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용산역세권 개발 파행 막전막후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09.26 10: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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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다람쥐 챗바퀴 뱅뱅 '되긴 될까'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2016년 완공 예정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조감도는 한 마디로 예술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게 설계 된 랜드마크빌딩 '트리플 원'(660m)을 비롯해 예쁜 스카이라인을 그리는 멋진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한시라도 빨리 실제 완공된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예정일 안에 완공 될지 의문인 상태다. 토지주 코레일과 최대주주 롯데관광개발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 못해 법적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사업(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총 사업비만 31조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으로 불린다.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를 묶어 통합 개발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개발 규모부터 여타 개발사업과 비교를 불허한다. 이 사업의 핵심 주주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은 사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살벌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용산역세권 개발부지
단군 이래 최대 규모

현재 용산역세권개발의 사업주체는 프로젝트금융회사인 드림허브 PFV(이하 드림허브)이나 실질적 사업추진 법인은 자산관리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로 이원화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용산역세권개발㈜(이하 AMC)은 드림허브의 위탁을 받아 설계, 발주, 보상, 분양 등의 각종 개발 업무를 대행하는 등 사실상의 시행주체의 역할을 하는 회사로 롯데관광개발이 70.1%, 코레일이 29.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사업 출자사 드림허브의 주주는 코레일 25%, 롯데관광개발 15.1%, 삼성그룹 14.5%, SH공사 4.9%, 기타 40.5% 등이다.

코레일은 지난 17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롯데관광개발이 보유 중인 AMC의 지분 중 옛 삼성물산 몫인 45.1%를 인수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롯데관광개발 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옛 삼성물산 지분 모두를 롯데관광개발로부터 넘겨받는 안을 관철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의안 심의조차 못 한 채 다음 이사회로 넘겼다. 차기 이사회 일정에 대해서도 미정이라고 밝혀 양측 간 갈등이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이 삼성물산으로부터 건네받은 지분 45%는 향후 외부투자자 등에게 양도할 것'이라는 양측 간 합의서 내용을 근거로 양도 대상에 코레일도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코레일 측에 따르면 사업합의서에서 외부투자자 '등'이라고 표현해 인수 대상에서 코레일을 제외한다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롯데관광개발은 코레일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뿐 아니라 최초 주주 간 협약서에도 코레일의 지분은 29.9%로 고정돼 있다는 주장이다. 추가로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전원 동의 원칙인 사업협약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코레일은 "코레일 지분이 29.9%로 고정된 것은 최초 주주협약 때 요건일 뿐 향후 지분율에 대한 내용은 규정되지 않았다"며 재반박하고 나섰다.

종합하면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의 지분 45.1%를 양도받아 최대주주가 된 후 대규모 사업을 주도할만한 역량을 갖춘 대표 건설사가 참여하면 대부분의 지분을 넘겨줄 요량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의 사업수행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핵심 주주 갈등에 31조 사업 또 난항
사업주체 코레일 vs 시행사 롯데관광

코레일은 지난 17일 이사회 소집에 앞서 이미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등에 지분 인수와 주관사를 맡아 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락 의사를 나타낸 곳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 측 관계자는 롯데관광개발에 대해 "롯데관광개발이 30조원이 넘는 사업을 감당할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올해 초부터 수차례 사업계획 수정과 대안 제시를 요청했지만 미동도 없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들이 사업을 맡겠다고 선뜻 나서지 않고 있어 코레일의 바람대로 롯데관광개발의 지분을 인수한다고 해도 향후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 될지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태다.

코레일이 롯데관광개발을 배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롯데관광개발이 AMC의 최대주주가 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단 한 건의 외부 투자도 유치하지 못한데다가 자금조달 방식을 두고 양측은 사사건건 대립해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달 초 코레일이 드림허브의 자본금을 현재 1조4000억원에서 3조원으로 증액시키려 하다 롯데관광개발의 반대로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부결되자 속에서 끓고 있던 불만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양측이 개발방식을 두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 역시 갈등의 주요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코레일은 용산 철도정비창을 우선 개발하는 단계적 개발로 입장을 정리한 반면 롯데관광개발은 당초의 통합개발 추진을 고수하고 있는 것.


코레일은 사업 부지를 분리한 단계적 개발이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서부이촌동 보상을 뒤로 늦추고 최초의 계획대로 철도정비창 부지를 먼저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서부이촌동 11개 주민 모임 대표 김찬 총무는 "단계적 개발로 변경하면 보상 시기가 내년 7월에서 2017년 1월로 3년 반이나 더 늦어지는데 누가 찬성하겠느냐"며 "지금도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주택이 늘고 있는데 단계적 개발을 하면 모두 죽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롯데관광 배제 후
향후 계획 있나?

롯데관광개발도 코레일의 주장은 개발사업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무리한 요구라고 일축하고 있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개발지역으로 지정받고, 보상안을 내놓은 조건으로 사업인허가를 내준다는 도시계획위원회의 결정 등 지금까지 모든 과정이 통합개발방식을 전제로 이뤄졌다"며 "단계적개발로 전환되면 구역지정과 시행자지정이 취소되면서 사업 일정이 최소 2년이상 지연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에는 매일 4억원의 이자와 9억원의 토지분납이자 등이 발생하고 있어 사업기간이 늘어나면 사업성이 더욱 악화된다는 설명이다.

코레일은 롯데관광개발이 가지고 있는 AMC지분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이 이사회에서 무산될 경우 "주주로서 기본 역할에만 충실할 것"이라고 밝혀 코레일이 사업 주도권을 가져올 수 없으면 앞으로 추가지원은 없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마치 배수진을 친 모양새다. 여기서 코레일이 기본 역할만 하겠다는 말은 사업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행해졌던 특혜적 지원이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코레일은 지난해 자금난에 빠진 용산 개발 정상화를 위해 출자사들로부터 순차적으로 받기로 한 땅값 8조원 중 5조3000억원의 납부시기를 준공 1년 전후로 미뤄준 바 있다. 또 국제업무지구 내 건설 예정인 랜드마크 빌딩도 4조1600억원에 미리 매입해주면서 자금을 지원했었다.

'삼성물산'도 싫다
'롯데관광'도 싫다

앞으로도 코레일은 랜드마크 빌딩 선매입 2차 계약금 4160억원 상당을 출자사인 드림허브에 납부해야 하는데 만약 코레일이 마음을 달리 먹고 납부를 거부하면 모든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사업이 멈추면 그 피해는 출자사를 비롯해 5년간 재산권 침해를 참아온 서부이촌동 주민에게 돌아가게 되고 31조원대 개발사업이 기약 없이 중단 되는 만큼 그에 따른 경제·사회적 파장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지난 17일 이사회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격론을 벌인 것을 두고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 간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점치고 나섰다. 양쪽 간 법적 소송전이 벌어지게 되면 주민보상 차질에 이은 사업지연 및 중단은 당연한 수순이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던 2007년에 추진됐다. 코레일은 당시 용산 철도정비창 터(약 40만㎡)를 국제업무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을 구상했다. 이 사업안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오세훈 전임시장의 한강르네상스·서해아라뱃길사업을 연계시킬 것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일반상업지역의 주거를 허용하지 않는 등 국제업무지구의 용적률 및 주거비율을 높여 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한강 경관 개선을 이유로 서부 이촌동(12만4000㎡)을 포함한 통합 개발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당시 코레일은 서울시의 통합개발안을 받아들였고 2007년 12월 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를 내세워 드림허브와 '사업협약서'를 체결했다.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시작된 사업이지만 워낙 규모가 큰 터라 사업진행이 순탄치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부동산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사업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은 지난 2010년 8월 삼성물산이 사업주도권을 포기하면서 본격적인 난항이 시작됐다. 2010년 초 개발용지 소유자인 코레일은 토지매매 중도금 7010억원을 출자사인 드림허브가 납부하지 못하자 삼성물산을 비롯한 건설사 주주들에게 지급보증을 수차례 요구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AMC의 45.1%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이자 주관사였다.

재원조달방식에서 개발방식까지 '이전투구'
코레일 "자금지원 중단할 것" 배수진 펼쳐

삼성물산은 지금 코레일이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출자사들에 요구하는 방안과 비슷한 요구를 코레일 측에 피력했다. 삼성물산은 사업 리스크가 큰 만큼 자금을 출자사 지분을 2조원대로 증자하자고 주장했고 토지대금 중도금 4조7000억원 지급을 준공 시점까지 무이자로 연기하는 방안도 코레일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코레일 측은 삼성물산이 용산개발사업에 대한 대안 마련과 구체적인 방안을 조기에 제시하지 않을 경우 현재까지 미납된 토지매매 중도금 등 7010억원에 대해 납부이행청구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또 삼성물산에 계약해지의 사전절차인 의무이행 최고장까지 보냈다. 이 같은 코레일의 공세에 삼성물산은 AMC 주관사 자격과 가지고 있던 모든 지분을 롯데관광개발에 매각하기에 이른다. 삼성물산이 사업을 포기하고 철수하자 남광토건, 우미건설 등 다른 건설 출자사들도 잇따라 출자지분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자금줄이 끊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진 코레일은 자금 조달을 위해 약 10조원대의 시공권을 조건으로 건설사 지급보증 1조원 및 해외자본 유치 등을 추진했으나 모두 실패하면서 사업이 좌초될 위기로 몰렸다.

난항을 거듭하다 지난해 7월 코레일은 드림허브가 4000억원을 유상증자(전환사채)하는 조건으로 파격적인 정상화 방안을 내놨다. 4조원대 규모의 개발 예정 건물인 랜드마크 빌딩을 선매입하고 드림허브의 토지대금 지급 시기를 연기해주기로 하면서 사업이 재추진된 것이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코레일이 원래 삼성물산 측이 주장했던 토지대금 입금 연기를 코레일이 사업정상화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과적으로 코레일은 2년 전 삼성물산을 상대로 초강수로 버티다 삼성물산만 내쳤을 뿐 땅값도 미루고 랜드마크 빌딩 선매입에 따른 4조원대 자금 부담만 더 지게 된 꼴이 됐다.  

결국 자금조달이 계속 어려움을 겪고 서부이촌동 주민과 보상협의가 난항을 거듭하면서 지난 4월로 계획됐던 토지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23일 드림허브는 약 2조원으로 추산되는 법정 토지 보상금 외에도 1조원 이상을 지원하는 주민 보상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업계는 재원 조달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데다 서울시의 인허가 절차가 여전히 남아있고,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 성공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평가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져

한편 사업이 늦어지면서 출자사인 드림허브는 PF 대출로 조달한 땅값 이자 4억원 등 하루 손실액이 17억원에 달해 '사면초가' 상황에 빠진 상태다. 또 사업이 5개월여 지연되면서 금융비용만 600억원이 지출됐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연면적 395만㎡의 대규모 건물을 분양하는 일이 이루어질지도 미지수다. 이처럼 사업 시행자인 드림허브의 사업비용이 늘어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심 주주 간 법적 분쟁까지 불거지면 장기 개발 청사진이 틀어지는 것은 물론 당장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서부이촌동 땅 보상이나 오피스빌딩 착공도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역세권개발을 둘러싼 핵심 주주들의 주도권 싸움에 애꿎은 투자자들과 용산 일대 주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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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