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잔혹사 3 살인행렬 이어진 ‘경기서남부’ 현장르포

주민들 두문불출 “7시 이후 외출 겁나요”

‘강호순 잔혹사’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2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화두로 꺼내놓을 정도다. 잔혹한 연쇄살인마의 행각에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차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선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한 자구책들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끔찍한 살인행렬이 이뤄졌던 경기 서남부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공포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호순의 잔혹사는 이들 주민의 인식과 생활패턴까지 바꿔놓았다. 그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은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부녀자 7명을 주검으로 만들었다. 성실한 직장인과 자상한 아버지 탈을 쓰고 있었지만 실체는 잔혹한 연쇄살인마였다. 연이은 부녀자 살인 소식에 공포 속에 살아야 했던 경기 서남부지역 주민들. 기자가 만난 이들 주민은 연쇄살인범이 잡혔음에도 아직 ‘공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지난 3일 오후 4시. 기자는 노래방 도우미 김모(당시 37세)씨가 암매장됐던 화성시 마도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도면으로 향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비춰진 전경들은 한마디로 서늘한 기운이 맴돌고 있는 듯 ‘오싹’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류장도 텅 빈 모습이고 이동하는 차량 역시 드문드문 이어질 뿐이었다. 눈에 띈 주민의 얼굴에는 밝은 빛이 보이지 않았다. 굳은 얼굴에선 참담함마저 느껴졌다. 아직도 현장에선 스산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도면 초입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강호순 사건에 대해 묻자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굳어졌다.
“현장검증하는 곳에 가봤어…사람이 어떻게…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거지. 세상에 무서워가지고 잠을 못자겠어.”
지난 2일, L골프장 암매장 현장검증을 하는 곳을 다녀왔다는 박모(52·여)씨는 말을 하면서 치를 떨었다. 그는 “그게 인간이냐. 짐승만도 못한 놈은 당장 사형시켜야 한다”고 극언을 퍼부었다.
석 달 전 무섭고 두려워서 학생인 아들과 딸들을 모두 서울로 보냈다는 김모(45·여)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강호순은 사형도 아깝다. 시내 한복판에 매달아서 많은 사람에 의해 고통을 당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이 있던 고모(46·여)씨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호신용품을 소지하고 다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먼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다는 것.
“립스틱 모양으로 된 거 있잖아…호신용 스프레이라던데 그걸 주머니나 핸드백 등에 많이 넣고 다녀. 호루라기도 있어. 호신봉도 있고, 손칼이나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봤어. 모두 밤길이 무서워서 그런 거지. 세상 참 무서워졌어….”
 저녁 7시를 조금 넘은 시각. 지난 2007년 1월 강호순이 노래방 도우미 박모(당시 37세)씨를 차에 태워 암매장한 안산시 사사동에 도착했다. 이곳은 개발 전까지 ‘사사리’로 불리며 논과 밭이 주를 이뤘던 곳이다. 아직도 한적한 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어둠이 깔린 이곳은 벌써부터 인적이 끊겼다. 30분 가량 지켜보고 있었으나 거의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고작 4명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나마 그들은 두 명씩 짝을 이루고 있었다.  
“밤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등산객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들도 해 진 후엔 보기 힘들다. 쓰레기조차도 낮에 버리고 있는 추세다.”

맴도는 서늘한 기운…땅거미 내려앉으면 ‘집으로’
학생들 심야수업 기피, 직장인 회식·모임 자제

마을에서 만난 이모(46·마트운영)씨의 말이다. 이씨에 따르면 버스 왕래(30분 간격 배차)가 적고 인적이 드물어 주민들은 항상 불안에 떨었다고. 특히 사건이 일어난 이후 주민들의 왕래가 끊어지다시피 했다. 강호순의 차를 피해자들이 왜 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늦은 밤 퇴근하는 식구라도 있으면 두렵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일찍 귀가한 식구들이 전철역으로 늦은 귀가를 하는 또 다른 식구를 위해 마중을 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하다.”
식품을 구매하러 마트를 찾은 30대 초반 부부의 말이다. 이들 역시 위험하다는 이유로 마트조차 동행해서 온 것. 귀갓길이 요즈음처럼 무서운 적이 없다는 부부는 빠른 시일 안에 서울 입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식당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한곳을 찾았다. 식당종업원들만 한곳에 옹기종기 앉아있을 뿐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사건 이후에는 저녁 손님을 보기 힘들다. 식당들은 저마다 장사가 안 된다고 불만이 높다. 한마디로 손님들이 안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다른 곳으로 이주를 생각하고 있다.”
식당주인 김모(51)씨의 하소연이다. 김씨의 치안당국에 대한 불만은 높았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 치안에 대한 불신 등이 어우러져 주민들 사이에도 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는 회사원 강모(34·여)씨. 강씨는  강호순 사건 이후 ‘귀가시계’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언제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긴급상황에서 화를 모면하기 위한 호신용 도구를 갖추고 일찍 귀가를 서두른다고.

“재테크 차원에서 아파트를 매입해 이사를 왔다. 하지만 지금은 세를 주고서라도 옮겨볼 생각이다. 요즈음 여기 사람들은 직장인의 경우 회식이나 모임을 자제하고 있고 학생들은 심야수업이나 학원수업 등을 꺼리는 분위기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여기 주민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실제 귀가시계를 바꾼 경우가 많다. 예컨대 퇴근 즉시 귀가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 집안 남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귀가하는 모습이 많아졌다. 만일 귀가 시간이 늦어질 경우 아예 친구나 친척집을 이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저녁 9시. 택시를 타고 인근 안산 건건동으로 향했다. 택시기사에게 요즈음 이곳 분위기에 대해 물으니 주민들 공포만큼이나 택시기사들도 공포 속에 운전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경기 서남부지역에는 택시강도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세상이 무섭다. 때문에 택시운전을 하는 것도 힘들다. 특히 외딴 곳으로 손님을 모시고 갈 때는 무서움을 느낀다. 젊은 남자들이 동승할 때는 그 무서움이 더욱 커진다. 강호순 같은 사람을 만나면 별 도리 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택시기사 장모(43)씨는 일반 손님이 택시 타기 무섭다고 하지만 택시기사도 손님을 태우기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항상 낯선 사람들을 태우게 되는 두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장씨는 주변 회사 동료들 중에는 한 달 평균 두 세 건 택시강도를 당한다고 말했다. 또 이로 인해 생을 달리한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반월역 인근에서 만난 회사원 조모(18·여)양. 처음 기자를 경계하다가 인터뷰에 응한 조양은 통금시간이 밤 11시에서 9시로 2시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대입을 앞두고 학원수강 등을 하다보면 늦는 경우가 태반인데 밤길이 무서워 두 과목 수강을 없애고 귀가를 서두른다는 것.
“친구들은 저마다 핸드폰 위치추적 장치를 장착하는가 하면 호신용 물품을 소지하고 있다. 핸드폰이나 열쇠고리 등에 끼워 들고 다닌다. 모두들 턱없이 부족한 경찰을 믿었다가는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많다. 때문에 스스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강호순이 잡혔지만 사건지역은 아직도 그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장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사람이 사람을 못믿는 흉흉한 현재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웠다. ‘악마’들과 섞여 사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만 팽배한 싸늘히 식어버린 그곳에 언제 다시 따뜻한 봄날이 찾아올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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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