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도우미가 단속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음악산업진흥법(이하 ‘음산법’)이 시행된 이후 전국적으로 강한 단속의 파도가 몰아쳤고 더 이상 ‘법적 규정이 없어 단속을 못한다’는 말은 나오지 못하게 됐다. 비록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는 은밀하게 영업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경찰이 단속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만큼은 확실하게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노래방(노래연습장)이 아닌 일반 유흥주점에서는 여전히 도우미의 고용이 가능하다. 단속을 비웃는 ‘노래밤’으로 대표되는 일반 유흥주점의 변태 영업을 취재했다.
문제는 이들 유흥주점이 ‘노래밤’, ‘노래장’이라는 간판을 내건다는 데 있다. 노래방에서 일을 하지 못하던 도우미들은 대거 노래밤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노래밤의 입장에선 여러 가지로 장점이다. 아가씨들의 수급에도 더 이상 문제가 없고, 손님들도 이제 노래방 보다는 노래밤 또는 노래장으로 몰려온다.
이곳은 가격이 노래방보다 비싸기는 하지만 인테리어가 훨씬 뛰어나고 언제든 아가씨를 불러도 합법적이기 때문에 남성들도 선호하는 편이다. 노래밤은 오히려 ‘쾌재’를 부르고 있는 셈이다.
합법 위장(?)한
유흥의 장소
한때 ‘노래방’을 즐겨 찾았다는 김모(42)씨.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늘 노래방에서 아가씨들을 불러 술을 마시곤 했다. 룸살롱과 같이 비싼 곳을 가지 않아도 저렴한 가격과 ‘술과 여자’를 해결할 수 있으니 그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유흥의 장소였던 셈이다.
노래방보다 비싸도 아가씨 호출 합법에 남성들 선호
유흥주점으로 분류…도우미 고용은 완전히 ‘합법적’
도우미들 ‘합법적 일터’란 인식 팽배해 속속 ‘노래밤’ 입문
노팬티 노브라로 부비부비…일부 업소 유사성행위 권유도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노래방에 가지 않는다. 노래방 도우미를 단속한다는 뉴스를 접한 뒤부터 괜히 찜찜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술과 여자’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새롭게 발길을 돌린 곳은 ‘노래밤’이나 ‘노래장’과 같은 업소다.
그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시스템은 거의 비슷하지만 술을 마시고 여자를 부르는 것이 완전히 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노래밤 업주는 김씨에게 ‘법적 지식’을 충분히 설명해주었고 이는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김씨는 “처음에는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것이었다. 다만 이곳에서 나오는 비용이 예전의 노래방보다는 조금 더 비싸기는 했지만 ‘불법’이 ‘합법’이 되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룸살롱보다는 훨씬 싸지 않은가. 마음 편하게 도우미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노래밤 업주가 김씨에게 전해주었던 그 ‘법적 지식’이란 무엇일까. 그러니까 뉴스에서 나왔던 ‘노래방 도우미 처벌’은 음산법에 의거한 것이다. 음산법은 문광부에서 제정했고 이는 노래방에 한정되는 법률이었던 셈이다.
반면 유흥주점이나 단란주점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식품위생법에 따라 관리를 한다. 물론 유흥주점에선 접대부 여직원을 고용할 수가 있다. 결국 ‘노래밤’과 같은 업소는 문광부의 관리를 받는 곳이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관리를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름을 유사하게 지은 것은 업주들의 소위 ‘얄팍한 잔머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노래밤과 같은 업소에서 접대 도우미의 고용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닌 완전히 합법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가격을 정하는 것은 업주들의 마음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딱히 뭐라고 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업주들은 가격은 기존의 노래방보다 약간 더 비싸게 하고 노래방과 같은 시스템을 운영함에 따라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법적인 것이야 어찌됐던 손님들의 입장에서도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고 여자도 부를 수 있으니 이제 노래방에 갈 필요는 전혀 없다. 불법 업소와 합법 업소가 공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굳이 불법 업소를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많은 손님들이 ‘노래밤’으로 몰리고 있어 업주들은 오히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 노래밤 업주는 “차라리 노래방 도우미 단속이 우리에게는 플러스 요인이 됐다. 아가씨들 구하기도 훨씬 쉬워지고 손님도 전보다 늘고 있다”면서 “매출이 느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기존의 노래방 업주들도 유흥주점으로 업종 변경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도우미의 입장에서도 현재의 법적 시행은 ‘일거양득’이다. 굳이 단속이 있는 노래방으로 일을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노래밤으로 가게 되면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팁도 약간 더 올라가 생계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일부 지역에서는 노래밤에서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해 보건증을 발급받는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물론 노래방에서 일할 때는 보건증이 필요 없었지만 ‘유흥주점’에서 일을 하기 위해선 보건증이 필요하다. 그간 전국적으로 ‘노래방 도우미’로 일했던 여성은 5만~6만명으로 추산되어 왔다. 그녀들이 일거에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그녀들이 찾아낸 탈출구 역시 노래밤과 같은 일반 유흥업소였다.
유흥주점 도우미로 일하는 L양은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물론 때로 유흥업소에 고정 도우미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예전에 보도방을 통해 노래방으로 나가던 것이나 고정 도우미로 일하는 것이나 큰 차이는 없다”고 전했다.
업주의 얄팍한 잔머리로
노래밤 마니아 급증
L양은 이어 “나이가 들었다고 이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노래방에서 많은 가정주부들이 도우미로 나선 바 있고 손님들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굳이 ‘아가씨’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런 사람들은 이미 룸살롱으로 가기 때문에 불만을 가진 남성들도 별로 없다. 결국 우리에게는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도대체 노래방 도우미 단속 같은 것을 왜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래방과 노래밤 등의 유흥주점을 헷갈리게 하는 ‘잔머리’들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업소에선 ‘술마시는 노래방, 도우미 항시 대기’ 등의 문구를 쓰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홍보나 간판에 쓰여질 뿐 실제 이곳은 노래방류의 노래연습장이 아니고 일반적인 유흥주점일 뿐이다.
그래도 사람들의 인식에는 ‘노래방’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이런 간판으로 손님들을 혼동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당연히 이곳이 ‘술도 마실 수 있고 도우미도 있는 노래방’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좀 더
변태적으로…
이런 유흥주점 등에선 과거보다 더욱 퇴폐적인 서비스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증언이다. 웬만한 북창동의 서비스는 ‘저리 가라’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선 북창동처럼 ‘인사-계곡주-전투’로 이어지는 정형화된 시스템은 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없기 때문에 손님이 더욱 자유롭게 자신이 노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알몸’으로 벗고 노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가씨와 흥정만 된다면 즉석 섹스도 충분히 가능하다. 아예 대낮 영업을 하는 유흥주점도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즉석 섹스’를 메인 콘셉트로 하는 업소마저 생기고 있을 정도다.
친구의 권유로 이곳을 찾았다는 K(35·회사원)씨는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자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낮에 시간이 있는 친구들이 많다”면서 “한 친구의 제안으로 3명 정도가 유흥주점으로 가게 됐는데 정말이지 그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이어 “이제는 아예 룸에 들어올 때부터 속옷은 입지도 않고 온다. 노팬티에 노브라로 들어와 신나게 놀았다”며 “결국 그것은 즉석 섹스를 노골적으로 부추긴다는 얘기가 아닌가. 상당히 놀라기는 했지만 어쨌든 즐기러 간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서비스였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일부 업소에선 또 이렇게 노골적인 성관계보다는 오히려 ‘유사성행위’를 권하는 곳도 있다. 기존의 ‘대딸방+유흥주점’의 새로운 콘셉트라고 보면 된다. 이런 업소들은 기존의 대딸방 마니아들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대딸방만 가지고는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술과 유흥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흥주점의 이런 운영행태와 경찰의 방치를 두고 가장 많은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은 기존의 노래방 업주들이다.
‘술·여자·노래’ 무장에
기존 노래방 폐업중
노래방 업주 P씨는 “이런 식의 눈가리고 아웅이 계속해서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누구는 유흥주점으로 간판을 못 갈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아는가. 그래도 최소한 자식 눈 부끄럽지는 않으려고 그런 식의 영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정부는 우리에게 오히려 유흥주점을 권고하는 꼴 아닌가. 건전한 노래방을 하고 싶어도 그렇게 유흥주점에서 물을 흐려놓으면 더 이상 노래방이 설 곳은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노래방 업주 R씨는 “끊임없이 헌법소원을 하고 있고 이런 불합리한 것을 고쳐나가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떤 음모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R씨는 이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비상식적인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라며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전부 이해력이 떨어지는 바보들인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기존의 노래방들은 연일 폐업을 신고하고 있으며 갈수록 줄어드는 손님들 때문에 뭔가 특단의 대책이라고 취해야할 판이라고 한다.
그러나 ‘술과 여자와 노래’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기존의 유흥주점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다. 향후 특정한 법 개정이 없는 이상 이 같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구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