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윤여정의 오스카 레이스

영화 심장부서 꽃 피우나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미국 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정이삭 감독의 신작 <미나리>는 한국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영화다.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플랜B엔터테인먼트의 독립영화로, 미국 내 영화제와 시상식을 휩쓸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국내에서 전설로 인정받는 배우 윤여정이 있다. 윤여정은 데뷔 55년 만에 할리우드에 진출, 영화 산업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다. 과연 오스카 수상이 환희의 마지막 장면이 될 수 있을지 점쳐봤다. 
 

▲ 국민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한양대학교 국문과 시절, 배우 윤여정은 의과대학에 다시 진학하길 바라는 모친의 마음을 뒤로하고 방송사 TBC 탤런트 시험에 응시한다. 그 당시 만난 한 PD는 윤여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쟤가 배우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저평가

여느 배우와 같은 외모가 아닌 데다, 누군가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날카롭고 예민한 목소리가 저평가의 이유였다. “얼굴은 그렇다 쳐도 목소리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단다.

예상은 쉽게 빗나갔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동료들을 제치고 국문과인 윤여정이 TBC 탤런트 공채 3기로 합격한다. 1947년생인 윤여정이 스무 살인 1966년의 일이다. 

이후 윤여정이 만난 사람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영화 스승으로 부르는 김기영 감독이다. 1971년 <화녀>에 출연해 각종 영화제의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김기영 감독과의 인연은 1972년 <충녀>까지 이어진다. 혹자에게는 대중성이 없어 보인 윤여정의 목소리가 거장의 눈에는 작품의 예술성을 높일 보석으로 비쳤던 것 아닐까. 


배우로서 두각을 나타낸 윤여정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미국으로 향한다. 이를 두고 인터뷰에서 여러 번 ‘도망쳤다’고 표현한 바 있다. 작품 활동을 완전히 저버린 지 13년 만에 윤여정은 유명 가수와 이혼 후 미국에서 돌아온다.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연기에 임한다. 먹고 살기 위해 연기를 한 생계형 연기자였다. 

“돈이 필요할 때 명연기가 나온다”는 명언은 힘든 시기를 극복한 윤여정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다. 절실함이 있어야만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의미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 여배우의 노출이 있어 출연을 원치 않았음에도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집 수리비 때문이라는 건 유명한 일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연기 외에 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던 윤여정의 삶이 벌써 30여년에 접어들었다. 국내의 능력 있는 작가와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선호했다. 

여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자기도취에 빠져 스스로를 공주라 착각하며 살기도 하는데, 윤여정의 현실감각은 예리하게 날이 서 있었다. 

덕분에 환갑이 넘어서도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도회적인 느낌을 줬고, 특유의 깐깐하고 예민한 말투는 연기하는 인물에 현실성을 불어넣었다. 누구나 좋아할만한 정서라기보다는 마니아층이 있을 법한 비주류 정서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력이 윤여정만의 무기였다. 

오랜 배우의 삶을 통해 경제적인 여건이 풍요로워졌을 텐데도 불구하고 윤여정은 여전히 절실한듯하다. 정이삭 감독의 신작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의 대사는 모두 한국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비평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믿을 수 없는 기록 ‘16관왕’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가능?

1980년 희망을 찾아 미국 땅으로 이민을 선택한 한국인 가족이 아칸소주 시골에서 농장을 가꾸며 겪는 갈등과 고난, 화합을 그린 <미나리>에서 윤여정은 어린 손자 데이빗과 앤을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온 할머니 순자를 연기한다. 

고약한 말을 일삼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심성을 가진 순자는 초반 밝고 쾌활하다가 건강 악화로 급변한다. 순자의 감정 기복이 영화의 흐름을 바꾼다.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보편적인 할머니의 인상을 완벽히 표현했다는 게 <미나리>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 ⓒ판씨네마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적인 독립영화제로 꼽히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미나리>는 총 8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고, 36관왕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지난 25일 기준). 이 행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윤여정은 LA·보스턴·노스캐롤라이나·오클라호마·콜럼버스·샌디에이고·그레이터 웨스턴 뉴욕·뮤직시티·디스커싱필름·세인트루이스 비평가협회 등을 포함해 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 흑인비평가협회, 뉴멕시코, 캔자스시티에서까지 총 16개의 여우조연상을 석권했다. 

오스카 전초전이라 불리는 비평가 협회상 레이스에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획득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기록하면서 윤여정의 수상 역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다.

시상식을 약 3개월 앞둔 가운데, 오스카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주요 시상식은 총 네 개다. 미국배우조합상(SAG)과 감독조합상(DGA), 프로듀서 조합상(PGA), 작가조합상(WGA) 등이다. 언급된 네 개의 조합에 오스카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이 무수히 포함돼있다. 

오스카 레이스 당시 봉준호 감독은 SAG 앙상블상에 노미네이트됐을 때 현지 배급사에서 엄청난 환호를 질러 어리둥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SAG 시상식의 후보자는 내달 4일(현지시각)에 공개된다.

지난해 <기생충>은 SAG 최고상인 앙상블상과 WAG의 최고상인 작품상을 탔고, 각축전을 벌인 <1917>이 DGA와 PGA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이 네 개의 조합상에서 윤여정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오스카의 윤곽이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4개 조합상이 마무리 되는 4월 초 무렵에는 윤여정의 수상 여부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국대 배우

OTT인 애플TV 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에도 출연하는 등 윤여정은 글로벌 배우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의도가 있든 그렇지 않았든, 한국 대표 배우로 미국 무대를 활보 중인 그가 75세의 나이에 경이로운 업적을 달성할지, 영화인들이 주목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