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세계가 열광하는 국민배우 윤여정

어제, 오늘, 내일을 다르게 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윤며들다’는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신조어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이 출중하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윤며들고’ 있는 건 비단 한국뿐이 아니다. 미국 등 전 세계가 75세 배우 윤여정에게 열광 중이다. 윤여정은 27관왕(지난 3일 기준)의 새로운 역사를 쓰며 오스카상 수상까지 바라보고 있다. 배우 윤여정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봤다. 
 

▲ 배우 윤여정

“목소리가 별로라 배우 하기엔 글렀다.” 과거 TBC의 한 PD는 윤여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윤여정은 목소리 때문에 과거에 비선호도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50개가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지금까지도 연기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순탄치 않은
여정의 여정

윤여정은 명문이라 꼽히는 이화여자고등학교에 다녔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위궤양을 앓았다. 시험을 못 볼 만큼 아팠는데, 그 영향으로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고 한다.

꿈을 고민하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윤여정을 배우의 세계로 끌어들인 TBC가 개국했다. 당시에는 배우가 신선한 직업이라 여겨 도전할 마음이 들었다. 배우를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TBC에서 진행 도우미로 일하던 중, 스태프의 권유로 탤런트 시험을 보게 됐다. 그 결과, 1966년에 TBC 공채 3기 배우로 데뷔했다. 

TBC의 전속 배우를 뽑는 자리에서 탈락해 KBS로 가서 면접을 봤다. 윤여정은 ‘인사를 하지 않아 인격 수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안경을 벗고 다닌 것이 인성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윤여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김기영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은 때부터다. 1971년 김 감독의 <화녀>로 영화계에 데뷔한 윤여정은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윤여정은 처음에 김 감독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감독은 윤여정에게 맨손으로 쥐를 잡게 하거나 내용을 알리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에게 쥐 떼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윤여정은 <화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앞으로 김 감독과 작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심지어 당시 김 감독은 계약서에 윤여정이 매일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도대체 나와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나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김 감독은 윤여정을 매일 만나 그를 관찰했다. 평소 지었던 윤여정의 표정, 손짓, 몸짓을 연기할 때 활용했다.

영화 <미나리>서 인상 깊은 연기 
끝나지 않은 수상…27관왕 금자탑

윤여정은 자신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영화 속 캐릭터를 위해 자신에 대해 연구하는 김 감독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윤여정이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구하게 된 계기다. 윤여정은 <화녀>를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잘나가던 윤여정은 갑자기 연기 생활을 쉬었다. 유명 스타와의 결혼 생활 때문이다. 유명 스타와의 결혼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남편과 이혼 후 가진 돈도 없이 2명의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 됐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윤여정은 그대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혼 후 1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나이는 40대였다. 촬영장 시스템은 바뀌었고, 그의 자리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역할은 단역 뿐이었다.

생계를 위해서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그 시기에 연기가 빛을 발했다고 한다.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그 연기가 좋았다라고 한다”는 것.
 

▲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윤여정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현실 감각을 보여주는 배우다. 배우의 경우 자아도취에 빠져 현실감각을 잃기도 하는데, 윤여정의 연기에서는 냉정한 현실감이 보인다. 그의 연기는 보편적인 인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킨다.

누군가의 평범한 엄마 역할이든, 이혼이나 불륜을 겪는 특별한 역할이든 윤여정은 자신만의 색감을 드러낸다.

남편과 자식들을 털어버리고 ‘공개 바람’을 선언하는 시어머니 홍병한(<바람난 가족>)이나,  재벌가 백씨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 백금옥(<돈의 맛>)과 같은 독특한 역할을 맡을 때도 윤여정의 연기는 어딘가 보편성을 담보한다. 이 영화로 칸 국제영화제에 입성했다.

살아있는
현실감각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해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했고, <여배우들>에서는 사람과 배우의 간극을 정확히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윤여정은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윤여정의 연기는 전형성을 탈피한다. 항상 연기에 자신의 색감을 입힌다. 윤여정이 파격의 대명사가 된 이유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 기자회견에서 “전형적인 엄마, 할머니 연기는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를 연기로 선보인다. 그는 “정해진 역할을 배우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서 평범한 역할도 달라진다”며 “나는 타고난 것이 없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배우다.

윤여정은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의 배역에 대해 “뒤돌아봐도 작품 선택이 좀 용감했던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역할은 싫었다. 특히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건 질색했다”며 “평범할 수 있는 배역들을 끊임없이 나만의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스스로를 연구해봤는데 싫증을 잘 낸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싫다. 그러면 하는 자신도 보는 사람도 지겨워한다”며 “매일 흔들리는 게 인생이기에 내일은 또 다르다”고 말했다. 윤여정이 오랜 시간 도전을 이어 나가는 이유다.
 

그가 연기하는 배역들은 근사하지도 않고 평범하지는 않다. 그는 맡은 역할이 크고 작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연기를 한다.


그는 “노배우인 난 현재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작가면 반드시 한다. 주인공을 꼭 해야겠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저 노배우로서 앞으로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싶다”며 “난 아직도 편견을 깨고 싶고, 도발도 하고 싶고, 늘 도전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진심과 믿음
솔직과 인정

윤여정은 한국 나이로 75세다. 지치고 힘들어서 일을 쉬려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멈춘 적이 없다. 그는 국민 배우 타이틀이 싫다. 오로지 “나는 매 순간 변화를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이런 연기 내공들이 쌓여 윤여정은 <미나리>의 순자 역할을 더 잘 소화할 수 있었다. <미나리>는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간 가족들의 이야기다.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요리는 하지 않지만, 나쁜 말은 한다. 몸에 좋은 것은 자기만 먹는다. 이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구사하는 어린 데이빗과 한국 외할머니의 사소한 문화적 충돌로 이어진다. 한국식으로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의 방식은 뻔뻔해 보이지만 때론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윤여정이기에 그의 방식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윤여정의 연기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4대 비평가협회상으로 불리는 LA 비평가협회 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등 총 27개의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미국 배우조합상(SAG)에서도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전 세계 수많은 언론은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 영화 하녀 포스터

윤여정이 <미나리>를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나는 사람을 보고 일을 하지, 작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안 보게 됐다. 작품을 본다고 해서 갑자기 뭐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사람이 좋아서 했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함께하는 사람을 믿는다. 타인을 믿는 만큼 서로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나리>에서 그는 “내가 처음에 시작할 때 감독에게 물었다. 할머니 기억이 생생할 텐데 할머니하고 똑같이 해야 하느냐, 그랬더니 알아서 하라 그랬다. 그래서 감독에게 정말 믿음이 갔다”며 사람을 믿는 모습을 보였다.

매순간 노력하며 변화 추구
도전 멈추지 않는 노력파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출연했을 때는 윤여정은 “역할이 탐나지는 않았다.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안다. 무료로 출연했다”며 “60세가 넘어서부터는 사치하고 살기로 작정했다”고 했다. 이어 “좋아하는 사람의 작품은 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작품은 하지 않는다”며 “출연료를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하는 것”이라고 출연 이유를 말했다.

tvN의 <윤식당> <윤스테이>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나영석 PD의 솔직한 말 덕분이다. 나 PD는 윤여정에게 항상 “아직 잘 모른다. 해봐야 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현실적인 솔직함은 나 PD가 윤여정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윤여정에게 배역은 아무것도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진심이 통하고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그의 출연 이유가 된다.

윤여정은 말을 거침없이 하기로 유명하다. 자신을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했다. 그는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다. 언제나 서러움이 있다.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다”며 데뷔 후 50여년간 배우 생활을 하며 힘든 순간을 잘 극복해 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윤여정은 언제나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윤여정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인정할 줄 안다. 무려 스무 살이 어린 후배에게서도 배울 것을 찾는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양동근의 연기를 본 윤여정은 “걔가 나보다 연기를 더 잘한다고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장면에 완전히 몰입한 양동근의 연기가 자신의 재능보다 위에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진실을 떠나 어린 후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지금의 윤여정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이렇게 윤여정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까다롭고 깐깐하다고 스스로 표현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고치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국에는 다 배울 것이 있다”며 경험의 소중함을 대중에게 알렸다.

오스카만 
남았다

윤여정은 더 많이 도전하고 싶다. 배우 윤여정의 도전은 인간 윤여정의 도전이다. 도전이 두렵지만, 윤여정은 깊숙하게 발을 넣고 본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서 보여 주는 게 도전이라고, 윤여정은 생각한다. 윤여정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보습을 보여주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리 보는 오스카 시상식

배우 전도연은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꿈을 꿨다고 한다.

봉 감독은 윤여정에게 전화해 “선생님, 우리도 가요. 오스카”라는 말을 했다고.

전도연이 1년 전에 한 말이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윤여정이 출연한 <미나리>가 오스카 진출의 목전에 있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선셋필름, 서클어워즈 앙상블상 등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계의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고 있다.

전 세계는 <미나리>를 통해 윤여정이 보여준 한국 할머니 캐릭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해외에는 없는 할머니여서 더욱 더 그렇다고들 한다. 

오스카상은 아시아에 유난히 벽이 높았다.

아시아 여자배우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은 92년 역사상 단 한 차례뿐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오스카상 후보로 언급되는 배우들도 절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 기세라면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도 무리가 아니라는게 다수의 전망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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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