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검찰총장 쟁탈전

독 든 성배 누가 드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 인선을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역대 정부 최후의 검찰총장은 그 말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포스트 윤석열’ 자리가 ‘독이 든 성배’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일요시사>가 하마평이 돌고 있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을 조명해봤다.

▲ (사진 왼쪽부터)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

검찰총장의 임기는 법에 보장돼있다. 1988년 12월31일 검찰청법이 개정되면서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조항(제12조 제3항)이 생겨났다. 검찰총장 임기제는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8명 빼고
중도 사퇴

검찰청법 개정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김기춘 전 총장을 비롯해 2년 임기를 끝까지 채운 역대 검찰총장은 8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3명은 중간에 사퇴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 봤던 윤석열 전 총장도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지난 4일 결국 검찰을 떠났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검찰총장들은 대부분 정부와의 갈등을 이유로 옷을 벗었다. 특히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는 검찰총장 입장에선 양날의 검이다. 여권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윤 전 총장도 전격 사표를 던졌다. 

김영삼정부의 ‘슬롯머신 사건’ 수사(박종철 전 총장), 한보그룹 비리사건 재수사(김기수 전 총장), 노무현정부의 ‘검사와의 대화’ 직후 사퇴(김각영 전 총장),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불구속 수사지휘권 발동(김종빈 전 총장) 등이다. 


정부 말기 낙점된 마지막 검찰총장도 그 끝이 좋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김태정 전 총장은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당시 야권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선언해, DJ 집권 이후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됐다. 하지만 옷 로비 사건으로 해임돼 재판까지 받았다. 

노무현정부에서 임명된 임채진 전 총장은 이명박정부에서 유임된 후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진행하다, 그가 서거하자 사퇴했다. 김수남 전 총장도 임명권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지만 문정부에서 재신임받지 못했다. 

역대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은 누가 임명되든 잡음을 피할 수 없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레임덕 외풍을 막아줄 방패 역할을 바라고 ‘자기 편’ 심기에 골몰한다. 취임 초기부터 검찰의 권한 줄이기에 골몰했던 문정부로선 마지막 검찰총장 인선이 검찰개혁의 ‘화룡점정’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 천거 절차 끝나
3명 추천 후 1명 제청

법무부는 윤 전 총장 후임자 인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총장 인선은 천거-추천-제청 절차를 거친다. 지난 15일부터 진행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민 천거 절차는 22일로 마무리됐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는 3명 이상으로 후보를 압축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고, 박 장관은 최종 후보자 1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검찰총장을 임명한다. 

이번에 인선될 검찰총장은 윤 전 총장 재임 당시 검찰이 문정부와 극심한 갈등을 빚은 것을 거울 삼아 친정부 인사로 내정할 가능성이 높다. 윤 전 총장은 1년 가까이 문정부와 대립하면서 대선후보 1위로 발돋움했다. 문정부로서는 마지막 검찰총장이 윤 전 총장의 전례를 밟을까 우려하고 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박성원 기자

이 과정에서 추천위 구성을 두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불거졌다. 추천위원 가운데 일부가 윤 전 총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로 채워지면서 이미 친정부 인사를 차기 검찰총장으로 점찍어 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 천거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추천위는 당연직 위원 5명과 비당연직 위원 4명으로 구성됐다. 당연직 위원은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정영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한기정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 등이고, 비당연직 위원은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길태기 전 법무부 차관, 안진 전남대 로스쿨 교수, 원혜욱 인하대 부총장 등으로 지정됐다. 

박 전 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면서 여러 뒷말이 나왔다. 박 전 장관은 문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출신으로, 퇴임 후 언론 등을 통해 윤 전 총장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그는 퇴임 후 윤 전 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당시 후보자 신분이던 조 전 장관의 낙마를 요구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파문이 일었다.

추천위
중립 논란

윤 전 총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 전 장관이 먼저 만남을 요청했고, 낙마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안진 교수의 경우 지난해 말 윤 전 총장을 대상으로 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당시 징계위는 윤 전 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박 장관은 “꽤 많은 분들이 천거됐다”며 “워낙 관심이 뜨거우니 아주 신중하고 충분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검찰 인선 과정에 ‘신중함’을 강조하면서 검찰총장 임명은 4·7 재보선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잡음이 나올 경우 오는 5월 초까지 밀릴 가능성도 있다.

박 장관은 국민 천거 후보 명단이나 규모 등에 대해서는 ‘보안사항’이라며 언급을 피한 상태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시되는 인사들에 대한 하마평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일각에서는 차기 검찰총장이 ‘이성윤이냐 아니냐’로 갈린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이 지검장은 문정부 들어 가장 ‘꽃길’을 걸은 검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검찰 내 빅4로 불리는 요직을 두루 거쳤고, 이제는 검찰 수장 후보로 언급되는 중이다.
 

▲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 ⓒ박성원 기자

전북 고창 출신의 이 지검장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로, 검찰 내 대표적 친문 인사로 꼽힌다. 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형사부장을 맡았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내 핵심보직을 거쳐 지난해 1월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의 장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랐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 여러 차례 윤 전 총장과 맞서면서 여권의 신임을 얻었다. 박 장관 취임과 동시에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도 윤 전 총장과 신현수 전 민정수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지킨 바 있다. 임기 말 정부 관련 의혹이 터져 나올 경우 최적의 방패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검찰 내 신망이 두텁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요소가 있다. 윤 전 총장과 추 전 장관의 대립 과정에서 당시 검사들이 윤 전 총장의 편에 섰을 때에도 이 지검장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 기반을 잃었다는 평이다. 조직 장악력이 중요한 검찰총장으로선 치명적인 대목이다.


이성윤 유력
수사 부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지검장은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당사자다. 최근 검찰의 4차 소환 통보에 ‘검찰의 강제수사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지검으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받으라는 출석요구를 받은 뒤다.

이 지검장은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해 달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북 남원 출신인 조 차장검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냈고, 문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감찰실장 겸 적폐청산 TF 팀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과학수사부장과 서울동부지검장을 역임했다. 

추 전 장관 재임 당시 대검 차장검사에 올라 처음에는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됐지만, 윤 전 총장 징계 사태 때 반기를 든 바 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철회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공개적으로 올린 것.
 

▲ 박검계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과 관련한 박 장관의 수사지휘에 대해서도 고검장 참여라는 묘수를 발휘하면서 오히려 총장 자리에서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도 국민 천거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 대신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육군법무관을 거쳐 2014년까지 판사로 재직했다. 이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19년 대검 감찰부장으로 임용됐다. 여러 차례 윤 전 총장의 반대편에 선 바 있고, 최근 한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과 관련한 대검 부장회의에선 기소 의견을 냈다. 

내부 인사는 불안요소 있고
외부 인사로 안전하게 간다?

일각에서는 불안요소가 많은 내부 인사보다 외부 인사 중에서 검찰총장을 낙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다. 김 전 차관은 정부 고위직 중 공석이 날 때마다 거론될 만큼 정부의 신뢰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감사원 감사위원 등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광주 대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거친 법조계 엘리트로 통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서울고검 형사부장, 대검 과학수사부장, 서울북부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박상기‧조국‧추미애 등 문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모두 거친 친여 인사로 꼽힌다. 사법연수원 20기로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연장자라는 점에서 스스로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금로 전 법무부 차관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청주 신흥고와 고대 법대, 한양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과를 졸업한 이 전 차관은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 동부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중앙지검, 대검 수사기획관, 기획조정부장, 법무부 차관, 대전고검장 등을 냈다. 문정부 첫 법무부 차관과 초대 수원고검장을 지내는 등 정부와의 관계가 원만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 문재인 대통령

양부남 전 부산고검장도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전남 담양 출신인 양 전 고검장은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단장을 맡았을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의 수사 개입 등을 주장하며 검찰 수뇌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적이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대검 형사부장, 광주지검장 등을 거쳤다. 지난해 8월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선거 지면
친정부로?

4·7 재보선과 검찰총장 인선을 연계해서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이길 경우 차기 검찰총장은 친정부 인사 쪽으로 쏠리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4·7 재보선이 내년 3월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만큼 여권이 서울과 부산 두 곳에서 모두 패배한다면, 문 대통령의 레임덕 가속은 물론 정계개편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재연될 경우 정부를 겨냥했던 검찰 수사가 전선을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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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