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일생일대 도전’ 차인표의 속내

벌거벗은 진짜 차인표를 보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차인표가 벗었다. 겉옷은 물론이며 속옷도 내던졌다. 완전한 알몸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신작 영화 <차인표>에서 차인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다. 그 기저에는 장벽처럼 쌓인 ‘바른생활’ 이미지를 벗어던지겠다는 처절함이 엿보인다.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선 차인표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 배우 차인표 ⓒ넷플릭스

배우 차인표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쓴 것인지, 대중이 씌운 건지, 언제부터 쓰고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가면이었다. 그 가면은 여러 단어를 담았다. ‘봉사’ ‘기부’ ‘바른 생활’ ‘신뢰’ 등을 내포하고 있는 가면이다. ‘검지 흔들기’나 ‘분노의 양치질’과 같은 밈도 포함하고 있으나, 전자의 도덕적으로 고결한 이미지가 후자의 흠결을 압도한다. 

직접 쓴 가면
씌워진 가면

차인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이 꼭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뢰감을 주는 그의 이미지를 광고계에서 마다할 리 없었고, 덕분에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을 테니 나쁠 것도 없었을 것이다. 

1994년,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 1화가 방영된 뒤 연기 경험이 많지 않았던 27세 차인표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 잔상이 너무 강렬해 ‘벼락스타’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보수적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상체를 노출하는 파격적인 장면을 비롯해 모든 것이 완벽한 강풍호의 이미지가 그대로 덧씌워지면서 방영 기간 내내 인기 절정의 스타로 떠오른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기에 입대라는 강수를 둔다. 잊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국민의 의무에 성실히 임한다. 이듬해 11월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호흡을 맞춘 신애라와 결혼한다. 기존 연예인과는 다른 행보에 대중은 열렬히 지지한다. 


제대 후 10여년간 배우 활동에 매진한다. 이 시기 흥행작도 적지 않다.

MBC <그 여자네 집> <별은 내 가슴에> <영웅반란> <왕초> <황금시대> <영웅시대> <하얀거탑>, SBS <불꽃> <완전한 사랑> <대물> 등. 그가 주요 배역을 맡은 작품 대다수가 성공했다. <그 여자네 집>으로는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타성은 최고였지만, 연기자로서는 인기만큼 평가받진 못했다. 최민식·송강호·설경구·이병헌처럼 극찬을 받는 연기자는 아니었다.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했다. 예술성이 짙은 작품과는 인연이 없었다.

SBS 드라마 <홍콩 익스프레스>에서의 악역 연기는 대중으로부터 조롱을 받기도 했다. 지나치게 과한 설정 탓이었다.

스펙트럼이 넓은 편도 아니었다. <왕초>의 김춘삼 역이나 영화 <목포는 항구다>의 건달 역을 제외하곤 대부분 재벌 또는 엘리트 이미지가 강했다. 

넷플릭스 신작 <차인표> 색다른 도전
굳어진 이미지 깨기 위한 파격적 결심

2010년 전후로 작품 활동보다는 배우 외적인 일에 치중한다.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한국 컴패션’을 통해 어린이 구호 활동에 힘쓴다. 2012년 출연한 SBS <힐링캠프>에서 보여준 ‘양심을 실천하는’ 이미지는 ‘바른 생활 사나이’의 가면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5~6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2016년 무렵부터 차인표는 다시 배우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다. 조금씩 작품 활동을 늘려 나갈 계획이었다. 그때 김동규 감독을 만나게 된다. 입봉도 하지 못한 이름 없는 감독이 <차인표>라는 제목으로 시나리오를 써왔다. 차인표를 매우 처절하게 희화화한 내용이었다. 차인표는 거절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극 중에서 그려지는 차인표의 처지가 현실의 제 처지와는 큰 괴리감을 보인다고 느꼈어요. 현실의 차인표가 저렇게까지 자발적으로 극 중의 차인표를 묘사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죠.”

지난 2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차인표>를 보면 차인표의 거절에 수긍이 간다. 1994년 이후 쌓아 올린 매력적인 이미지를 박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 신애라 역시 “굳이 이 작품을 할 거야?”라고 했단다. 
 

▲ 영화 촬영에 몰두 중인 배우 차인표 ⓒ넷플릭스

영화를 보면 2016년은커녕 2020년의 차인표로서도 ‘굳이 저 영화를 찍을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만큼 영화는 차인표를 바닥까지 끌어내린다. 

“이 작품을 거절할 당시에 배우로서 정체된 차인표가 못마땅했어요. 그래서 거절했는데, 막상 4년이 지나고 보니 그 정체가 현실로 이어졌어요. 극 중 차인표나 저나 크게 다름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 영화를 통해 변화해 보겠다고 다짐했죠.”

작품 활동을 다시 하려고 했는데, 그에게 손을 내미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직업이 배우인데 연기를 할 무대가 없었다. 미디어 시장은 커지는데, 오히려 차인표가 설 자리는 없었다. 2016년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배우 차인표의 상황이 극 중 차인표가 겪는 상황보다 더 극한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몇 년째 놀고 있으면 생명이 끝난 배우인 거죠. 배우로서의 제 처지는 건물에 갇혀 있는 극 중 차인표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학생은 공부해야 학생이고, 배우는 연기를 해야 배우인데, 작품은 안 하고 다른 것으로 매체에만 나오면 그건 배우라고 할 수 없잖아요. 제 배우 생명이 극한에 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미지 고착
정체된 현실

위기감과 절박함이 그에게 휘몰아쳐서일까, 차인표는 <차인표>에서 그의 굳어진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데 앞장선다.

현실의 차인표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데 반해 <차인표> 속 차인표는 자기객관화가 전혀 돼있지 않다. 현실의 차인표뿐 아니라 관객이 보기에도 극 중 차인표는 못났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광고 연출 감독의 주문에 ‘진정성’만 외치면서 촌스러운 열정을 내보이고,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시절에 머물러 검지만 흔들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착각한다. 연기 결과물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배우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던 영화가 자신을 제외하고 이미 촬영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제외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매니저 김아람(조달환 분)이 직언이라도 하면 ‘너는 진정성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한다’며 의견을 뭉개기 바쁘다. <차인표> 속 차인표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차인표의 코믹 연기가 눈에 띈다. 온몸에 진흙 물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여자 팬티를 입었다가 벗어던지기도 한다. 이미지를 위해 데뷔 후 단 한 번도 베드신을 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건물 더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할 뿐 아니라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미지를 먼저 생각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이 영화는 관객에게 낯선 뭔가를 던진다.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을 희화화할 뿐 아니라, 사실과 허구가 혼재한다. M.net에서 히트한 <음악의 신> 시리즈와 일맥상통한다. 

스스로를 처절하게 망가뜨리는 차인표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차인표는 단호하게 답했다.

허구와 실제
온몸 내던져

“이 영화 제목도 <차인표>이고, 저에 관한 내용이에요. 오랜만에 영화를 찍으면서 힘들다고 느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이분들이랑 더불어서 일하는 데 손색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마음을 다잡았어요. 꼰대같이 있지 않으려고 했고, 젊은 친구들한테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조감독님이 어린 편인데 끝까지 존댓말을 썼어요. 최대한 존칭을 쓰면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게 제가 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반말하는 사람들도 존칭을 쓰는 분위기가 되더라고요.”
 

▲ ▲배우 차인표 ⓒ넷플릭스

차인표가 온몸을 내던지며 연기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신선한 도전에 중점을 두는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영화적 완성도에 중점을 두는 관객은 혹평을 내린다. 모 아니면 도의 반응이다. 


특히 아쉬운 대목은 차인표가 너무 오랫동안 건물더미에 갇혀 있는다는 점이다. 진흙을 뒤집어쓴 그가 인근 여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건물 더미에 갇히게 되는데, 구출되는 결말까지 너무 오랫동안 똑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건물더미에 갇히기 전 다양한 얼굴을 그린 차인표의 코믹 연기가 재밌다는 점에서 반복되는 장면에 대한 아쉬움은 배가 된다. 

“작품을 하면서 비슷한 갈증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김동규라는 신인 감독이 제 초상권에 대한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놨어요. 허구와 실제가 공존하는 모호한 세계요. 그러고는 대본을 써서 제게 왔죠. 제가 하기로 했는데 ‘이건 맞고 이건 틀려’라면서 고친다면, 결코 영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김동규가 창조한 세상이 대중이 생각하는 차인표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어요.”

자신을 망가뜨리는 차인표는 촬영 중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마냥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모호한 감정이 들었을 거라 예상된다. 마치 모호한 세계의 색감을 가진 영화처럼. 

“4년간 작품 활동 전무…생명 끝난 배우”
“이번 영화 내 배우 인생에 전환점 되길”

“솔직히 구차한 느낌도 들긴 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옷을 다 벗고 샤워장에 갇혀 있는데, 이런 것까지 찍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그 설정 자체가 영화 내에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스스로 추레하다고 느끼다가 깔깔 웃기도 했어요. 구차함과 즐거움이 공존했어요. 찰리 채플린이 그랬잖아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제 마음도 그랬던 것 같아요.”

데뷔 후 24년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올바른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이미지가 단 2시간 만에 무너졌다. 배우로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은 추락이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이미지를 변신하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차인표는 오랫동안 굳어진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용단을 내렸다. 

“저 역시 다른 배우들처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이미지를 조율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죠. 다재다능한 연기를 하는 배우로요. 저라고 왜 안 그러고 싶었겠어요. 작품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화를 주면 좋을 텐데, 저는 이미지가 너무 굳어졌어요.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이미지가 기저에 깔려 있었어요. 나쁜 짓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베드신 한 번 안 한 몸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배우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역할도 그렇게 됐어요. 이미지는 더욱 공고해졌고, 혼자 빠져나가기 어렵다고 느낄 때 이 작품을 만난 거죠.”

올해 나이 55세인 차인표는 이번 신작을 통해 20대 관객과 소통하게 됐다. <차인표>가 준 선물 중 하나라고 한다. 
 

▲ ▲ⓒ넷플릭스

“제 나이에 젊은 관객에게 다가갈 방법은 별로 없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젊은 관객들과 소통하게 됐어요. 팬들이 생긴 것도 고맙고요. 오래전부터 저를 좋아해 준 팬분들도 과거 추억이 상기됐다면서 좋아해 주셨어요. 어떤 분은 ‘작품을 보고 나서 나를 돌아보게 됐다’고 피드백을 주셨어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소감이었어요. 감사한 면이 커요.”

새 건물을 짓기 전에 기존의 건물을 무너뜨리듯 차인표는 배우로서의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과거처럼 영광스럽게 주인공을 맡는 것이 아닌, 어떤 역할로든 작품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이 작품이 배우 차인표의 인생에 ‘비포(Before)’와 ‘에프터(After)’를 가르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 형태가 꼭 배우가 아니어도 된다고.

비포
에프터

“평생 연기자가 되기보단 평생 연예계에서 같이 일을 하고 싶어요. 창작이든 제작이든 어떤 형태로든요. 기회가 된다면 연기도 하고요. 연기하면서 소질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분들이 일할 기회를 작품으로 창출하고 싶기도 해요. 다시 한 번 잘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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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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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