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명실상부 재계 맏형 최태원 SK그룹 회장

꼰대 떼고 권위주의 벗는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차철우 기자 = 지난달 24일, 최태원 SK 회장이 서울상공회의소 2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 회장의 회장 임명 전부터 재계의 관심도가 높았다. 재계는 최 회장이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모았다. 최 회장은 자신의 경영 철학을 서울상공회의소에 전파할 것으로 보인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서울상공회의소(이하 서울상의)를 잘 이끌어 나가도록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다.” 최태원 회장의 출사표다. 견마지로는 ‘나라를 위해 바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춰 부르는 말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 하겠다’는 뜻이다. 4대 그룹(삼성, 현대자동차, SK, LG) 총수 중 처음으로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됐다. 최 회장의 제안으로 회장단을 카카오 김범수 의장 등 젊은 기업인 위주로 선출했다. 최 회장은 상공회의소(이하 상의)의 파격 변화를 예고했다.

최태원표
경영 철학

경제단체의 새로운 회장이 된 최 회장의 행보를 경제계가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앞으로 기업과 경제계를 대변하고, 기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최 회장은 의원 총회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경영 환경을 만들어 경제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강조했다.

최 회장의 취임으로 기업의 변화를 끌어낼지 여부가 주목된다.

지난 2016년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점점 위상을 잃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상의는 “전경련을 탈퇴한 한국 4대 그룹 중 최초로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된 것으로 경제계 발전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상의가 전경련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최 회장과 기업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대해 경제계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최 회장은 1998년 회장 취임 후, SK 경영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사업구조를 수출기업으로 사업구조를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SK의 자산은 최 회장 취임 당시 32조원이었으며 2019년에는 200조원을 돌파했다. 재계 순위는 5위에서 3위가 됐다. 매출액은 1997년 36조원에서 2018년 말 기준 184조원으로 5배 증가했다.

최 회장은 SK의 경영철학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요하게 여겼다. 재계는 최 회장이 SK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히 했다는 평가다. 최 회장은 SK를 내수 중심에서 수출 중심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바꿨다. 취임 이후 글로벌 경영을 강화해 수출액이 1998년 8조원에서 2017년 75조원으로 9배 증가했다. 이렇듯 SK가 탄탄한 수출기업이 되도록 이끌었다.

최 회장이 ESG 경영철학을 갖게 된 계기는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소셜밸류커넥트 2019’ 에 참석한 티앤씨 재단 이사장과의 대화를 통해서다. 최 회장은 SK에서도 ESG를 항상 강조해왔다. SK를 경영하며 사회적 책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공유 인프라 등 사회적 가치를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 처음으로 상의 수장
“견마지로 자세로” 파격 변화 예고

ESG란 기업 경영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ESG라는 용어는 지난 2004년 UNGC(유엔글로벌콤팩트)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됐다. 최 회장은 세계 시장의 변화에 발 맞춰, SK에 ESG를 빠르게 적용했다.

최 회장은 지난 1월1일, SK 사내 메일을 통해 “기후 변화나 팬데믹 같은 대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곳을 먼저 무너뜨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회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SK그룹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ESG 경영 업무 중 하나로 수소 사업을 육성해 2025년까지 액화수소 28만톤을 생산하겠다”며 “수소 사업 진출은 회사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친환경으로 바꾸는 출발점”이라고도 했다.
 

▲ 김택진 NXC 대표와 김범수 카카오 의장

최 회장은 “우리가 키워가야 할 기업가치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 ESG 및 고객신뢰 같은 사회적 가치 등과 같은 유·무형 자산을 포함하는 기업가치 구성요소다. 이를 활용해 시장, 투자자, 고객 등과 소통하고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ESG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ESG는 이미 미국과 유럽 등에서 채택해 활용하고 있는 경영 방식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국내서도 최근 많은 기업이 ESG 경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SK를 비롯해 카카오, 네이버 등이 도입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부터 서울상의 회장 후보로 언급되며 주목받았다. 최 회장의 서울상의 회장직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인물은 박용만 전 서울상의 회장이다.

젊게~
변화의 바람

박 전 회장이 최 회장을 강력하게 추천한 이유는 “최 회장이 항상 자신의 경영철학 ESG를 언급하며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상의 기업회원들 역시 최 회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재계 관계자들은 SK의 경영 철학인 ESG 철학을 상의에 적용해 회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분석한다.

서울상의 회장단은 재계를 대표하는 대표적 집단이다. 그동안 상의는 IT 기업, 금융계 대표로 세울 적합한 기업인이 없다고 생각해, 경제단체 사이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최 회장은 상의 변화를 위해 IT 업계의 젊은 피들을 회장단에 임명했다.

그 결과, 서울상의는 전통 제조업, IT를 비롯해 4차 산업과 관련한 현안들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IT 계열과 스타트업 등에서 서울상의 부회장이 선출된 것 역시 최초다.

최 회장을 중심으로 그가 이끄는 회장단은 총 23명이다. 7명이 새로 합류하면서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 경영인들이 이끌던 자리를 대신해 급성장한 인터넷, 게임 분야의 신산업 주자들을 영입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내로라하는 국내 젊은 기업인들이 서울상의 회장단에 대거 선출됐다. 재계는 젊음을 불어넣은 적절한 세대교체란 시선이다. 신선한 피를 대거 수혈해 이뤄낼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

4차 산업 붐이 일기 전, 장치 및 설비 중심의 제조업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업으로 급변하는 시대의 산업구도 변혁이 경제단체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산업구도가 갑작스레 변하면서 경제단체들이 해내야 할 일들도 그만큼 늘어났다.

상의 관계자는 “기존 기업인들로는 급변하는 사회의 문제들과 요구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재계 내부 변화, 세대교체로 새로운 사업 분야 현안들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새롭게 합류한 젊은 기업인과 기존 소속된 기업인들 모두 ESG를 주목해야 한다”며 “최 회장을 필두로 기업 간 ESG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와 기업
소통과 협치

서울상의 회장단은 새로 합류한 기업인 외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재계의 굵직한 인물을 포함한다. 최 회장은 큰형님으로서 3·4세대 기업 경영인과 2세대 경영인 간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상의가 젊은 피를 영입한 반면, 경제단체의 큰 역할을 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기업 중심이 된 전경련과는 다르게 18만개 회원 기업의 경제단체인 상의가 한마음으로 일치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문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서울상의는 다른 경제단체들과 다른 의견을 표출한 경우가 많았다. 경제단체들이 의견을 표출해도 서울상의는 참석하지 않아 대표성이 없다는 지적도 다수였다.

그런 이유로 최 회장과 새롭게 선출된 회장단의 임무가 막중하다.
 

IT업계 관계자는 “IT 기업들은 4차 산업 시대와 더불어 시가 총액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크게 발휘되고 있다. 카카오 김 의장 등의 서울상의 영입으로 기업의 의견은 정부에게 잘 전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3세대 기업인과 2세대 기업인의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지를 두고 많은 기업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젊은 피의 수혈은 상의의 변화를 말한다. 앞으로 최 회장과 3세대 경영인의 책임감이 커질 듯하다.

물론 맏형 최 회장과 회장단 앞에 꽃길만 놓인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 기업들은 경제 상황 및 정부의 기업규제 법안 등으로 큰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업인들은 이미 정부 및 정치인들과 수차례 이야기하고, 다양한 해결방안을 모색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느끼는 정책 부담감이 크게 증가했다. 현 정부는 기업들의 불만에도 연말·연초 상법, 공정거래법 등 기업규제 법안들을 하나둘 내놨고, 기업의 위기감은 점점 커졌다.

신·구 조화로 위기 극복 시너지 
기업 규제 관련 정부와 개선 의지

지난해 9월 집단소송법이 통과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해 기업을 상대로 한 법안의 허점이 있음을 상의는 쉽게 간과할 수 없다. 최 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법안을 만들어 압박을 가하니,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 감독법)이 개정됐다. 많은 경제계 사람들은 기업들의 의견 반영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최 회장은 4대 그룹 맏형으로서 기업과 사회에 영향력이 매우 큰 인물이다. 최 회장이 서울상의 회장에 선출되자, 정치권과의 소통과 협치를 강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현재 최 회장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의의 영향력을 높이고, 기업들의 목소리를 적절히 반영해 18만개의 기업을 대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임기가 만료된 박 전 회장은 다음 주자 최 회장에게 무거운 바통을 전달했다.

지난달 18일 박 전 회장의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재임 중 상의에서 얻은 1순위 성과는 ‘샌드박스 규제’지만, 이와 관련해 기업들의 규제에 대해 더욱 애쓰지 못해 아쉽다”며 “국회는 기업을 도와주는 법안도 만들지만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법안도 만든다. 서울상의의 기업들이 합치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추가될 규제 법안에 대한 기업들의 의견을 내고, 이미 통과된 규제 법안에 대해 보완하도록 정부 및 국회와 소통하는 역할을 최 회장이 해 나가야 한다.

규제 혁신은 급격하게 변하는 세계시장 환경에서 국내 기업들이 미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필수 과제다. 기존 기업들의 새로운 사업과 스타트업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 해소 법안 처리를 정부와 논의해야 한다. 

아직 계류 중인 기업규제 법안과 다양한 기업들의 의견을 한 곳으로 모아 규제 해소 방안을 제시해 정부와 정치권에 제안해야 하는 큰 임무가 생겼다.

최 회장은 상의의 회장으로서 대기업에 좋은 것과 중소기업에 좋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대기업에만 유리한 정책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의에 포함된 중소기업들의 불만을 초래할 것이다. 잘못된 기업 관련 법안들을 고쳐나가는 데 힘쓰는 경제계의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책임감
사명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정부와 소통해 법안을 조정하자는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이는 전임 박 회장이 계속해서 주장해왔으나 결국 마무리 짓지 못한 숙제다. 기업 발전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다. 양적으로는 국민 소득 증가와 국가 경제 발전, 질적으로는 생활 안정과 기업 발전을 꾀할 수 있다.

4대 기업 총수로서 최초의 서울상의 회장이 되어 맡은 임무는 굉장히 막중하다. 무거운 부담감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서울상의는 최 회장과 함께 파격적인 행보를 할 준비를 끝냈다. 최 회장이 서울상의를 이끌어 기업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해낼지, 앞으로가 주목된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SK 4대 핵심 사업 베팅은 계속된다 

최근 SK는 야구단, 석유화학계열사 지분 49%, SK바이오팜 지분을 일부 매각했다.

SK는 사업지주회사로 지분만 가지고 있는 순수지주회사가 아니다.

지난해 9월 ESR에 투자한 지분을 매각하면서 4800억원의 투자금액 대비 2.5배 이익을 챙겼다.

2019년의 투자, 회수와는 달리 SK바이오 팜 지분 일부는 직접 일군 곳을 매각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SK가 투자전문회사로서 성장하는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SK의 2021년 4대 핵심 사업은 첨단 소재(배터리, 반도체), 디지털(인공지능, 모빌리티, 인프라), 그린(수소·친환경에너지, 에너지·대체식품), 바이오(원료의약품, 위탁생산(CMO)·신약 개발)다.

주요 투자 분야는 미국의 수소 기업 플러그파워, 국내 전력 반도체업체 예스파워 테크닉스다.

최 회장은 핵심 4대 사업을 통해 SK를 글로벌 투자기업으로 육성할 것으로 보인다.

SK 관계자는 “계열사 지분 매각은 투자전문회사 SK가 투자와 육성, 기업공개, 투자금 회수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례”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 회장의 이번 지분 매각을 통해 “SK가 관심 있는 4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매각 지시와 많은 총알 준비는 향후 SK의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SK의 지분 매각을 통해 기업가치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 많다.

SK 관련 리포트에서는 “SK의 핵심 사업과 관련해 투자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매각을 통한 이익과 사업 방면으로도 큰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회장의 단순한 감이 아니다. SK 경영에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이유다.

최 회장이 야구단을 매각한 이유도 눈길을 끈다.

야구단을 소유했던 SK텔레콤은 영업이익이 1조원 이상이다.

대부분의 야구단은 대부분 모기업의 파산으로 매각됐지만, SK의 경우는 다르다.

그렇기에 SK의 야구단 매각에 대해 여론은 많은 의문을 가졌다. 

최 회장은 야구단을 신세계에 매각해 1352억원의 인수대금이 생겼다.

매각을 통해 상업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등에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 회장은 ESG만큼 딥 체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눈에만 보이는 외형적 성장보다 미래 성장 사업을 개선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최 회장은 SK의 딥 체인지와 ESG를 통해 다른 기업들의 미래 투자 방향성을 제시했다.

앞으로 SK의 투자는 더욱 큰 이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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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