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향수를 부르는 기차여행, 맛은 덤이요! - 풍기역

‘온고이지신’ 타임머신 기차타고 과거로 슝~

서울 청량리역과 경북 경주역을 잇는 중앙선은 1939년 4월, 청량리~양평 구간을 개통하며 열차운행을 시작했다. 풍기역은 이 노선을 오가는 모든 기차들의 휴식처이자 물 보급소 역할을 해왔다. 증기기관차들이 죽령을 넘으려면 이 역에서 물을 보충해야만 했다고. 지금은 사라진 추억 속의 장면이지만 역 광장에 우뚝 서 있는 급수탑과 증기기관차를 보면 당시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 옆에는 여행자들의 쉼터도 준비되어 있다. 새마을호 열차를 개조한 선비객차이다. 풍기역에서 내일로 티켓을 구매한 여행자들과 단체여행자들의 공간. 역사를 나서면 곧바로 풍기인삼시장이다. 인삼으로 유명한 고장이니 인삼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27번 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순흥면사무소와 봉도각공원, 소수서원, 선비촌, 부석사는 영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인삼향기 가득한 풍기인삼시장 영주관광의 중심지
부석사에서 만드는 나만의 여행보물 한 가지

서울 청량리역과 경북 경주역을 잇는 중앙선은 1939년 4월, 청량리~양평 구간을 개통하며 열차운행을 시작했다. 경성과 경주를 잇는 노선이라 하여 경경선(京慶線)이라 불리기도 했던 중앙선의 길이는 383km 정도. 풍기역은 청량리 기점에서부터 약 199km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니 중앙선의 중심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선비객차 2량
여행자들 위한 쉼터

풍기역을 중심이라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중앙선 개통 때부터 이 노선을 오가는 모든 기차들의 휴식처이자 물 보급소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차는 물을 끓여 그 힘으로 기차를 움직인다. 그런데 풍기역 앞에는 험준한 고개인 죽령이 있다. 이 역에서 물을 보충해야만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것이다. 고개를 넘어온 기차들도 물이 부족했을 터이다. 풍기역 급수탑의 물탱크가 전국 최대의 저수량을 가진 까닭이다.

50톤이나 되는 물을 저장했던 물탱크를 받치고 선 급수탑의 높이도 30m나 된다. 급수탑에서 선로 옆 급수전까지 물을 옮기는 데는 낙차를 이용했다 한다. 지금은 사라진 추억 속의 장면이지만 아직도 당시의 위용을 찾아볼 수 있다. 역 광장 오른쪽에 우뚝 서 있는 급수탑과 급수를 기다리듯 서 있는 증기기관차를 볼 수 있다.


역사에서 급수탑으로 가는 길에 재미있는 기차가 서 있다. 새마을호 열차를 개조한 선비객차 2량이다. 풍기역에서 구매한 ‘내일로 티켓’으로 여행하는 젊은 여행자들과 단체여행자들을 위한 쉼터이다. 여행자들의 회의실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의 풍기역은 영주관광의 중심지이다. 역을 나서면 곧바로 인삼향기 가득한 풍기인삼시장이 있고, 시장 앞 버스정류장에서는 소수서원, 부석사로 이어지는 27번 버스를 탈 수 있다. 몇 걸음 더 걸어 내려오면 삼계탕, 인삼갈비, 인삼도넛, 인삼순대 등 다양한 인삼음식들도 만날 수 있다.

풍기역 앞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이동하는 27번 버스를 타고 처음 내릴 장소는 순흥면사무소 앞이다. 순흥도호부가 있었던 순흥면사무소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흥선대원군이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고하는 글을 적어 넣은 순흥척화비(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42호), 소나무 두 그루가 엮여 하나의 나무가 된 연리지송(경상북도기념물 제159호), 머리 없는 불상인 영주읍내리석불입상(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25호) 등이다. 이 외에도 공덕비와 건물의 부자재로 사용되었던 석물들이 그 옆에 즐비하게 놓여있다.

석물들 너머로는 아름다운 모습의 나무 한그루가 눈에 띈다. 수령 430년의 느티나무이다. 그 뒤로 도호부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봉도각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순흥도호부 청사였던 조양각의 뒤뜰이라 전해진다. 영조 때인 1754년 부사 조덕상이 관원들의 쉼터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순흥지>에 기록되어 있다고.

정원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지금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라고. 연못 가장자리를 지키듯 둘러선 버드나무 고목 아래에 앉아 공원을 바라보다보면 사각형의 연못 안에 피어난 수련과 어울려 노는 잉어들은 땅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둥근 연못과 그 안의 둥근 섬 그리고 신선들이 사는 봉래산을 뜻하는 봉도각은 하늘의 세상을 보여주는 듯 느껴진다. 사오백년을 하루같이 묵묵히 서있는 버드나무 고목처럼 느리게 천천히 쉬어가도 좋은 장소이다.

봉도각 공원을 나서면 순흥우체국 앞을 지나 읍내3리 ‘사현정’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사현정(경상북도기념물 제69호)은 고려 말에 안석이 그의 아들인 안축, 안보, 안집을 길러낸 장소라고. 후에 주세붕이 사현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다. 경기체가인 관동별곡, 죽계별곡 등을 남긴 안축은 동생 안보와 함께 소수서원에 배향되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안축이 남긴 죽계별곡은 순흥문화유적권에서 만날 수 있다. 순흥문화유적권은 영주의 대표관광지인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금성대군신단, 선비촌, 한국선비문화수련원 등이 모여 있는 순흥면 일대를 말한다. 모두 소백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죽계천변에 자리하고 있다.

죽계별곡은 소수서원에서 선비촌으로 이어지는 죽계천변 공원의 문학바위에 새겨 있다. 모두 5장으로 이루어진 글 속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만들어지기 전, 이 터에 자리했던 숙수사도 담겨있다. 문학이 기록한 역사를 찾을 수 있는 장소이다. 소수서원이 보관해오던 유물들은 소수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 서원의 이름이었던 백운동 서원의 현판, 창건자인 주세붕의 초상(보물 제717호), 고려시대부터 주자학의 기초를 닦은 회헌 안향의 초상(국보 제111호) 등 창건 시부터의 서원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선비촌은 영주시 관내에 자리한 12채의 고택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김상진가옥 등등 이곳에 재현된 고택들은 저마다 선비들의 생활모습을 담고 있다. 집집마다 무엇이 다른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살펴보자.

27번 버스의 종점은 부석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전해지는 이곳엔 국보와 보물이 가득하다. 부석사를 대표하는 공간이자 배흘림기둥으로 잘 알려진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동쪽을 바라보고 앉은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신 조사당(국보 제19호)과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등이 모두 국보다.

이밖에 삼층석탑, 당간지주, 자인당의 석조여래좌상 등도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보물을 보기 위해 경내를 찾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부석사의 구석구석을 모두 돌아보게 되는 까닭이다.

보물은 아니지만 부석사에 얽힌 이야기가 담긴 공간도 찾아보자. 의상대사를 사모한 선묘낭자이야기가 담긴 선묘각, 부석사의 사찰이름이 된 부석 등이다.

국보와 보물 가득한
화엄 십찰의 하나 부석사

부석사에는 여행자들이 손꼽는 보물이 있다. 범종각에서 울려 퍼지는 사물소리, 저녁노을과 어우러진 부석사 풍경,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본 소백산 자락, 안양루에 숨겨진 부처님 모습, 가을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길 등이다. 이곳에서 나만의 여행보물 한 가지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끼리, 친구끼리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코스
명소탐방 코스 : 풍기역 → 인삼시장 → 소수서원 → 선비촌 → 부석사

1박2일 여행코스
첫째 날 : 풍기역 → 인삼시장 건너편 버스 정류장, 27번 버스(부석사 방향) 승차 → 순흥면사무소 앞 하차 → 순흥면 도보여행(면사무소 내 읍내리 석불입상, 순흥 척화비, 소나무연리지) → 봉도각 정원 → 사현정(읍내3리 노인정 앞) 돌아보기 → 면사무소 앞 버스 정류장, 27번 버스(부석사 방향) 승차 → 부석사 입구(하차) → 부석사 → 27번 버스(풍기, 영주 방향) → 선비촌 입구, 하차 → 선비촌 또는 한국선비문화수련원(숙박)
둘째 날 : 선비촌 → 소수서원 → 소수박물관 → 금성대군신단 → 제월교 건너 청다리 옛집 입구 버스정류장(27번 버스, 풍기 영주 방향) 승차 → 풍기역 입구, 하차 → 인삼시장 → 귀가

대중교통편
[기차] 청량리-풍기, 하루 8회 운행, 약 2시간40분 소요
※문의 : 한국철도공사 1544-7788 www.korail.com
[시내버스] 풍기역 ↔ 소수서원 ↔ 부석사행
※문의 : 시외버스 영주터미널 1577-5844, 시내버스 영주여객 054)633-0011

자가운전 정보
중앙고속도로 풍기IC → 북영주·풍기·봉화 방향, 우측 방향 → 봉현면사무소 → 풍기교, 좌회전 → 남원로 따라 180m 이동 후 우회전 → 풍기역

숙박시설
- 선비촌 : 순흥면 소백로, 054)638-6444 www.sunbichon.net
- 풍기관광호텔 : 풍기읍 성내리, 054)637-8800 www.punggihotel.com
- 옥녀봉자연휴양림 : 봉현면 테라피로, 054)639-7490 www.oknyeobong.com
- 한국선비문화수련원 : 순흥면 소백로 054)631-9888

주요식당
- 선비촌 종가집 : 선비촌 정식, 순흥면 소백로 054)637-9981
- 원조순흥묵집 : 묵조밥과 태평초, 순흥면 읍내리 054)632-2028
- 영주축협한우프라자 : 한우구이, 풍기읍 산법리 054)631-8400
- 풍기한방삼계탕 : 삼계탕, 풍기읍 성내리 054)638-2600
- 약선당 : 약선요리, 봉현면 오현리 054)638-2728

주변 볼거리
수도리 전통마을(무섬마을), 소백산자락길,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 희방계곡, 성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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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