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영원한 현대맨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51년’ MK시대 막 내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지난해 10월 공식 은퇴를 선언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기 이사직 사임을 마지막으로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정 명예회장은 51년간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경영권은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넘겼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현장경영, 품질경영, 뚝심경영이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자동차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5위에 이르기까지 끌어올리며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통 통한
현장경영

정 명예회장은 1970년 현대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1974년에 현대자동차 서비스의 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인의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부품 조달을 위해 직원들과 함께 트럭에 자동차 부품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부터 그는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경험을 얻고 해결책을 찾았다. 

일을 마치는 저녁 시간에는 서비스센터 한쪽에 놓인 드럼통에 삼겹살을 굽고 직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애로사항에 대해 듣고 소통했다고 한다. 그는 직원과의 소통이 현장 경영을 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겼다. 

경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현장을 찾아 직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입사원 연수에 빠짐없이 참석해 새내기들의 손을 잡고 “회사의 미래를 잘 부탁한다”고 말을 전하기도 했다. 


현장에 직접 가서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한 그는 1977년에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설립했다. 현대정공은 컨테이너 사업으로 전 세계 공급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정 명예회장을 경영인으로서 인정하게 된 계기라고 전해진다.

현대정공은 사업 내용에 자동차 제조판매업을 추가해 갤로퍼를 생산했고, 이는 정 명예회장이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다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갤로퍼의 성공을 앞세워 ‘포니 정’이라 불리던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에게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을 이어받고 독립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후 경영 위기에 처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자동차 관련 지식이 많았던 그는 기아의 발전을 위해 엔진공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엔진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중요하게 생각해 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불꽃 튀는 위험한 현장까지 
직접 발로 뛰는 현장경영 

정 명예회장은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 반드시 현장으로 갔다. 보고서를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개선을 촉구했다.

현장경영을 중요하게 여겨 해외 출장도 잦았다. 미국, 인도 등 해외 공장으로 가 직원들에게 현장의 문제점을 옆에서 듣고 문제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의 현장 경영철학은 과거 제철소 사업 추진에서도 드러난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는 정 명예회장이 애정을 갖고 있던 곳이다. 그는 임원에게 “양재동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당진이 아른거린다. 자려고 누워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현장이 보인다.”며 3일에 한 번은 반드시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의 현장경영으로 제철소는 3년 만에 착공을 완료해 연간 400만톤 이상의 조강 생산능력을 갖춰 자체적으로 강판과 후판을 생산했다. 정 명예회장이 갑작스럽게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일이 잦다 보니 직원들도 현장을 챙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전해진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불꽃이 튀고, 철골구조가 많은 위험한 현장에 경영자가 직접 나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건설책임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맡은 분야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현장경영과 더불어 정 명예회장이 강조한 것은 품질경영이다. 미국에 현대자동차가 처음 진출한 시기는 1986년이다. 저렴한 자동차로 주목받았지만, 품질과 성능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고 차량 판매 역시 적자 상태였다.

심지어 1998년 10월 미국의 한 토크쇼에서 진행자가 “우주에서 장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출연자는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자동차 로고를 붙이면 우주 비행사가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하기까지 했다.

파격적
품질경영

미국 언론 역시 현대의 영문 로고를 두고 ‘저렴하지만 운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Hope You Understand Nothing’s Driveable And Inexpensive)’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동차에 대한 품질 경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의 자동차는 무상보증 기간을 3년·5만마일에서 10년·10만마일로 바꿨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현대자동차가 품질에서 뒤처져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으나 정 명예회장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사장과 임원을 모아 노동자 옆에서 배우게 해 자동차의 품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의 미국 판매량은 1998년 9만대에서 2003년 40만대로 늘었다.

차량 전체 누적 판매량은 1999년 2100만대에서 20년이 지난 현재 5배가 넘는 1억1000만대로 늘었다. 팔렸다. 매출 역시 현대자동차가 기업으로 분리하기 이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현대 자동차는 품질 평가 부문에서 2000년 37개 자동차 회사 중 34위에서 2006년 3위로 상승, 2016년은 포르셰를 제치고 1위를 달성했다.

품질을 강조한 그의 경영정신은 남양연구소 투자에서도 드러난다. 남양연구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소로, 현대의 울산연구소와 기아의 소하리공장을 하나로 통합한 곳이다.
 

▲ 현대기아차 사옥 ⓒ고성준 기자

정 명예회장이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는 남양연구소에 투자한 이유로 “연구개발 역량과 효율 극대화를 통해 품질을 높여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제철소만큼 남양연구소를 자주 방문해 직접 주행 테스트 등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피러스의 성능 시험 중 정 명예회장의 귀에 소음이 포착된 적이 있다. 


스피드
뚝심경영

임원들은 소음이 차량 운행에 전혀 문제가 없고, 소음 문제를 해결하면 차량의 선적 날짜에 맞출 수 없다고 전했지만 그는 “이대로 팔 수 없다”며 소음 제거를 위한 팀을 꾸려 완벽한 자동차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정 명예회장은 부족한 차량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개선했고, 오피러스는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품질 개선에 힘을 쏟자 세계는 현대자동차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동차산업 공헌상을 수상해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200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비즈니스위크 자동차 부문 최고의 경영인에 선정됐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과 경영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모두가 힘들 것이라 예측해도 그는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일을 진행시켜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전력의 부지 입찰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투자를 했던 성향이 그렇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15년 세계 유가 하락과 미국의 경제 보복으로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았을 때, 그가 직접 러시아 공장을 방문해 “러시아에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며 시장에서 철수하는 다른 업체와 다르게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기아자동차를 인수했을 때도 비슷하다. 당시 현대자동차그룹은 삼성그룹과 기아자동차의 인수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계속된 유찰로 3차까지 간 입찰경쟁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자동차의 부채 7조4000억원과 1조1781억원 인수 비용을 모두 떠안았다. 임원들은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위기라며 정 명예회장을 말렸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여겨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도 공장을 확장하고, 중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해 사업을 확장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공장 건설에 관련해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국내 부품업체와 공동 진출을 하는 방법을 적용해 협력업체의 성장을 꾀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경제계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위기가 기회“ 공격적 투자
부친 닮은 과감한 사업운영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 산업이 점차 발달하자 뚝심경영을 발휘한다. 바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만드는 행보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경제 대침체로 인해 미국 자동차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는 소극적인 다른 업체와 달리 고급 자동차 제작에 주력했다.

제철소 건립으로 이미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주요 자동차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자동차용 강판 자체 개발 및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기초 소재 단계부터 차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구조를 갖춰 차체 주행 성능, 디자인 등에서 모든 준비를 끝냈다. 

당시 출시된 2세대 제네시스를 두고 업계 전문가는 “견고한 차체를 기반으로 한 차량의 5대 기본성능(동력, 승차감, 안전성, 내구성, 정숙성)과 디자인이 높은 수준의 자동차”라고 평가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수소 자동차의 초석도 정 명예회장이 마련했다. 오일쇼크와 외환위기로 자동차 수요가 줄자, 발 빠르게 수소·전기 자동차 개발에 착수한 현대자동차그룹은 2000년 시험용 산타페 수소 전기차를 선보였다. 
 

정 명예회장은 마북연구소를 찾아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도 자동차를 굴려야 한다”며 “하고 싶은 기술을 마음껏 다 적용해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개발을 지시했다. 정 명예회장의 지시와 연구 개발 끝에 2013년 투싼 수소 전기차가 세계 최초 출시됐다. 

정 명예회장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단기간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세계시장으로 손을 뻗어 생산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을 내수기업에서 세계 자동차 경쟁업체들과 경쟁하는 기업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현대 스피드’라는 수식어로 정 명예회장의 추진력과 과감함을 높게 평가한다.

그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로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새벽부터
대책 마련

정 명예회장은 새벽 6시30분에 출근해 하루 종일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현장과 제품 품질을 직접 챙기며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업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의 퇴임으로 경영 환경과 방식이 바뀌고 있지만, 현장에서 쌓은 그의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결정에 대해 정 명예회장이 자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차 3세 정의선 청사진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현대 자동차가 완벽한 정의선 체제로 새 출발한다. 아직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의선 회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단계가 남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하는 안건도 함께 의결했다.

주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들은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 기업 실적이 양호한 것 같다”며 “형식만 갖춘 준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개선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새로운 사업의 한 축인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관련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첫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는 “부진했던 중국 시장에 재진출해 그룹의 위상을 회복하고 상용차 분야 수익성을 높여, 미래사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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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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