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세계가 열광하는 국민배우 윤여정

어제, 오늘, 내일을 다르게 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윤며들다’는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신조어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이 출중하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윤며들고’ 있는 건 비단 한국뿐이 아니다. 미국 등 전 세계가 75세 배우 윤여정에게 열광 중이다. 윤여정은 27관왕(지난 3일 기준)의 새로운 역사를 쓰며 오스카상 수상까지 바라보고 있다. 배우 윤여정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봤다. 
 

▲ 배우 윤여정

“목소리가 별로라 배우 하기엔 글렀다.” 과거 TBC의 한 PD는 윤여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윤여정은 목소리 때문에 과거에 비선호도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50개가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지금까지도 연기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순탄치 않은
여정의 여정

윤여정은 명문이라 꼽히는 이화여자고등학교에 다녔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위궤양을 앓았다. 시험을 못 볼 만큼 아팠는데, 그 영향으로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고 한다.

꿈을 고민하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윤여정을 배우의 세계로 끌어들인 TBC가 개국했다. 당시에는 배우가 신선한 직업이라 여겨 도전할 마음이 들었다. 배우를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TBC에서 진행 도우미로 일하던 중, 스태프의 권유로 탤런트 시험을 보게 됐다. 그 결과, 1966년에 TBC 공채 3기 배우로 데뷔했다. 

TBC의 전속 배우를 뽑는 자리에서 탈락해 KBS로 가서 면접을 봤다. 윤여정은 ‘인사를 하지 않아 인격 수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안경을 벗고 다닌 것이 인성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윤여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김기영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은 때부터다. 1971년 김 감독의 <화녀>로 영화계에 데뷔한 윤여정은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윤여정은 처음에 김 감독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감독은 윤여정에게 맨손으로 쥐를 잡게 하거나 내용을 알리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에게 쥐 떼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윤여정은 <화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앞으로 김 감독과 작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심지어 당시 김 감독은 계약서에 윤여정이 매일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도대체 나와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나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김 감독은 윤여정을 매일 만나 그를 관찰했다. 평소 지었던 윤여정의 표정, 손짓, 몸짓을 연기할 때 활용했다.

영화 <미나리>서 인상 깊은 연기 
끝나지 않은 수상…27관왕 금자탑

윤여정은 자신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영화 속 캐릭터를 위해 자신에 대해 연구하는 김 감독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윤여정이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구하게 된 계기다. 윤여정은 <화녀>를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잘나가던 윤여정은 갑자기 연기 생활을 쉬었다. 유명 스타와의 결혼 생활 때문이다. 유명 스타와의 결혼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남편과 이혼 후 가진 돈도 없이 2명의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 됐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윤여정은 그대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혼 후 1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나이는 40대였다. 촬영장 시스템은 바뀌었고, 그의 자리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역할은 단역 뿐이었다.

생계를 위해서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그 시기에 연기가 빛을 발했다고 한다.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그 연기가 좋았다라고 한다”는 것.
 

▲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윤여정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현실 감각을 보여주는 배우다. 배우의 경우 자아도취에 빠져 현실감각을 잃기도 하는데, 윤여정의 연기에서는 냉정한 현실감이 보인다. 그의 연기는 보편적인 인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킨다.

누군가의 평범한 엄마 역할이든, 이혼이나 불륜을 겪는 특별한 역할이든 윤여정은 자신만의 색감을 드러낸다.

남편과 자식들을 털어버리고 ‘공개 바람’을 선언하는 시어머니 홍병한(<바람난 가족>)이나,  재벌가 백씨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 백금옥(<돈의 맛>)과 같은 독특한 역할을 맡을 때도 윤여정의 연기는 어딘가 보편성을 담보한다. 이 영화로 칸 국제영화제에 입성했다.

살아있는
현실감각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해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했고, <여배우들>에서는 사람과 배우의 간극을 정확히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윤여정은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윤여정의 연기는 전형성을 탈피한다. 항상 연기에 자신의 색감을 입힌다. 윤여정이 파격의 대명사가 된 이유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 기자회견에서 “전형적인 엄마, 할머니 연기는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를 연기로 선보인다. 그는 “정해진 역할을 배우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서 평범한 역할도 달라진다”며 “나는 타고난 것이 없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배우다.

윤여정은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의 배역에 대해 “뒤돌아봐도 작품 선택이 좀 용감했던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역할은 싫었다. 특히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건 질색했다”며 “평범할 수 있는 배역들을 끊임없이 나만의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스스로를 연구해봤는데 싫증을 잘 낸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싫다. 그러면 하는 자신도 보는 사람도 지겨워한다”며 “매일 흔들리는 게 인생이기에 내일은 또 다르다”고 말했다. 윤여정이 오랜 시간 도전을 이어 나가는 이유다.
 

그가 연기하는 배역들은 근사하지도 않고 평범하지는 않다. 그는 맡은 역할이 크고 작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연기를 한다.


그는 “노배우인 난 현재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작가면 반드시 한다. 주인공을 꼭 해야겠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저 노배우로서 앞으로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싶다”며 “난 아직도 편견을 깨고 싶고, 도발도 하고 싶고, 늘 도전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진심과 믿음
솔직과 인정

윤여정은 한국 나이로 75세다. 지치고 힘들어서 일을 쉬려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멈춘 적이 없다. 그는 국민 배우 타이틀이 싫다. 오로지 “나는 매 순간 변화를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이런 연기 내공들이 쌓여 윤여정은 <미나리>의 순자 역할을 더 잘 소화할 수 있었다. <미나리>는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간 가족들의 이야기다.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요리는 하지 않지만, 나쁜 말은 한다. 몸에 좋은 것은 자기만 먹는다. 이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구사하는 어린 데이빗과 한국 외할머니의 사소한 문화적 충돌로 이어진다. 한국식으로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의 방식은 뻔뻔해 보이지만 때론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윤여정이기에 그의 방식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윤여정의 연기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4대 비평가협회상으로 불리는 LA 비평가협회 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등 총 27개의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미국 배우조합상(SAG)에서도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전 세계 수많은 언론은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 영화 하녀 포스터

윤여정이 <미나리>를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나는 사람을 보고 일을 하지, 작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안 보게 됐다. 작품을 본다고 해서 갑자기 뭐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사람이 좋아서 했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함께하는 사람을 믿는다. 타인을 믿는 만큼 서로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나리>에서 그는 “내가 처음에 시작할 때 감독에게 물었다. 할머니 기억이 생생할 텐데 할머니하고 똑같이 해야 하느냐, 그랬더니 알아서 하라 그랬다. 그래서 감독에게 정말 믿음이 갔다”며 사람을 믿는 모습을 보였다.

매순간 노력하며 변화 추구
도전 멈추지 않는 노력파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출연했을 때는 윤여정은 “역할이 탐나지는 않았다.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안다. 무료로 출연했다”며 “60세가 넘어서부터는 사치하고 살기로 작정했다”고 했다. 이어 “좋아하는 사람의 작품은 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작품은 하지 않는다”며 “출연료를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하는 것”이라고 출연 이유를 말했다.

tvN의 <윤식당> <윤스테이>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나영석 PD의 솔직한 말 덕분이다. 나 PD는 윤여정에게 항상 “아직 잘 모른다. 해봐야 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현실적인 솔직함은 나 PD가 윤여정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윤여정에게 배역은 아무것도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진심이 통하고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그의 출연 이유가 된다.

윤여정은 말을 거침없이 하기로 유명하다. 자신을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했다. 그는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다. 언제나 서러움이 있다.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다”며 데뷔 후 50여년간 배우 생활을 하며 힘든 순간을 잘 극복해 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윤여정은 언제나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윤여정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인정할 줄 안다. 무려 스무 살이 어린 후배에게서도 배울 것을 찾는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양동근의 연기를 본 윤여정은 “걔가 나보다 연기를 더 잘한다고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장면에 완전히 몰입한 양동근의 연기가 자신의 재능보다 위에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진실을 떠나 어린 후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지금의 윤여정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이렇게 윤여정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까다롭고 깐깐하다고 스스로 표현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고치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국에는 다 배울 것이 있다”며 경험의 소중함을 대중에게 알렸다.

오스카만 
남았다

윤여정은 더 많이 도전하고 싶다. 배우 윤여정의 도전은 인간 윤여정의 도전이다. 도전이 두렵지만, 윤여정은 깊숙하게 발을 넣고 본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서 보여 주는 게 도전이라고, 윤여정은 생각한다. 윤여정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보습을 보여주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리 보는 오스카 시상식

배우 전도연은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꿈을 꿨다고 한다.

봉 감독은 윤여정에게 전화해 “선생님, 우리도 가요. 오스카”라는 말을 했다고.

전도연이 1년 전에 한 말이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윤여정이 출연한 <미나리>가 오스카 진출의 목전에 있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선셋필름, 서클어워즈 앙상블상 등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계의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고 있다.

전 세계는 <미나리>를 통해 윤여정이 보여준 한국 할머니 캐릭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해외에는 없는 할머니여서 더욱 더 그렇다고들 한다. 

오스카상은 아시아에 유난히 벽이 높았다.

아시아 여자배우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은 92년 역사상 단 한 차례뿐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오스카상 후보로 언급되는 배우들도 절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 기세라면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도 무리가 아니라는게 다수의 전망이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