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용산역세권 개발 파행 막전막후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26 10: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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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다람쥐 챗바퀴 뱅뱅 '되긴 될까'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2016년 완공 예정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조감도는 한 마디로 예술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게 설계 된 랜드마크빌딩 '트리플 원'(660m)을 비롯해 예쁜 스카이라인을 그리는 멋진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한시라도 빨리 실제 완공된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예정일 안에 완공 될지 의문인 상태다. 토지주 코레일과 최대주주 롯데관광개발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 못해 법적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사업(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총 사업비만 31조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으로 불린다.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를 묶어 통합 개발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개발 규모부터 여타 개발사업과 비교를 불허한다. 이 사업의 핵심 주주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은 사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살벌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용산역세권 개발부지
단군 이래 최대 규모

현재 용산역세권개발의 사업주체는 프로젝트금융회사인 드림허브 PFV(이하 드림허브)이나 실질적 사업추진 법인은 자산관리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로 이원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용산역세권개발㈜(이하 AMC)은 드림허브의 위탁을 받아 설계, 발주, 보상, 분양 등의 각종 개발 업무를 대행하는 등 사실상의 시행주체의 역할을 하는 회사로 롯데관광개발이 70.1%, 코레일이 29.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사업 출자사 드림허브의 주주는 코레일 25%, 롯데관광개발 15.1%, 삼성그룹 14.5%, SH공사 4.9%, 기타 40.5% 등이다.

코레일은 지난 17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롯데관광개발이 보유 중인 AMC의 지분 중 옛 삼성물산 몫인 45.1%를 인수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롯데관광개발 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옛 삼성물산 지분 모두를 롯데관광개발로부터 넘겨받는 안을 관철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의안 심의조차 못 한 채 다음 이사회로 넘겼다. 차기 이사회 일정에 대해서도 미정이라고 밝혀 양측 간 갈등이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이 삼성물산으로부터 건네받은 지분 45%는 향후 외부투자자 등에게 양도할 것'이라는 양측 간 합의서 내용을 근거로 양도 대상에 코레일도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코레일 측에 따르면 사업합의서에서 외부투자자 '등'이라고 표현해 인수 대상에서 코레일을 제외한다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롯데관광개발은 코레일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뿐 아니라 최초 주주 간 협약서에도 코레일의 지분은 29.9%로 고정돼 있다는 주장이다. 추가로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전원 동의 원칙인 사업협약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코레일은 "코레일 지분이 29.9%로 고정된 것은 최초 주주협약 때 요건일 뿐 향후 지분율에 대한 내용은 규정되지 않았다"며 재반박하고 나섰다.

종합하면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의 지분 45.1%를 양도받아 최대주주가 된 후 대규모 사업을 주도할만한 역량을 갖춘 대표 건설사가 참여하면 대부분의 지분을 넘겨줄 요량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의 사업수행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심 주주 갈등에 31조 사업 또 난항
사업주체 코레일 vs 시행사 롯데관광

코레일은 지난 17일 이사회 소집에 앞서 이미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등에 지분 인수와 주관사를 맡아 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락 의사를 나타낸 곳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 측 관계자는 롯데관광개발에 대해 "롯데관광개발이 30조원이 넘는 사업을 감당할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올해 초부터 수차례 사업계획 수정과 대안 제시를 요청했지만 미동도 없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들이 사업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지 않고 있어 코레일의 바람대로 롯데관광개발의 지분을 인수한다고 해도 향후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 될지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태다.

코레일이 롯데관광개발을 배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롯데관광개발이 AMC의 최대주주가 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단 한 건의 외부 투자도 유치하지 못한데다가 자금조달 방식을 두고 양측은 사사건건 대립해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달 초 코레일이 드림허브의 자본금을 현재 1조4000억원에서 3조원으로 증액시키려 하다 롯데관광개발의 반대로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부결되자 속에서 끓고 있던 불만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양측이 개발방식을 두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 역시 갈등의 주요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코레일은 용산 철도정비창을 우선 개발하는 단계적 개발로 입장을 정리한 반면 롯데관광개발은 당초의 통합개발 추진을 고수하고 있는 것.


코레일은 사업 부지를 분리한 단계적 개발이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서부이촌동 보상을 뒤로 늦추고 최초의 계획대로 철도정비창 부지를 먼저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서부이촌동 11개 주민 모임 대표 김찬 총무는 "단계적 개발로 변경하면 보상 시기가 내년 7월에서 2017년 1월로 3년 반이나 더 늦어지는데 누가 찬성하겠느냐"며 "지금도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주택이 늘고 있는데 단계적 개발을 하면 모두 죽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롯데관광 배제 후
향후 계획 있나?

롯데관광개발도 코레일의 주장은 개발사업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무리한 요구라고 일축하고 있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개발지역으로 지정받고, 보상안을 내놓은 조건으로 사업인허가를 내준다는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 등 지금까지 모든 과정이 통합개발방식을 전제로 이뤄졌다"며 "단계적개발로 전환되면 구역지정과 시행자지정이 취소되면서 사업 일정이 최소 2년이상 지연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에는 매일 4억원의 이자와 9억원의 토지분납이자 등이 발생하고 있어 사업기간이 늘어나면 사업성이 더욱 악화된다는 설명이다.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이 가지고 있는 AMC지분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이 이사회에서 무산될 경우 "주주로서 기본 역할에만 충실할 것"이라고 밝혀 코레일이 사업 주도권을 가져올 수 없으면 앞으로 추가지원은 없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마치 배수진을 친 모양새다. 여기서 코레일이 기본 역할만 하겠다는 말은 사업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행해졌던 특혜적 지원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코레일은 지난해 자금난에 빠진 용산 개발 정상화를 위해 출자사들로부터 순차적으로 받기로 한 땅값 8조원 중 5조3000억원의 납부시기를 준공 1년 전후로 미뤄준 바 있다. 또 국제업무지구 내 건설 예정인 랜드마크 빌딩도 4조1600억원에 미리 매입해주면서 자금을 지원했었다.

'삼성물산'도 싫다
'롯데관광'도 싫다

앞으로도 코레일은 랜드마크 빌딩 선매입 2차 계약금 4160억원 상당을 출자사인 드림허브에 납부해야 하는데 만약 코레일이 마음을 달리 먹고 납부를 거부하면 모든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사업이 멈추면 그 피해는 출자사를 비롯해 5년간 재산권 침해를 참아온 서부이촌동 주민에게 돌아가게 되고 31조원대 개발사업이 기약 없이 중단 되는 만큼 그에 따른 경제·사회적 파장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지난 17일 이사회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격론을 벌인 것을 두고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 간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점치고 나섰다. 양쪽 간 법적 소송전이 벌어지게 되면 주민보상 차질에 이은 사업지연 및 중단은 당연한 수순이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던 2007년에 추진됐다. 코레일은 당시 용산 철도정비창 터(약 40만㎡)를 국제업무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을 구상했다. 이 사업안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오세훈 전임시장의 한강르네상스·서해아라뱃길사업을 연계시킬 것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일반상업지역의 주거를 허용하지 않는 등 국제업무지구의 용적률 및 주거비율을 높여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한강 경관 개선을 이유로 서부 이촌동(12만4000㎡)을 포함한 통합 개발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당시 코레일은 서울시의 통합개발안을 받아들였고 2007년 12월 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를 내세워 드림허브와 '사업협약서'를 체결했다.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시작된 사업이지만 워낙 규모가 큰 터라 사업진행이 순탄치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부동산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사업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지난 2010년 8월 삼성물산이 사업주도권을 포기하면서 본격적인 난항이 시작됐다. 2010년 초 개발용지 소유자인 코레일은 토지매매 중도금 7010억원을 출자사인 드림허브가 납부하지 못하자 삼성물산을 비롯한 건설사 주주들에게 지급보증을 수차례 요구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AMC의 45.1%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이자 주관사였다.

재원조달방식에서 개발방식까지 '이전투구'
코레일 "자금지원 중단할 것" 배수진 펼쳐

삼성물산은 지금 코레일이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출자사들에 요구하는 방안과 비슷한 요구를 코레일 측에 피력했다. 삼성물산은 사업 리스크가 큰 만큼 자금을 출자사 지분을 2조원대로 증자하자고 주장했고 토지대금 중도금 4조7000억원 지급을 준공 시점까지 무이자로 연기하는 방안도 코레일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코레일 측은 삼성물산이 용산개발사업에 대한 대안 마련과 구체적인 방안을 조기에 제시하지 않을 경우 현재까지 미납된 토지매매 중도금 등 7010억원에 대해 납부이행청구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삼성물산에 계약해지의 사전절차인 의무이행 최고장까지 보냈다. 이 같은 코레일의 공세에 삼성물산은 AMC 주관사 자격과 가지고 있던 모든 지분을 롯데관광개발에 매각하기에 이른다. 삼성물산이 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하자 남광토건, 우미건설 등 다른 건설 출자사들도 잇따라 출자지분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자금줄이 끊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진 코레일은 자금 조달을 위해 약 10조원대의 시공권을 조건으로 건설사 지급보증 1조원 및 해외자본 유치 등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사업이 좌초될 위기로 몰렸다.

난항을 거듭하다 지난해 7월 코레일은 드림허브가 4000억원을 유상증자(전환사채)하는 조건으로 파격적인 정상화 방안을 내놨다. 4조원대 규모의 개발 예정 건물인 랜드마크 빌딩을 선매입하고 드림허브의 토지대금 지급 시기를 연기해주기로 하면서 사업이 재추진된 것이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레일이 원래 삼성물산 측이 주장했던 토지대금 입금 연기를 코레일이 사업정상화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과적으로 코레일은 2년 전 삼성물산을 상대로 초강수로 버티다 삼성물산만 내쳤을 뿐 땅값도 미루고 랜드마크 빌딩 선매입에 따른 4조원대 자금 부담만 더 지게 된 꼴이 됐다.  

결국 자금조달이 계속 어려움을 겪고 서부이촌동 주민과 보상협의가 난항을 거듭하면서 지난 4월로 계획됐던 토지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23일 드림허브는 약 2조원으로 추산되는 법정 토지 보상금 외에도 1조원 이상을 지원하는 주민 보상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업계는 재원 조달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데다 서울시의 인허가 절차가 여전히 남아있고,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 성공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평가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져

한편 사업이 늦어지면서 출자사인 드림허브는 PF 대출로 조달한 땅값 이자 4억원 등 하루 손실액이 17억원에 달해 '사면초가' 상황에 빠진 상태다. 또 사업이 5개월여 지연되면서 금융비용만 600억원이 지출됐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연면적 395만㎡의 대규모 건물을 분양하는 일이 이루어질지도 미지수다. 이처럼 사업 시행자인 드림허브의 사업비용이 늘어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심 주주 간 법적 분쟁까지 불거지면 장기 개발 청사진이 틀어지는 것은 물론 당장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서부이촌동 땅 보상이나 오피스빌딩 착공도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역세권개발을 둘러싼 핵심 주주들의 주도권 싸움에 애꿎은 투자자들과 용산 일대 주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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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