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건설사 M&A 잔혹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0.15 11: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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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씹어야 장수…급하게 먹으면 탈난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극동건설이 무너졌다. 웅진그룹도 나락에 빠졌다. 또 한번 건설사 M&A 잔혹사가 그려졌다. 워크아웃과 법정관리가 줄줄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LIG그룹, 효성그룹, 대한전선과 프라임그룹 등은 인수한 건설사를 토해내거나 그룹 자체가 휘청거리는 뒤탈을 겪고 있다.

극동건설이 지난달 25일 150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하면서 법정관리행이 결정됐다.

웅진그룹은 2007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시장 예측가격의 2배인 6600억원을 주고 극동건설을 사들였지만 건설업 불황으로 재무 구조가 악화됐다. 그룹 총수가 사재 출연을 하고 핵심계열사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하는 강수를 뒀지만 극동건설은 단 하루도 유동성 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극동건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우발 채무만도 3000억원에 육박한다. 극동건설은 지난해에만 2162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극동건설 법정관리
그룹 붕괴 후폭풍

이에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그룹 성장동력으로 지정한 태양광 사업 계열사인 웅진 폴리실리콘을 추가로 매각해 유동성 위기를 면하려 했지만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여기에 최대 주주로서 1조839억원 상당의 연대보증 부담을 진 웅진홀딩스도 함께 법정관리 신청을 했다. 극동건설 하나에 웅진그룹 전체가 붕괴 위기에 직면한 모양새다.

2006년 6월 대우건설을 M&A한 금호사이아나그룹, 같은해 11월 건영을 매입한 LIG그룹, 2008년 초 진흥기업을 사들인 효성그룹, 비슷한 시기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 동아건설을 인수한 프라임그룹 등도 웅진그룹과 비슷한 악재를 겪고 있다.


대우건설은 2005년 말 기준 자산규모 3조원, 순이익 3300억원의 우량기업이었다. 이런 대우건설 인수전에 금호아시아나, 두산, 유진, 삼환, 프라임산업 등이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중 금호아시아나는 금호산업과 금호석유, 아시아나항공 등 계열사를 모두 끌어들였고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인수자금이 발목을 잡았다. 총 인수자금 6조4000억원 중 금호아시아나가 계열사 현금에다 보유자산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은 2조9000억원이었다. 나머지 3조5000억원은 산업은행 등 18개 금융기관에게 2009년 말 대우건설 주가가 3만2000원을 밑돌 경우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사주기로 하는 풋백옵션을 약속하면서 차입했다.

2009년 말 당시 대우건설 주가는 1만2800원까지 떨어졌다. 금호산업은 3조50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일시에 상환해야 했고 결국 금호산업은 자본잠식 상태로 떨어지면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금호는 인수한 지 4년 만에 대우건설을 다시 내놨지만 아직까지도 채권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호 · LIG · 대한전선 · 효성 · 프라임 '건설 악몽'
웅진도 극동 인수로 궁지…성공사례 찾기 힘들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시공능력평가 1위를 달리던 대우건설은 2009년 현대건설에 1위 자리를 내줬고 지난해에는 업계 6위까지 밀렸다. 올해에는 3위권에 재진입했지만 시공능력평가에 2∼4년 전 실적과 수주상황 등이 반영되기 때문에 나온 성적이었다.

LIG그룹이 인수한 건영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파트 브랜드 '리가'로 잘 알려진 건영은 1989년 정부의 주택 200만 가구 건설사업에 힘입어 일산 등 신도시에서 대규모 아파트 시공에 나서면서 도급순위 30위권 안에 드는 대형 주택업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주택경기 침체라는 벽에 부딪히면서 자금난이 가중돼 1996년 1차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를 품에 안은 게 LIG그룹이었다.

LIG그룹에 인수된 건영은 2007년 10년 만에 법정관리에서 졸업하고 LIG건영이라는 명찰을 달았다.


2009년 LIG건설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토목 전문업체 SC한보건설을 인수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그러나 외형이 커진 만큼 부실도 커졌고 결국 법정관리 졸업 4년 만에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수도권 각지의 주택개발을 위해 총 8900억원 규모의 PF 사업을 벌였다가 주택 경기 침체로 착공도 못하고 대출 이자 등 금융비용만 늘어나게 된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인수는 '승리'
실적은 '패배'

여기에 구자원 LIG그룹 회장 일가는 지난해 3월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백억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CP)를 발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등 각종 송사에도 휘말려 있다.

이명박 대통령 사돈기업이던 효성그룹도 진흥기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08년 진흥기업을 인수한 효성그룹은 당시 진흥기업에 40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지난해 5월 채권단과 워크아웃 협약을 맺었다.

2008년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 역시 건설·부동산기업에 4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시너지 효과는커녕 그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프라임그룹이 인수한 동아건설 역시 모기업의 어려움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동반위기를 겪고 있다.

건설사를 인수한 중견·대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사업을 하던 기업들이 건설업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뛰어든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웅진, LIG, 효성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업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어떤 방식으로 매출을 늘리고 사업을 해야하는지 감을 잡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불황기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해 경영 실패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M&A 후 새롭게 영입된 사람들이 건설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해 무리하게 업무를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국내 건설산업이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건설산업
최악의 시기


2006년 이후 쏟아진 각종 부동산 규제와 2008년 금융위기 여파의 덫에 걸리면서 건설 공사 발주 물량이 급감했다.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건설사의 경우 부동산 침체 장기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공사 조달 자금 대부분을 대출과 분양대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업 특성상 시장변동요소에 대한 불확실성이 아주 크다"며 "M&A를 위한 자산평가 과정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사업성을 철저히 검토한 뒤 인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 수주 규모는 2007년 128조원을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지난해 111조원으로 축소됐다. 이중 공공발주 물량도 2009년 25조3000억원에서 올해 23조1000억원으로 역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M&A 시점을 잘못선택한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건설사 M&A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시점은 부동산 경기가 최대 호황을 보였던 2003∼2007년 사이다. 기업들은 부동산 경기 활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건설사를 사들였지만 예상과 달리 2007년 하반기부터 업황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큰 손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매물로 나와 있는 건설사들도 주인을 찾지 못해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범양건영은 최근 M&A를 통한 회생계획을 추진했으나 채권자들의 반대로 부결,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범양건영은 10년간의 회생계획 수행을 전제로 회생절차를 다시 신청, 지난 6월26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통보받았다.

법정관리 중인 신성건설의 경우 공식적으로만 3차례 매각을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주인을 못 찾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초 실시한 본입찰에서 2개 업체가 참여했지만 주요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우선협상대상자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신성건설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회사 상황이 악화됐다. 당시 미분양이 늘고 금융비용이 급증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회생절차를 냈다. 2009년부터 M&A를 추진했고 당시 대림디엔아이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지만 채권 변제율을 맞추지 못해 무산됐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매각을 진행했지만 관계인집회에서 인수가 무산되거나 입찰에 응찰한 투자자가 인수심사에 떨어져 번번이 실패했다.

워크아웃·법정관리 악순환 반복
속 타는 매물들 "제발 사가세요"

2009년 시공평가순위 58위에 오르기도 했던 성원건설은 무리한 해외사업 확장과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경영난에 봉착 2010년 결국 상장폐지 후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성원건설은 지난해 4월 수원지방법원으로부터 회생계획 인가 결정을 받고 올 상반기 한 차례 M&A를 시도했지만 인수후보가 제시한 가격이 낮아 무산됐다.

성원건설은 전윤수 회장이 임금체불을 한 채 해외도피 중이고 큰딸은 회사 대출금 횡령으로 실형선고를 받은 가운데 지난 9일 다시 매물로 나온 상태다.

벽산건설은 공개 매각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비슷한 상황에 있던 풍림산업도 결국 법정관리행을 택했다. 우림건설 역시 공개 매각에 실패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덩치도 크고 안정적인 매물로 평가받던 쌍용건설도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 받아 유동성 압박에서 벗어나면서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쌍용건설의 매각은 불투명하다.

일단 쌍용건설을 매수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쌍용건설 매각주체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1500억원 규모의 신주만 인수하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극동건설 법정관리 여파로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쌍용건설의 몸값이 떨어져 헐값에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가운데 96%는 1년 내 M&A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굵직한 M&A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데다 최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고조되는 등 대내외 변수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에 주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장기적인 건설경기 침체로 자금력 있는 기업들이 선뜻 건설기업 인수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M&A 실패가 거듭되면서 건설업의 리스크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건설사 M&A 이후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부정적 결과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승자의 축복'으로 불리는 대표적 건설사가 바로 업계 1위 현대건설이다.

지난해 현대차 그룹에 인수된 현대건설은 든든한 측면지원을 받아 값진 결실을 올리고 있다.

현대건설 올해 1분기 실적은 연결재무 기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4% 상승한 2조7056억원을 올렸으며 영업이익도 1532억원으로 7.4% 증가했다.

현대건설만
'승자의 축복'

특히 현대건설은 올해 안에 단일 업체로는 최초로 해외수주 누적액 900억달러라는 대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건설의 올 해외 수주 목표는 100억달러로 현재 싱가포르 주롱섬 앞바다 해저에 시공 중인 주롱 석유비축기지 공사와 도심 지하철 공사, 아시아스퀘어타워(Asia Square Tower), 파시르리스 콘도미니엄(Pasir Ris Condominium), 사우스비치(South Beach) 복합단지 개발공사 등 총 11건(39억달러)의 공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현대건설은 올 들어 사우디 알 사나빌 380KV 변전소, 콜롬비아 베요 하수처리장, 사우디 마덴 알루미나 제련소 공사, 카타르 루사일 고속도로 공사, 베네수엘라 정유공장 수주, 이번 싱가포르 복합개발 공사 수주로 8월 현재 총 56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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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