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리에 시즌 마친 K-골퍼들

코로나로 경기력 저하?
변함없는 대활약

해외 투어에서 활동하는 한국 골프 선수들이 성공리에 시즌을 마무리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투어 운영이 축소되고 일정 변경이 불가피해지면서 경기력 저하가 우려됐지만 한국 선수들의 활약엔 변함이 없었다.
 

한국산 장타자 김아림은 미국 최고 권위의 US여자 오픈에서 정상에 올랐다. 김아림은 지난해 12월15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챔피언스 골프클럽 사이프러스 크리크 코스에서 열린 ‘제75회 US여자 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6개, 보기 2개로 4타를 줄였다. 최종합계 3언더파를 기록한 김아림은 세계랭킹 1위 고진영과 에이미 올슨(미국, 이상 2언더파) 등을 1타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예상치 못한
무명의 반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김아림은 출전 당시 여자골프 세계랭킹 94위였다. 지난해 3월16일을 기준으로 세계랭킹 상위 75위 이내 선수에게 출전 자격을 주는 대회 규정에 따라, 당시 75위 이내에 있던 김아림은 생애 첫 US여자 오픈 출전 자격을 얻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특히 첫 출전에서 우승까지 거머쥐어 패티 버그(1946년), 캐시 코닐리어스(1956년), 김주연(2005년), 전인지(2015년)에 이어 5번째 첫 출전 우승자가 됐다. 또한 박세리(1998년)를 시작으로 김주연(2005년), 박인비(2008년과 2013년), 지은희(2009년), 유소연(2011년), 최나연(2012년), 전인지(2015년), 박성현(2017년), 이정은(2019년)에 이어 한국인 11번째 우승(10번째 선수)을 합작했다.

1946년에 시작된 US여자 오픈은 여자 골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회다. 김아림은 2020 시즌 KLPGA 투어에서 우승이 없었지만, 생애 최고의 시즌을 맞게 됐다. 


김아림의 우승은 여러모로 운도 따랐다. 당초 최종 라운드는 지난해 12월14일 오전에 끝날 예정이었지만, 천둥 번개를 동반한 악천후로 하루 연기됐다. 다음날 치러진 대회 최종 라운드는 이전 라운드와 달리 티잉그라운드를 앞으로 당겨 놓아 장타자인 김아림의 경우 거리 면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김아림, 메이저 US 오픈 정상
고진영, 4개 대회 뛰고 상금왕

실제 우승 후 가진 인터뷰에서 김아림은 “이전 라운드와 달리 티박스가 앞으로 당겨져 있어 자신 있게 홀을 공략했다”고 밝혔다.

선두에 5타 뒤진 공동 9위로 최종 라운드를 맞은 김아림은 선두권 선수들이 일제히 부진한 가운데 5번 홀(파5), 6번 홀(파4) 연속 버디에 이어 8번 홀(파3)에서 버디를 추가하는 등 전반에만 3타를 줄여 우승 경쟁에 가세했다. 하지만 10번 홀과 11번 홀(이상 파4)에서 연속 보기를 범해 상승세가 한풀 꺾이는 듯 보였다. 

라운드 후반 뒷심이 발휘됐다. 최종 라운드 후반 홀 포지션이 어렵게 세팅돼 대부분의 선수들이 줄줄이 보기를 쏟아내는 와중에 김아림은 16번 홀(파3)부터 17번 홀(파4), 18번 홀(파4)까지 3연속 버디를 잡아낸 것.

이 3개 홀에서의 버디가 사실상 김아림의 우승을 결정짓는 최고의 변곡점이 됐다. 파3 16번 홀에서 티샷을 홀 4m 거리에 떨어뜨린 후 침착하게 버디로 연결했고, 17번 홀 세컨 샷을 홀 바로 앞에 떨어뜨려 탭인 버디로 연결해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그리고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내리막 2.5m 버디 퍼트를 홀컵에 떨어뜨리며 김아림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치 우승을 예감한 듯한 장면에 현지 중계진들도 환호했다. 이후 챔피언조에서 플레이를 펼친 에이미 올슨(미국)과 우승에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시나부 히나코(일본)가 오히려 타수를 잃음으로써, 김아림은 5타차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김아림은 우승 시상식장 인터뷰에서 “3라운드에서 아쉬운 플레이를 해서 공격적 플레이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생각대로 됐다”며 “일찍 미국에 와서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아직은 얼떨떨하다. (우승) 기회가 있을 걸로 생각했지만 아직은 머리가 하얗다. 시간이 좀 지나면 실감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20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300만달러)’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첫 승일 뿐만 아니라 4개 대회 출전만으로 상금왕에 등극해버린 이례적인 사례가 됐다.

고진영은 지난해 12월21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클럽(파72, 6556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를 기록한 고진영은 공동 2위 김세영과 해나 그린(호주)을 5타차로 제치고 투어 통산 7승째를 수확했다.

고진영은 우승 상금 110만달러(한화 약 12억원)를 손에 넣으며 시즌 상금 166만7925달러를 누적해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다. 2020 시즌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전체 18개 대회 중 4개 대회에만 출전하고도 상금왕을 거머쥐는 진기록을 세웠다.

고진영은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2위로 이날 경기를 시작했다. 전반에 김세영과 동타를 이룬 후 후반 들어 세계랭킹 1위의 면모를 과시했다. 고진영은 12번 홀(파3)에서 2m 거리 버디 퍼트를 넣은 뒤로 13번 홀(파4), 14번 홀(파5)까지 3개 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승부의 추를 기울게 했다. 순식간에 3타 차로 벌린 고진영은 16번 홀(파3)에 이어 18번 홀(파4) 챔피언 퍼트도 버디로 장식했다.

고진영은 경기 후 진행된 현지 언론과의 우승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충분히 쉬었고 미국으로 넘어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며 “이번 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지 몰랐는데 우승을 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공동 준우승에 오른 김세영은 LPGA 투어 올해의 선수를 차지했다. 그는 대회 전까지 1위였던 박인비를 6점 차로 따돌리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김세영은 시즌 평균최저타수에서 가장 좋은 기록을 냈지만, 규정 라운드 수를 채우지 못해 다니엘 강(미국)에게 베어트로피를 내줬다.

구관이 명관
랭킹 1위

LPGA 투어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VOA) 클래식(총상금 175만달러)’에서 박인비는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박인비는 지난해 12월7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더콜로니의 올드 아메리칸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최종 라운드에서 1언더파 70타를 기록해 앤젤라 스탠퍼드(미국)에 2타 뒤진 2위(5언더파 279타)에 올랐다.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박인비는 1번 홀(파4) 보기로 불안했지만, 4번(파4), 6번 홀(파5) 징검다리 버디로 다시 공동 선두에 복귀했다. 9번 홀까지 버디 2개를 잡은 고진영(25), 8번 홀까지 2타를 줄인 스탠퍼드와 본격적인 우승 경쟁에 나선 박인비의 12번 홀(파4) 보기는 뼈아팠다.

두 번째 샷이 바람에 밀려 그린을 벗어났고 세 번째 샷은 핀을 한참 지나쳤다. 13번(파5), 14번 홀(파4) 연속 버디로 2타차 선두로 치고 나간 스탠퍼드는 16번 홀(파3), 17번 홀(파5) 연속 버디로 승부에 사실상 쐐기를 박았다.

일본서 울린
반가운 승전보


3타차로 달아난 스탠퍼드는 18번 홀(파4) 보기를 하고도 가족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환호했다. 버디 7개를 잡아내고 보기 3개를 곁들이며 4타를 줄인 스탠퍼드의 최종 스코어는 7언더파 277타. 지난해 11월 43번째 생일을 맞은 스탠퍼드는 2018년 에비앙 챔피언십 이후 2년 동안 이어진 우승 갈증을 역전승으로 씻어내고 통산 7승째를 올렸다.

박인비와 함께 공동 선두로 4라운드에 나선 유소연은 1언더파 70타를 쳐 박인비와 함께 공동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유소연은 17번 홀까지 파 행진을 벌이다 18번 홀(파4)에서 7m 버디를 잡아냈다. 여기에 공동 선두로 출발한 재미교포 노예림은 1타를 줄여 공동 2위에 대회를 마쳤다.

재미교포 김찬은 일본프로골프(JGTO) 투어 올해 최종전인 골프일본시리즈 JT컵(총상금 1억엔)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찬은 지난해 12월6일 일본 도쿄 요미우리컨트리클럽(파70, 7023야드)에서 열린 JT컵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3개를 묶어 3언더파를 쳤다. 최종합계 8언더파 272타를 기록한 김찬은 2위 그룹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2라운드에서 선두로 나서기도 했던 김찬은 3라운드에서 오버파를 치며 선두 자리를 내줬다. 선두에 2타 차 3위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김찬은 2번 홀(파3)에서 버디로 순항했다. 3번 홀(파4)에서 보기가 기록됐으나 5번 홀(파4)과 6번 홀(파5)에서 연속 버디로 만회했다. 

9번 홀(파4)에서 버디를 추가한 김찬은 선두로 전반 홀을 마쳤다. 10번 홀(파4)에서 보기가 나오며 주춤하기는 했지만, 13번 홀(파4)에서 버디로 만회했고, 16번 홀(파4) 보기 역시 17번 홀(파5)에서 버디로 만회하며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파워풀한 장타가 주무기인 김찬은 지난 2015년 JGTO에 데뷔했다. 2017년에는 시즌 3승을 거두며 상금왕의 영예도 안았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뒤 한동안 우승과 연이 닿지 않았던 김찬은 지난해 10월 치러진 JGTO 메이저대회이자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일본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통산 4승째를 기록했다.


김찬, JGTO 통산 5승 수확
박인비, 아쉬웠던 준우승 

올해 JGTO는 코로나19 여파로 6개 대회밖에 치러지지 않았다. 김찬은 이번 대회에 앞서 2개 대회에 출전했는데, 복귀전인 비자마스터스에서 4위를 차지했고, 던롭피닉스에서는 공동 5위를 차지했다. 이어 세 번째 출전 대회인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올 시즌을 더욱 기대케 하고 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최종전에서 시즌 3승과 함께 통산 60승 달성에 도전한 신지애가 대기록 달성을 잠시 미뤘다. 신지애는 지난해 12월29일 일본 미야자키현 미야자키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JLPGA 투어 2020 최종전인 ‘리코컵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1억2000만엔)’ 마지막 4라운드에서 4오버파 76타를 쳤다. 최종합계 2오버파 290타를 기록한 신지애는 공동 17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지난 2006년 프로에 데뷔한 신지애는 KLPGA 투어 20승, LPGA 투어 11승, JLPGA 투어 2승과 유럽과 아시아 투어에서 각 2승씩을 올리며 통산 59승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 JLPGA 투어에서 2승을 더하며 60승을 목전에 뒀다. 통산 60승은 한국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실력으로
변수 없애다

대회 1라운드에서 공동 22위로 출발한 신지애는 2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며 공동 8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공동 13위로 순위가 밀리며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일본의 ‘신예’ 하라 에리카가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를 쳐 정상에 올랐다. 하라 에리카는 지난해 10월에 열린 일본여자오픈에 이어 시즌 2승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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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