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를 만나다> 김태리의 성공 공식

혜성처럼 등장해 더 빛나는 존재감
작품마다 줄흥행, 연기는 매번 호평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김태리는 등장부터 드라마틱하다. 국내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박찬욱 감독의 복귀작 <아가씨>에 무려 1500: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뚫고, 노출 연기도 감행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보인 김태리를 향해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매우 강렬했다.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빛을 잃은 배우들이 부지기수인 데 반해, 김태리가 써낸 서사는 데뷔 이후가 더 매력적이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했으며, 그 안에서의 보여준 연기는 매번 호평을 받기 충분했다. 신작 <승리호>에서도 김태리는 또 한 번 성공 공식을 써내는 듯하다. 

▲ 배우 김태리 ⓒ넷플릭스

배우 김태리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주체성이다. 서열이 낮은 하녀(<아가씨>)일 때도, 주위 친구들과 달리 민주주의를 억지로 외면하던 대학생일 때도(<1987>), 그는 당돌했다. 

재미와 주체성
단단한 신념

집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사회 초년병(<리틀 포레스트>)일 때도 매사 자발적이었으며, 나라를 지키는 독립운동가(tvN <미스터 션샤인>)의 얼굴에서는 당당함을 넘어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김태리가 연기한 역할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늘 올바른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인물이 정의로운 행동을 할 때도, 때론 정반대의 생각을 할 때도 김태리의 얼굴에는 늘 단단한 신념이 엿보인다.

이런 필모그래피가 가능한 이유는 김태리 자체가 시나리오를 볼 때 캐릭터의 주체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재밌는지와 연기하게 될 인물의 성향이 주체적이면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드러내는지를 확인한다고. 여러 고민 끝에 마음이 가는 작품의 키워드는 재미와 주체성이다.


신작 <승리호>와 장 선장도 김태리의 마음을 건드렸다. 특히 <승리호>를 연출한 조성희 감독은 김태리에게서 선장의 단단함을 봤다고 한다. 선원을 이끄는 리더인 선장은 건장한 체구에 카리스마를 갖춘 모습이 연상되는데, 조 감독은 야리야리한 김태리가 선장의 강인함을 표현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제 역할을 하는 선장의 이미지가 그려진 듯하다.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승리호>에서 김태리는 조 감독이 그린 독특한 이미지의 장 선장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핑크색 티셔츠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가죽 재킷을 입고 개성이 강한 선원들을 이끈다. 

조 감독은 김태리가 새로운 형태의 선장을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김태리는 자신과 선장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캐스팅 미팅 때 김태리가 조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왜 제게 선장의 역할을 주시는 거죠?”였다. 

“미팅 때 감독님께 가장 먼저 여쭤봤던 게 ‘왜 저를 캐스팅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사실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었어요. 캐릭터는 좋았지만, 제 얼굴로 읽히지는 않았어요. 다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대사를 읊으면 자연스럽게 제 얼굴이 보이거든요. 쉽게 떠올려지기도 하고요. <승리호>의 장 선장에게서는 그게 잘되지 않더라고요. 의상에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전형적이지 않은 선장, 모든 공은 감독님”
“SF 장르 최초 타이틀…국가대표 된 기분”

다른 작품에서 선장은 과격한 이미지를 품고 있다. 눈빛이 강하며, 비교적 과묵하고 욕설에도 능하다. 힘으로 주위를 제압한다. 영화 <해무>의 김윤석이 대표적인 선장의 이미지다. 선장이라는 무게감은 키 166cm, 가느다란 몸매의 김태리가 가진 겉모습과 대척점에 있는 게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밌어서 작품을 하고 싶었지만,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저처럼 순둥순둥한 사람이 조종석에 있을 때 전형적인 강한 사람이 앉았을 때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설득이 돼서 작품을 했는데, 많은 분이 신선하다는 평을 남겨주셨어요. 이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님께 공을 돌리고 싶어요.”


김태리가 연기한 캐릭터가 독특한 선이 있었던 만큼, 작품 역시도 서사가 있다. 영화 <박쥐> 이후 무려 7년 만에 국내 복귀작이었던 <아가씨>, 엄혹했던 시기 수많은 영화인이 힘을 모아 만든 <1987>,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 김은숙 작가의 첫 사극 <미스터 션샤인> 등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이 사연이 다양하다. 
 

▲ ▲ⓒ넷플릭스

<승리호>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한국 영화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만든 SF 판타지 장르다.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라고도 한다. 

우주 공간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승리호 선원들이 우연히 발견한 도로시(백예린 분)를 알고 위험한 거래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우주가 배경인 SF 장르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엄청난 분량의 CG로 인해 국내에서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장르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SF 판타지 영화가 우리나라의 언어와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
우주 활극

다수의 인종이 경제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백인을 상대로 인류를 구출해낸다.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승리호> 배우들은 작품 내외적인 의미가 상당한 이 작품을 홍보하면서 ‘마치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라고도 표현했다. 

“관객으로서 SF 장르를 좋아해요. 한국 최초라는 이름이 설렜어요. 사실 최초라는 이름이 붙으면 웬만해서는 다 잘된 거 같아요. ‘최초는 다 잘돼’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고요. 제가 이 자리에 없었어도 <승리호>를 즐겼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얼굴까지 있다면?’이란 생각에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네요. 작품을 하면서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CG 수준이 정말 좋아서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SF 장르의 촬영 기법은 일반적인 장르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크로마키 세트에서 초록색 배경을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과 함께 촬영해 나가야 한다. 눈앞에 상대가 없음에도, 마치 누가 있는 척 연기를 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있는 척 연기한다는 게 전문 배우에게도 매우 낯선 경험이다. 시선 처리도 매우 정교해야 할 뿐 아니라, 행동할 때 작은 차이만 있어도 화면에서는 크게 튄다. <승리호> 역시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고 한다. 

“어려움이 많았어요. 업동(유해진 분)이 있을 때도 찍고, 없을 때도 찍어야 했어요. 없이 찍는 게 진짜 OK 장면이에요. 유해진 선배가 업동이 모션을 했는데, 그건 CG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찍는 거였어요. 업동 없이 찍을 때는, 업동의 존재를 상상해야 했고, 만약 업동을 한 대 때렸다고 치면, 정확한 위치에 때려야 했어요. 현실적인 것들에서 많이 헤맸어요.”

<승리호>에는 걸출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이야기의 화자 격인 태호 역에는 배우 송중기, 레게 머리를 딴 엔지니어 타이거 박 역할에는 <극한직업>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진선규, 장 선장이 승리호 선원 중 가장 먼저 픽한 로봇 업동은 유해진이 맡았다.

이 외에도 우주를 지배하는 설리반 역은 할리우드 배우 리차드 아미티지가 연기했다. 인물이 다양할 뿐 아니라 충분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탓에 캐릭터들의 서사가 매력에 비해 축소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태호를 제외한 장 선장과 타이거 박, 업동은 전사가 많이 나오지 않고 최소한으로만 배치된다. 

거장의 선택
영광과 부담


“저도 아쉽긴 하죠. 하지만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인물이 네 명 나오고, 아이도 나와요. 감독님께서 그리는 세계의 이미지가 있어요. 특정 부분을 부각하고 축소하는 건 감독님의 결정이죠. 전사는 정말 많아요. 다 들려주면 좋겠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완결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줄어들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 ▲ⓒ넷플릭스

<아가씨> 박찬욱 감독을 시작으로 <1987>의 장준환 감독,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 이번 조성희 감독, 앞으로 나올 영화 <외계인>의 최동훈 감독과 작업을 했다. <미스터 션샤인>의 작가는 국내 최고 흥행작가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서로 앞다퉈가며 김태리를 캐스팅하는 모양새다. 왜 거장은 김태리를 선택할까. 

“그 이유는 전혀 모르겠어요. 그저 감독님들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작품을 많이 하셔서 저를 계속 써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외국 작품 말고, 한국 작품으로요. 훌륭한 연출력을 가진 감독님들께서 저를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제 복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거장과 작업을 하는 건 영광스럽기도 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거장의 연출 속에서도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배우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번 연기적인 측면에서 호평을 받는 김태리도 부담감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다만 부담감을 잘 떨쳐내고 다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아가씨>부터 <미스터 션샤인>까지, 다 부담감이 컸어요. 저는 부담감을 잘 느끼는 편이거든요. <승리호>도 정말 부담감이 컸죠. 제작비도 다른 영화에 비해 큰 편이고, SF 촬영 현장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고요. 그 부담을 어떤 식으로든 희석을 해야 해요. 부담감이라는 게 저한테는 원동력이 되지 않아요. 빨리 없애는 게 중요해요. 그런 감정에 허덕이면서 힘들어하느니, 이 인물을 어떻게 묘사할 건지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는 걸 배웠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특히 더 많이 깨달았어요.”

“나와 닮은 진선규, 스승은 유해진·송중기”
“언제나 느끼는 큰 부담감, 허덕이지는 않아”


배우들은 작품을 통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배우가 연기를 통해 관계를 맺고 끈끈하게 친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툼이 있는 경우 안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품 자체가 우정의 실마리 역할을 한다. 송중기와, 유해진, 진선규, 김태리는 유달리 가까워진 듯 하다. 작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친분이 엿보인다. 

“저는 선규 오빠와 정말 닮은 것 같아요. <승리호> 캐스팅이 확정되고 촬영 전에 우연히 봐서 인사를 나눴거든요. 짧은 순간이었는데 정말 선한 인간성이 느껴지더라고요. 이 분하고 연기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막상 촬영할 때 보니까 선규 오빠도 저처럼 의심을 많이 해요. 감독님이 OK 사인을 했는데, 그걸 믿지 않아요.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늘 해요. 다음날까지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해요. 저도 그렇거든요. 더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요. 끝까지 고민해요. 서로 연기에 대한 회의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최고 연장자 유해진에게는 연기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받았고, 송중기에게는 리더쉽을 배웠다고 한다. 
 

▲ ▲ⓒ넷플릭스

“제가 장 선장이 아니라 다른 역할을 했어도 재밌었을 것 같아요. 근데 업동은 잘할 자신이 없어요. 업동은 시나리오에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풍부해졌어요. 유해진 선배님이 만드신 부분이 많아요. 아마 제가 했으면, 그렇게 풍성한 느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중기 오빠는, 스태프 한 명 한 명을 다 잘 챙겨요. 정말 어른스러워요. 중기 오빠가 진짜 선장 같아요.”

데뷔 5년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사이에 놀라운 건 꾸준한 성공 공식을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출연한 모든 작품이 호평과 함께 높은 흥행률을 보였다. <승리호> 역시 넷플릭스 공개 후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조회 수 1위를 기록 중이다. 

그의 말처럼 인복이 있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도 있겠지만, 강인한 성격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낸 김태리의 힘도 기인한다. 특히 현장을 즐기게 되는 연기에 대한 애정이 성공 공식의 포인트로 해석된다. 

꿈꿔온
평생 직업

“학창 시절에 꿈이 있었던 학생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연극 한 편을 올리게 됐는데 그 과정이 모두 좋았어요. 밥 먹고 술 먹고, 밤새 소품 만들다 싸우고, 무대서 조명을 받고, 관객을 만나고 한 시간 넘게 서 있고요. 그리고 박수를 받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금방 질리는 타입인데, 이 정도로 재밌으면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도 어려운 구석도 많고, 헷갈리고 고민도 많은데요. 그런 어려움이 저만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그런 어려움을 축소해 나가면서 더 좋은 연기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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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