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를 만나다> 김태리의 성공 공식

혜성처럼 등장해 더 빛나는 존재감
작품마다 줄흥행, 연기는 매번 호평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김태리는 등장부터 드라마틱하다. 국내에서 거장으로 꼽히는 박찬욱 감독의 복귀작 <아가씨>에 무려 1500: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뚫고, 노출 연기도 감행했다.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을 보인 김태리를 향해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매우 강렬했다.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빛을 잃은 배우들이 부지기수인 데 반해, 김태리가 써낸 서사는 데뷔 이후가 더 매력적이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흥행했으며, 그 안에서의 보여준 연기는 매번 호평을 받기 충분했다. 신작 <승리호>에서도 김태리는 또 한 번 성공 공식을 써내는 듯하다. 

▲ 배우 김태리 ⓒ넷플릭스

배우 김태리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주체성이다. 서열이 낮은 하녀(<아가씨>)일 때도, 주위 친구들과 달리 민주주의를 억지로 외면하던 대학생일 때도(<1987>), 그는 당돌했다. 

재미와 주체성
단단한 신념

집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사회 초년병(<리틀 포레스트>)일 때도 매사 자발적이었으며, 나라를 지키는 독립운동가(tvN <미스터 션샤인>)의 얼굴에서는 당당함을 넘어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김태리가 연기한 역할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늘 올바른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인물이 정의로운 행동을 할 때도, 때론 정반대의 생각을 할 때도 김태리의 얼굴에는 늘 단단한 신념이 엿보인다.

이런 필모그래피가 가능한 이유는 김태리 자체가 시나리오를 볼 때 캐릭터의 주체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재밌는지와 연기하게 될 인물의 성향이 주체적이면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드러내는지를 확인한다고. 여러 고민 끝에 마음이 가는 작품의 키워드는 재미와 주체성이다.


신작 <승리호>와 장 선장도 김태리의 마음을 건드렸다. 특히 <승리호>를 연출한 조성희 감독은 김태리에게서 선장의 단단함을 봤다고 한다. 선원을 이끄는 리더인 선장은 건장한 체구에 카리스마를 갖춘 모습이 연상되는데, 조 감독은 야리야리한 김태리가 선장의 강인함을 표현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제 역할을 하는 선장의 이미지가 그려진 듯하다.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승리호>에서 김태리는 조 감독이 그린 독특한 이미지의 장 선장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핑크색 티셔츠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가죽 재킷을 입고 개성이 강한 선원들을 이끈다. 

조 감독은 김태리가 새로운 형태의 선장을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김태리는 자신과 선장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캐스팅 미팅 때 김태리가 조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왜 제게 선장의 역할을 주시는 거죠?”였다. 

“미팅 때 감독님께 가장 먼저 여쭤봤던 게 ‘왜 저를 캐스팅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사실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었어요. 캐릭터는 좋았지만, 제 얼굴로 읽히지는 않았어요. 다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대사를 읊으면 자연스럽게 제 얼굴이 보이거든요. 쉽게 떠올려지기도 하고요. <승리호>의 장 선장에게서는 그게 잘되지 않더라고요. 의상에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전형적이지 않은 선장, 모든 공은 감독님”
“SF 장르 최초 타이틀…국가대표 된 기분”

다른 작품에서 선장은 과격한 이미지를 품고 있다. 눈빛이 강하며, 비교적 과묵하고 욕설에도 능하다. 힘으로 주위를 제압한다. 영화 <해무>의 김윤석이 대표적인 선장의 이미지다. 선장이라는 무게감은 키 166cm, 가느다란 몸매의 김태리가 가진 겉모습과 대척점에 있는 게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밌어서 작품을 하고 싶었지만,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저처럼 순둥순둥한 사람이 조종석에 있을 때 전형적인 강한 사람이 앉았을 때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설득이 돼서 작품을 했는데, 많은 분이 신선하다는 평을 남겨주셨어요. 이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님께 공을 돌리고 싶어요.”


김태리가 연기한 캐릭터가 독특한 선이 있었던 만큼, 작품 역시도 서사가 있다. 영화 <박쥐> 이후 무려 7년 만에 국내 복귀작이었던 <아가씨>, 엄혹했던 시기 수많은 영화인이 힘을 모아 만든 <1987>,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 김은숙 작가의 첫 사극 <미스터 션샤인> 등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이 사연이 다양하다. 
 

▲ ▲ⓒ넷플릭스

<승리호>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한국 영화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만든 SF 판타지 장르다. ‘스페이스 오페라’(우주 활극)라고도 한다. 

우주 공간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승리호 선원들이 우연히 발견한 도로시(백예린 분)를 알고 위험한 거래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우주가 배경인 SF 장르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엄청난 분량의 CG로 인해 국내에서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장르다. 할리우드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SF 판타지 영화가 우리나라의 언어와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
우주 활극

다수의 인종이 경제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백인을 상대로 인류를 구출해낸다.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승리호> 배우들은 작품 내외적인 의미가 상당한 이 작품을 홍보하면서 ‘마치 국가대표가 된 기분’이라고도 표현했다. 

“관객으로서 SF 장르를 좋아해요. 한국 최초라는 이름이 설렜어요. 사실 최초라는 이름이 붙으면 웬만해서는 다 잘된 거 같아요. ‘최초는 다 잘돼’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고요. 제가 이 자리에 없었어도 <승리호>를 즐겼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얼굴까지 있다면?’이란 생각에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네요. 작품을 하면서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CG 수준이 정말 좋아서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SF 장르의 촬영 기법은 일반적인 장르의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 크로마키 세트에서 초록색 배경을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과 함께 촬영해 나가야 한다. 눈앞에 상대가 없음에도, 마치 누가 있는 척 연기를 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있는 척 연기한다는 게 전문 배우에게도 매우 낯선 경험이다. 시선 처리도 매우 정교해야 할 뿐 아니라, 행동할 때 작은 차이만 있어도 화면에서는 크게 튄다. <승리호> 역시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고 한다. 

“어려움이 많았어요. 업동(유해진 분)이 있을 때도 찍고, 없을 때도 찍어야 했어요. 없이 찍는 게 진짜 OK 장면이에요. 유해진 선배가 업동이 모션을 했는데, 그건 CG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찍는 거였어요. 업동 없이 찍을 때는, 업동의 존재를 상상해야 했고, 만약 업동을 한 대 때렸다고 치면, 정확한 위치에 때려야 했어요. 현실적인 것들에서 많이 헤맸어요.”

<승리호>에는 걸출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이야기의 화자 격인 태호 역에는 배우 송중기, 레게 머리를 딴 엔지니어 타이거 박 역할에는 <극한직업>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진선규, 장 선장이 승리호 선원 중 가장 먼저 픽한 로봇 업동은 유해진이 맡았다.

이 외에도 우주를 지배하는 설리반 역은 할리우드 배우 리차드 아미티지가 연기했다. 인물이 다양할 뿐 아니라 충분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탓에 캐릭터들의 서사가 매력에 비해 축소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태호를 제외한 장 선장과 타이거 박, 업동은 전사가 많이 나오지 않고 최소한으로만 배치된다. 

거장의 선택
영광과 부담


“저도 아쉽긴 하죠. 하지만 선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인물이 네 명 나오고, 아이도 나와요. 감독님께서 그리는 세계의 이미지가 있어요. 특정 부분을 부각하고 축소하는 건 감독님의 결정이죠. 전사는 정말 많아요. 다 들려주면 좋겠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과 완결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줄어들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 ▲ⓒ넷플릭스

<아가씨> 박찬욱 감독을 시작으로 <1987>의 장준환 감독,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 이번 조성희 감독, 앞으로 나올 영화 <외계인>의 최동훈 감독과 작업을 했다. <미스터 션샤인>의 작가는 국내 최고 흥행작가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서로 앞다퉈가며 김태리를 캐스팅하는 모양새다. 왜 거장은 김태리를 선택할까. 

“그 이유는 전혀 모르겠어요. 그저 감독님들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작품을 많이 하셔서 저를 계속 써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외국 작품 말고, 한국 작품으로요. 훌륭한 연출력을 가진 감독님들께서 저를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제 복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거장과 작업을 하는 건 영광스럽기도 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거장의 연출 속에서도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으면, 그때는 배우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매번 연기적인 측면에서 호평을 받는 김태리도 부담감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다만 부담감을 잘 떨쳐내고 다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아가씨>부터 <미스터 션샤인>까지, 다 부담감이 컸어요. 저는 부담감을 잘 느끼는 편이거든요. <승리호>도 정말 부담감이 컸죠. 제작비도 다른 영화에 비해 큰 편이고, SF 촬영 현장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고요. 그 부담을 어떤 식으로든 희석을 해야 해요. 부담감이라는 게 저한테는 원동력이 되지 않아요. 빨리 없애는 게 중요해요. 그런 감정에 허덕이면서 힘들어하느니, 이 인물을 어떻게 묘사할 건지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는 걸 배웠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특히 더 많이 깨달았어요.”

“나와 닮은 진선규, 스승은 유해진·송중기”
“언제나 느끼는 큰 부담감, 허덕이지는 않아”


배우들은 작품을 통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배우가 연기를 통해 관계를 맺고 끈끈하게 친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툼이 있는 경우 안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품 자체가 우정의 실마리 역할을 한다. 송중기와, 유해진, 진선규, 김태리는 유달리 가까워진 듯 하다. 작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친분이 엿보인다. 

“저는 선규 오빠와 정말 닮은 것 같아요. <승리호> 캐스팅이 확정되고 촬영 전에 우연히 봐서 인사를 나눴거든요. 짧은 순간이었는데 정말 선한 인간성이 느껴지더라고요. 이 분하고 연기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막상 촬영할 때 보니까 선규 오빠도 저처럼 의심을 많이 해요. 감독님이 OK 사인을 했는데, 그걸 믿지 않아요.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늘 해요. 다음날까지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해요. 저도 그렇거든요. 더 잘해보려는 마음이 있어요. 끝까지 고민해요. 서로 연기에 대한 회의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최고 연장자 유해진에게는 연기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받았고, 송중기에게는 리더쉽을 배웠다고 한다. 
 

▲ ▲ⓒ넷플릭스

“제가 장 선장이 아니라 다른 역할을 했어도 재밌었을 것 같아요. 근데 업동은 잘할 자신이 없어요. 업동은 시나리오에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풍부해졌어요. 유해진 선배님이 만드신 부분이 많아요. 아마 제가 했으면, 그렇게 풍성한 느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중기 오빠는, 스태프 한 명 한 명을 다 잘 챙겨요. 정말 어른스러워요. 중기 오빠가 진짜 선장 같아요.”

데뷔 5년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사이에 놀라운 건 꾸준한 성공 공식을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출연한 모든 작품이 호평과 함께 높은 흥행률을 보였다. <승리호> 역시 넷플릭스 공개 후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조회 수 1위를 기록 중이다. 

그의 말처럼 인복이 있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도 있겠지만, 강인한 성격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낸 김태리의 힘도 기인한다. 특히 현장을 즐기게 되는 연기에 대한 애정이 성공 공식의 포인트로 해석된다. 

꿈꿔온
평생 직업

“학창 시절에 꿈이 있었던 학생은 아니었어요. 우연히 연극 한 편을 올리게 됐는데 그 과정이 모두 좋았어요. 밥 먹고 술 먹고, 밤새 소품 만들다 싸우고, 무대서 조명을 받고, 관객을 만나고 한 시간 넘게 서 있고요. 그리고 박수를 받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금방 질리는 타입인데, 이 정도로 재밌으면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도 어려운 구석도 많고, 헷갈리고 고민도 많은데요. 그런 어려움이 저만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그런 어려움을 축소해 나가면서 더 좋은 연기로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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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