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앞세운 ‘박범계 노림수’ 막전막후

‘특명’ 한명숙을 구하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조직 인사에는 인사권자의 의중이 깊게 반영되기 마련이다. 인사 결과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난무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특히 검찰 인사의 경우 사건과 맞물려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 임은정 검사

지난 22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단행됐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 패싱 논란을 일으킨 검찰 고위간부 인사와 달리 비교적 조용히 넘어가는 모양새다. 인사를 둘러싼 검찰과 법무부, 청와대의 갈등이 일정 부분 봉합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관마다…
갈등 봉합?

이날 인사에서 법무부는 고검검사급 검사 18명에 대한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법무부는 조직 안정과 수사 연속성을 위해 최소한 선에서 인사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수사를 맡은 수사팀도 대부분 유임됐다.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이상현 형사5부장,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맡은 수원지검 이정섭 형사 3부장 등은 유임됐다. 서울중앙지검 변필건 형사1부장도 그대로 남게 됐다. 

변 부장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의 갈등으로 교체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는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한동훈 검사장의 무혐의를 주장하며 이 지검장에 반기를 든 바 있다. 윤 총장 징계 사태 때 이 지검장에게 사퇴를 건의한 서울중앙지검 2~4차장과 공보관 등도 변동 없이 자리를 지키게 됐다. 


이번 인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인권보호를 전담해온 검사들이 주요 보직에 발탁됐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1차장의 후임으로 나병훈 차장검사를 전보 조치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파견 나가있던 나 차장검사는 과거 서울남부지검과 광주지검에서 인권감독관을 지낸 경험이 있다.

패싱 논란 이후 인사
수사팀 대부분 유임

청주지검 차장검사에는 박재억 현 서울서부지검 인권감독관이, 안양지청 차장검사에는 권기대 현 안양지청 인권감독관이 자리를 옮겼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인사 규모와 구체적인 보직에 관해 대검과 충분히 소통했다”며 “앞으로도 국민이 공감하는 공정한 인사를 위해 더 경청하고 소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도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 업무보고에서 “권력 수사나 현안 수사를 못 하게 하는 인사 조치를 한 바 없다”며 “월성원전 수사를 하는 대전지검이나 김 전 차관 사건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에 인사로 손을 댄 게 없다”고 설명했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무난하게 넘어가는 듯했던 검찰 중간간부 인사는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에 대한 ‘원포인트 핀셋 인사’로 인해 술렁이고 있다. 임 연구관은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받았다. 

이로써 임 연구관은 감찰권과 함께 수사권을 갖게 됐다. 임 연구관은 그동안 수사 권한이 없어 제대로 된 감찰 업무를 할 수 없다며 직무대리 발령을 여러 차례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신의 SNS에 “불공정 우려 등을 이유로 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 발령이 계속 보류되고 있다”며 “제가 ‘제 식구 감싸기’를 결코 하지 않으리란 걸 대검 수뇌부는 잘 알고 있다”고 적었다. 

원포인트 
핀셋 인사

검찰청법 제15조는 검찰연구관이 고검이나 지검의 검사를 겸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검에 근무하는 연구관의 경우 수사 등의 업무를 맡기 위해선 일반 지검의 검사로 직무대리 발령해야 한다. 

대검 연구관의 직무대리 발령은 검찰총장의 권한이다. 하지만 윤 총장이 임 연구관에 대한 직무대리 발령을 하지 않자 법무부에서 ‘겸임 발령’이라는 우회로를 택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박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서 임 연구관 인사에 대해 “본인이 수사권을 갖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수사권을 갖길 희망하면 다 권한을 주는 것이냐”고 반문하자 박 장관은 “겸임 발령은 법에 근거해서…”라고 말했다.

임 연구관은 인사 이후 “여전히 첩첩산중이지만 등산화 한 켤레는 장만한 듯 든든하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이어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연구관으로서 이례적으로 수사권이 없어 마음고생이 없지 않았다”며 “다른 연구관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수사권이지만 저에게는 특별해 감사한 마음”이라고 적었다. 
 

▲ ▲▲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임 연구관에 대한 원포인트 핀셋 인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추미애 전 장관 때인 지난해 9월 당시 울산지검 검사였던 임 연구관은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발탁됐다. 대검 감찰부 산하 1~3과와는 별도로 대검 감찰부장 지시를 받아 감찰 정책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기존에 없던 자리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임 연구관은 “대검 연구관은 총장을 보필하는 자리인데 저 같은 사람이 가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검찰 내부 일부의 볼멘소리가 있는 듯하다”며 “대검 연구관은 검찰총장을 보필하는 자리가 맞다. 보필은 ‘바르게 하다, 바로잡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없던 자리
만들었다

추 전 장관과 박 장관 모두 임 연구관을 중용한 셈이다. 두 장관이 ‘임은정 카드’를 꺼낸 이유는 윤 총장에 대한 견제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임 연구관에 대한 이번 인사 이후 대검 감찰부에서 진행 중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 수수사건 감찰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여권의 대모로 불린 한 전 총리를 구하기 위한 인사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한 전 총리의 대법원 판결 이후 “재심을 청구하겠다”면서 “대법원 판결이 오판이라는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느냐”고 발언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2017년 8월23일 한 전 총리가 만기출소한 후 “억울한 옥살이에서도 오로지 정권교체를 염원하신 한명숙 총리, 정말 고생 많았다”며 “일부 정치검찰의 무리한 기소는 검찰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반증”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15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이 방송하는 ‘2020 후원회원의 날 특집 생방송’에 출연해 “코로나가 오므로써 2020년 전 세계가 재편되는 진동 같은 것을 느낀다”며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나라들이 모습이 이렇나’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생명을 가장 가운데 두고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원칙, 정치적 야심을 섞지 않는 우직함과 진심, 이런 것으로 문재인식 해결을 이끌었기에 코로나 상황에서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좋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낸 바 있다. 

한 전 총리 사건은 2015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사안이다. 한 전 총리는 건설업자인 한만호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챙긴 죄로 2015년 징역 2년형에 추징금 8억8300만원을 확정받고 복역을 마쳤다. 

직무대리 안 되니 겸임 발령
감찰권+수사권 날개 달아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진 건 지난해 5월. “검찰의 강압수사에 떠밀려 거짓말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는 한만호 비망록 전문이 공개되면서 당시 한 전 총리 수사팀의 재판 증인에 대한 위증 교사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씨는 2010년 7월 한 전 총리 기소 당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가 2010년 12월 1심 법정에선 “돈을 주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다음 해 2~3월 한씨가 번복한 진술은 거짓말이라며 검찰 측 재판 증인으로 나선 동료 재소자들이 수사팀 검사에 의해 증언 연습까지 한 뒤 법정에 나가 위증을 했다는 게 대검 감찰부 측이 감찰한 검사의 위증 교사 의혹의 내용이다. 
 

▲ 한명숙 전 국무총리

해당 의혹으로 한 전 총리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재심’까지 언급됐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산하 인권감독관실은 검사와 수사관 여러 명을 투입한 뒤 해당 의혹에 대해 ‘무혐의’로 대검에 보고했다. 

그런 와중에 임 연구관에게 수사권이 부여되면서 상황이 바뀌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증인들이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진술한 2011년 3월 23일부터 시작한 공소시효 10년이 오는 3월22일 만료되기 때문에 임 연구관에게 서둘러 수사권을 부여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콕 찝어서…
첫 수사는?

임 연구관 인사에 대한 검찰 내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임 연구관이 앞서 다수의 고발을 직접 제기해 감찰과 수사 등이 계류 중인 점을 고려할 때 공정성 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임은정, 윤석열에 칼끝?

지난 22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로 수사권을 부여받은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의 칼날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정조준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윤 총장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 콘텐츠 대표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이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서울중앙지검은 김 대표가 협찬금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등을 수사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주가 조작 공소시효는 이득을 본 금액이 5억원이 넘을 경우 최소 10년이다.

윤 총장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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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