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재판’ 의원님들의 혹독한 겨울나기

요즘 여의도 유독 추운 까닭은?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누가 먼저 금배지를 내려놓게 될까. 지난해 총선 이후 기소된 국회의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일요시사>는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구형을 받고, 1심 재판을 앞두고 있는 의원들을 살펴봤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이번 달에만 모두 6명이다.
 

▲ 사진 왼쪽부터 김한정·이소영·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

21대 총선에서 300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이들이 모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당장 이전 국회만 살펴봐도 짐작하는 데 어렵지 않다. 20대 국회에서는 모두 14명이 옷을 벗었다(자진사퇴 1명 포함). 의혹이 제기되면서 줄줄이 재판에 넘겨져서다. 21대 4·15 총선 과정에서 기소된 국회의원은 모두 27명이다. 이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고 있다.

100만원 이상
다시 집으로

이번 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국회의원은 모두 6명이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3명, 국민의힘 2명, 열린민주당 1명이다. 이 중 가장 먼저 1심 선고를 받은 의원은 민주당 김한정 의원(경기 남양주시을)이다.

김 의원은 지난 2019년 10월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 운영진 4명과 식사를 하면서 고가의 양주를 제공, 70만원 상당을 기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김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당선 무효형이었다.

국회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당선 무효 처리된다.


이날 김 의원 측 변호인은 당시 식사 자리를 선거운동이 아닌 의정활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선이나 총선 관련 내용은 없었고, 마석 가구공단 이전이나 지하철 9호선 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공소 사실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모두 동의했다. 김 의원은 최후진술에서 “법을 지켜야 할 맨 앞줄에 있는 사람인데, 법을 어겨 송구스럽고 반성한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의정부지법 형사합의13부·정다주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김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그대로 선고했다.

김 의원은 지난 2014년 남양주시장 선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김 의원은 고배를 마셨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남양주시을 선거구에 깃발을 꽂았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법 27명 기소, 재판 시작
구형량은 당선무효형, 1심은?

나머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1심 선고는 이번 주에 있을 예정이다. 민주당 이원택 의원(전북 김제시부안군)의 선고공판은 오는 20일이다. 이 의원은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당시 김 의원은 선거법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 기소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이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이 의원은 지난 2019년 12월 지역구 소재 마을 경로당에서 구민들을 상대로 좌담회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곳에서 이 의원이 지역구 거주사실을 밝혔고, 민원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봤다.


이 의원 측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했다. 경로당 방문은 선거운동이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활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후보 예정자가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민원을 청취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면, 인지도가 낮은 후보는 어떻게 자신을 알리고 시민이 원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겠느냐는 입장이었다. 또 지지해달라거나 투표해달라는 발언 내용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최후변론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제일 먼저 낭독한 것이 선거법과 선거관리위원회 안내 책자”라며 본인의 행동이 사전선거운동이라면 죄를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고의적인 의도는 없었다는 점도 덧붙이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의원은 구의원으로 출발해 국회에 입성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전북 지역 무소속 구의원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재도전해 전주시 구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민주당 이소영 의원(경기 의왕시과천시)의 1심 선고는 오는 22일 열린다. 이 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12월16일 벌금 150만원을 구형받았다. 이 의원은 총선 예비후보자였던 지난해 3월 노인회 사무실과 노인복지관 등 여러 기관단체 사무실을 호별 방문해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당선! 
기쁨도 잠시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위한 호별 방문을 엄격히 금지한다. 당시 의왕시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의원을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이뤄졌다.

이 의원은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호별 방문의 위법성을 면밀히 살피지 못해 이를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의원 역시 “잘못을 통감하고 반성한다”며 “지역주민 뜻에 따라 봉사할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인재영입 8호 출신이다. 그는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거친 환경 전문 변호사로 소개됐다. 이 의원의 지역구인 의왕시과천시의 전임자는 민주당 신창현 전 의원이었다. 신 전 의원은 주택개발후보지 유출 의혹으로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됐고, 이 의원이 전략공천 대상자가 됐다.

이 의원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신계용 후보를 43.38%대 37.95%로 꺾으면서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됐다.
 

▲ 국회의사당 전경 ⓒ고성준 기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이번 달에 1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비례대표)은 지난해 총선 당시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선고 공판은 오는 27일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23일 조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조 의원이 누락된 채권 5억원에 대한 이자를 지속적으로 받아 채권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고 봤다. 검찰은 “누락한 현금성 자산의 성격과 규모를 보면 누락할 유인이 충분해 보인다”며 “당선 목적으로 재산이 허위 공표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재산보유현황서 작성 요령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선 목적으로 재산 관련 허위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뒤늦게…
선처 호소

조 의원이 재산보유현황서에 기재한 재산은 22억3000만원이다. 실제 재산은 26억원으로 3억7000만원 정도의 차이가 있다.

조 의원 측은 “선거인 입장에서 비례대표 후보자 재산이 22억3000만원이나 26억원일 때 재산에 관해 다른 인식이 형성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조 의원 측은 동생 부부에 대한 사인 간 채권 5억원 누락분이 신고대상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과소 신고와 배우자 금융자산 누락, 아들 예금 등도 모두 착각과 실수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조 의원은 검찰 구형 당시 최후진술에서 “돌이켜보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에서 후보 1번에 이름을 올리며 당선됐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경북 포항시남구울릉로)의 선고공판은 오는 28일 열린다. 김 의원은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검찰은 지난 11일 김 의원의 선거법 관련 사안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김 의원이 지난해 3월21일 미래통합당 소속 박명재 전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 지지를 호소하며 사전운동을 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정치자금법의 경우 100만원이 구형됐다. 검찰은 선거 기간에 발생한 문자 메시지 발송비를 선거비로 회계처리하지 않은 점을 강조했다.

인정·호소·대립…반응 제각각
20대 국회 14명 이탈 이번에는?

김 의원은 보좌관 출신 국회의원이다. 그는 강재섭 의원실 인턴 비서로 시작해 박보환·박상은 의원 비서관, 박상은·이학재 의원 보좌관 등을 거쳤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포항 지역에 출마, 상대 후보들을 제치며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는 오는 28일 1심 선고를 받게 된다. 최 대표에게는 앞선 벌금형 사례와 달리 징역이 구형됐다.
 

▲ ▲ 사진 왼쪽부터 조수진 국민의힘·김병욱 무소속·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검찰은 지난해 12월23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 아들의 인턴 경력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로 최 대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도 뉘우치지도 않고 수사 과정에서 출석조차 거부했다”며 “법정에서 말을 바꾸는 등 여러 차례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 측 변호인은 이 사건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사건사무규칙을 명백하게 위반한 위법기소라며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최 대표 역시 “사실관계로 보나 증거로 보나 분명히 무죄”라며 “검찰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뿐”이라고 전했다.

최 대표는 청맥 변호사로 일하던 지난 2017년 10월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됐다. 하지만 최 대표는 조 전 장관의 아들이 실제 인턴 활동을 했기 때문에 확인서를 발급해줬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최 대표는 손혜원 전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 등 민주당 탈당 인사들이 꾸린 열린민주당에서 비례 2번에 이름을 올리면서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검찰이 27명의 국회의원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이후, 재판이 하나둘 진행되는 모양새다. 물론 1심 판결에서 당선무효형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당장 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벌금부터
징역까지

지난 20대 국회에서 의원직을 잃은 이들은 모두 13명이다. 자진사퇴 1명을 포함하면 모두 14명이다. 정당별로 살펴보면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10명, 국민의당 2명, 민주평화당 1명, 민중당 1명이었다. 21대 국회에서는 몇 명이나 옷을 벗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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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