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 아니 평생을 좌우한다. 캐스팅 비화 하나쯤 안 가진 작품이 없다. 특히 주연급 배우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현실은 관계자들을 스타 캐스팅에 목숨 걸도록 내몬다. 그러나 희망과 현실에는 언제나 괴리가 존재하듯 캐스팅 희망배우와 실제 출연진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탓에 ‘뜨면 뜬 대로, 망하면 망한 대로’ 캐스팅을 둘러싼 무성한 뒷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이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일 터, 성공한 드라마에 대한 캐스팅 비화가 널리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캐스팅 비화의 가장 큰 이유는 드라마나 영화의 성패에 대한 불가측성 때문이다. 오죽하면 ‘흥행 여부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말이 생겼을까. 그런 탓에 제작자가 캐스팅에 고민하는 것 못지않게 배우도 출연작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저것 재다 보니 출연을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욕심은 나지만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아 저울질이 한창일 경우 모호한 말로 제작자를 붙잡아두는 사례까지 있다. 그러다 다른 스케줄이나 건강상 이유를 들어 막판에 출연을 번복해 버리기도 한다.
절친하던 사이가 원수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한 배우만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는 ‘닭 쫓던 개’ 꼴이 되기 십상이기에 제작자들도 2~5순위 후보들을 ‘히든카드’로 숨겨두는 추세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드라마. 그 속에서도 순간의 선택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니 캐스팅이야말로 가장 드라마틱하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 미니시리즈 <꽃보다 남자>에서 ‘환상의 캐스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F4 멤버 역의 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의 캐스팅 또한 드라마틱하게 이뤄졌다.
<꽃보다 남자>는 동명의 일본만화가 원작으로, 평범한 여고생이 재벌집 자제들로 가득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만화가 인기를 얻자 일본뿐만 아니라 대만에서도 드라마로 만들어져 아시아 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때문에 극중 배역 캐스팅은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그래서인지 시작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꽃보다 남자>가 제작된다는 말이 나돌면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부터 젊은 연기자들까지 <꽃보다 남자>에 눈독을 들인 아이돌 스타들은 적지 않다. 당초 <꽃보다 남자>는 아이돌 스타들의 경연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아이돌 스타들은 대부분 <꽃보다 남자> F4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거쳤다.
아이돌 스타에게 <꽃보다 남자>는 매우 매력적인 드라마다. 주 수요층이 10~20대라는 점부터 연기력 논란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는 트렌디 드라마라는 점까지 구미가 당길 만한 작품이다. 게다가 한류스타를 꿈꾸는 아이돌 스타들에게는 아시아에서 주목하는 드라마인 만큼 한류스타로서 나아가는 데 <꽃보다 남자>만큼 좋은 발판은 없었다.
일부에선 대형 아이돌그룹 멤버들의 경쟁이 펼쳐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흘러나왔다. 이 때문에 ‘꿈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감이 컷 던 것도 사실이다
F4들 가운데서도 그 비중이 모두 다르기에 아이돌 스타와 소속사의 자존심 대결이 불꽃 튀게 벌어졌다. ‘라이벌 그룹보단 나은 배역을 따야한다’라는 점이 아이돌 스타들이 자존심에 상처만 입고 <꽃보다 남자>를 떠나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됐다. 결국 역할과 제일 맞는, 또 연기력에도 문제가 없는 연기자들로 포커스가 맞춰졌고 캐스팅이 진행됐다.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이름보단 실력이 우선’이라고 외친 전기상 PD의 고집에 ‘아이돌 스타’에 미련을 갖던 일부 제작사 관계자들도 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캐스팅된 배우들이 이민호, 김범, 김준이다. 구준표 역의 이민호는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라는 점에서 반대도 있었으나 전기상 PD는 이민호의 가능성에 힘을 실으며 적극적으로 캐스팅에 임했다는 후문이다.
드라마틱한 캐스팅…시청자들 ‘환상의 캐스팅’ 찬사
아이돌 그룹 멤버부터 젊은 연기자들까지 F4 눈독
<꽃보다 남자> 제작자인 송병준 대표는 “캐릭터와 비교해 이미지와 연기력 등의 여부가 캐스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며 “이민호의 경우 일단 용모가 F4의 외모와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다. 신인이라 개런티도 큰 영향이 없었고 가장 관건이었던 연기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름 많은 노하우를 쌓은 점이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송 대표는 윤지후 역의 김현중 캐스팅에 대해서는 “‘SS501’의 김현중 같은 경우 일단 첫 번째 용모 면에서 완벽한 윤지후였고 쌓아놓은 이미지 또한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약간 4차원적인 엉뚱하면서도 묘한 이미지가 커졌는데 상큼하면서 엉뚱한 이런 이미지가 윤지후와 딱이었다”고 전했다.
명문 예술가 집안의 후계자인 소이정 역에 캐스팅된 김범에 대해서는 “그간 쌓아온 이미지가 캐릭터와 비슷해 완벽한 케이스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F4 멤버들이 어려운 일에 처할 때마다 감싸주고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 송우빈 역에 캐스팅된 김준의 경우는 “오디션을 통해 찾지 못했던 이미지를 용케 발견한 경우”라는 의외의 쉬운 캐스팅 계기를 전했다.
<꽃보다 남자>의 F4만큼이나 여자 주인공 금잔디 캐스팅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여성 연기자들이 물망에 올랐고 잘 나가는 아이돌그룹 멤버 이름도 거론이 됐다. 당시 금잔디 역을 놓고 물망에 오른 배우는 박신혜와 박보영.
하지만 남자주인공이 연기자로서는 모두 신인급에 속한 까닭에 여배우는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춘 박신혜를 캐스팅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여기서도 변수가 작용했다. 제작사와 감독, KBS 측에서 구혜선을 적극 추천했고 결국 구혜선이 금잔디 역을 꿰찬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사 관계자는 “여주인공이 극을 이끌어 가는 만큼 캐스팅에 있어서 고심을 많이 했다.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남자주인공들에 비해 작품 경력이 있는 배우를 찾았다. 금잔디 역은 각종 오디션과 심사 등을 거쳐 처음부터 구혜선이 낙점됐다”고 말했다.
구혜선의 캐스팅에 대다수 관계자들의 의외의 결과라는 반응을 내놨다. 구혜선이 동안이고 발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나 여고생 역할을 하기엔 나이가 적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전기상 PD는 ‘구혜선이 20대 중반이지만 여고생을 연기하기엔 무리가 없다’고 판단, 구혜선을 밀어붙이는 고집을 보였다. 전기상 PD는 <꽃보다 남자>에 제일 잘 어울리는 여자 연기자로 이미 구혜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제작사 관계자는 “<열아홉 순정> <왕과 나> 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거치며 또래 나이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연기력도 구혜선이 캐스팅 되는데 큰 몫을 했다”고 전했다.
구혜선도 금잔디 역을 맡으며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나이는 물론 그동안 ‘통통 튀는 이미지’를 죽이기 위해 노력했던 행보가 일순간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전기상 PD와 몇 차례 만난 구혜선도 <꽃보다 남자>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했고 이런 전기상 PD와 구혜선의 믿음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제작사 관계자는 “전기상 PD와 구혜선이 찰떡궁합을 보일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고 있다. 이는 시청률이 잘 나오는 이유 중 하나 아니겠는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