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세무대’ 불신론 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2.22 13:09:42
  • 호수 1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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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주름잡다 힘빠졌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국세청의 인재 화수분은 국립세무대학(세대)이다. 실제로 세대 출신들은 국세청을 비롯해 관세청과 주요 공직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국세청을 주름잡던 세대 출신들의 힘이 빠지고 있다. 국세청 고위직 현황을 살펴본 결과, 세대 출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 국립세무대학

인재 채용 시 가장 큰 딜레마는 전문성과 학벌이다. 전문성과 학벌 모두 갖추면 좋겠지만 취사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국세청은 학벌보다 전문성에 초점을 뒀다. 1981년 세무 인력 양성을 위해 특수목적 대학으로 국립세무대학이 설립됐다. 처음에는 세무전문대학으로 출발해 국립세무대학으로 개편된 뒤 졸업생을 매해 배출하고 재경부와 국세청, 관세청 등에 특채돼 4000여명이 국가 세무 행정의 중추적 역할을 했었다.

인재 화수분
중추적 역할

세대는 학비 전액을 국고로부터 지원하고 졸업생 전원을 국세 분야 8급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등 각종 특전을 제공한다. 고교 성적은 우수하지만 가정형편 등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지원했다.

그러나 1999년 8월 정부가 9급으로 채용되는 일반대학 출신 공채 세무 공무원과 세대 출신 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들어 세대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는 세대 출신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집단화’하는 데 정부가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폐지 결정이 내려지자 학교 교수·재학생·졸업생 등이 헌법소원을 내는 등 강력히 반발했지만,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세대 졸업자 5000여명 중 청와대, 총리실, 기획재정부, 조세심판원, 국세청, 관세청 등 정부의 각 부처에서 핵심보직을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사무관급, 서기관급, 부이사관급 등 많은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공직을 마친 1000여명이 세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대 출신자의 전문직 자격증 취득 현황을 보면 세무사 1045명, 공인회계사 17명, 감정평가사 7명, 검사·변호사 11명, 관세사 12명, AICPA 11명 등 전문자격증을 취득해 자신들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일각에선 2년제 전문대학 출신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일류 대학이나 4년제 타 특수대학과 비교해도 그 역량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1981년 국립세무대학 설립
1999년 형평성 문제로 폐교

또 세대 출신자들이 일반 공채 출신자들보다 주요 보직에서 많이 일하는 이유를 보면 주력이 40∼50대 핵심 연령으로서 20대에 8급으로 입사해 30대 초반에 이미 각 부서를 순환보직을 완료해 같은 연령대의 공채 출신들보다 역량은 비슷하더라도 5년 이상 실무 경력이 앞서 있다. 본·지방청 인력 충원 시 세대 출신이 우선 선택되는 이 같은 유리한 면이 있었다. 

비고시 출신임에도 ‘바늘구멍’이라는 국세청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사례가 하나둘 나타났다. 그러면서 5000여명에 달하는 세무대학 졸업생들과 국세 공무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9급, 7급 출신 등 비고시 출신들의 ‘희망 동아줄’이 돼왔다.
 

▲ 국세청 ⓒ카카오맵

최근 서울지역 세무서장 중 90%에 가까운 이들이 세무대학 출신들로 채워지면서 세대 시대가 온 듯했으나, 고위직으로 승진할만한 인재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세대 1기 중에서는 김재웅 전 서울청장과 김한년 전 부산청장이 고공단 가급인 ‘1급’으로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고, 권순박 전 대구지방국세청장도 지방청장을 역임하며 고공단 나급으로 승진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남아있는 세대 1기생은 없다. 마지막 세대 1기생이었던 구제승 전 광명서장, 배민규 전 서부산서장, 정재윤 전 잠실서장이 지난 연말 명예퇴직하면서 이제 국세청 최고참 세대출신은 2기생이 됐다.

세대 2기 중에서는 김형환 전 광주국세청장이 지방청장을 역임했고, 이청룡 대전국세청장, 이현규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은 현재 고위직으로 남아있다. 세대 3기들도 최시헌 전 대구국세청장, 김진호 국세청 근로소득지원국장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비고시 출신
희망 동아줄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 세대 3기 중에서 7명(박광수, 김성환, 이응봉, 현석, 이한종, 정종식, 김진호)이 국세청 본청 과장급으로 발탁되면서 고위직 승진 발판을 다져놓으며 세대 전성시대를 이루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3기 출신 인재들은 본청 과장급 주요 보직에 골고루 포진, 선배 기수들을 뛰어넘는 수준의 부이사관급 이상 고위직 진출자를 배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세대 3기 출신 발탁은 지난 2014년부터 이뤄졌다. 최시헌 전 대구지방국세청장(2020년 12월말 퇴임)이 원천세과장으로 진출하면서 첫 본청 전입 테이프를 끊었고, 구상호 현 강남세무서장이 2016년 8월 일약 세원정보과장으로 발탁되며 바통을 이어 받았다. 엄밀히 따지면 이들은 이후 발탁된 동기들과 명백한 구분이 이뤄지는 ‘1세대’에 속한다.

본격적으로는 2017년 6월30일 한승희 전 국세청장 취임 이후 2세대에 해당하는 세무대 3기 출신들이 대거 본청 과장급으로 발탁되는 파란도 일어났다. 무려 7명(박광수, 김성환, 이응봉, 현석, 이한종, 정종식, 김진호)이 순차적으로 본청 과장급으로 진출한 것이다.

이들은 소위 ‘한승희 키즈’로 불리면서 성장했다.

물론 7명의 2세대 주자 중 능력과 평판에도 불구, 본청 전입 시 주어지는 승진 기회를 내려놓은 케이스들도 있었다.
 

▲ ▲ⓒ고성준 기자

행시 출신이 아닌 이상, 본청 진출에 성공한 세대 3기 출신 7명 전원이 부이사관으로 승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1세대 진출자들도 부이사관 반열에 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7명 중 많아야 2~3명 정도가 부이사관 이상 승진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인재가 없다”
고위직 인력난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을 깨고 2세대 주자 중 무려 4명이 차례차례 부이사관으로 승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국세청 내부에서는 이들 4명이 무난하게 고위공무원까지 진출해 우수 인재들이 즐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1·2기 선배 기수들을 뛰어넘는 역대급 고위공무원 승진자를 배출하는 기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물씬 형성됐다.


최소한 지난해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기대감은 보증수표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본청 감찰담당관을 지냈던 박광수 전 국세공무원교육원 교수는 인천지방국세청 성실납세지원국장, 본청 법인세과장 재임 시절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던 김성환 전 대전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은 성동세무서장, 본청 소득세과장을 지낸 이응봉 전 대구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은 중부지방국세청 감사관으로 각각 배치됐다.

당연히 고위공무원 승진 티켓을 거머쥘 줄 알았던 이들은 크고 작은 문제에 얽히고설키며 더 이상의 전진에는 실패했다. 2세대 주자 4명 중 가장 빠르게 부이사관 반열에 올랐던 김진호 현 부산지방국세청 징세송무국장만이 올해 2월 고위공무원 승진에 성공했다.

일각에선 아직 이들에게 승진 기회가 열려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고려하면 남은 3명에게 고위공무원 진출의 기회가 돌아올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1~3기까지 승진…승승장구 
4기 이후부터 인원 확 줄어

세대 4기부터는 ‘인재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재 세대 4기 중 고공단으로 승진한 인물은 김재철 서울청 조사3국장, 이판식 부산청 징세송무국장 등 2명이다. 이어 부이사관으로 고공단 승진을 바라보고 있는 백승훈 서울청 납보관 등 딱 3명이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5기 중에서는 이미 고공단으로 승진한 장일현 전 부산청 성실납세지원국장(국방대 교육)에 이어 양동구 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부이사관)이 고공단을 바라보고 있다. 국세청에서 고공단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부이사관으로 승진해야 하고, 또 부이사관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본청 전입’이 매우 중요하다.
 

▲ ▲ⓒ국립세무대학

‘본청에서 고생한 이들을 승진 대상자’로 볼 수 있고, 이들 중에서도 전원이 승진하는 것은 아니므로 본청 전입자가 많아야 인재풀을 넓힐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본청에 있는 이들 세대 5기 서기관은 강승윤 장려세제신청과장, 김길용 부동산납세과장, 장신기 대변인, 박광종 징세과장 등 단 4명뿐이다.

세대 6기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6기 중에서는 한경선 조사2과장 단 한 명만이 본청 과장으로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사실상 부이사관 승진 재원의 ‘씨가 말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6기 중에서도 김진우 송파세무서장, 최회선 서울청 조사3국1과장, 이세협 중부청 조사3국 조사관리과장 등은 지난 인사에서 본청으로 배치됐어도 무난했을 인재였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7기도 마찬가지다. 현재 본청에 근무 중인 7기는 이은규 국세청 기획조정관실 국세통계담당관 한 명이다. 장병채 양천세무서장, 김태우 인천청 조사2국장 등이 본청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세대 후배들의 아쉬움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9월 기준으로 살펴볼 때, 국세청 2만1000여 공무원 중 서기관의 수는 약 350명(4.5급 포함)으로 전체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진입장벽
높아졌다

이 중에서도 4급으로 승진한 세대 출신은 약 140명으로, 10명 중 4명이 세대 출신으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세행정의 최고위직인 고공단으로 올라가기 위한 발판인 본청으로의 진입장벽이 점점 높아지면서 세대 출신들은 ’잘해야 세무서장인가‘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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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