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명실상부 재계 맏형 최태원 SK그룹 회장

꼰대 떼고 권위주의 벗는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차철우 기자 = 지난달 24일, 최태원 SK 회장이 서울상공회의소 2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 회장의 회장 임명 전부터 재계의 관심도가 높았다. 재계는 최 회장이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모았다. 최 회장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서울상공회의소에 전파할 것으로 보인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서울상공회의소(이하 서울상의)를 잘 이끌어 나가도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다.” 최태원 회장의 출사표다. 견마지로는 ‘나라를 위해 바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춰 부르는 말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 하겠다’는 뜻이다. 4대 그룹(삼성, 현대자동차, SK, LG) 총수 중 처음으로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됐다. 최 회장의 제안으로 회장단을 카카오 김범수 의장 등 젊은 기업인 위주로 선출했다. 최 회장은 상공회의소(이하 상의)의 파격 변화를 예고했다.

최태원표
경영 철학

경제단체의 새로운 회장이 된 최 회장의 행보를 경제계가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앞으로 기업과 경제계를 대변하고, 기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최 회장은 의원 총회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경영 환경을 만들어 경제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강조했다.

최 회장의 취임으로 기업의 변화를 끌어낼지 여부가 주목된다.

지난 2016년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점점 위상을 잃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상의는 “전경련을 탈퇴한 한국 4대 그룹 중 최초로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된 것으로 경제계 발전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상의가 전경련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최 회장과 기업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대해 경제계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최 회장은 1998년 회장 취임 후, SK 경영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사업구조를 수출기업으로 사업구조를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SK의 자산은 최 회장 취임 당시 32조원이었으며 2019년에는 200조원을 돌파했다. 재계 순위는 5위에서 3위가 됐다. 매출액은 1997년 36조원에서 2018년 말 기준 184조원으로 5배 증가했다.

최 회장은 SK의 경영철학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요하게 여겼다. 재계는 최 회장이 SK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히 했다는 평가다. 최 회장은 SK를 내수 중심에서 수출 중심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바꿨다. 취임 이후 글로벌 경영을 강화해 수출액이 1998년 8조원에서 2017년 75조원으로 9배 증가했다. 이렇듯 SK가 탄탄한 수출기업이 되도록 이끌었다.

최 회장이 ESG 경영철학을 갖게 된 계기는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소셜밸류커넥트 2019’ 에 참석한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대화를 통해서다. 최 회장은 SK에서도 ESG를 항상 강조해왔다. SK를 경영하며 사회적 책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공유 인프라 등 사회적 가치를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 처음으로 상의 수장
“견마지로 자세로” 파격 변화 예고

ESG란 기업 경영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ESG라는 용어는 지난 2004년 UNGC(유엔글로벌콤팩트)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됐다. 최 회장은 세계 시장의 변화에 발 맞춰, SK에 ESG를 빠르게 적용했다.

최 회장은 지난 1월1일, SK 사내 메일을 통해 “기후 변화나 팬데믹 같은 대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곳을 먼저 무너뜨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회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SK그룹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ESG 경영 업무 중 하나로 수소 사업을 육성해 2025년까지 액화수소 28만톤을 생산하겠다”며 “수소 사업 진출은 회사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친환경으로 바꾸는 출발점”이라고도 했다.
 

▲ 김택진 NXC 대표와 김범수 카카오 의장

최 회장은 “우리가 키워가야 할 기업가치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 ESG 및 고객신뢰 같은 사회적 가치 등과 같은 유·무형 자산을 포함하는 기업가치 구성요소다. 이를 활용해 시장, 투자자, 고객 등과 소통하고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ESG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ESG는 이미 미국과 유럽 등에서 채택해 활용하고 있는 경영 방식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국내서도 최근 많은 기업이 ESG 경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SK를 비롯해 카카오, 네이버 등이 도입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부터 서울상의 회장 후보로 언급되며 주목받았다. 최 회장의 서울상의 회장직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인물은 박용만 전 서울상의 회장이다.

젊게~
변화의 바람

박 전 회장이 최 회장을 강력하게 추천한 이유는 “최 회장이 항상 자신의 경영철학 ESG를 언급하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상의 기업회원들 역시 최 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재계 관계자들은 SK의 경영 철학인 ESG 철학을 상의에 적용해 회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분석한다.

서울상의 회장단은 재계를 대표하는 대표적 집단이다. 그동안 상의는 IT 기업, 금융계 대표로 세울 적합한 기업인이 없다고 생각해, 경제단체 사이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최 회장은 상의 변화를 위해 IT 업계의 젊은 피들을 회장단에 임명했다.

그 결과, 서울상의는 전통 제조업, IT를 비롯해 4차 산업과 관련한 현안들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IT 계열과 스타트업 등에서 서울상의 부회장이 선출된 것 역시 최초다.

최 회장을 중심으로 그가 이끄는 회장단은 총 23명이다. 7명이 새로 합류하면서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 경영인들이 이끌던 자리를 대신해 급성장한 인터넷, 게임 분야의 신산업 주자들을 영입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내로라하는 국내 젊은 기업인들이 서울상의 회장단에 대거 선출됐다. 재계는 젊음을 불어넣은 적절한 세대교체란 시선이다. 신선한 피를 대거 수혈해 이뤄낼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

4차 산업 붐이 일기 전, 장치 및 설비 중심의 제조업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업으로 급변하는 시대의 산업구도 변혁이 경제단체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산업구도가 갑작스레 변하면서 경제단체들이 해내야 할 일들도 그만큼 늘어났다.

상의 관계자는 “기존 기업인들로는 급변하는 사회의 문제들과 요구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재계 내부 변화, 세대교체로 새로운 사업 분야 현안들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새롭게 합류한 젊은 기업인과 기존 소속된 기업인들 모두 ESG를 주목해야 한다”며 “최 회장을 필두로 기업 간 ESG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기업
소통과 협치

서울상의 회장단은 새로 합류한 기업인 외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재계의 굵직한 인물을 포함한다. 최 회장은 큰형님으로서 3·4세대 기업 경영인과 2세대 경영인 간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상의가 젊은 피를 영입한 반면, 경제단체의 큰 역할을 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기업 중심이 된 전경련과는 다르게 18만개 회원 기업의 경제단체인 상의가 한마음으로 일치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문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서울상의는 다른 경제단체들과 다른 의견을 표출한 경우가 많았다. 경제단체들이 의견을 표출해도 서울상의는 참석하지 않아 대표성이 없다는 지적도 다수였다.

그런 이유로 최 회장과 새롭게 선출된 회장단의 임무가 막중하다.
 

IT업계 관계자는 “IT 기업들은 4차 산업 시대와 더불어 시가 총액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크게 발휘되고 있다. 카카오 김 의장 등의 서울상의 영입으로 기업의 의견은 정부에게 잘 전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3세대 기업인과 2세대 기업인의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지를 두고 많은 기업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젊은 피의 수혈은 상의의 변화를 말한다. 앞으로 최 회장과 3세대 경영인의 책임감이 커질 듯하다.

물론 맏형 최 회장과 회장단 앞에 꽃길만 놓인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기업들은 경제 상황 및 정부의 기업규제 법안 등으로 큰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업인들은 이미 정부 및 정치인들과 수차례 이야기하고, 다양한 해결방안을 모색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느끼는 정책 부담감이 크게 증가했다. 현 정부는 기업들의 불만에도 연말·연초 상법, 공정거래법 등 기업규제 법안들을 하나둘 내놨고, 기업의 위기감은 점점 커졌다.

신·구 조화로 위기 극복 시너지 
기업 규제 관련 정부와 개선 의지

지난해 9월 집단소송법이 통과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해 기업을 상대로 한 법안의 허점이 있음을 상의는 쉽게 간과할 수 없다. 최 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법안을 만들어 압박을 가하니,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 감독법)이 개정됐다. 많은 경제계 사람들은 기업들의 의견 반영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최 회장은 4대 그룹 맏형으로서 기업과 사회에 영향력이 매우 큰 인물이다.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되자, 정치권과의 소통과 협치를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현재 최 회장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의의 영향력을 높이고, 기업들의 목소리를 적절히 반영해 18만개의 기업을 대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임기가 만료된 박 전 회장은 다음 주자 최 회장에게 무거운 바통을 전달했다.

지난달 18일 박 전 회장의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재임 중 상의에서 얻은 1순위 성과는 ‘샌드박스 규제’지만, 이와 관련해 기업들의 규제에 대해 더욱 애쓰지 못해 아쉽다”며 “국회는 기업을 도와주는 법안도 만들지만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법안도 만든다. 서울상의의 기업들이 합치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추가될 규제 법안에 대한 기업들의 의견을 내고, 이미 통과된 규제 법안에 대해 보완하도록 정부 및 국회와 소통하는 역할을 최 회장이 해 나가야 한다.

규제 혁신은 급격하게 변하는 세계시장 환경에서 국내 기업들이 미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필수 과제다. 기존 기업들의 새로운 사업과 스타트업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 해소 법안 처리를 정부와 논의해야 한다. 

아직 계류 중인 기업규제 법안과 다양한 기업들의 의견을 한 곳으로 모아 규제 해소 방안을 제시해 정부와 정치권에 제안해야 하는 큰 임무가 생겼다.

최 회장은 상의의 회장으로서 대기업에 좋은 것과 중소기업에 좋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대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의에 포함된 중소기업들의 불만을 초래할 것이다. 잘못된 기업 관련 법안들을 고쳐나가는 데 힘쓰는 경제계의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책임감
사명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정부와 소통해 법안을 조정하자는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이는 전임 박 회장이 계속해서 주장해왔으나 결국 마무리 짓지 못한 숙제다. 기업 발전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다. 양적으로는 국민 소득 증가와 국가 경제 발전, 질적으로는 생활 안정과 기업 발전을 꾀할 수 있다.

4대 기업 총수로서 최초의 서울상의 회장이 되어 맡은 임무는 굉장히 막중하다. 무거운 부담감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서울상의는 최 회장과 함께 파격적인 행보를 할 준비를 끝냈다. 최 회장이 서울상의를 이끌어 기업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해낼지, 앞으로가 주목된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SK 4대 핵심 사업 베팅은 계속된다 

최근 SK는 야구단, 석유화학계열사 지분 49%, SK바이오팜 지분을 일부 매각했다.

SK는 사업지주회사로 지분만 가지고 있는 순수지주회사가 아니다.

지난해 9월 ESR에 투자한 지분을 매각하면서 4800억원의 투자금액 대비 2.5배 이익을 챙겼다.

2019년의 투자, 회수와는 달리 SK바이오 팜 지분 일부는 직접 일군 곳을 매각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SK가 투자전문회사로서 성장하는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SK의 2021년 4대 핵심 사업은 첨단 소재(배터리, 반도체), 디지털(인공지능, 모빌리티, 인프라), 그린(수소·친환경에너지, 에너지·대체식품), 바이오(원료의약품, 위탁생산(CMO)·신약 개발)다.

주요 투자 분야는 미국의 수소 기업 플러그파워, 국내 전력 반도체업체 예스파워 테크닉스다.

최 회장은 핵심 4대 사업을 통해 SK를 글로벌 투자기업으로 육성할 것으로 보인다.

SK 관계자는 “계열사 지분 매각은 투자전문회사 SK가 투자와 육성, 기업공개, 투자금 회수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례”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 회장의 이번 지분 매각을 통해 “SK가 관심 있는 4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매각 지시와 많은 총알 준비는 향후 SK의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SK의 지분 매각을 통해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 많다.

SK 관련 리포트에서는 “SK의 핵심 사업과 관련해 투자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매각을 통한 이익과 사업 방면으로도 큰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회장의 단순한 감이 아니다. SK 경영에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이유다.

최 회장이 야구단을 매각한 이유도 눈길을 끈다.

야구단을 소유했던 SK텔레콤은 영업이익이 1조원 이상이다.

대부분의 야구단은 대부분 모기업의 파산으로 매각됐지만, SK의 경우는 다르다.

그렇기에 SK의 야구단 매각에 대해 여론은 많은 의문을 가졌다. 

최 회장은 야구단을 신세계에 매각해 1352억원의 인수대금이 생겼다.

매각을 통해 상업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등에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 회장은 ESG만큼 딥 체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눈에만 보이는 외형적 성장보다 미래 성장 사업을 개선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최 회장은 SK의 딥 체인지와 ESG를 통해 다른 기업들의 미래 투자 방향성을 제시했다.

앞으로 SK의 투자는 더욱 큰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