물에 피폭돼 있었고 잠복기 10년을 거쳐 마수가 뻗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타이어는 임씨 사망이 공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국타이어 한 관계자는 “이번에 돌아가신 분은 퇴직한 지 10년이 넘었고 관련 부서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일축하며 답변에 대한 말을 아꼈다.
하지만 대책위는 한국타이어측의 이 같은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실례로 지난 1월29일 한국타이어 대구지점에 근무하던 배모(남·42세)씨가 출근해 주차를 하던 중 마비를 일으키며 쓰러진 사례를 꼽았다.
배씨는 이후 대구의료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영남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1차 마비가 왔고, 뇌혈관도 1㎝가 막히는 등 뇌병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지난 1993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가류과 수리장에 입사, 1995년까지 근무한 이후 지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대책위는 이에 “한국타이어는 죽음의 공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무덤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며 “지난해 2월 발표된 역학조사 최종 결과는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총체적 부실과 잘못된 결론이란 사실이 명확해졌다”며 재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실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금산공장, 중앙연구소 등에서는 지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93명이 사망했다. 이는 연평균 7.75명으로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56명(퇴직 후 25명), 자살도 6명(퇴직 후 2명)에 이른다. 사망자 93명 중 30명은 종양으로, 18명은 순환기 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대책위 한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한국타이어와 관련 언제 사망에 이를지 모르는 암을 비롯한 각종 중증질환자 69명, 사망자 21명이 추가로 확인됐다”면서 “이에 따라 사망자는 현재 114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뇌종양 투병 2년 만에 숨진 임씨 산재신청서에 ‘냄새 역하고 호흡곤란’
한국타이어 “평균 사망률보다 낮아…작업환경 원인이란 건 어폐 있어”
대책위는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하며 지난달 24일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추미애 의원과 각 간사의원, 한나라당, 민주당 등 12곳의 국회관련 의원실에 ▲한국타이어 노동자 임씨의 사망 사건 ▲한국타이어 집단사망사건 ▲현장질환노동자 긴급구제 및 근원적 해결을 위한 진상조사를 공식적으로 긴급 요청한 상태다.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세먼지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인정되지만 과학적으로 나오지 않는 부분이 안타깝다”며 “관심을 갖고 있으며 관계부처에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집단사망과 관련해 조사를 벌였던 대전지방노동청 관계자도 “당시 추가적으로 연구할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한편 한국타이어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평균 사망률과 비교했을 때 한국타이어 근로자의 사망 수치가 낮은 만큼 작업환경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어폐가 있다”면서 “산업안전공단 등에서 역학조사를 받아 지난해 2월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회사는 책임이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