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세계가 열광하는 국민배우 윤여정

어제, 오늘, 내일을 다르게 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윤며들다’는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라는 신조어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이 출중하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윤며들고’ 있는 건 비단 한국뿐이 아니다. 미국 등 전 세계가 75세 배우 윤여정에게 열광 중이다. 윤여정은 27관왕(지난 3일 기준)의 새로운 역사를 쓰며 오스카상 수상까지 바라보고 있다. 배우 윤여정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봤다. 
 

▲ 배우 윤여정

“목소리가 별로라 배우 하기엔 글렀다.” 과거 TBC의 한 PD는 윤여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윤여정은 목소리 때문에 과거에 비선호도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50개가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지금까지도 연기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순탄치 않은
여정의 여정

윤여정은 명문이라 꼽히는 이화여자고등학교에 다녔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위궤양을 앓았다. 시험을 못 볼 만큼 아팠는데, 그 영향으로 성적이 점점 떨어졌다고 한다.

꿈을 고민하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윤여정을 배우의 세계로 끌어들인 TBC가 개국했다. 당시에는 배우가 신선한 직업이라 여겨 도전할 마음이 들었다. 배우를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TBC에서 진행 도우미로 일하던 중, 스태프의 권유로 탤런트 시험을 보게 됐다. 그 결과, 1966년에 TBC 공채 3기 배우로 데뷔했다. 

TBC의 전속 배우를 뽑는 자리에서 탈락해 KBS로 가서 면접을 봤다. 윤여정은 ‘인사를 하지 않아 인격 수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안경을 벗고 다닌 것이 인성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윤여정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김기영 감독에게 러브콜을 받은 때부터다. 1971년 김 감독의 <화녀>로 영화계에 데뷔한 윤여정은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윤여정은 처음에 김 감독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감독은 윤여정에게 맨손으로 쥐를 잡게 하거나 내용을 알리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에게 쥐 떼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윤여정은 <화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앞으로 김 감독과 작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심지어 당시 김 감독은 계약서에 윤여정이 매일 자신과 만나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도대체 나와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나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김 감독은 윤여정을 매일 만나 그를 관찰했다. 평소 지었던 윤여정의 표정, 손짓, 몸짓을 연기할 때 활용했다.

영화 <미나리>서 인상 깊은 연기 
끝나지 않은 수상…27관왕 금자탑

윤여정은 자신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영화 속 캐릭터를 위해 자신에 대해 연구하는 김 감독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윤여정이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구하게 된 계기다. 윤여정은 <화녀>를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잘나가던 윤여정은 갑자기 연기 생활을 쉬었다. 유명 스타와의 결혼 생활 때문이다. 유명 스타와의 결혼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남편과 이혼 후 가진 돈도 없이 2명의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 됐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윤여정은 그대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혼 후 1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나이는 40대였다. 촬영장 시스템은 바뀌었고, 그의 자리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역할은 단역 뿐이었다.

생계를 위해서 연기 활동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그 시기에 연기가 빛을 발했다고 한다.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그 연기가 좋았다라고 한다”는 것.
 

▲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윤여정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현실 감각을 보여주는 배우다. 배우의 경우 자아도취에 빠져 현실감각을 잃기도 하는데, 윤여정의 연기에서는 냉정한 현실감이 보인다. 그의 연기는 보편적인 인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킨다.

누군가의 평범한 엄마 역할이든, 이혼이나 불륜을 겪는 특별한 역할이든 윤여정은 자신만의 색감을 드러낸다.

남편과 자식들을 털어버리고 ‘공개 바람’을 선언하는 시어머니 홍병한(<바람난 가족>)이나,  재벌가 백씨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 백금옥(<돈의 맛>)과 같은 독특한 역할을 맡을 때도 윤여정의 연기는 어딘가 보편성을 담보한다. 이 영화로 칸 국제영화제에 입성했다.

살아있는
현실감각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해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했고, <여배우들>에서는 사람과 배우의 간극을 정확히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윤여정은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윤여정의 연기는 전형성을 탈피한다. 항상 연기에 자신의 색감을 입힌다. 윤여정이 파격의 대명사가 된 이유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 기자회견에서 “전형적인 엄마, 할머니 연기는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를 연기로 선보인다. 그는 “정해진 역할을 배우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서 평범한 역할도 달라진다”며 “나는 타고난 것이 없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배우다.

윤여정은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의 배역에 대해 “뒤돌아봐도 작품 선택이 좀 용감했던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역할은 싫었다. 특히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건 질색했다”며 “평범할 수 있는 배역들을 끊임없이 나만의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스스로를 연구해봤는데 싫증을 잘 낸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싫다. 그러면 하는 자신도 보는 사람도 지겨워한다”며 “매일 흔들리는 게 인생이기에 내일은 또 다르다”고 말했다. 윤여정이 오랜 시간 도전을 이어 나가는 이유다.
 

그가 연기하는 배역들은 근사하지도 않고 평범하지는 않다. 그는 맡은 역할이 크고 작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연기를 한다.


그는 “노배우인 난 현재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작가면 반드시 한다. 주인공을 꼭 해야겠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저 노배우로서 앞으로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싶다”며 “난 아직도 편견을 깨고 싶고, 도발도 하고 싶고, 늘 도전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진심과 믿음
솔직과 인정

윤여정은 한국 나이로 75세다. 지치고 힘들어서 일을 쉬려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멈춘 적이 없다. 그는 국민 배우 타이틀이 싫다. 오로지 “나는 매 순간 변화를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이런 연기 내공들이 쌓여 윤여정은 <미나리>의 순자 역할을 더 잘 소화할 수 있었다. <미나리>는 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간 가족들의 이야기다.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요리는 하지 않지만, 나쁜 말은 한다. 몸에 좋은 것은 자기만 먹는다. 이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구사하는 어린 데이빗과 한국 외할머니의 사소한 문화적 충돌로 이어진다. 한국식으로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의 방식은 뻔뻔해 보이지만 때론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윤여정이기에 그의 방식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


윤여정의 연기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4대 비평가협회상으로 불리는 LA 비평가협회 상, 전미비평가협회상 등 총 27개의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미국 배우조합상(SAG)에서도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전 세계 수많은 언론은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
 

▲ 영화 하녀 포스터

윤여정이 <미나리>를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나는 사람을 보고 일을 하지, 작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안 보게 됐다. 작품을 본다고 해서 갑자기 뭐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냥 사람이 좋아서 했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함께하는 사람을 믿는다. 타인을 믿는 만큼 서로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나리>에서 그는 “내가 처음에 시작할 때 감독에게 물었다. 할머니 기억이 생생할 텐데 할머니하고 똑같이 해야 하느냐, 그랬더니 알아서 하라 그랬다. 그래서 감독에게 정말 믿음이 갔다”며 사람을 믿는 모습을 보였다.

매순간 노력하며 변화 추구
도전 멈추지 않는 노력파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출연했을 때는 윤여정은 “역할이 탐나지는 않았다.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안다. 무료로 출연했다”며 “60세가 넘어서부터는 사치하고 살기로 작정했다”고 했다. 이어 “좋아하는 사람의 작품은 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작품은 하지 않는다”며 “출연료를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하는 것”이라고 출연 이유를 말했다.

tvN의 <윤식당> <윤스테이>에 출연하게 된 계기도 나영석 PD의 솔직한 말 덕분이다. 나 PD는 윤여정에게 항상 “아직 잘 모른다. 해봐야 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현실적인 솔직함은 나 PD가 윤여정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윤여정에게 배역은 아무것도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진심이 통하고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그의 출연 이유가 된다.

윤여정은 말을 거침없이 하기로 유명하다. 자신을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했다. 그는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다. 언제나 서러움이 있다.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다”며 데뷔 후 50여년간 배우 생활을 하며 힘든 순간을 잘 극복해 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윤여정은 언제나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윤여정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대상이 누구든지 인정할 줄 안다. 무려 스무 살이 어린 후배에게서도 배울 것을 찾는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양동근의 연기를 본 윤여정은 “걔가 나보다 연기를 더 잘한다고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장면에 완전히 몰입한 양동근의 연기가 자신의 재능보다 위에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진실을 떠나 어린 후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지금의 윤여정을 만든 것은 아닐까.

이렇게 윤여정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까다롭고 깐깐하다고 스스로 표현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고치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에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국에는 다 배울 것이 있다”며 경험의 소중함을 대중에게 알렸다.

오스카만 
남았다

윤여정은 더 많이 도전하고 싶다. 배우 윤여정의 도전은 인간 윤여정의 도전이다. 도전이 두렵지만, 윤여정은 깊숙하게 발을 넣고 본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서 보여 주는 게 도전이라고, 윤여정은 생각한다. 윤여정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보습을 보여주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리 보는 오스카 시상식

배우 전도연은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하는 것을 보고 새로운 꿈을 꿨다고 한다.

봉 감독은 윤여정에게 전화해 “선생님, 우리도 가요. 오스카”라는 말을 했다고.

전도연이 1년 전에 한 말이 현실이 되는 모양새다.

윤여정이 출연한 <미나리>가 오스카 진출의 목전에 있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선셋필름, 서클어워즈 앙상블상 등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계의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고 있다.

전 세계는 <미나리>를 통해 윤여정이 보여준 한국 할머니 캐릭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해외에는 없는 할머니여서 더욱 더 그렇다고들 한다. 

오스카상은 아시아에 유난히 벽이 높았다.

아시아 여자배우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은 92년 역사상 단 한 차례뿐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오스카상 후보로 언급되는 배우들도 절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이 기세라면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도 무리가 아니라는게 다수의 전망이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