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문학이 흐르는 길을 따라 -부안 신석정문학관

시인이 꿈꾸던 ‘그 먼 나라’를 찾아서

호남정맥 줄기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 우뚝 멈춰 선 변산, 그 산과 맞닿은 고요한 서해, 전나무 숲길 끝에 단정하게 자리 잡은 내소사, 울금바위를 뒤로하고 아늑하게 들어앉은 개암사, 켜켜이 쌓인 해식 단애가 놀랍고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는 격포 채석강, 드넓은 곰소염전과 소박하고 평화로운 갯마을의 서정…. 전북 부안의 자연은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곳엔 아름다운 자연이 낳은 시인, 신석정(1907∼1974년)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시와 현실 비판적인 시를 넘나들며 평생 지사적으로 살다 간 석정의 삶과 예술을 찾아 문학 기행을 떠나보자. 

아름다운 자연이 낳은 시인 신석정의 발자취
유홍준 교수가 격찬한 환상의 해안드라이브 코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미완의 여로 1 : 부안 변산> 도입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그 일번지를 놓고 강진과 부안을 여러 번 저울질하였다. 조용하고 조촐한 가운데 우리에게 무한한 마음의 평온을 안겨다주는 저 소중한 아름다움을 끝끝내 지켜준 그 고마움의 뜻을 담은 일번지의 영광을 그럴 수만 있다면 강진과 부안 모두에게 부여하고 싶었다.”

가까이서 느끼는
시인의 삶과 문학

석정을 ‘참여시의 반대편에서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시를 쓴 시문학파 멤버’ 정도로 알고 있었다면, 부안군 선은리에 지난해 건립된 신석정문학관부터 둘러보자.


2층 규모인 문학관 전시실에는 1939년 간행된 첫 번째 시집 <촛불>부터 2007년 탄생 100주년에 맞춰 출간된 유고 시집이자 여섯 번째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까지 석정 문학의 변모 과정을 알기 쉽게 전시해놓았을 뿐 아니라 귀중한 육필 원고와 평소 사용하던 가구, 필기구 등 유품을 한자리에 모아 시인의 삶과 문학을 보다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석정은 1924년 11월 조선일보에 첫 시 ‘기우는 해’를 발표한 이래 한 세기의 절반을 교육자이자 시인으로 살았다.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한 것은 1931년 <시문학> 3호(이자 마지막 호)에 ‘선물’이라는 시를 게재하면서부터다. 이때 한용운, 이광수, 정지용, 김기림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그 해 서울 생활을 접고 낙향해 선은리에 집을 짓고, 전주로 이사하기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청구원(靑丘園)’이라고 직접 명명한 이 집은 문학관 맞은편에 복원되었다. 첫 시집 <촛불>(1939)과 두 번째 시집 <슬픈 목가>(1947)가 이 집에서 탄생했다.

석정은 첫 시집을 내면서 “청구원 주변의 산과 구름, 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나갈 때 얻은 꿈 조각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집을 사랑했다고 한다. 첫 시집에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를 포함해 당시 석정의 나이와 같은 33편이 실렸다.

바다가 갈라지며
육지와 연결되는 하섬

그 후 <문장>에 게재될 예정이던 시가 검열에 걸리고 <문장>이 강제 폐간되는 등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던 차에 친일 문학지 <국민문학>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자, 석정은 청탁서를 찢고 창씨개명도 끝까지 거부한 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절필을 선언한다. 이 시기에 쓴 시들은 1947년 두 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통해 발표되었다.

석정은 해방 이후 부안, 전주, 김제 등에서 교직에 몸담으며 시집 세 권을 더 냈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청구원 시대를 마감하고 전주로 이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 와중에 5·16군사정변과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시를 발표해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취조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고혈압으로 쓰러진 지 7개월 만인 1974년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석정의 묘소는 문학관에서 10∼15분 거리인 행안면 역리에 위치한다. 관광 안내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아 문학관 관계자에게 물으니 내비게이션에 ‘용화사’를 찍고 가면 된단다.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도로변에 이정표가 있고, 묘소로 들어가는 마을 초입 벽에는 데뷔작 ‘기우는 해’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쓴 ‘가슴에 지는 낙화 소리’ 시화가 있다.

신석정문학관에서 시작한 부안 문학 기행의 다음 목적지는 매창공원이다. 매창이 누구인가. 석정이 “박연폭포, 황진이, 서경덕이 송도삼절이라면 부안삼절은 직소폭포, 매창, 유희경”이라 했다는 그 기생이자 여류 시인 이매창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로 시작되는 이별가의 절창 ‘이화우’는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며 쓴 시로, 그 시비가 매창공원에 있다. 오랜 세월 깊은 우정을 나눈 허균이 매창의 죽음을 전해 듣고 쓴 애도의 시와 가람 이병기가 매창의 무덤을 찾아 읊었다는 ‘매창뜸’도 시비로 남아 있다.

다음은 시인을 키워낸 부안의 자연을 만날 차례다. 30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고사포해수욕장이 보일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국도를 버리고 해변 도로 표지판을 따라가자.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며 육지와 연결되는 하섬, 해안을 따라 1.5km 정도 이어지는 변산반도국립공원 격포 자연관찰로, 적벽강, 채석강 등이 차례로 이어지고, 유홍준 교수가 환상의 해안드라이브 코스라고 칭찬한 ‘격포에서 모항 지나 내소사를 거쳐 곰소로 가는 길’이 펼쳐진다.


모항해변을 지날 때는 차를 세워두고 모항해나루가족호텔 뒤편 산책로를 걸어보자. 나무 데크로 만든 산책로 너머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 풍경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조개잡이 체험을 할 수 있는 모항갯벌은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다.

젓갈정식·백합요리
부안 대표 먹거리

길은 왕포마을을 거쳐 내소사, 곰소염전, 개암사로 이어진다. 부안 변산 마실길 3구간이 지나가는 왕포에서는 전형적인 갯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른 아침 바다가 고요하고 평화롭다.

내소사는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 끝에서 단정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드러낸다. 백제 무왕 때(633년) 건립되었으며, 대웅보전의 사방연속무늬 꽃 창살이 무척 아름답다.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천일염 생산지인 곰소염전은 더울 때는 이른 새벽에 채염 작업을 한다니 소금 거둬들이는 모습을 구경하려면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비가 온 뒤 며칠은 작업도 쉰다.

염전 구경을 마친 뒤엔 길 건너편 곰소쉼터에 들러 9가지 젓갈이 나오는 젓갈정식을 맛보자. 젓갈정식은 백합죽, 백합탕, 백합구이 등 다양한 백합요리와 함께 부안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손꼽힌다.

곰소를 지나 부안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개암사로 갈 수 있다. 역시 백제 때 지은 절로 대웅보전 뒤를 감싼 울금바위의 자태가 인상적이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 여행코스
신석정문학관과 청구원 → 변산해변도로 드라이브 → 모항해변 → 내소사 → 곰소염전

1박2일 여행코스
첫째 날 : 신석정문학관과 청구원 → 매창공원 → 격포자연관찰로 → 채석강(숙박)
둘째 날 : 변산해변도로 드라이브 → 모항해변 → 내소사 → 곰소염전 → 개암사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부안군 문화관광 www.buan.go.kr/02tour
- 신석정문학관 http://shinseokjeong.com - 내소사 www.naesosa.org
- 변산반도국립공원 http://byeonsan.knps.or.kr

문의전화
- 부안군 문화관광 063)580-4713  - 신석정문학관 063)584-0560
- 내소사 063)583-7281 - 개암사 063)581-0080

대중교통 정보
[버스]
동서울종합터미널 → 부안 : 1일 5회 운행, 약 3시간 30분 소요
센트럴시티터미널 → 부안 : 1일 16회 운행, 약 2시간 50분 소요
?문의 : 부안버스터미널 1666-2429
자가운전 정보
- 서해안고속도로 → 부안 IC → 30번 국도 → 신석정문학관
-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서천공주고속도로 → 서해안고속도로 → 부안 IC → 30번 국도 → 신석정문학관

주요먹거리
- 변산온천산장 : 바지락죽, 변산면 대항리 063)584-4874 www.바지락죽.kr
- 계화회관 : 백합죽, 행안면 변산로 063)584-0075 www.ijuk.co.kr
- 칠산꽃게장 : 꽃게장, 진서면 청자로 063)581-3470 www.7sancrab.com
- 곰소쉼터 : 젓갈정식, 진서면 청자로 063)584-8007

숙박정보
- 채석리조텔오크빌 : 변산면 격포로 063)583-8046 www.csr063.com (굿스테이)
- 왕포리조텔 : 진서면 왕포길 063)582-3812 www.wangpo.co.kr (굿스테이)
- 채석강스타힐스호텔 : 변산면 채석강길 063)581-9911 www.starhills.net (굿스테이)
- 화이트모텔 : 부안읍 동중3길 063)582-3527 (굿스테이)
- 대명리조트 변산 : 변산면 변산해변로 1588-4888
- 펜션노을빛언덕 : 변산면 격포반월길 063)581-6622 www.sunset48.com

축제 및 행사정보
- 매창문화제 : 매년 4월 말 - 위도띠뱃놀이 : 매년 정월 초사흗날
- 곰소젓갈축제 : 매년 10월 중순

주변 볼거리
부안동문안당산, 부안서문안당산, 수성당, 구암리 지석묘군, 월명암, 직소폭포, 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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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