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복귀 후폭풍’ 정권 겨눈 세 개의 칼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을라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최근 신현수 민정수석이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반발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정부는 사태 수습의 일환으로 검찰 수사팀을 유임했다. 이들이 맡고 있는 세 가지 사건은 공교롭게도 문재인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정권 수사팀이 때 아닌 추진력을 얻게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의 파동은 검사장급 인사로부터 비롯됐다. 법무부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유임했다. 심재철 검찰국장은 서울남부지검장에 전보됐다. 이들은 ‘추미애 라인 검사’로 불린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첫 인사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라인이 살아남은 셈이다.

앞서 신 수석과 박 장관은 인사에 대한 의견 조율에 나섰다. 하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사안을 보고했다. 곧 신 수석은 문 대통령에게 사임 의사를 밝혔다.

갈등
사의

문 대통령은 이를 반려했지만 신 수석의 의지는 강했다. 신 수석은 지난달 18일 휴가계를 제출, 주말까지 숙고의 시간을 보냈다. 신 수석은 ‘민정수석으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뜻을 지인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그달 22일 청와대로 복귀한 신 수석은 자신의 거취를 문 대통령에게 일임했다. 스스로 사의를 철회하지는 않으면서도 오히려 인사권자에게 공을 넘겨버렸다. 그러면서 티타임과 수석·보좌관 회의 등 일정을 소화하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검찰개혁은 문재인정부의 여러 국정과제 중 최우선 순위에 꼽힌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 내부로부터 잡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참모와의 갈등을 통해서다. 문 대통령은 침묵을 유지했지만 정치적 타격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정부여당과 검찰의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이 청와대에서 터져 나오면서 ‘이제는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신 수석의 이른바 ‘사표 투쟁’ 이후 검찰 중간간부 인사는 결이 달랐다. 사실상 검찰 쪽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면서 갈등을 진화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문정부가 불편해 하는 사건들에 대한 수사가 동력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크게 세 가지 사건이 그렇다.

우선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이상현 형사5부장이 유임됐다. 박 장관은 지난 24일 검찰 인사 이후 월성 수사에 대해 “인사로 보여드렸다”며 수사의 연속성을 보장해줬다는 점을 내비쳤다. 박 장관은 법무부 장관 임명 전, 검찰의 월성 수사를 정치적 수사라고 비판한 바 있다.

원전 수사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이 부장은 설 연휴를 전후로 수사 전반을 재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관련해 상당한 시간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사장 인사 갈등, 민정수석 사의 표명
중간 간부 인사, 검찰 의견 수용

백 전 장관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업무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산업부 공무원들에게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을 지시한 혐의다. 검찰은 지난달 9일 법원에 백 전 장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수사는 어려움을 겪게 됐다. 다만 이 부장의 유임으로 동력을 유지하게 됐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수사의 또 다른 관건은 채희봉 전 산업정책 비서관이다.

법조계는 채 전 비서관의 소환조사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채 전 비서관은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특히 청와대 윗선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채 전 비서관은 월성 원전 조기폐쇄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앞서 수사팀은 채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포렌식 자료를 검토한 바 있다.

오는 9일 자료 삭제 혐의를 받는 산업부 공무원들의 재판이 시작된다. 검찰은 그전에 추가 증거 확보에 공들일 방침이다.

한편 윤 총장은 이번 인사를 앞두고 월성 원전 수사에 대해서는 ‘한창 진행 중인 사건이라 교체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관건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이정섭 형사3부장도 살아남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4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정식 출석을 요청한 바 있다.

이 지검장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부장 시절,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려던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접수된 고발장에 따라 이 지검장을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로 전환했다.

검찰 수사팀은 지난달 세 차례에 걸쳐 이 지검장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하지만 이 지검장은 검찰의 정식 출석 요청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앞서 검찰은 이 지검장이 참고인 신분이었을 당시에도 출석 일정을 조율하려 했지만 이 지검장은 응하지 않았다.
 

▲ 대검찰청 ⓒ고성준 기자

이 지검장은 지난달 17일 입장문을 통해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가 안양지청의 수사를 중단토록 압박했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통상적인 지휘였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이 지검장의 의혹 부인과 출석 거부 등에 대한 검찰의 향후 조치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특히 강제수사 전환 가능성을 간과하기 어렵다. 통상 검찰은 피의자에게 두 차례 이상의 출석요구서를 보내고, 불응 시 체포영장 청구 등을 통해 강제수사한다.


함께 진행 중인 ‘불법 출금 조처 의혹’ 수사는 비교적 궤도에 안착한 상태다.

검찰은 지난달 16일~23일까지 의혹의 핵심 인물인 차규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이규원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를 피의자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개입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이 비서관은 불법 출금 조처 의혹이 제기된 초기부터 거론됐던 인물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권상대 공공수사2부장 또한 유임됐다. 권상대 부장 수사팀은 지난달 초까지 사건 관계자 소환 조사를 마쳤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송철호 시장 등 13명을 일괄 기소했지만, 주요 피의자 소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수사도 1년 넘게 지연됐다. 하지만 최근 수사가 다시 진행되면서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실장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송철호 울산시장 경쟁 후보였던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의 핵심 공약인 산재모 병원 예비타당성 조사 발표를 늦추는 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안별
3개팀 진행


신 수석의 사의 파동으로 문정부의 기조인 검찰개혁은 찬물을 맞았다. 반대로 이른바 ‘정권 수사팀’은 오히려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검찰개혁에 대한 ‘속도 조절론’이 정부여당에서 제기됐다.

시작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입이었다. 박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대범죄수사청(수사와 기소의 완벽한 분리) 설치와 관련된 질문에 “대통령께서 제게 주신 말씀 중 크게 두 가지”라며 “첫 번째는 올해부터 시행된 수사권 개혁 안착이고, 두 번째는 범죄수사 대응능력 및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

1차 검찰개혁인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현장에서 정상 운용돼야 하면서도, 2차 검찰개혁인 검찰 수사권 박탈에 따른 우려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대범죄수사청은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쥐게 되는 곳인 만큼 신설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다.

주변 상황 역시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박 장관의 발언은 신 수석이 사의 파동 이후 업무에 복귀한 날에 나왔다. 정권 수사팀을 유임시킨 것처럼 검찰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또 다른 방책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월성·김학의·울산 수사팀 동력 확보
꺼지지 않는 불씨…‘속도 조절론’까지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속도 조절론과 관련해 입장을 번복하며 논란을 키웠다.

유 실장은 지난달 24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속도 조절을 묻는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의 질문에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속도 조절을 말씀하시냐”라고 반문한 뒤 “박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부분은 여당에서 충분히 속도 조절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곽 의원은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속도 조절 언급을 부인했다’고 지적하자 “보도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팩트는 임명장 주는 날 대통령께서 차 한잔하면서 당부할 때 그때 이야기가 나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날 대전고검 등을 찾은 자리에서 “일부 언론에서 속도 조절론이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려 다루는 듯하다”며 “대통령께 당부드린 바 없고, 대통령께서도, 저도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부인한 바 있다.
 

▲ 국회의사당 ⓒ고성준 기자

국회운영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유 실장에게 “제가 들은 바가 있는데, 대통령께서 ‘속도 조절하라’고 말씀하신 건 아니지 않느냐. 오해가 있을까봐”라고 묻자 유 실장은 “제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다시 확인해보겠다. 정확한 워딩은 그게 아니었고 그런 의미로 표현하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비서실장은 보충 질의 말미에 속도 조절 발언에 대해 “제가 정회 때 확인했다. (문 대통령이)속도 조절이라는 표현이 아니고, 현재 검찰개혁과 권력기관 개혁안이 잘 안착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하신 게 속도 조절이라는 것으로 언론에 나왔다”며 “그 워딩은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드린다”고 강조했다.

다시
개혁 강행

민주당은 속도 조절 논란에 개의치 않고 검찰개혁 강행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인 김종민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 출연해 “(청와대가)속도 조절을 명시적으로 얘기한 것은 아니다”라며 수사·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한 2차 검찰개혁 입법과 관련해 “민주당은 현재 3월 발의, 6월 처리 일정을 기준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 공화국’을 쓰곤 한다. OECD 국가 중 극단적 선택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를 ‘자O 공화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최근 또 하나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바로 ‘쿠팡 공화국’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제시한 쿠팡의 비전이자 슬로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제 쿠팡은 전 국민의 생활을 차례로 잠식했다. ‘로켓배송’을 무기로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고 ‘쿠팡이츠’로 배달업계를 흔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업계에도 진출했다. 생태계 잠식 대체재 없다 쿠팡의 위력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증명됐다. 지난달 29~30일 쿠팡 이용자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다. 쿠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시기가 주말이어서 혼란은 배가 됐다. 특히 배송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 최근 주문 내역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가족 구성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교묘하게 제작된 스팸 문자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수는 무려 3370만명에 달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5168만명)의 65%에 이르는 숫자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이 지난 6월24일, 무려 5개월여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다른 업체와 달리 쿠팡 사건은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이 가중됐다.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달 20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새 3370만명이라고 다시 공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은 2470만명인데 피해 고객은 이보다 900만명 많다. 최근 3개월 간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까지 포함한 수치다. 사실상 전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소셜커머스 시작 로켓배송 도입 날개 달아 이번 쿠팡 사태의 규모는 지난 2011년 해킹으로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싸이월드·네이트 사례와 맞먹는다. 올해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를 상회한다.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진 선례를 보면 쿠팡 역시 피해 범위와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쿠팡을 놓지 못하는 이용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 사태 이후 보고서를 통해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는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독점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걱정을 표하면서도 막상 탈퇴하긴 어렵다는 글이 보인다.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쿠팡이 아니면 재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는 글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지향하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화한 셈이다. 쿠팡은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쿠팡이 ‘틈새시장’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틈새를 만든 건 쿠팡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현재 대적할 상대가 없는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시행됐다. 정보 털려도 쓸 수밖에…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 가능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 출점 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발 묶인 사이 이커머스 시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심야, 새벽 배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쿠팡이 공격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릴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물류 센터가 지역 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에서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물론 택배기사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 반발이 나왔다. 소비자는 오후에 주문해도 아침이면 집 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택배기사는 경제적 이익, 노동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실제 민주노총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쿠팡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저녁 식사 재료를 사기 위해 퇴근 후 마트나 슈퍼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나 나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가족끼리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일은 생활을 위한 게 아니라 이른바 ‘여가’가 됐다. 규제 업고 틈새 노려 방점을 찍은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배달업계와 함께 끝 모르고 성장했다. 이 시기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에서 자유롭던 쿠팡은 또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팡은 2023년 창사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시 쿠팡은 6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조7097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447억원으로 줄었고 2023년에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쿠팡의 매출은 32조원에 이른다. 당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영업이익은 6174억원이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전통 유통기업을 제친 1위다. 쿠팡은 흑자 전환의 비결로 고객의 충성도를 꼽았다. 이들이 쿠팡에서 씀씀이를 늘리면서 쿠팡 전체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쿠팡이 도입한 ‘쿠팡 와우’ 멤버십의 증가가 영업이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 와우는 월 4990원(현재 7890원)을 내면 쿠팡에서 구매하는 대부분 물건을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라는, 쿠팡이 론칭한 OTT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 즉 유료 가입자가 2021년 900만명에서 2023년 1400만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원까지 뛰어올랐다.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영업이익은 60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억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는데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지난해 말 기준 15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코로나19로 쐐기 2023년 흑자 전환해 전체 매출 1위 눈여겨볼 대목은 쿠팡 와우의 가격이 지난해 3000원가량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이탈하기는커녕 되려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쿠팡 생태계’가 이미 공고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충성 고객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료 인상분보다 쿠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쿠팡을 카카오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배경으로 각종 사업에 진출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중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톡은 카카오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데 훌륭한 ‘씨앗’ 역할을 담당했다. 쿠팡 와우 가입자를 위한 ‘로켓배송’이 심야·새벽 배송 시장을 잠식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것도 닮았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SNS처럼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앱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용자의 반발이 거셌다. 카카오톡 앱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고 조롱이 줄이었다. 결국 카카오는 가장 많은 비판이 나왔던 ‘친구탭’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카카오톡 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용자 이탈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톡을 대체할 만한 메신저 앱이 마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네이트온’이 노를 저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트래픽, 다운로드는 줄지 않았다’고 쓰기도 했다. 당시 홍 CPO의 해명에 비판이 쏟아졌지만 글 내용만 봐서는 카카오톡 자체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과징금에 주저 앉나 그러면서도 카카오의 현 상황을 봤을 때 쿠팡도 당국 조사가 진행되다 보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7억원)을 받은 SK텔레콤의 사례를 넘어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