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왕 찐천재’ 홍진경의 공부의 신 도전기

배움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지식을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 채널을 개설했다.’ 방송인 홍진경이 유튜브 채널 ‘공부왕찐천재’를 개설하면서 알린 포부다. 각 나라의 수도를 아는 것 외에는 지적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홍진경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등 초중고 수준의 교과목을 재밌게 학습하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몇 주 되지 않았는데, 영상당 조회 수가 수백만에 이른다. 
 

▲ 방송인 홍진경 ⓒ유튜브

방송인 이영자는 한때 절친인 홍진경을 못마땅해한 적이 있었다. 친한 PD에게 홍진경을 추천했는데, 홍진경이 필사적으로 출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SBS <호기심천국>이었다. 

폼생폼사

황수관 박사와 함께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에만 출연하면, MC로서 안정적으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다고 예견한 이영자는 홍진경을 어르고 달래며 출연을 권했지만, 홍진경은 단호했다. 이유는 ‘간지(멋)가 나지 않아서’였다.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가치가 멋이었던 홍진경은 <호기심 천국>이 다소 예스러워 보였던 것. 오랫동안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조금도 없었다고 한다. 홍진경에게 멋이란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이후 홍진경은 MBC <무한도전>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다. 코너는 ‘바보 전쟁-순수의 시대’였고, 홍진경은 대표적인 바보로 초대받은 것.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한도전>에 출연하고 싶었다”고 밝힌 홍진경은 “아쉽게도 난 바보가 아니다”라며 이미지만 챙겨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은 금세 무색해졌다. 홍진경은 제작진이 낸 문제를 전부 틀린 것도 모자라 내놓은 답변들이 모두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홍진경은 라이트 형제를 두고 히틀러라고 답했고, 엘리베이터에서 F의 약자를 쓰라는 문제에 ‘Floor’ 대신 ‘Flow’로 썼다. 특히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목욕하다가 부피만큼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외친 말은?”이라는 물음에 ‘빙고’라고 답한 장면은 수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이후 전 세계 수도를 전부 외우다시피 하며, 실추된 이미지를 다소 챙기기는 했으나 홍진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전히 ‘뇌순녀(뇌가 순수한 여자)’다. 

모델 출신 방송인으로 이름을 알리다 못해 어머니의 손맛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시작한 김치 사업에서까지 성공에 이른 홍진경은, 마흔다섯의 나이에 공부를 소재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주위로부터 다소 지식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는 방송인 남창희, 황제성, MC그리(김동현)가 다양한 선생님들로부터 교과목을 배우는 방송이다. 천재가 되고 싶은 뜨거운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채널명도 ‘공부왕찐천재’로 정했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카카오TV의 이석로 PD와 만남으로 출발한다. 홍진경이 유튜브에 최적화된 인물이라 판단한 이 PD는 홍진경이 능력을 발휘하는 패션‧요리‧암기 등을 소재로 한 천재 시리즈를 제작하려 했다. 

이 PD를 만나 기획안을 본 홍진경은 “이 콘텐츠도 좋지만, 내가 가진 공부에 대한 열망을 방송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고, 그 제안을 이 PD가 받아들이면서 ‘공부왕찐천재’로 확장됐다. 웃기는 것은 기본값이며, 영상 안에 시청자들이 뭐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게 만들자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의도가 빛을 발하고 있다.
 

▲ ▲공부왕찐천재 ⓒ카카오TV

불과 5주 만에 실버 버튼(구독자 10만)을 받았으며, 지난 27일 진행된 라이브 스트리밍에는 무려 5000명의 팬들이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홍진경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야말로 뜨거운 반응이다. 

29일까지 채널의 영상은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뉜다. 천재가 되고 싶은 홍진경이 스스로 공부하는 영상을 담고자 했으나, 기획 의도와는 반대로 공부 준비에만 열을 올리는 ‘공부 준비’, 안철수 전 의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방송인 장성규, 정봉주 전 의원 등을 섭외해 교과목을 공부하는 ‘수업 시간’, 이 외 예능적인 요소가 중심인 ‘쉬는 시간’으로 나뉜다. 

유튜브 채널 ‘공부왕찐천재’ 개설
기획·재미·강의 참신…뜨거운 반응

세 항목 모두 각기 가진 재미가 다르다. 공부 준비 시리즈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의 전형성이 담겨있다. ‘공부 준비’는 홍진경이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 만든 자리였지만, 제작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관전 포인트다. 책상에 약 3분여간 앉아 영어단어를 외우던 홍진경은 금세 지루해졌는지 “이대로는 공부가 안 된다”며 제작진을 이끌고 문구점으로 향한다.

필기구와 노트 등을 쇼핑한 데 이어 머리에 좋다는 아몬드를 사들이다 못해, 배가 고프다며 수제비를 먹는 등 계속 미루더니, 급기야 관악산의 정기를 받아야겠다며 서울대로 향한다. ‘공부하는 영상이 꼭 필요하다’라는 제작진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릴 지경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했을 뿐 아니라 성적에서 밀리면 자존심이 상한다는 서울대 학생들의 말을 들으며, 공부를 못해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부를 실천하는 것은 홍진경에겐 험난한 여정이다. 관악산의 정기를 받았지만, ‘끝내 공부하는 영상은 보내지 않았다’는 자막으로 시리즈는 마무리된다. 단 하루 촬영만으로 총 4개의 고퀄리티 영상을 뽑아내는 제작진의 능력도 돋보인다. 

이 PD는 “홍진경 선배가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 얼마나 준비하는 게 많은지 보여주겠다’면서 준비한 콘텐츠다. 적당히 준비하다 공부를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오래 준비할 줄은 제작진도 몰랐다”며 “그 부분이 완전한 리얼리티라서 많은 분들이 더 재밌게 시청해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업 시간’은 ‘공부왕찐천재’의 킬러콘텐츠다. 유명인사가 선생님으로 출연해 홍진경을 비롯한 패널들에게 교과목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 ▲공부왕찐천재 ⓒ카카오TV

안철수, 나경원, 장성규, 정봉주 등이 출연해 문학과 수학, 경제와 정치를 가르쳤다. 나경원은 문학에서의 개념어, 안철수는 수학의 일차방정식, 장성규는 경제의 수요와 공급의 개념, 정봉주는 헌법의 기본권을 전했다.

선생님들은 초등학생 수준의 눈높이에서 매우 쉽게 설명을 한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네 패널은 즐겁고 유쾌하게 학습한다. 사실과 다른 얕은 지식이 가감 없이 드러나지만, 너도나도 모르기 때문에 부끄러움의 몫은 선생님이 가져간다. 

비록 부끄러운 장면이 있기는 하나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을 전반적으로 이해한다. 시청자들은 깨달음의 재미를 느끼고 있는 패널들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쉬는 시간’은 교과목 공부가 아닌 예능적인 색채가 강한 콘텐츠를 모아놨다. 라이브 방송이나 PPL을 활용한 영상, 홍진경의 딸 라엘양과 김구라 아들 MC그리의 퀴즈 대결 등 다양한 영상이 포함된다. 불과 한 달을 조금 넘겼을 뿐인데도 높은 수준의 영상을 15개나 업로드했으며, 조회 수는 모두 수백만에 이른다. 댓글 반응은 영상마다 매우 뜨겁다. 


‘공부왕찐천재’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지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모르는 것을 들키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닌, 모르는 것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껴 학문에 정진하는 올바름을 홍진경과 패널들이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이다. 

유쾌상쾌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패널들이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은 목적성 없이 자신의 정진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조선의 학자 정약용의 가치도 전달된다. 배움 자체가 얼마나 유의미한지 새삼 깨닫게 한다. 

학문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참신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재미와 배움의 희열을 동시에 잡은 ‘공부왕찐천재’의 앞날이 창창해 보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